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사람 요셉? 성장의 사람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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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다 잘되나? 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다 잘되나? 나는?
우리 자주 질문하는 내용중에 하나가 이런게 있어요. “하나님이 진짜 저랑 함께하세요? 근데 왜 제 삶의 모습은 이런거죠?” 보통 이런 질문을 정말 궁금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말 자기가 생각했을때 이해하지 못할 만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이런 질문을 하죠.
저같은 경우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음대 실기에서 처음 떨어지고 군대로 가게 되었을 때, 처음 자취할 때 집이 없어서 교회 빈방에서 지냈었는데, 교회 분 한분이 집도 없이 여기 지내는 걸 뭐 벼슬인줄 아느냐라고 했을 때 세상 서러워서 하나님께 정말 살아계시는 분인가 질문하기도 하고, 난 정말 믿음 지켜보겠다고 예배 타협안하겠다고, 좋은 일자리 제안 마다했는데 먹고살기 더 팍팍해졌을 때 이럴 때 이런 질문을 종종 했었어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맞나? 내가 들었던건 하나님 믿으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댔는데..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하지?
우리 친구들은 어떤가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다고 했는데, 왜 내 삶의 모습은 별로 안좋아보이는 길로 인도하는 것 같고 정말 살아계시면 마치 이 문제가 다음날 펑! 하고 해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다음 날 눈 뜨면 더 힘들고 막 그럴 때 있잖아요.
오늘은 하나님이 이런 시간들을 나에게 왜 겪게 하시는 걸까? 라는 질문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하며 살았던 믿음의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아는 형통 이게 맞아?
우리가 아는 형통 이게 맞아?
오늘 말씀에서 요셉은 인생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돼요. 원래 요셉은 야곱의 11째 아들로 야곱이 정말 얻고 싶었던 아내였던 라헬이 낳은 첫째 아들이었어요. 그래서 요셉은 다른 아들들 보다 야곱의 사랑을 받았었죠.
창세기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어느정도로 사랑을 받고 살았나 보니 채색옷을 지어 입힐 정도였다고 표현해요. 눈에 보이게끔, 아주 심하게 형제들과 요셉이 받는 사랑이 비교되었다는 것이죠.
요셉은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삶을 살았어요. 요셉은 또 얼마나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냐면 형제들이 무슨 일을 하면 형제들 입장 생각도 안하고 그걸 곧이 곧대로 아버지한테 이르곤 했었어요.
한번은 요셉이 형들의 심기를 엄청 건드린 날이 있었는데,
창세기 37: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요셉이 어느 날 꿈을 꿉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의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꿈이죠. 그냥 꾼 꿈이면, 넘어가도 될 것을 요셉은 굳이 형들에게 찾아가 이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만큼 요셉은 부러울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술술 풀리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37: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어느 때와 같이 아버지 야곱 품에서 놀고 있던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갑니다. 형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동안 요셉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형들은 요셉을 잡아 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요셉을 죽일까 고민하다가 마침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리죠.
요셉은 한 순간에 가족들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에 도착하는데요.
창세기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린 요셉은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요셉은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립니다.
요셉이 한 건 단지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간 것 뿐인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요셉에게 벌어진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가 너무 신기한거에요.
창세기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생각만 해도 슬프고 힘든 일이 일어났는데 뭐라고 되어있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라고 하는 것이죠.
이게 이해가 되나요? 요셉은 그래도 그동안 받았던 사랑이 커서 잘 큰건지, 자존감이 매우 높아서 그런건지 이런 힘든 상황을 묵묵히 잘 감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보디발은 그런 요셉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도록 허락하게 되죠. 그런데, 문제는 보디발의 아내에요. 성경은 요셉이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해요.
저처럼 매력이 좀 있었나보죠? 보디발의 아내가 자꾸 요셉을 유혹합니다. 같이 하룻밤을 보내자고 막 유혹하는거에요. 요셉은 정말 멋있어요. 딱 잘라서 말합니다.
