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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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사도행전 10:1–4 NKRV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누구 눈치를 많이 보는가? 부모님일 수도 있고,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선생님일 수도 있고, 학교 선배일 수도 있고, 뭔가 자신보다 윗사람에게 눈치를 보면서 살 것이다. 특히 여러분 같은 경우는 대부분 부모님 눈치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을 해라”, “~을 하지 마라”고 하시는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유튜브 보고 있으면 유튜브 그만보고 공부해라, 게임하지 말고 공부해라, 몇 시인데 이제 들어오냐, 집에 들어오면 손부터 씻어라, 네 물건 잘챙겨라, 일찍 일어나라, 이게 방이냐 돼지우리냐 좀 치워라 등등 여러가지 잔소리로 통제하는 것 때문에 부모님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하거나 교회에서 부모님과 무엇을 같이하자고 하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이렇게 잔소리를 하시는 이유가 여러분 인생 망하라고, 나락가라고 하신 말씀이신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더 좋은 삶을 위해서 더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분이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온전히 쉼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을 해라”,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취업하고 부모님께 몇 백만원의 용돈을 드리는 것? 물론 좋으시겠지만, 여러분들이 지금 당장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부모님을 지금 여러분들이 가장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꼭 부모님께 효도하는 꿈사땅 여러분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은 여러분과 “경건”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경건의 뜻이 무엇인가? 뭔가 단어가 주는 느낌은 고요하고 엄중하고 진중한 느낌을 준다. 경건이라는 뜻은 한자로 풀어서 말하면 ‘공경하여 삼간다는 말’인데 풀어서 말하면 ‘어떤 것을 소중히 받들고자 하는 엄숙한 마음의 태도’라고 한다. 오늘 읽은 성경에서도 ‘경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헬라어로는 εὐσεβής라고 한다. 좋은 + 존경하다 or 두려움의 합성어이다. 한마디로 ‘존경을 받을 만한 좋은 행위’라고 보는 단어가 헬라어에서 말하는 ‘경건’이다. 성경에서 경건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성품과 모습을 닮는 것을 말한다. 거룩과 경건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거룩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경건은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하게 사는 방법을 내가 저번에 무엇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는가?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경건 생활은 어떤 생활인가? 기도와 말씀을 생활에서 매일마다 살아내는 것이 경건생활이고, 이러한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한 것을 총 종합해서 정리하면 경건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소중히 받들고자 하는 엄숙한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존경을 받을 만한 좋은 행위를 하는 것인데, 그 행위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성품과 모습을 닮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활을 해야하는가? 말씀생활,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경건 생활’이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에서 등장한 경건한 인물이 등장한다. 누구인가?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의 백부장이다. 백부장은 100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지휘관이다. 로마에서 군인들을 이끄는 지휘관이라면 유대인인가, 로마인인가? 그렇다. 유대인이 아닌 로마 사람이다. 신약성경에서 최초로 개종한 이방인이다.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던 고넬료를 보고 성경에서는 뭐라고 평가하는가? 그가 ‘경건’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였다는 사실이 너무나 중요하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방인들은 바깥의 사람, 외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 많은 이방인들은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할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례를 제외한 유대인들의 살아가는 거룩한 경건의 삶의 모습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성적으로 문란하고 전쟁이 많았던 로마시대에서 인간의 윤리가 완전히 밑바닥을 쳐버린 당시 로마에서 유대교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매우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고넬료도 마찬가지로 그도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유대교에 헌신된 고넬료의 모습은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서 매일 기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제하는 행위를 통해서 나타났다. 또 그의 어떤 마음의 태도로 그러한 일들을 한 것인가? 성경에서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한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던 것이다. ‘경외’의 뜻이 무엇인가? 존경(공경)+두려움의 합성어이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일지 늘 고민하며 사는 마음이 ‘경외하는 마음’이다.
전도사님은 어린 시절 아주 못됐다.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에서 도둑질을 종종 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의 도둑질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 친구의 손을 잡고 “내가 가려줄테니까 너도 해봐”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울먹거리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도둑질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랬어”라고 말하며 일절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얌마, 여기 너네 엄마도 없는데 그냥 해” 그러나 그 친구는 단호하게 “안돼, 엄마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아시면 정말 실망하실거야. 그러니까 너도 하지마”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 친구는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모습은 부모님을 경외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옆에 부모님이 없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이 속상해하실 것을 알고, 부모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그 모습이 부모님을 향한 경외하는 마음의 태도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 생활, 기도 생활하는 것이다.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이 누군가를 도와주라는 부담감을 주실 때가 있다. 당장에는 이해가 안되지만, 기도할 때 주셨던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섬기고 도와줄 때 하나님의 기가막힌 타이밍을 경험할 수 있다.
