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가족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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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축복에 따르는 거룩한 책임
은혜와 축복에 따르는 거룩한 책임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던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을 해서 20년만에 아이를 낳게 되는데, 쌍둥이였습니다. 첫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애가 혈색이 좋고, 털이 많은 튼튼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털이 많고 거칠다는 뜻의 ‘에서’라 이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동생이 태어났죠. 쌍둥이들은 보통 몇 분 형이다 동생이다 합니다. 시간 차이가 있어요. 지금이야 몇 분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 차이도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은 형의 발 뒷꿈치를 잡고 바로 나왔습니다. 이건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여하튼 날 때부터 형에게 지기를 싫어했습니다. 얘는 형과 다르게 곱상하고 귀엽게 생겼습니다. 형 발 뒤꿈치를 잡고 나왔다 해서 ‘야곱’이라 이름했습니다. 이름을 왜 이렇게 직관적으로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발 뒤꿈치를 잡았다는 것은 속이는 자, 사기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 가정에 천성이 완전히 다른 이란성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왔던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 안에 흐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곧 능력입니다.
따라서 복을 받은 사람은 그 복에 대한 책임으로 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쌍둥이를 주신 것은 갑절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큰 축복이죠. 따라서 이 가정에는 그에 따른 큰 책임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습니다. 그 거룩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3가지 책임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1. 사랑의 책임
1. 사랑의 책임
언약 공동체, 곧 가정과 교회는 사랑의 관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부부는 사랑합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고 하데요?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리로 사는 것 아니겠냐 합니다. 아뇨, 끝까지 사랑으로 사셔야 합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헌신합니다. 부부가 그렇고, 부모가 자녀가 그렇게 사랑하는 공동체, 그것이 가정입니다.
또한 교회도 그리스도의 언약 위에 세워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성도와 성도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거룩한 책임입니다.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기호로 인해 사랑을 하거나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삭 가정이 이걸 놓치고 말았습니다. 부부가 두 아들을 각각 사랑했습니다. 편애한 것이죠.
부모님들 자녀를 편애하면 안 됩니다. 아이가 여럿이면 성향상 쿵짝이 맞는 자녀가 있죠. 저희 다섯 아이 중에 여러 가지로 저를 닮은 아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편애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도 했어요. 이것은 중요합니다.
본문에는 이삭은 장남 에서를 사랑했다고 기록합니다. 이유는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집에서 키운 양보다 자연산 산양을 더 좋아하니, 에서가 좋답니다.
리브가는 둘째 야곱을 사랑했답니다. 이유는 기록하지 않았는데, 추측해 보면 아이들 임신 중에 뱃속에서 두녀석이 너무나 싸우는 겁니다. 산모 배가 아프고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 일로 하나님께 기도까지 했으니까요. 이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23절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을 들은 리브가는 작은 애가 더 성공하겠구나! 알았습니다. 아마 이것이 리브가의 편애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실제 이런 편애의 결과로 두 형제는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됩니다.
이렇게 편애 속에 자란 야곱도 여러 아내를 두고 편애했고, 12 아들을 낳아 유독 요셉을 편애함으로 형제들이 아우를 노예로 팔아버리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야곱이 후에 아주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하는데, 그 인생의 험난함이 편애 받고, 편애하는 삶에서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2017년 가정의 달, 중앙일보에 “부모의 편애… 가족 간 소송 하루 7건”이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가족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혈연 간 소송의 근본 원인이 바로 부모의 편애에 있음을 취재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정말 책임 있게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너무나 쉽게 깨지는 여러분의 감정적 사랑 말고, 받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우리는 그렇게 기호를 따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책임 있게 사랑하는 성도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 교육의 책임
2. 교육의 책임
한 인간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한국의 글로벌 성장 이면에 그것이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 교육의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무엇이든 균형이 깨지면 넘어지고, 무너지는 법인데… 한국 가정과 사회의 교육의 균형이 대단히 위태롭습니다. 비단 한 부분이겠지만, 얼마 전에는 ‘의대 공화국 대한 민국’라는 제목과 함께 이것이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약대를 비롯 공과대 학생들까지 의대 재입학을 위해 자퇴를 하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고, 심지어 직장인들까지 의대 입시 학원을 등록해서 학원마다 자리가 없을 정도랍니다. 요즘은 부모들이 유치원 때부터 의대를 준비시킨 다니… 말 다했죠. 정말 기도가 필요한 사회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서 야곱, 이 쌍둥이 가정에도 교육의 균형이 무너진 것을 봅니다.
크리스천 가정에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앙과 성품에 대한 교육입니다. 곧 영성과 인성에 대한 교육 훈련이죠.
