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물이 빠지는 시간 2025 0122 출1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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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광야의 영성은 세속의 물을 빼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그 치료를 받습니다.
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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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내러티브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중요한 중심 주제가 무엇인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건져냈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 나의 것이다.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은 모두 애굽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온 애굽 땅에 재앙이 내려졌어도,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재앙이 내려지지 않았다.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원수를 함께 미워하시고, 그 죄를 물으시고 갚으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계속 살아가야 하겠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원수가 되면 안 되겠다.
간혹 가다보면 예수 믿는 것을 “쉬겠다”고 하는 사람을 본다. 예수 믿는 것도 쉼이 있는 종류의 것이었나? 예수를 믿어도 잘 믿어야 한다. 더 잘 믿고 더 잘 알기를 소망하자. 지금 우리는 “복음 들고 함께 걷는 사람들”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영성회복과 영혼구원의 두 목표를 올 한 해 해나가려고 하고 있다.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더 알아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나의 신앙이 성숙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성숙한 한빛 성도들이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영혼 구원의 열매들이 맺기를 기대한다.
10+1 기적을 경험, 그러나...
10+1 기적을 경험, 그러나...
10가지 재앙, 10가지 기적. 그리고 +1. 10+1. 홍해 바다를 건너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쫓아왔던 애굽의 군대가 그 홍해 바다에 다 빠져 죽게 되었다. 하나님은 구원하실 때 확실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기적은 애매모호하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홍해를 건너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출애굽기 15 장이 바로 그 찬양의 내용이다. 1절부터 21절까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기적을 경험한 자들의 노래가 천지를 울리고 있다.
출애굽기 15:21 NKRV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기적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기적을 경험했는데, 하나님 앞에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기적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16장을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찬양과 정 반대되는 고백들이 나온다.
사흘 길을 걸었는데 물을 얻지 못해 23절에 물이 있는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24절에 백성들이 원망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이들의 불평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긴 하다. 광야가 보통 광야여야지. 출애굽하면서 들고 온 물이 3일 동안 다 떨어지고 걸었다는 것 자체가 일단 기적이긴 하다. 그만큼 척박한 땅. 그런데 물을 발견했다.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시는구나 기대했을 것 같다. 그러나 마셔보니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다. 그러면서 원망이 터져나온다. 그런데 이 부분을 맥락 상 잘 이해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보인다.
애굽에 내린 10재앙 중 첫번째 재앙이 무엇이었나? 바로 물이 피로 변한 사건이었다. 나일강의 물, 눈에 보이는 고여있는 물들이 다 피로 변하여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마라의 쓴 물 역시, 눈에 보이는 물. 내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물이지만, 그것이 써서 마실 수 없는 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그 기억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마시지 못해 고통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과 모세의 기도를 듣자마자 나무를 물에 던져 물이 달게 만들었다. 재밌는 것은, 그래서 그 물을 마음껏 마셨다라는 기록은 없는 것이다. 마셨을 수도 있겠지만, 성경 기자는 그래서 백성들이 물을 마셨다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출애굽기 15:25–26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물이 달게 된 이후, 바로 하나님께서 볍도와 율례를 정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말에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그렇게 지키면, 애굽사람들에게 내렸던 그 재앙들을 너희에게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마실 수 있었고, 풍요의 상징이었던 나일강의 물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피로 변하여 죽음의 물이 되고 말았다. 마실 수 없이 쓰고 실망과 원망을 불러 일으킨 물은 사람의 순종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물로 다시 바뀌었다.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변한 사건은 단순히 백성들이 목이 말라 원망했고, 그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로 끝날 것이 아닌, 순종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큰 기적이 다가 아니다.
큰 기적이 다가 아니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일 뿐이다 현상일 뿐이다. 하나님의 작은 축복일 뿐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제자들도 주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자, 자신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왕으로 예수님을 만들고자 달려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떠나 기도하셨다. 우리에게 기적을 보이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당신의 자녀가 처한 고통을 아시고 일으켜 세워주실 분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샘플일 뿐인 것이다.
아들이 아빠의 손에 들려있는 선물만 보고 있으면, 아빠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아빠가 있기 때문에 이 선물이 있음을 아들은 빨리 깨닫고 아빠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빠와의 관계에 힘써야 한다. 선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기적을 너무 바라다보면, 그렇지 못한 수많은 일상의 시간 가운데 실망만 가득하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신 그 기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분이 이끄시는 그 길이 내가 보기엔 광야여도, 내가 보기엔 지금 목말라 죽을 것 같아도, 여전히 그의 길이 선하심을 인정할 줄 아는 신앙,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여전히 우리를 이끄시고 성장시키는 하나님
여전히 우리를 이끄시고 성장시키는 하나님
그분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함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의 쓴 물 사건에서 하나님이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선포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광야 훈련기간 동안 치료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광야 행군을 시작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애굽기 15:26 NKRV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자! 이제 시작이야! 라고 선포하신 하나님이다. 홍해 이후에 광야의 시간은 너희의 400년의 애굽 종살이 시간 동안 박혀있었던 제국주의, 세상의 물을 빼는 시간이야.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가치관으로 바뀌는 시간. 배우는 시간. 군대에 가면 훈련소부터 거침. 사제 물을 빼는 시간. 광야는 그러한 시간이다. 보통의 눈으로 보면 고통의 시간이다. 훈련의 시간을 누가 좋아하나. 그러나 그 훈련의 시간이 마쳐지고 나면, 군기가 바짝 든 군인이 태어나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이끄심의 그 시간을 거치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담대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군대, 그의 귀한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26절의 마지막에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나온다. 나는 그러한 존재이니까 너네가 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다. 그 재앙을 질병을 봤잖아. 그래서 ‘치료하는’의 히브리어 ‘라파’는 ‘의사’ 또는 ‘의원’을 가리킨다. 곧 우리의 의원되시는 여호와는 실로 모든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뿐만 아니라, 죽음과 죄 등 인생의 모든 문제점까지도 깨끗이 해결해 주시는 진정한 우리의 치료자이시다.
마태복음 9:12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라도 엘림에도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다
마라도 엘림에도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다
그들은 엘림에 이르러 좋은 샘을 얻고 기뻐하였다(27절).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그의 백성에게 엘림의 샘곁에 진을 치라고 명하였다 할지라도, 그곳은 그들이 항상 있을 곳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의 형편은 좋았다가는 나빠지는 나빴다가는 좋아지고, 얼마나 변화가 심한가! 그러므로 우리는 궁핍에도 부유함에도 처할 줄 아는 것을 배우자. 또한 우리에게 있는 것이 넉넉하지 못할 때도 과거처럼 기뻐할 줄 알며 없는 것이 없을때도 과거처럼 슬퍼할 줄 아는 것을 배우자.
하나님께서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그의 백성들이 끊임없는 피로 때문에 약해지지 않도록 훌륭한 휴식처를 주실 수도 있는 것을 기억해 두자. 그러나 우리가 순례의 길을 가는 이 땅에서 비록 얻어지는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직 잠시 동안만 쉴 뿐 거기서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왜냐하면 그곳은 우리의 영원한 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는 구원받기 위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기 때문.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사모.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통해 임하실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그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