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7강 사무엘의 위대함 2

사무엘상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사무엘상 47강 사무엘의 위대함 2
본문 : 삼상 12:7-
(삼상12:7) 그런즉 이제 가만히 서 있으라. 주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바 그분의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내가 주 앞에서 너희와 변론하리라.
Now therefore stand still, that I may reason with you before the LORD of all the righteous acts of the LORD, which he did to you and to your fathers.
모세와 아론을 주께서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이끄셨는지 
내가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멈춰서서 
내 말을 끝까지 잘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한 군데 잘 터를 잡고 끝까지 잘 들어보셔야 합니다. 
교회를 이리갔다 저리갔다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일만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하고자 약속하신 일을 바꾸지 않으신다.
(마9:13)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But go ye and learn what [that] meaneth, I will have mercy, and not sacrifice: for I am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히6:17)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불변함을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Wherein God, willing more abundantly to shew unto the heirs of promise the immutability of his counsel, confirmed [it] by an oath:
(삼상12:8)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 조상들이 주께 부르짖으매 그때에 주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시니 그들이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곳에 거하게 하였느니라.
When Jacob was come into Egypt, and your fathers cried unto the LORD, then the LORD sent Moses and Aaron, which brought forth your fathers out of Egypt, and made them dwell in this place.
흉년이 들어 야곱이 이집트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창46:5-7)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다스리게 됩니다. (출1:8)
이곳에서 노예로 살게 되면서 야곱의 후손은 탄식하고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출2:23) ¶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이집트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속박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속박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그들의 소리가 올라와 [하나님]께 이르니라.  
¶ And it came to pass in process of time, that the king of Egypt died: and the children of Israel sighed by reason of the bondage, and they cried, and their cry came up unto God by reason of the bondage.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키게 됩니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모세와 아론입니다. 
이제 사사 시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삼상12:9) 그들이 주 자기들의 하나님을 잊었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을 하솔의 군대 대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팔아넘기셨더니 그들이 그들과 싸우매
And when they forgat the LORD their God, he sold them into the hand of Sisera, captain of the host of Hazor, and into the hand of the Philistines, and into the hand of the king of Moab, and they fought against them.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잊자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팔아넘기셨습니다. 
(삼상12:10)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주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죄를 지었나이다. 하오나 이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And they cried unto the LORD, and said, We have sinned, because we have forsaken the LORD, and have served Baalim and Ashtaroth: but now deliver us out of the hand of our enemies, and we will serve thee.
이들은 하나님을 잊기만 한것이 아니고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우리도 이제 주를 섬기겠나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주님께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달려있고,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주를 섬기는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12:11) 주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사방에 있던 너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셨으므로 너희가 안전히 거하였느니라.
And the LORD sent Jerubbaal, and Bedan, and Jephthah, and Samuel, and delivered you out of the hand of your enemies on every side, and ye dwelled safe.
9-11절까지는 사사기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있었던 인물 4 사람을 언급하십니다. 
여룹바알(기드온) / 베단(바락) / 입사 / 사무엘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면서 선지자의 출발이 되는 인물입니다. 
모세와 아론으로부터 사사의 인물들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일어선 인물들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너희들이 왕을 세웠지만 
그 또한 하나님이 주관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위대한 사람이었던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7절에서 볼 수 있듯이, 사무엘은 백성과 이성적으로 대화했습니다. 
(삼상12:7) 그런즉 이제 가만히 서 있으라. 주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바 그분의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내가 주 앞에서 너희와 변론하리라.
Now therefore stand still, that I may reason with you before the LORD of all the righteous acts of the LORD, which he did to you and to your fathers.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통해, 그리고 성경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이성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성경은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화를 내거나 강요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억지로 강요하거나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무엘은 단순히 백성과 이성적으로 대화했습니다.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여러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하나님께서 저기서 하신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이 그런 일을 했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을 구원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사무엘은 특별한 비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의 사역은 새로운 기적적인 진리를 찾아내거나, 
UFO나 불을 뿜는 용과 같은 
특별한 성경의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성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서 하신 일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한 일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의 삶에서 일하셨는지,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바로 사무엘의 사역이었고, 사무엘의 삶이었습니다.