먼저 에서에게는 사냥꾼으로서 먹고사는 지식과 기술은 잘 가르쳤는데, 신앙 교육을 안 했습니다. 이삭이 왜 그랬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그러니 에서는 본능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창세기 26장 34-35 절을 보면 에서는 마흔살에 헷 족속의 여인 두 명을 데리고 와 결혼을 합니다. 나이가 마흔이면 이제는 자신 뿐 아니라 주변도 돌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성과 인성이 자리를 잡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서는 여전히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삽니다. 당시 결혼은 부모가 주관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부모를 무시하고 알아서 결혼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언약 가정의 아들임에도 하나님도 말씀도 무시하고, 우상 숭배로 타락한 가나안 여인을, 그것도 둘씩이나 아내로 삼았습니다. 신앙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에서가 이삭과 리브가의 큰 근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지 못하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동생 야곱은 성품 교육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성 훈련을 소홀히 여긴 겁니다. 엄마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하면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사기의 판을 짜줍니다.
네가 험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사기를 쳐서라도 목적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교육이 된 것이죠.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으니, 믿고 하나님께 그 일은 맡겨드리고, 야곱에게는 언제나 형을 존중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살아 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얀 거짓말은 괜찮아. 어짜피 축복은 네 꺼야… 하면서 야곱에게 진짜 사기꾼 인성을 심어 주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들!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근심 거리로 만들지 마시고,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건강하고, 거룩한 자녀들로 교육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세요. 거기에 지성과 영성과 인성 교육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이 먼저 말씀으로 신앙 교육을 잘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성품이 거짓이 아닌 진리 위에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또한 여러분이 먼저 예수님 성품 닮기를 훈련하시면서,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셔야 합니다.
교회도 가정과 같으니 저를 비롯해서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들… 그리고 목자, 부장 리더 집사님들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말씀에 대한 지식을 쌓으시고, 깊은 영성과 넓은 인성을 갖추시면서 본을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균형 있게 성장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사명의 책임
3. 사명의 책임
“너는 복이 될찌라” 이것은 아브라함, 이삭의 가정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언약 아래 있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오늘 본문의 키워드는 단연 “장자권”입니다. 이 쌍둥이 가정의 장자권은 에서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같은 날,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장자권은 에서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장자권은 단지 아버지의 유산을 다른 형제의 두배로 받는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출 34:19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 장자는 하나님께 속한 아들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또한 제사장이 세워지기 전 족장 시대에는 큰 아들, 장자가 제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장자권은 바로 제사장의 특권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의 특권은 한 마디로 예배죠.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장자권은 엄청난 특권이자, 또한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이것을 소홀이 여겼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오니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동생이 요리한 팥죽 냄새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한 그릇 달라 하니, 야곱이 거래를 하자 합니다. 장자권을 주면 팥죽을 주겠다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말도 안되는 흥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에서는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내가 배가 고파 죽게 생겼는데, 이 장자권을 어디 써먹겠냐? 그래 너 해라!” 그렇게 팔아 버린 것입니다.
에서는 사명에 소홀했고, 본능에 충실했습니다. 영원한 가치를 안개처럼 사라질 세속적 가치와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표적인 영원한 가치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이라 하셨습니다(고후 13). 믿음은 구원으로 연결되고, 소망은 천국, 하나님 나라에 이어집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또한 하나님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팥죽 한 그릇의 유혹 때문에 믿음을 포기하고, 소망을 내려놓고, 사랑보다 미움, 다툼, 시기와 분쟁… 이런 것들로 제사장의 사명, 곧 예배를 놓치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본문의 야곱도 지금은 장자권을 그저 세속적 가치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팥죽 한 그릇 값을 치르고 자기가 산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장자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장자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장자권이 어떤 것인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장자권은 팥죽 한 그릇 만드는 나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에서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좋은 머리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장자권은 제사장의 특권이고, 이것은 예배할 수 있는 권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이 예배권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도 눈 앞에 보이는 팥 죽 한 그릇에 이 귀한 사명을 팔아먹는 에서가 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인해 얻게 된 축복이요, 특권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귀히 여기고, 전심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째가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KCOAA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에 거룩한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언약 아래 한 몸 이룬 가족 공동체, 교회입니다.
1. 기호를 따라 하는 가짜 사랑 말고,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 삶의 자리에서 책임 있게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지성뿐 아니라 영성과 인성 교육을 받는 것도 성도의 책임입니다. 말씀 안에 지성과 영성, 인성이 담겨 있죠. 올해 그렇게 말씀으로 균형 잡힌 성장을 이루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받은 장자권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주의 이름 높이는 예배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받은 말씀의 은혜와 축복을 따라 거룩한 책임을 다하여
가정과 교회는 물론 세상에서 복이 되는 성도,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