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이 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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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2024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 “너는 복이 될지라!”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많이 나누셨을 것인데, 오늘은 서로를 축복하며 이렇게 인사합시다. “당신은 복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그저 복받는 수준을 넘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복이 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올해는 성경의 각 시대를 살면서 복이 되었던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과연 무엇이 달랐기에 그렇게 복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는가 살펴보고 우리도 선진들의 삶을 닮아가기 원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입니다. 몇 주간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도전 받고,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 창세기 12장은 계속되는 범죄로 하나님과 끝없이 멀어지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며 복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챕터입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죠.
본문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창세기 1장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하셨죠. ‘될지라’는 바로 빛이 있으라 하실 때 사용하신 ‘있으라’와 같은 “HaYah”라는 단어입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인생을 재창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인생에 빛을 비추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시작되었듯이 복의 역사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버튼 누르면 자동 실행되어 뭔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만나서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말씀의 실체를 우리의 믿음의 행동으로 누리는 것이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이 되라” 하시면서 이 복을 실제로 누리기 위한 구체적 믿음의 행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하면 “너는 가라”입니다. 이것은 오직 아브라함만이 수행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하늘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너는 가라”의 말씀이었고, 오롯이 주님은 그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셔서 복이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각자에게 “너는 가라!”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 격려하고, 동조할 수는 있겠지만,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내도 남편도, 부모, 자식도 대신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해야만 합니다.
“너는 가라” 하실 때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가면 우리의 인생에도 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가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1절에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이라는 세 단어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모두 히브리어 “민”이라는 전치사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철저한 분리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살던 세상으로부터의 철저한 분리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전에 살던 세상의 방식에서 온전히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분의 존재에서 흘러나오지만, 인간의 거룩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거룩은 삶의 모든 영역에 전치사 “민”이 붙어야 합니다. 과거 세상의 속한 모든 삶에서 떠남으로 거룩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 단어가 이어 나옵니다.
1. 고향 = 땅
1. 고향 = 땅
고향을 떠나라, 개역한글 번역이 본토라 되어 있습니다. 이 원어의 의미는 “땅”입니다. 지리적으로는 그가 살던 바벨론 지역 갈대아 우르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지리적 의미의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더욱 넓은 의미, 포괄적 의미의 말씀입니다.
땅은 나라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죠. 그렇다면 너의 나라! 네가 스스로 왕 되어 살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바로 전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벨탑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처럼 높아져 통치자가 되려 했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시고, 바로 다음에 아브라함을 이렇게 부르신 것입니다. 아브람아 너는 너의 땅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그 땅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입니다. 인간 나라 바벨이 아니라 가나안, 곧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 명령 앞에 순종하고 떠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약속이 다스리는 땅, 소망의 땅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가 오늘 떠나야 할 땅은 내가 중심인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포괄적인 삶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말고 떠나, 하나님이 중심이시요,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그 땅으로, 그 아름다운 삶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친척
2. 친척
핏줄, 혈연 관계를 말합니다. 땅에서 친척으로 그 범위가 줄어들었습니다.
작년 터키를 방문했을 때에 들은 흥미로운 얘기 중 하나는 모슬렘들의 특징이 가족 친지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지진이 났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지들이 함께 변을 당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사고가 아니라면 친지들이 모여 사는 것은 유익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친족들이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그것이 치안과 보안 유지에 좋고, 경제 활동에도 좋고,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좋습니다. 따라서 친척이 많은 사람은 그 사회에서 권세와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친척을 떠나라 하심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이 주는 안전, 편리함, 그리고 상대적으로 누리는 권세, 기득권을 내려놓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라면 할 수 없죠.
새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안전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언제든지 편리를 떠나 진리를 따라 믿음의 걸음을 걸어 나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가진 것으로 힘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 내려 놓고, 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3. 아버지 집
3. 아버지 집
친적에서 다시 한번 그 범위가 좁혀졌습니다. 아버지 집입니다.
성경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사용될 때, 예배의 장소, 곧 성소, 성전을 나타냅니다.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집을 떠난다는 의미는 우상을 섬기는 삶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상은 단지 금수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상은 고대와 다르게 형상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것은 우리의 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시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재정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글을 포함한 말의 힘은 엄청납니다. 이것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혹은 죽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분열을 일으키기도, 화합을 이루기도 합니다. 말 함부로 하고, 이웃에게 상처 주고 이런 일들이 아버지 집을 떠나지 못함에 나옵니다. 또한 주님이 알파,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삶의 첫 시간, 일주일의 첫 하루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지 못한다면 아버지 집을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노래하면서도 주신 것의 처음 것으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다면 이 또한 아버지 집을 떠나지 못한 삶인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은 모든 우상들에게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귀히 여기고, 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폐기 처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삶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을 향한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끝나는 삶으로 살아내는 것! 이것이 아버지 집을 떠난 자의 삶인 것입니다.
복이 되기 위해서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작은 것이라도 끊어내고,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라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죠. 그러한 삶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참 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것에서 떠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나오면 복이 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 또한 우리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복이 되는 삶의 원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세상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복이 된 사람은 이제 점점 큰 것으로 꿈과 소망을 확장해 나아갑니다. 바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약속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이고, 진짜 교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메시지인데, 그림으로 그려봤습니다.
복이 된다는 것은 복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이 된 사람은 이제 새롭게 복의 역사를 쓰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
사랑하는 KCOAA 성도 여러분,
2024년 새해, 우리 모두 좋은 성도, 좋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반드시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우리를 복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 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우리 자녀들, 우리 청년들, 우리 모든 목장 식구들, 우리 교회를 통해서, 복의 역사를 아름답고 위대하게 이루어 가시는 2024년이 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