사도행전 19장 1-7절 “온전한 믿음” / 다 표현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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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사 우리의 발걸음 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2025년을 세번째 주일에 감사와 찬송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온누리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평화가 깃들게 하 옵소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삼위일체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찬미하며 영광을 돌리 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Page 1. 반쪽짜리 믿음 (성경 속의 문제)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목회한 에베소에는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아는 이들이 많았다.
Ephesus - 에페수스,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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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 -
율법에 정통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학자(고전 3:6).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웅변과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했었다(행 18:25). 에베소에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서 기독교의 신앙을 자세히 배운 후(행 18:26), 교회의 소개장을 받고 에게 해를 건너 아가야로 가서 그곳에서 열심으로 전도하며 말로써 유대인들을 물리쳤다(행 18:27–28).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로 고린도 교회 내에서 그를 추종하는 한 분파가 생겨나기도 하였다(고전 1:12; 3:4–6).
아볼로에 대해서는 전장인 사도행전 18장에 주로 언급되어 있는데,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 로서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 (24절) 였다. 또한 아볼로는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준 (27절) 믿음의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18:24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 추정되는 데 일찍이 복음을 접하고 복음을 열심히 증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요즘말로 1:1 제자 훈련을 시켜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주는 특별 교습을 한다 (18:26) .
사도행전 18:26 (NKRV)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이후 그는 추천서를 받아 아가야로 가서 그곳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증언하며 유대교에 심취한 유대인들을 복음으로 이기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볼로가 고린도 지방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에게 바울이 질문한다.
사도행전 19:1–2 (NKRV)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바울)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제자)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님에 대해서 듣지도 못했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Page 2. 반쪽짜리 신앙생활 (세상에서의 문제)
바울의 에베소 목회 당시 성령님이 계심도 듣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또 그 세례만 받았으면서 복음을 다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그때 바울이 만났던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 같지는 않은가?
군맹무상 (群盲撫象)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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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여러 명이 코끼리를 더듬으면서 말한다라는 뜻으로서 모든 사물을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들어, 코끼리 다리를 만 지며 기둥이라 하고 상아를 만지며 창이라 하는 식의 행동을 말한다.
짧은 시간 배우고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마치 복음과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유아기적 신앙 수준에 머무르며 어떠한 믿음의 진보나 발전도 없이, 딱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고인물처럼 정체되어 있는 이들이 있다.
또한 IQ 200도 안 되는 피조물 인간의 머리로, 또 그들의 입술로, 언어로 이해 하고 표현하는 하나님이 마치 하나님에 대한 전부, 또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그 질서에 대한 모든 것을 다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또 자신의 성장배경, 기질, 성격 등에 맞는 개인의 신앙의 취향과 스타일을 가장 잘 믿는 신앙생활의 모범인 것처럼 착각하여 그것을 따르라고 남에게 강 요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의 이해와 지식, 경험의 한계에 머물러 계시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Page 3. 온전한 믿음 (성경 속의 은혜)
사도행전 8장 14-25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여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게 한 역사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마술사 시몬이 자신도 돈을 주고 그 은사를 사기를 원한다고 하였다가 베드로로부터 심한 책망을 듣고 자신의 잘못된 욕심을 깨닫게 된다.
8장에서 안수로 성령님을 받는 무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8:16) 를 받은 사람들이다.
사도행전 8:16 (NKRV)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그들에게 내리신 일이 없으므로 그들도 성령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주시는 19장의 본문 속에 나오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요한의 제자들로 추정되는 “어떤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는 과정은 8장보다 좀 더 역동적으로 진행이 된다.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던 어떤 제자들에게 바울은 너희가 요한을 통해 요단강에서 받은 세례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회개의 세례라 하는 것을 명확히 가르쳐 준다.
사도행전 19:4 (NKRV)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바울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알았던 복음과 신앙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바울을 통해 다시 한 번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사도행전 19:5 (NKRV)
5 그들이 (복음과 신앙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다른 점은 그 제자들이 세례를 받을 때 에 바울은 그들에게 안수를 한다. 그리고 6절을 봅시다.
사도행전 19:6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그때 열두 명쯤 되는 모두에게 성령님이 임하 게 되어 그들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고 예언도 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그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드러나게 되는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또한 8장의 이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성령님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여 성령님을 받게 한 그 사건에 비해,
오늘의 본문 19장의 체험은 좀 더 빠르게 나타난 은사가 방언과 예언으로 기록되어 좀 더 상세하다.
Page 4. 온전한 믿음 (세상 속에서의 은혜)
이것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세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적 질서가 있음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의 작고,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정녕 그러하다! 우리는 늘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그 놀라우신 섭리를 다 인정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분이 행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 당시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 (눅 13:4) 의 기록처럼
누가복음 13:4 (NKRV)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나 돌발적인 사고, 또 질병이나 파산 등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 수 도 없고 또 그것을 다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바울의 안수로 성령님을 체험한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 이 하나님의 세계를 성령님을 체험함으로 좀 더 알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인도하심만큼만 따라가고 그분이 보여주시는 범위 안에서 그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라가자.
마치 우리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그분의 사랑을 찬양하겠다는 이 찬양의 고백처럼 말이다.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다 :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고 계신가요~
에베소의 어떤 제자의 모습과 같지는 않을까요~
25년도 바라고 소원하는 것은...우리 교회에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처럼 성장과 성숙이 열매맺기를 소망합니다.
이목사님이 세미나를 다녀와서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시간을 내어, 비용을 내어, 가족의 희생을 내어 먼 거리를 다녀옵니다.
받은 은혜는 있지만 명실한 피곤함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누린 은혜가 더 큰 가 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 표현이…배움이 주는 평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안녕하십니까~
제자는 팬과 다릅니다.
카일 아이들먼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팬은 경기가 끝나면 돌아갑니다.
그러나 제자는 지속적으로 함께 한다고 합니다.
25년도 우리가 이러한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매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며
매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 19:20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한발더 나아가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갑시다.
물세례로 그쳐버리는 신앙에서 성령세례로 나아가는 믿음의 풍성함을 누립시다.
그 길은 지금부터 가능합니다. 이 순간입니다. 나의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길 기도합시다.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가리라
주님 내가 주를 더욱 알게 하소서.
주를 알아가며 닮아가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