강압적 지시와 흥분으로 살수 없습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물론 그들이 구원받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큰 소리를 외치고 책상을 쾅쾅 치면서 
명령하듯이 설교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듣는 다면 
여러분의 영적 성장이나 말씀에 대한 승복이 잘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손을 들고, 손수건을 흔들고, 흥분해서 강대상으로 달려가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기쁨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어벗지만, 
계속해서 그런 흥분의 상태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아내가 소리치고, 고함치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남편을 
지속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계속 흥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고, 
실제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닙니다. 
당신은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자녀들과 함께 조용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조용히 앉아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침착하게 서서 
사람들과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큰 힘과 권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큰 흥분이나 열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천재성이나 교활함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견고하고 안정적인 삶과 신앙의 걸음입니다.
균형 잡힌 기독교 신앙 생활입니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신앙적 태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래야 저래라, 이건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말,
그런 식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훈육 교사였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여성도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 내가 여기서 가장이야.” 
라는 명령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엡 6:4)
아이들도 지속적으로 지시와 명령만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무엇이 비합리적입니까?
지배자가 되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가혹한 감독관이 되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변덕스럽고 일관성 없는 태도는 비합리적입니다.
균형 잡힌 삶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인도된 이유는
더 이상 억압적인 규칙과 명령 아래 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관계와 삶 속에서 사랑과 은혜의 균형을 원하십니다.
현실적인 신앙과 균형 잡힌 삶의 태도
이 세상을 바라보며 정직하게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날도 있고 원치 않는 결과를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좋은 날 보다도 좋지 않은 날을 보낼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항상 모든 일이 잘 풀리고 
기쁨만 가득한 삶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위대함: 침착함과 이성적 태도
사무엘은 항상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위협을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달려다니며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차분히 서서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대화했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설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남편과 아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건전한 생각과 이성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삼상12:12)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온 것을 너희가 보고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말하기를, 아니니이다. 오직 왕이 우리를 통치하여야 하리이다, 하였도다.
And when ye saw that Nahash the king of the children of Ammon came against you, ye said unto me, Nay; but a king shall reign over us: when the LORD your God was your king.
사무엘은 그들이 이전에 행한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너희가 요구해서 왕을 주었지만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왕이라는 것을 거부한 행위이고
하나님이 허락해서 왕을 주셨지만,
이것은 너희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삼상12:13)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택하고 너희가 바라던 왕을 보라! 보라, 주께서 너희를 다스릴 왕을 세우셨느니라.
Now therefore behold the king whom ye have chosen, and whom ye have desired! and, behold, the LORD hath set a king over you.
설교란 무엇인가?
사무엘이 말하고 있는 설교는 
지금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의 왕인데도 불구하고 너희가 
그것을 부정하고 우리에게 인간 왕을 달라고 했고
그래서 너희에게 왕을 주었다. 
이 왕이 이제 너희에게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잘 지켜보거라
설교란 청중의 죄를 꺼집어내서 지적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청중은 설교를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말씀 한 가운데에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데,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고,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의 억압을 받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삼상12:14) 너희가 만일 주를 두려워하여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고 주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려면 너희와 또 너희를 통치하는 왕이 다 주 너희 하나님을 계속해서 따라야 하리라.
If ye will fear the LORD, and serve him, and obey his voice, and not rebel against the commandment of the LORD, then shall both ye and also the king that reigneth over you continue following the LORD your God:
(삼상12:15) 그러나 너희가 만일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의 명령을 거역하면 주의 손이 너희 조상들을 대적한 것 같이 너희를 대적하리라.
But if ye will not obey the voice of the LORD, but rebel against the commandment of the LORD, then shall the hand of the LORD be against you, as it was against your fathers.
통치자가 모두 주 하나님을 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보고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히4:13)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Neither is there any creature that is not manifest in his sight: but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ed unto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
이 하나님의 말씀, 이 거룩한 성경은 단지 옳고 그름을 가르치거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만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 성경은 여러분을 꿰뚫어 봅니다.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무엇을 했는지뿐 아니라 
왜 그것을 했는지까지도 알려줍니다.
