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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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장 1-12절
1. 서론: 포도원 비유에 담긴 하나님의 중대한 결단
1. 서론: 포도원 비유에 담긴 하나님의 중대한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포도원 비유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중대한 결단,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절절한 호소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도덕경 45장에는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크게 교묘한 것은 서툰 것 같으며,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말이 어눌한 것과 같다(大直若屈,大巧若拙,大辯若訥)"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후대에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大智若愚)'라는 사자성어로 이어졌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소작인들이 이미 여러 하인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하인들을 보내고, 심지어는 마지막에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냅니다. 마치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모두 탕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행동은, 세상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겉보기에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비유 속에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고뇌와, 그분의 최종적인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이 담겨 있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마치 최후의 한 수를 두는 대가와 같이, 당신의 가장 귀한 보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노자의 가르침처럼, 가장 위대한 것은 때로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내가 너희를 이토록 사랑한다! 돌아오라!” 외치시는 하나님의 절실한 음성이며, 인류 구원을 향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오늘 이 비유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하면서도 깊은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향한 우리의 냉담한 반응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완벽한 은혜: 주인의 정성스러운 준비
2. 완벽한 은혜: 주인의 정성스러운 준비
먼저 본문은 한 사람이 포도원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막 12:1) 그는 포도원이 최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요, 조건 없는 은혜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고 삶의 일상 가운데서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가정에서의 평안과 직장에서의 성취, 이웃과의 따뜻한 관계, 자연 속에서 누리는 쉼과 기쁨까지도 늘 당연한 것 같이 생각되지만 이 모두는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알 때, 우리는 더 깊은 감사와 경외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와 말씀을 통해 영적 성장을 돕고,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맞는 은사와 재능을 주시고,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세워가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이며,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입니다.
3. 계속되는 반역, 가벼운 여김: 완악한 인간의 죄악, 그리고 우리의 모습
3. 계속되는 반역, 가벼운 여김: 완악한 인간의 죄악, 그리고 우리의 모습
그러나 포도원을 빌린 농부들의 행태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을 반복해서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선 의도적인 반역이며, 주인의 은혜에 대한 철저한 배신입니다. 그들은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이러한 악한 농부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 역사를 보면 이러한 불순종의 역사가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는 인간의 완고하고 악한 본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유혹과 쾌락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기도하기를 쉬며, 주님께 드려야 할 시간과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까? 불순종의 역사는 지금 현재 우리에게도 반복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19-20)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 나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호소를, 그 절절한 사랑의 외침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마지막 선택: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사랑
4. 하나님의 마지막 선택: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사랑
여기서 우리는 깊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중대한 선택을 하셨을까요? 농부들의 악행을 뻔히 아시면서, 왜 당신의 소중한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셨을까요? 이미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마지막 카드인 독생자 예수님까지 이 땅에 보내셔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아들을 보내시는 것이 그 이전의 모든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유에서 이 부분을 주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깊고 놀라운 사랑 때문입니다. 단순히 소출을 받아내고야 말겠다. 아들은 인정하겠지 이런 마음이 아니라, 아들이 가서 소출을 늦게 바친 것과 또 하인을 죽인 것까지 해결하려는 주인의 심오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건 아들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농부와 같이 패역한 우리를 그럼에도 사랑하신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독생자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단 한 명이라도 더 죄악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극히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마지막에는 독생자를 통해 완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구속의 역사를 마무리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의 방법은 때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지만, 그 안에는 완전한 지혜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지만,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그분의 은혜를 짓밟으면서도, 스스로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7) 말씀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5. 구원의 유일한 길: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결단
5. 구원의 유일한 길: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결단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내 욕심과 고집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것인가. 이는 단지 구원의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선택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농부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음부터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로서, 그 부름에 합당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결단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며, 세상의 가치를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길은 단지 천국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더 이상 그분의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의 주인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영원한 기초로, 흔들리지 않는 모퉁잇돌로 삼을 때, 우리의 삶은 새롭게 세워질 것입니다.
6. 맺음말: 구원의 은혜와 오늘의 결단
"이는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막 12:11) 는 시 118:23을 다시 말씀하신 것인데, 이 고백에서 '기이하다'는 말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우리의 예상과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그분의 놀라운 은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 바로 이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마주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고백이며, 우리의 모든 교만과 자만이 무너지고 남는 진정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의 사건이, 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인정하는 신앙의 선언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감상적으로 바라보고 지나칠 수 있는 성경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살아있는 현실이며, 우리의 구체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거룩한 초청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아들을 보냈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이해할 수 없는 크신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선택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부름이며,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입니다. 마치 포도원의 소작인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 이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할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갈 것인지를.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구원의 신비 앞에서, 그 부름에 순종하여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