창세기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진짜 멋있죠? 그 힘든 순간에도 요셉은 정직하게, 범죄하지 않고 종의 일을 감당했단 말이에요. 잘 분별하고 거부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근처도 가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없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혼자있는 요셉을 붙잡았어요. 요셉은 큰일났다! 하고 잽싸게 도망갔죠. 하필 붙잡힐때 잡힌 옷을 두고 나온거에요.
요셉은 어떻게 되죠? 보디발의 아내가 보디발이 오자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웁니다. 보디발 장군은 그 사실을 알고 화가 나 요셉을 감옥에 가둡니다.
요셉은 정직하게 일을 했고, 하나님앞에 부끄럽지 않게 일을 했을 뿐인데, 감옥에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건 또 신기해요.
창세기 39:20–21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이게 맞아요? 우리는 보통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하나님 믿으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내 일도 잘 풀리고 그런데, 우리는 또 알잖아요.
내가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내 성적이 팍팍 올라가는 거 아니고, 내가 예배 잘 드린다고 안믿는 사람이랑 다른 게 없는 것 같고, 또 어떨 때 보면 내가 더 비참해 보일때가 있잖아요.
하나님이 함께하면 형통하다고 했는데, 잘되는 걸로 아는데, 왜 이렇게 상황이 꼬이는거지?
이럴 때 이런 질문 하나 나올만 하잖아요. “하나님 정말 살아계세요? 하나님 정말 나한테 왜그래요?”
우리가 아는 형통은 이런 건데, 요셉의 이야기를 자세히보면 우리랑 닮은게 많지 않나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요셉을 보고 함께하셨다고 하고 형통했다고 하고 인자를 더했다 라고 표현할까요?
어쩌면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하고 계신 형통과 우리의 시선으로 해석한 형통이 다른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말하는 함께하심, 형통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말하는 함께하심, 형통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 안해봤나요?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결국엔 요셉이 총리가 되고 가족들을 위기에서 건지는 걸 아니까
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요셉이 저렇게 되었구나 저렇게 하나님이 꿈을 이뤄주실 것을 믿고 묵묵히 살면 나도 하나님이 요셉처럼 높은 자리에, 좋은 곳에 사용하시겠지~ 생각하는데
지금 이야기 속에 요셉은 그걸 알고 저러고 있었을까요?
요셉이 “아~ 나 어차피 총리 될 거니까, 이깟 보디발의 집에서 종놀음 하는 것 정도야~” 이러진 않았을거란 말이죠.
요셉한테도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자기를 이끌어가시는 분이었다는거에요.
요셉의 갈등과 마음의 힘듦이 나타나는 곳이 있어요.
창세기 40:14–15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감옥에 갇혀 있을때, 술관원장과 떡 관원장을 만나 그들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요셉이 뭐라고 말하냐면 “내 사정을 꼭 왕에게 알려주세요. 저는 억울하게 히브리땅에서 끌려왔고, 저는 감옥에 갇힐 만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 있어요.”
요셉도 우리처럼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 고백이 나오기까지, 요셉이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니까 나는 이 모든 일을 감당합니다. 라고 말하거나, 나는 나를 이끌어 내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아요.
요셉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거죠.
하나님만이 요셉의 상황 속에서 이렇게 말하시는거에요. “그렇지만 요셉은 나와 함께하기에 형통하단다.”
하나님께서 말하는 형통은 분명히 우리가 생각했던 형통과는 분명히 다른 것 같아요.
왜냐면, 요셉의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 요셉이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던 때에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라고 말하지 않아요. 오히려 요셉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속에 있을때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라고 말하고 있죠.
형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팔려가고 종이 되는 가장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하시는거에요. “괜찮아 지금 너와 내가 함께하고 있어 괜찮아”
정말 하나님 말씀 잘지키고,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았는데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힐 때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시는거죠. “이해할 수 없는거 알아 괜찮아 지금 내가 너와 함께 하며 인자를 베풀거야”
인자 라는 말은 하나님의 다함 없는 사랑을 말해요. 무슨 말이죠? “이해할 수 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면서 다함없는 나의 사랑을 너에게 부어줄게” 라고 하시는거죠.
