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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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우리를 특별하게 한다
믿음은 우리를 특별하게 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사합니다. “당신이 복입니다!” 2024년은 우리 모두가 복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바벨탑 사건으로 무너지고, 소망이 없는 시대에 복의 역사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분이죠. 그런데 그는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다르게 창조된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새해 우리도 그런 믿음 갖기를 소망합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인내가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인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75세였습니다. 그가 175세에 죽었으니 부르심 후에 100년을 살았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100세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았죠. 이처럼 그의 인생에서 보여주는 “백”이라는 수가 “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백을 복으로 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실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인내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기 때문이죠.
믿음의 사람은 인내합니다. 복된 사람은 인내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이 말씀, 그리고 인내를 생각하면 많은 분들이 “욥”을 떠올릴 것입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욥의 인내는 그 결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욥은 끝까지 뒤 돌아보지 않고 참아내는 그런 인내라면, 아브라함은 그것보다는 한 번 더, 한 걸음 더! 이런 느낌의 인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과 갈등도 많이 있었습니다. 실수도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더 했고, 한 걸음 더 걸었습니다.
제 작년 아마존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는 에드 마일렛의 “한 번 더의 힘 / The Power of One More!”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성공은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시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주제로 이 글이 쓰여졌지만, 믿음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일곱 번, 완전함이죠, 일곱 번 넘어진 것은 완전한 마지막, 재앙과 같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의인과 악인은, 믿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 번 더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실수했습니다. 넘어졌어요. 대표적인 것이 사라의 몸 종 하갈을 취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죠.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넘어졌습니다. 이 실수에 대한 짐은 지고 가야 하죠. 그러나 이것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믿음의 걸음을 한 걸음 더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스타일의 인내입니다. 일곱번 넘어져 다 끝난 것 같아도, 아니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더 하세요. 한 걸음 더 걸으십시오.
구약 성경에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한 번 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올해
한 번 더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더 사랑하십시오. 한 번 더 섬기시기고, 한 번 더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이러한 아브라함 스타일의 인내가 우리 교회의 문화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인내라는 믿음의 걸음, 그 한 걸음이 악인들은 절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복의 역사의 첫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모두 아브라함처럼 복이 되어, 그 위대한 역사의 걸음을 걸어 나가시를 축원합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용기가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용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미 아버지와 함께 하란에 와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와 하란 사이는 길이 평탄하고 좋습니다. 넓은 길이요, 편한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아주 험난한 길이고, 좁은 길입니다. 본토, 친 척, 아비집을 떠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가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용기가 특히 돋보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카 롯으로 인해 생긴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 따라 떠나올 때 일찍 부모를 잃은 조카 롯을 데리고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브라함은 롯의 가정을 독립시켰고, 롯이 정착했던 지역이 바로 소돔입니다. 그 후에 그 지역 사해 인근 부족 국가들 간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소돔이 속한 연합군이 패했고, 전쟁통에 롯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겠다 생각합니다. 롯이 끌려간 곳은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서 약 200Km나 떨어진 다메섹이었습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거리도 너무나 멀고, 간다고 해서 롯을 구출해 올 수 있을지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기가 필요할 때에 중요한 것은 공동체입니다. 혼자라면 선뜻 용기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라면 달라집니다. 옆에서 서로를 응원해주고, 격려해 주고, 나아가 함께 싸워주는 동료들이 있다면 용기가 납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을 돌보고, 키우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부족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롯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에게는 응원해 주고, 함께 싸워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4:14에 보면 아브라함 집에서 키워지고 훈련된 사람 318명이 이 위험한 일에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들이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이미 가족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혈연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조카이지만, 영적으로는 모두 가족입니다. 내 형제요, 내 자식이고, 내 부모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 공동체가 되는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신앙 공동체 안에서 격려하고, 응원하니 피차 더욱 용기를 얻어 롯을 구하러 갑니다. 막강한 연합국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 318명은 턱없이 적은 수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용기는 단지 사람으로 인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 공동체가 함께 가졌던 용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용기였던 것입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하나님께서 믿음의 용기를 내었던 아브라함과 믿음의 공동체에 함께 하셨고, 역사하셨습니다. 포로로 잡혔던 롯과 그의 가족을 구했을 뿐 아니라 빼앗겼던 모든 재물도 다 찾아왔습니다. 불가능이 가능케 된 역사였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새해에 더욱 믿음으로, 말씀으로 길러지고, 키워지는 사람들이 많아 지기를 원합니다. 단단하고 견고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언제나 서로에게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교회, 서로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힘내라고 격려해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함께 용기를 가지고 롯과 같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 때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기지 않아 불안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20-21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이 확신이 바로 아브라함의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 약속 바라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백 세나 되어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았지만,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 영광 가리는 인생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타락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실 때에,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이 성에 의인 50명만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생각해보니 50명이 많게 느껴진 모양입니다.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5명만 빼주십시오. 45명!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서 생각해 보니 40명도 불안합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30명…, 하나님 20명…, 아니 하나님 10명만…… 이쯤 되면 아브라함 이 사람이 염치도 없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돔은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 소돔을 심판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소돔을 향한 기도를 생각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돔이 멸망을 당하는, 그 가운데 살던 롯을 내보내 주신 겁니다. 아브라함 기도로 롯이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기도로 인해서 롯이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얻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기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거 달라 저거 달라 그런 기도 말고, 아브라함처럼 어려움 가운데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인생 살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소돔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야 할 소돔은 어디입니까? 어떤 나라일 수 있고, 여러분의 직장일 수 있고, 학교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정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 영혼들을 살려달라고, 그들을 긍휼이 여겨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KCOAA 성도 여러분,
새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 “너는 복이 될지라!” 이는 사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럼 우린 뭡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을 적용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에게 동일시시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identity를 아브라함과 identify 동일시하자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는 아브라함이다! 생각합시다. 아브라함이라면 여기서 포기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한 번 더 인내하고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죠. 한 번 더 사랑하고, 한 번 더 감사하고, 한 번 더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벼랑 끝에 내 몰린 것 같은 인생이라도 아브라함이라면 어떻습니까? 용기를 내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고 함께 믿음으로 싸우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용기를 내시기를 바랍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바라볼 수 있는 믿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두가 안 된 답니까?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생각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