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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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2장 1절
 
오늘은 룻기의 내용 중에서 보아스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살피고자 합니다.
룻기에서 보아스라는 인물이 룻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레위기 25장과 신명기 25장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것입니다. 바로 그 내용들을 먼저 살펴서 룻기의 배경이 되는 내용들을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서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가알” 또는 “고엘”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친족”이라고도 번역이 되고, “구속자”라는 말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의 말씀은 고엘이라고 불리는 친족은 자기 형제의 어려움을 방치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협력하여 서로 도우며 은혜를 나눌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25장에서는 고엘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그 고엘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5장 5-10절의 내용은 룻기 4장에서 다시 언급되며 나오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게 되면, 그의 형제는 죽은 사람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해서 죽은 형제의 이름으로 자식을 낳게 되고, 그 형제의 이름으로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언급되는 고엘의 의무가 보아스에게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어서 그에 대한 문제는 룻기 4장에서 해결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고엘이라는 단어, 즉 친족, 기업을 무를 자, 구속자 라고 번역되어 있는 이 단어가 가진 중요한 개념들을 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룻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고엘, 즉 친족이나 기업을 무를 자, 구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게 됩니다. 첫째는 가족의 일원이어야 합니다. 같은 혈육이 아니면 고엘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룻기 2장 1절에서 “친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히브리어는 “고엘”이 아니고 “모다”입니다. 이 단어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에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엘의 의무를 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무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에서 보았던 내용처럼, 형제가 가난해져서 땅을 팔게 되었을 때, 다시 그 땅을 살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 형제를 대신해서 그 땅을 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엘의 의무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땅을 다시 사오기 위한 능력이 있어야만 고엘의 의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을 무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능력은 있지만, 그럴 의지가 없다면 고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신명기 25장에서 죽은 형제의 이름이 계속되기 위해서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명하면서도, 만약에 그럴 마음이 없다면 사람들을 모아서 기업을 무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친족이면서 기업을 무를 능력이 있다고 모두가 고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무를 의지가 또한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척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보아스는 큰 농장을 가지고, 많은 수의 일꾼을 부리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을 긍휼히 여기면서 고엘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습니다.
물론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룻기 4장에 보면 “아무개”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보아스보다 더 가깝고,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정도의 부유함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의지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을 무르는 것은 땅만 되사는 것이 아니라, 이방여자인 룻과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식을 낳아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 중의 일부 또는 전부가 그 자식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이름은 없어지고, 엘리멜렉의 이름만 후대에 전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엘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는 자신의 희생이 요구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개라고 불리는 사람은 고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고 보아스에게 고엘의 의무를 넘기게 됩니다.
고엘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가능합니다. 룻기의 내용에서 보아스가 이 고엘로서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고엘의 역할을 어떻게 시행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잘 살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보아스가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고엘과 예수님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 것은 고엘이라는 단어는 때로 하나님께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사야서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이사야 41장 14절, 43장 1절, 14절, 44장 6절, 48장 20절, 49장 26절, 52장 3절, 9절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두 구원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번역이 되었습니다. 즉, 기업을 무를 자, 친족이라는 의미의 고엘은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단어 속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과 연관된 개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고엘이 되기 위해서 만족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고엘의 첫 번째 조건은 가족의 일원이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과 가까운 친족이었던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친족, 우리와 같은 형제가 되어야만 우리를 대신할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에서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처럼 육신이 되셔야만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처럼 육신이 되셨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야만 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이 하지 못한 순종을 이루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순종을 예수님께서 완전히 이루시고 그 순종하심으로 얻으신 의로움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어야만 합니다. 즉, 우리의 친족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되셔야만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으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는 피뿌림으로만 해결이 됩니다. 즉,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죽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흠이 없으시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음이 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육신을 입으셔서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혈육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정말 그 사람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서 인간으로 오셨고,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곧 그 예수님이 나의 고엘, 친족, 기업을 무를 자, 구속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고엘이 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이었던 기업을 무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과 연관이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 없다면, 그의 죽으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을 사람은 흠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갚을 치루기 위해서는 완전한 제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서 바쳐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흠이 없는 존재이시면서, 동시에 자신의 목숨으로 모든 택한 자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저 인간 중에서 뛰어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기에 흠이 없는 완전하신 존재이시고,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 충분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말씀들이 가르키는 하나님이 바로 삼위 하나님이시고, 우리 예수님은 그 삼위 하나님 중에서 제 2위에 계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5장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께 돌이켜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인 도마가 보았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9장 5절에서 예수님은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족이 되셨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고 기쁨의 소식입니다.
고엘이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이 남았습니다. 앞에서 세 번째 조건으로 기업을 무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지만, 만약 그분께 우리를 구원하실 의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떠한 구원의 은혜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엘이라고 해도 의지가 없으면 고엘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룻기 4장에서 나온 아무개처럼 의지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친족이 되셔서 구원하실 권리를 얻으셨고, 또한 하나님이셔서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의지도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음이라는 큰 고통이 있지만, 그 죽음의 고통까지도 감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의지를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의지를 가지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분명히 밝힙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삼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의지를 가지시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자로서, 즉 우리의 고엘로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지금도 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룻기를 계속해서 살펴볼 것인데, 여기에서 보아스가 보이는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의 고엘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룻기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룻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의 고엘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이 더욱 우리 가운데 든든히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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