요셉도 우리들 처럼, 하나님이 지금 나를 이끌고 계시는게 맞아?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은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고 “괜찮아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기에 너는 형통해” 라는거죠.
무슨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던 형통은 “하나님께서 나를 성공하게 하실거야! 총리처럼 잘되게 해주실거야” 이지만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다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며 이뤄가고 싶은 일이 있어, 나랑 함께 가자” 라는 것이에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사랑하는 친구들,
말씀을 마무리 지어보려고 해요.
요셉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셉이 하나님의 형통을 깨닫게 된 부분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총리가 될 때도 아니에요. 오히려, 형제들을 만나고 가족들을 구원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요셉은 비로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셔서 나를 이렇게 준비시키신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요셉은 정말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총리가 되었다고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 아픈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형제들을 만나고 가족을 만났을때,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때 비로소,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려고 그 모든 과정을 허락하셨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에요.
그 과정속에서 너무 힘들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되돌아보니 하나님이 장군집으로 보내셔서 이집트 관료들의 문화를 보게 하시고, 그냥 감옥이 아니라 정치인들, 관리들이 머무는 감옥에 들어가 그 죄수들을 관리하고 만나게 하시면서, 이집트의 정치와 상황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요셉 자신을 ‘성장’ 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우리 친구들, 지금의 순간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상황을 만나고 기쁘기도 할 거고 슬프기도 할 거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많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그 과정을 허락하시는 것은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그 과정을 통해 배우길 원하고, 성장하길 원하기에 허락하시는거에요. 그리고 그 이유는 훗 날 여러분이 하나님앞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인도하심은 무엇이라고 했죠? 언제나 과거형이다. 지나보니 이래서 하나님이.. 라는거에요.
요셉은 느끼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면서 모든 과정을 지났을 때 요셉이 어떻게 성장했는 지 아시나요?
창세기 37: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자기 밖에 모르고, 정말 철없이 내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던 요셉이 그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그 시간마다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하면서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깨닫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에요.
친구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여러분의 어려움은 성장의 도구일 뿐이지 결코 실패가 아니에요. 그리고 믿음도, 친구들의 삶의 모습도 마치 등급처럼 정해져서 더이상 바뀌지 않고,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장’ 하는 것이에요. 오늘의 나의 모습이 나의 전부라고 여기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 과정들을 허락하시고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가장 성숙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세요.
우리는 그래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겪을 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진짜 하나님은 도대체 나한테만 이렇게 힘든 일을 겪게 하나 싶고 그래요.
마지막으로 힘든 순간에 하나만 기억하면 좋겠어요.
몸매가 좋으려면, 음식을 참아야해요. 고통스럽죠. 근육을 만드려면 어기적어기적 걸을 만큼 근육을 매일같이 찢어야 해요. 고통스럽죠. 키가 크려면 눈 떴을 때 몸에 힘이 안들어갈 만큼 뼈가 늘어나야해요. 공부를 잘하려면, 그만큼 머리를 쥐어짜내고 시간을 투자해야해요.
하지만 우리가 처음 이런 것을 시작할 때, 이 모든 과정을 감당하는 것은 결과를 예측하고 있어서 감당하는게 아니에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몸이 좋아질거고, 성적이 오를 거고, 근육이 생긴다고 하니까 기대감에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결과를 정말 보게 되었을때, 아 진짜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확신하게 되는거에요.
말씀이 말하는게 긴가민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번 하나님이 함께한 다는 것을 믿고 기대함으로 버티고 그 시기를 지나보는거에요. 친구들은 하나님의 자녀란 말이에요. 지금 고민하는 그 순간에도, 그 과정을 허락하시지만 혼자두지 않고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두려움앞에,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하고 계세요.
그리고 그 말씀은 정말 사실이에요. 뒤돌아보면 친구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셨고, 뒤돌아볼때 정말 나를 이렇게 귀하게 성장시키셨구나 깨닫게 될 거에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의지하면서 모든 과정들을 묵묵히 감당하는 우리 친구들 되길 축복합니다.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