전도사님이 신대원을 다니면서 광주에서 주말마다 왔다갔다 했을 때가 있었다. 나를 카풀해주시던 전도사님이 용인에서 광주까지 가는 차비를 일절 받지 않고 섬기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제 광주에 더이상 내려갈 일이 없어서 마지막 카풀을 해주시고 연신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기도하던 중에 어느 날 자꾸만 마음에 전도사님께 사례비를 드리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를 드렸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사례비를 드렸다. 그 일을 잊고 있다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전도사님이 서울에서 사역하려고 준비하다보니 생각보다 지출이 많아 당장에 밥 한끼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고 한다. 그때 마침 내가 사례비를 드렸던 것으로 일주일 정도 먹는데 해결해서 너무 감사했다고 오히려 나에게 연신 고마웠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기도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왜 그 마음을 주셨는지에 대해서 깨닫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 봉사하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착한 마음을 주셔서 그 일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가막힌 타이밍을 경험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너무나 즐거워지는 것이다. “아! 하나님 그래서 이 마음을 주셨군요! 오늘도 선한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넬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기도하며 말씀생활 하다보니 어느 날 하나님께서 선한 마음을 주셨기에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이다. 코람데오는 라틴어로 Deo가 하나님, Coram이 앞에서라는 뜻이다. 코람데오는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의식하며 사는 것인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생각하며 경외하는 삶이 코람데오의 정신이다. 구약에서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던 인물 2명이 떠오른다. 요셉과 다니엘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창세기 39:9 NKRV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기서 보게 되면 요셉은 누구를 의식하는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싫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운 마음이 없다면 이미 쉽게 죄의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두 번째로 다니엘이다. 단 6:10
다니엘 6:10 NKRV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바벨론 제국의 왕이었던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게 명령문을 보낸 것이다. 왕을 제외한 다른 것에 숭배하는 사람은 모두 사자 굴에 집어넣어 사형을 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니엘은 아무리 세계의 강대국인 바벨론 제국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왕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늘 하던대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의 방향으로 창문을 열고 늘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탄식도 아니고 감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니엘이 경건의 행동으로 사자 굴에 들어갔는데, 웬걸? 굶주린 사자가 다니엘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이 없으면 경건의 생활을 도무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셉도 다니엘도 코람데오의 정신이었던 하나님이 보고 있기 때문에 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기에 경외의 마음으로 살았고,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경외함과 경건한 삶을 통해 이집트 제국과 바벨론 제국 앞에서 하나님의 크심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사님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참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천조국인 미국의 대통령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에서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연설에서 자신 위에 Boss가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이었다. 또 그의 정책에서도 보면 이전 대통령은 트렌스젠더와 다양한 성소수자를 인정했었으나, 트럼프는 단호하게 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 남자와 여자 밖에 없음을 선포했다. 미국이 얼마나 강대국인가? 그러나 미국의 트럼프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나라는 반드시 망하거나 힘이 완전히 약한 나라가 되어버린다. 바벨론 제국이 지금 시대에 있는가? 역사 속에 사라졌다. 이집트는 강대국인가? 이제는 그저 아프리카의 나라 중 하나이다. 미국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옆에 사람에게 이렇게 서로 고백하길 원한다. “너 하나님 경외하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 함께 경건하기를 힘씁시다. 또 경건을 회복합시다. 이번 올해에 여러분과 경건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서 함께 훈련을 진행하고자 한다. 전도사님과 선생님들부터 그 훈련에 함께 동참하려고 하니 여러분들도 함께 시작하기를 원한다. 경건 생활은 말씀 읽는 것, QT하는 것, 기도 생활하기, 신앙서적 읽기, 예배 모임에 참석하기, 성경 공부하기, 전도하기, 교회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경건훈련을 해야 구원을 받는게 아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이 경건 생활이다.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볼 수 있다. 전도사님이 훈련하자고 하면 다같이 하면 된다. 그렇게 교회생활, 경건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아무도 몰라볼 수 있다. 그럴 때 전도사님은 효리네 민박의 프로그램에서 이상순과 이효리씨의 부부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이상순씨가 의자 밑을 닦는 것을 보고 이효리씨가 이렇게 물어봤다. “이렇게 안보이는 곳을 열심히 닦으면 누가 알아봐?”라고 묻자 이상순씨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알잖아.” 우리도 열심히 경건생활하면 이렇게 열심히하는 것을 아무도 못알아볼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한다. “하나님이 아시니까” 오늘 고넬료에게도 천사가 찾아와서 너의 그 모든 기도와 구제하는 일, 경건의 일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억하신다고 하셨다. 이것만큼 위로되는 것이 어딨겠는가? 내가 혼자 있다고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코람데오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전도사님에게는 억울한 일, 슬픈 일, 외롭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너무나 위로가 되는 것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우리가 평소에 생활을 점검하는 것처럼, 영혼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점검해야하는 것이 바로 경건 생활을 돌아봐야한다. 우리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 몸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죄로부터 승리하기 위해 경건훈련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힘쓰며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시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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