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따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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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하면서 힘을 쏟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한 주 세상 속에서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이 나를 낙심케하거나 좌절에 빠지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걸어 마침내 가나안 땅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요단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번도 평탄한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언제나 인도함을 받는 너무도 행복한 광야 생활이었지만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의 시선으로 보면 언제나 부족함, 좌절, 낙심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가나안 땅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금 낙심케 하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40년 동안 자신들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바라보고 있는 요단강이 가나안 땅으로의 입성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이끌 것이며 어떻게 저 요단강을 건널 것인가? 이 질문은 사실 너무도 초라한 자신들을 바라보며 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 질문의 첫번째 답으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답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모세오경의 뒤를 잇고 있는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죽음과 그 후계자를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가장 우선으로 해야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의 부흥과 민족을 위한 땅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하신 명령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첫번째 명령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있습니다.
1장2절입니다. “너는 이제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본론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진중에 있는 관리, 지도자들을 불러 요단을 건너기 전에 세 가지의 명령을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세가지 명령의 첫 번째 명령은 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할 한가지가 무엇입니까? 항상 주시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떠날 시기를 몇시라고 정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맬 때로 말씀합니다. 시간을 정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 시간에 보따리를 정리해서 함께 출발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정해 준 시간이 없었습니다.
단지 짐보따리를 정리할 사인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 명령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해야 할 것은 언약궤를 주시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5:21-22절을 읽어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궤가 있는 곳에서 만나 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행할 것도 그곳에서 명령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명령하시는 장소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명령의 의미는 하나님께 집중, 말씀에 집중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언약궤의 움직임에 맞추어 행동하고 움직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찬양 중에 이런 가사의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나라와 그뜻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내 뜻이 앞서려고 할 때 먼저 무릎을 끓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요단을 건너 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저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40년을 돌고 돌아 왔는데 뭘 더 기다릴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기다립니다. 제사장들도 기다리고 백성들도 기다립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을 걸어 가나안 앞에 왔는데 아니 요단강이라니” 불평하고 낙심하지 않고 잠잠히 명령을 기다리며 언약궤를 주시합니다.
두 번째 명령은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 매는 것을 보면 신속하게 벌려 놓은 것을 정리하도록 준비하고 있어야했습니다. 지금의 자리는 영원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땅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던 곳이기 때문에 어떤 미련도 가져서는 안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하신 기적, 병고침, 귀신을 쫓아내심, 권위있는 말씀.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은 그 시간이 영원하길 간절하게 바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금 자신들을 통치하시는 유대의 왕으로 등득하신다면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임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몇번이고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앞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시기와 때가 되었을 때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아무리 큰 인기가 있고 추종자들이 있고 보장된 권력의 자리가 있다고 해도 세상에 안주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삶은 항상 부족한 것 뿐이었습니다. 물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했고 먹을 것이 없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곳이 광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단강 앞에서는 다르지 않습니까? 풍족한 물이 있어요. 물이 있는 곳에서는 무엇이든 심으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풍족함이 보장 된 그곳을 떠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 있는 그곳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맨 언약궤만을 따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머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험을 하기 보다 안주 하고 싶은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마태복음 17:2-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세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영광의 빛 앞에 베드로는 말합니다. 여기에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러분!
그렇죠. 우리도 좋은 일만 있을 때는 여기가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말씀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언약궤를 따르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 머물러 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미지의 시간을 우리는 걸어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요단강과 같은 걸림돌이 있다해도 우리는 뛰어 넘어가며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의 명령은 4절에 있습니다.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언약궤의 뒤를 따르라 말씀하시면서 세 번째로 거리를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요단강을 건너면서 언약궤와의 분명한 거리 유지하라는 말씀은 언약궤를 앞서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수 십만의 백성이 따르다보면 대형이 흩뜨러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분명한 거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나갈 때 분명한 푯대를 정하고 그것의 뒤만 따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본문에서 관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는 명령은 모두 말씀과 관련 된 명령입니다. 말씀이 움직이면, 말씀의 뒤를 따르라, 그리고 말씀을 앞서지 말라. 요단강 앞에 있는 이스라엘의 삶을 뒤돌아 보면 힘으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힘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그들의 삶을 좌지 우지 하지도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물질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가치가 있지 않았습니다. 가진자나 없는자나 광야에서는 똑같이 먹었습니다. 만나를 누구는 많이 갖고 누구는 적게 얻었습니까? 많이 주운 자의 만나는 그 다음 날이면 모두 썩어 없어졌습니다.
요단강까지 걸어 온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한발도 내딛지 않는 삶이 광야의 삶이었습니다. 광야의 삶은 언제나 성막, 언약궤가 중심이었습니다. 언약궤를 모신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이스라엘 민족들은 진을 배치하고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이제 광야의 마지막 순간인 요단에서도 관리들은 말씀에 시선을 떼지 말라, 말씀을 따르라, 그리고 말씀을 앞서 행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주 말씀에 집중하면서 살았는가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말과 주위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또 깨달은 그 말씀으로 살기위해 노력하면서 살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 입니다. 1월 매일 성경을 매일 묵상하면서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매일 확신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집중하는 삶이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유가 아닌 명령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주일이 지나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없이도 너무 잘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려고 해보면 지금 나의 삶의 방식과 부딪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앞서서 가고 있는지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원치 않는 일을 얼마나 많이 벌려 놓았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제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직접 백성에게 내린 명령은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백성에게 내려진 명령, 성결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하는 이 성결(Consecrate)은 도덕적 개념이나 외부적인 의미의 깨끗함이나 순결의 의미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속죄함을 받는 내적 성결을 더 많이 의미합니다. 보여지는 성결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죄의 부분을 용서함 받는 것은 더욱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밟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광야에서의 불순종과 불평과 원망의 죄들을 그대로 가지고 축복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광야 40년의 시간은 바로 불순종과 불평, 원망하는 자를 제거하시는 기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시고 오직 순종하는 자들로 가나안의 복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내 죄를 모두 자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다짐하고 결단하며 회개한 이들만이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축복의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의 이 명령은 요단을 건너기 전 자신의 죄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자복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내린 또 하나의 명령은 제사장들에게 내린 것이었습니다. 6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지의 땅으로 출발은 명령을 수행함으로 시작됩니다.
범람하는 요단강을 보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건너는 강이 요단강이었습니다. 나의 지식과 살아온 경험으로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냉철하게 생각해서 전적으로 말씀만을 의지하며 살아오셨습니까?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임을 알면서도 여러가지 핑계로 그 명령을, 그 말씀을 회피하며 살아온 시간들은 혹시 없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나의 상황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있는 요단강, 제사장들이 먼저 내 디뎌야 하는 요단강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을 여호수아가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기이한 일들,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 그 일을 말도 안되는 명령을 받고 순종하며 한 발을 요단강에 담글 때 만들어 내시겠다는 겁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한 이들에게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기 위해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백하고 기도하는 이들에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오늘도 세상과 처절하게 영적싸움을 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기인한 일들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2025년도 셋째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2025년 이라는 요단강에 벌써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2025년 열어 두셨고 강 바닥을 마르게 하셨고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지나 간 과거의 발자욱은 벌써 모래 바람에 지워졌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장소는 흔적을 지운지 오래입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시고 말씀을 따라 앞으로 전진하는 우리 연합장로교회 우리 모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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