이 성경은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뿐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까지 알려줍니다.
이 성경은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뿐 아니라 
왜 그 죄를 지었는지까지도 폭로합니다.
어느 날,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을 펴고 집에 돌아옵니다.
거리로 나가서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며, 스스로 생각합니다.
“와, 나는 하나님의 종이야. 하나님이 원하신 일을 했어.”
그리고 자기 전에 성경을 펴고 읽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영적으로 충만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까, 내가 잘하고 있어.” 
하지만 성경을 펼쳤을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39:5) … 모든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전적으로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 verily every man at his best state [is] altogether vanity. Selah.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넘어,  우리의 말을 넘어,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들어가셔서
우리가 왜 그렇게 했는지까지 밝히십니다.
사무엘의 위대함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생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단지 사람들 앞에 서서 
"이것이 당신들이 한 일입니다. 
당신들은 사울을 왕으로 요구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는 "당신들이 사울을 왕으로 요구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라고 정확히 그들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 왕이 와서 여러분을 압제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울이라는 왕을 가졌지만,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던 이유를 아십니까?”
“그는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편견이나 첫 느낌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생각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처음 구원을 받고 열정이 많을때 하는 실수
"여러분이 처음 구원받았을 때, 길거리를 걸으며 누가 구원받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는 놀라운 능력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기억나시죠?"
"처음 구원받았을 때, 머리 모양, 옷차림, 미소를 보면 ‘구원받았네.’
머리 모양, 옷차림, 찡그린 얼굴을 보면 ‘구원받지 않았네.’
우리는 그냥 척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찬송 시간 동안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
‘바르게 사는 사람,’ ‘영적으로 실족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죠.”
“ 정말 그랬습니다.”
"구원받은 지 약 1년쯤 됐을 때는, 
하나님이 잠깐 쉬셔도 될 것 같았어요.
제가 모든 걸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예수님께서 1년 정도 쉬셔도 제가 세상을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나는 알았습니다. 
누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를 성경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얘야, 너는 네 자신도 모르잖니. 
네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네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지 않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악한 추측(Evil Surmising)'이라고 부릅니다.”
(딤전6:4)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논쟁과 말다툼을 좋아하는 자니라. 이로써 시기와 다툼과 욕설과 악한 추측이 생기며  
He is proud, knowing nothing, but doting about questions and strifes of words, whereof cometh envy, strife, railings, evil surmisings,
“'글쎄, 내 생각에는...', '내 판단으로는…', ‘보기에 이런 것 같아’
라고 말하지만, 
“내가 어떻게 보든, 내가 어떻게 판단하든,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지만,” 
“수천 년에 한 번쯤 사무엘과 같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 아버지와 깊이 연결된 사람,”
"그의 의지와 길과 사고방식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그 이유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사람이 몰려든 이유
우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때 조금 긴장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예수님 주위에 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서, 
모든 게 조용해지고 식탁에 함께 앉아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자, 네가 방금 생각한 그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예수님께 한 여인이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을 닦고 있을 때, 
유다는 속으로 "내가 저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건 돈 낭비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낭비가 아니다. 그녀는 나를 위해 그렇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가 내 생각을 읽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저라면 무척 긴장할 겁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조차 말하지 않았던 생각을 
누군가가 정확히 지적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까지 알고 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입니다.
사무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른 사람들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정말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서, 
성령님께서 우리가 무언가 잘못된 일을 저지른 후가 아니라, 
심지어 잘못된 일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라도 
즉시 우리를 깨우쳐 주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수년간 헤매는 대신,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 그날의 걸음을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령님께서 우리의 행동 동기를 지적하셔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이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신다면 말입니다.
만약 우리의 동기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얼마나 자주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자기중심적이고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지요.
우리가 하나님과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일은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마음속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제가 그랬나요? 왜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 
왜 제가 그렇게 반응했나요?”
사무엘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가까워져 자신의 내면을 철저히 알았고, 
자신의 마음을 통찰했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