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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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1-19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2025. 1. 2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은사에 대하여 말하면서 가장 고귀한 은사가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은사들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가치가 없어요. 반드시 우리는 먼저 사랑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가 그 사랑을 품고, 또 다른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많은 은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방언과 예언 두 가지 은사를 언급하고 있어요.
자,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절 시작,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아멘.
우리는 먼저 사랑을 추구해야 돼요. 그 뒤에야 우리는 신령한 것들을 사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무엇을 사모해야 됩니까? 예언의 은사.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바울이 예언의 은사를 강력추천 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예언이 뭘까? 일반적으로 예언이라 함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단순히 그것을 예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언은 본래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던 일이죠. 선지자들은 실제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해서 경고를 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미래의 일만을 말하지 않았어요. 과거의 일을 말하기도 하고,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했어요.
선지자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일했어요. 그 목적은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은 미래를 위한 은사가 아니라 현재를 위한 은사입니다. 미래에 심판이 있음을 깨닫고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은사. 이것이 예언이에요.
그와 동시에 예언은 공동체를 위한 은사입니다. 백성들, 나라와 민족,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는 은사. 이것이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예언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바울신학의 대가인 김세윤 교수는 예언이 설교를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도 초대교회에서 행해진 예언이 설교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해석해서 들려주고,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일. 이것이 예언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4절 시작,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아멘.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단순히 미래의 일을 말한다고 교회의 덕이 세워질까요?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길 겁니다. 만약에 제가 여기서 앞으로 어떤 주식이 올라가고 내려갈지 말해준다고 생각해보세요. 새벽에 성도들이 말씀 들으러 오지 않고, 주식 정보 들으려고 오지 않겠어요? 그러면 교회가 교회가 아니고, 주식시장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예언은 단순히 미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특별한 은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권면하는 겁니다. 지금 고린도교회는 파당을 짓고 분열되어 있어요. 그런데 성도들은 각자 자기 은사를 자랑하고 시기하고 조롱해요.
그래서 바울은 은사를 사모하되, 특별히 개인적인 은사가 아니라 공적인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는 겁니다. 너희가 자기의 덕만 세우려고 하지 말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를 사모해라.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예요. 반면에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는 은삽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 2절에 보니까,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아멘.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나님과 내가 1 대 1로 소통하는 특별한 은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해요. 그래서 방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은삽니다.
물론 방언도 중요해요. 그런데 우선순위에 있어서 개인적인 은사를 사모하기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은사를 우선시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5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자, 5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아멘.
방언도 중요해요. 그래서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나 방언이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방언을 통역해서 알아듣게 해준다면야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예언하는 자만 못해요.
여러분, 만약에 주일에 대표기도를 하는데, 방언으로 대표기도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유익이 되겠습니까? 다 때와 장소가 있는 거예요.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적인 은사로서 해야지, 개인적인 은사로 해버리면 덕이 안 돼요. 한 사람도 못 알아듣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6절부터 17절까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의 무가치함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 합니다. 8절에 보니까,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그랬어요. 나팔 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신호에 맞춰서 전투를 할 텐데,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또 11절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는 외국인이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맨 밑에 19절에서 뭐라고 말을 합니까? 1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19절 시작,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내가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다섯 마디 하는 것이 방언으로 일만 마디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많이 해도 알아듣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요. 소통이 되지 않으면 공동체에 아무런 유익이 안 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방언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그 방언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신령한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3천 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던 겁니다.
은사는 반드시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그 은사를 자기의 덕을 쌓는 일보다 먼저 교회의 덕을 쌓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통이 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사모하시고, 그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예언을 사모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보지도 않으면서 기도만 한다고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말씀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제자훈련에 힘쓰고 있어요. 제자훈련은 말씀과 교리를 배우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여 그 말씀대로 사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납니다. 차이가 나요.
지금 당장은 별반 차이가 없을 수도 있어요. 제자훈련 받았다더니, 내나 똑같네. 그러나 점차 점차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말씀을 깨닫는 분량이 달라지고, 역경의 펀치를 버티는 맷집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성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제자훈련 다들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는 다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서로 사랑할까요? 말씀입니다. 내가 깨달은 말씀 다섯 마디, 열 마디.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가 깨닫고 은혜 받은 말씀 몇 마디로써 우리가 능히 그 사람을 위로하고 일으킬 수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지런히 말씀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듣는 자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말씀을 깨닫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예언의 은사를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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