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여호수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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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지난주, 법원이 공격받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충격적인 사건은 제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과 염려가 일어났습니다. 나라 전체가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온갖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며,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과 불신을 심고 있습니다. 정치적 대립과 극단적인 논쟁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 듯합니다. 지도자들은 미래를 위한 고민보다 눈앞의 이익만을 쫓고 있습니다.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만 보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 사회를 회복시키는 복음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16-17장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이야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본론]
첫째,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16장과 17장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받은 땅의 경계가 나옵니다.
그림을 보시면 그들이 받은 땅이 매우 넓고 가나안 땅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두 지파는 요셉의 아들들로, 혈통적으로 므낫세가 형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에브라임이 더 주도적인 지파로 묘사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땅 분배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16장 9절을 보면,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들이 므낫세 지파의 땅 안에 있습니다. 17장 11절에서는 므낫세 지파의 성읍들이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땅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지파들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의 경계 안에 성읍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왜 일까요?
이것은 단순한 지리적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하도록 의도하신 것입니다. 서로의 땅과 성읍을 공유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상호 의존하며 협력하는 공동체가 될수 있습니다. 레위 지파가 12지파의 땅 곳곳에 흩어져 48개의 성읍에서 살았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며, 모든 지파가 하나의 언약 공동체로서 하나됨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 전라남도 광양에서 자랐습니다. 광양은 경상남도 하동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두 도시 간 왕래가 많았고, 저도 부모님과 함께 하동에 자주 놀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섬진강은 두 지역을 나누는 경계인 동시에,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서로 돕고 의존하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 연대감이 무너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지파들 간의 심각한 분열과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때 끈끈했던 공동체가 분열되고, 결국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 감정과 정치적 대립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으며, 서로를 비난하는 데 급급한 상황입니다. 공유할 영역과 소통할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서로를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연결하는 다리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정치적 대립과 논쟁을 넘어, 서로 힘을 모아 나라를 응원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연대와 연합의 정신이 회복될 때,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해 먼저 공유해야만 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둘째, 믿음과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17장 3절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구약에서 3번이나 등장할 만큼 중요한 사건입니다.
아버지 슬로보핫에게 아들이 없어 딸들이 땅을 분배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아들에게만 상속권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게 민수기 2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여호수아 17장은 바로 그 약속이 이뤄진 장면입니다.
비록 땅을 아직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약속대로 자신들의 땅을 분배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반면 요셉 지파를 보십시오.
17장 14절입니다.
인구가 많으니 땅을 더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합니다.
아마도 요셉 지파 이름으로 한번의 제비뽑기로 땅을 분배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분배받은 땅안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땅을 나눠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구가 이렇게 많으니 더 많은 땅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땅이 부족한게 아닙니다.
17장 15절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많은 인구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제비를 뽑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에게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산림 지대의 땅을 차지하여 그곳을 개간하라고 말합니다.
즉 문제는 그들의 땅이 부족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땅을 그들이 제대로 차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응답을 보십시오.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불평하며 핑계를 댑니다.
산간지방 땅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의심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직 점령하지 못한 곳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철병거는 빠른 속도와 강력한 공격력으로 적들에게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철병거는 고대 전쟁에서 강한 군사력을 상징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이 두려워 그 땅을 차지할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미 그들의 말 속에 불신앙이 많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지금까지 전쟁에서 군사수나 무기때문에 승리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 싸우셨기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며 핑계를 댑니다.
반면 갈렙과 슬로브핫의 딸들을 보십시오.
갈렙은 85세의 나이인데도 거인들이 살고있는 산지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할수 있다는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슬로보핫의 딸들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유산을 요청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며 약속의 성취를 믿은 것입니다.
반면 요셉 지파는 철병거와 현실적인 어려움만 바라보며 불평과 핑계를 늘어 놓았습니다.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믿음과 신뢰입니다.
최근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각종 음모론과 가짜 뉴스는 사회적 불안을 조장합니다.
공정하게 세워진 제도와 시스템마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가장 공정하게 운영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이를 믿지 못하고 흔들기 시작하면, 그 어떤 사회적 합의도 무너질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이 잘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의심을 심어주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세우신 세상 질서와 공동체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개척해 나갈수 있습니다.
갈렙과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공동체 의식은 바로 이러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지고 자라나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땅 분배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민족들을 모두 쫓아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을 남겨두면 신앙의 올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시험에서 실패했습니다.
15장 63절입니다.
유다지파는 예루살렘 성에 살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16장 10절입니다.
에브라임 지파 역시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17장 12절입니다.
므낫세 역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가나안 민족을 쫓아낼수 없는 것이 아니라 쫓아내지 않은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판단과 편의를 우선시한 결과입니다.
왜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을까요?
에브라임 지파과 므낫세 지파를 보십시오.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않고 자신들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은 것입니다.
작은 이익과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타협한 것입니다.
특히 므낫세 지파는 초기에 약해서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후 강해진 후에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싸우기 싫고 타협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결과는 심각합니다.
가나안 사람들때문에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지고 맙니다.
사사기를 보면 그들의 타락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심지어 공동체끼리 참혹한 전쟁을 벌이고 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서 철저히 순종하지 못한 불신앙은 그들의 신앙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과거의 문제에 얽매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믿음과 신뢰를 잃고 불신의 올무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대립과 갈등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나라 밖의 상황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구하는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각자 도생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쟁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고, 전 세계적인 기후 재앙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극과 극으로 대립하며 퇴보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믿음과 신뢰는 우리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상의 음모론에 빠져 두려움과 의심으로 허우적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불확실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때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사회도 회복과 성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오랜 사회적 합의조차 쉽게 의심받고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일은 그런 세력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세상에 심어 사회의 연합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흔들리는 세상을 붙드는 작은 걸음이 될 것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작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갈렙과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요셉 지파처럼 두려움과 핑계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의 이름,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들었던 증거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름도 믿음의 증거로 남기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의 걸음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큰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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