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3 목적이 이끄는 삶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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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자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자
게할더스 보스라는 학자가 “종말이 구원을 앞선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종말이 구원을 앞선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완성이 우리의 구원보다 먼저라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알고 계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완성을 염두에 두셨을까요? 아니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고 창조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창조전에 이미 삼위로 계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이미 완성을 염두에 두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를 알고 계셨고, 다윗을 알고 계셨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모르고 계셨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강압적이요 구원계획에 없던 내용이 되고 맙니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이미 창조하실 때 요한계시록의 완성을 알고 계셨고 이루실 모든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실패하자 안되겠다 이렇게 해 보자 하고 계시록을 우연히 작성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말이, 다른 말로 완성이 우리의 구원을 앞서 계획되었다는 뜻으로 게할더스 보스가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게할더스 보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할까요? 종말, 즉 계시록의 완성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의 내용을 전제하고 창세기를 읽고 이해하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목적이 이끄는 삶 세 번째 설교로서 종말의 완성인 에덴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에덴은 어떤 곳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다시 에덴에 동산을 만드신 것일까요? 지난 주 설교에서 제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지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나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지은 에덴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쫓겨나서 하나님이 사람 스스로 찾아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고 기록하며 그룹들과 두로 도는 불칼로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니 사람이 찾을 길이 없습니다.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룹들은 천사를 말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에덴이 상징하는 바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이 없어진 이후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없을까요?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사람 가운데로 찾아오셨습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에덴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에덴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 본문 10에 보니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라고 기록합니다. 에덴에는 강이 흐릅니다.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습니다. 에덴에서 흘러 나온 강은 네 근원이 되어 흐릅니다. 네 근원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은 동서남북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흘러 나온 물이 세상으로 흘러서 세상에 생명을 제공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아담의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에 두심으로 에덴에서 하나님과의 교제함을 통해 생명을 누리고 경작하고 지킴을 통해 에덴을 확장해 가는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창세기는 계속해서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이 내용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에덴이 확장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어 사명을 수행함으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려는 전략이 계속 나타납니다.
에덴에는 강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 에덴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시편 46:4 “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고 말합니다. 에덴을 뭐라고 표현합니까?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라고 말합니다.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에덴을 성서로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성소라고 말할 때 이 성소는 모세가 지은 성막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성소와 지성소 뜰을 성막이라고 하지요. 곧 하나님의 성막입니다. 성막을 지금 시인은 에덴동산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생각해보건데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성소로 지어졌습니다.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의 기능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과 죄를 지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 온 세상을 적시는데 그 사명에서 아담과 하와는 실패하고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을 성소, 이제는 성막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막이 나중에 솔로몬왕 때 성전이 됩니다. 점점 확장되지요. 다 같은 표현입니다. 에덴 동산이 성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금, 베델리엄, 호마노와 같은 보석때문입니다. 왜 이 보석들이 중요할까요? 출애굽기 25: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출애굽기 25: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고 하며 보석이 등장합니다. 성막을 지을 때 사용한 보석이 에덴동산에 있던 보석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장식하던 보석들이 성막을 장식하는데에도 사용되고 심지어 제사장의 에봇에도 이 보석들이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모두 성전을 가리키는 표현들입니다.
그럼 이제 완성을 한 번 보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아 에덴동산이 한나님의 성막,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였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가운데 집을 지으시고 거하셨습니다. 그것이 성막입니다. 성막은 히브리어 거처, 집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집인데 에덴 동산이 하나님의 집이요 성막이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집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요? 도대체 언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통해 온 세상에 생명의 강물이 흘러 넘칠까요? 겔47:1-12 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여러분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요 에덴 동산이라면 다시 회복되는 성전의 모습도 에덴 동산과 동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이 파괴되어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전의 회복, 바로 하나님의 집의 회복, 에덴의 회복입니다.
1절 보세요. 성전 문이 있는데 어느 쪽을 향해 있습니까? 동쪽입니다. 창3:24에 에덴 동산의 문이 어느 쪽에 있습니까? 동쪽입니다. 우연일까요? 성전 문지방에서 무엇이 흘러 나옵니까?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같죠? 9절 보세요.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성전에 에덴 동산인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성전을 통해 성전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 나와서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성소를 통해 생명의 물이 흘러 나오는데 에덴 동산에서 물이 나오는 것과 동일하고 에덴 동산에서 채소와 열매가 끊이지 않을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1–5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가 장차 거하게 될 천국의 모습입니다.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강이 지금 가운데로 흐릅니다. 강이 흐르는 양쪽에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 나무가 있습니다. 에덴에는 선악의 나무도 있었는데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없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악도 고통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에덴과 비슷합니다. 에덴과는 비교할 수 없는데 에덴과 너무 유사한 하나님의 성소가 완성됩니다.
성경은 이처럼 에덴 동산의 회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에덴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회복하시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성막에서 에덴을 회복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이 성막에 가득했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여전히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을 떠났고 성전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떠나신 하나님은 다시 자기 백성 곁으로 돌아오십니다. 이전보다 더 큰 영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더이상 떠나시지 않아도 되는 죄와 사망이 없는 영원히 완성된 나라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새에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에덴을 적셨던 그 물은 어디에 있으며 완성된 천국에서 흐를 그 물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7:37-39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교회에는 성령의 강물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 물을 마시고 온 세상으로 가는 강물이 됩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삶에 지혜를 주십니다. 이 지혜는 강에서 나오는 금과 보석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는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 지혜로 거룩한 교회를 짓고 세상을 복되게 해야 합니다. 성막을 지을 때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이미 구약에 나와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짓는 것입니다. 지혜는 세상을 살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이 세상에서는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음, 성령이 주시는 복음이 지혜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지혜를 사모하고 성령의 지혜를 따라 일상을 살아가고 얻은 소득으로 서로 나눌 때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교회를 세우고 우리가 세상을 돌봄으로 하나님의 성소를 세워 가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경작과 다스림의 사명이요 이를 행할 때 교회로부터 생명의 강물이 세상으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새에덴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완성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죽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세워가시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장차 너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복음이 힘이 없고 세상에서 가치가 없는 것 같고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아니야 장차 이렇게 너희들은 복음으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누릴 거야 그러니 고개를 들어 천국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되어 성전을 이루어갑니다. 우리가 하나된 성전을 이루어 감으로 우리릍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에덴 동산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이 사명을 이제는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이루시길 원하시고 그렇게 완성하십니다. 우리 교회안에 생명의 물이 흐르도록 합시다. 복음에 순종함으로 성령이 주시는 지혜의 강물이 생명의 강물이 우리 교회안게 가득하게 합시다. 이럽 복이 가득한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