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5강 사울 왕의 첫 번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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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45강 사울 왕의 첫 번째 전쟁
왕이 왜 필요한지
왕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아직 모른채 왕을 뽑아 놓은 상태입니다.
(삼상11:1) 그때에 암몬 족속 나하스가 올라와서 야베스길르앗을 마주보고 진을 치매 야베스의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을 맺으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Then Nahash the Ammonite came up, and encamped against Jabeshgilead: and all the men of Jabesh said unto Nahash, Make a covenant with us, and we will serve thee.
“암몬 족속 나하스”
암몬 족속은 롯의 두 딸 중에 하나에게서 생겨난 족속입니다.
롯이 선택한 도시에서 그들 가족이 얻게된 영향으로 인해서
잘못된 방법으로 생겨난 족속입니다.
(창19:36) 이와 같이 롯의 두 딸이 자기들의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이를 배니라.
Thus were both the daughters of Lot with child by their father.
(창19:37) 맏딸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는데 바로 그는 이 날까지 모압 족속의 조상이며
And the firstborn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Moab: the same [is] the father of the Moabites unto this day.
(창19:38)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는데 바로 그는 이 날까지 암몬 자손의 조상이니라.
And the younger, she also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Benammi: the same [is] the father of the children of Ammon unto this day.
이스라엘이 흔들릴때 마다 하나님께서 이 암목족속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데 사용하십니다.
나하스가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나하스의 압박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우리가 조공을 바치고 잘 섬길테니 물러가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싸우기도 전에 항복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삼상11:2) 암몬 족속 나하스가 그들에게 응답하되, 내가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내어 온 이스라엘 위에 그것을 수치거리로 두리라는 조건 하에서 너희와 언약을 맺으리라, 하거늘
And Nahash the Ammonite answered them, On this condition will I make a covenant with you, that I may thrust out all your right eyes, and lay it for a reproach upon all Israel.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내어”
고대 전투는 오른 손에 칼과 창을 들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싸우게 됩니다.
그때 오른 눈은 전방을 살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른쪽 눈을 빼는 것은 전쟁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쪽 눈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조공을 바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삼손도 눈이 뽑혔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눈이 뽑이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서 눈이 뽑히는 사건은 드물지만,
몇 가지 주요한 예가 등장합니다.
암몬 족속 나하스의 위협 (사무엘상 11장 2절)
삼손의 눈이 뽑힘 (사사기 16장 21절)
삼손이 드릴라에게 속아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히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두 눈을 뽑습니다.
3. 시드기야의 눈이 뽑힘 (열왕기하 25장 7절 / 예레미야 39장 7절)
바벨론 왕이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정복하고,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뽑습니다.
시드기야는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에 끌려가
감옥에 갇혀 남은 생애를 보냅니다.
상징적 의미
눈을 뽑는 행위는 단순한 신체적 고문을 넘어
굴욕, 패배, 심판, 권력 상실을 상징합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승자가 패자에게 가하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처벌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신약에서 눈과 관련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은 우리 몸의 등불이다
(마6:22)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되
The light of the body is the eye: if therefore thine eye be single,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light.
(마6:23)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But if thine eye be evil,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darkness. If therefore the light that is in thee be darkness, how great [is] that darkness!
눈은 영적 통찰력과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올바른 시각을 가지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밝아집니다.
왜곡된 시각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어둡게 만듭니다.
눈은 죄의 유혹이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눈이 우리를 죄로 이끌고 있다면 차라리 제거하는 것이 맞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다마스크스로 가던 길에 시력을 잃게 됩니다.
(행9:17) 아나니야가 자기 길로 가서 그 집에 들어가 그에게 안수하며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올 때 길에서 네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사 네가 시력을 받게 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셨느니라, 하매
And Ananias went his way, and entered into the house; and putting his hands on him said, Brother Saul, the Lord, [even] Jesus, that appeared unto thee in the way as thou camest, hath sent me, that thou mightest receive thy sight, and be filled with the Holy Ghost.
눈의 상실과 회복은 사울이 육체적 시각보다
영적 시각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눈이 멀었던 상태는 그의 죄와 무지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눈을 뜨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삼상11:3) 야베스의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의 유예 기간을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사자들을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네게로 나가리라, 하니라.
And the elders of Jabesh said unto him, Give us seven days' respite, that we may send messengers unto all the coasts of Israel: and then, if there be no man to save us, we will come out to thee.
“야베스의 장로들이”
왕이 세워졌지만 아직 왕의 체제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직 지역에서는 장로들을 통한 지역 통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시간의 말미를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처참합니다.
나라 전체에 전령을 보내서 우리를 구할 자가 있는지 보고
더이상 없으면 너희들이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처참한 것은 암목 족속이 이것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암몬 족속은 너희 중에 너희를 구할 수 있는 자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을 철저하게 비웃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다 모여도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는
물리적 힘의 우위에 있음을 자신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사람이 없으면”
이 표현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들을 구원할 자가 있음을
백성들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겁니다.
이 전쟁은 삼상 10:27절의 연장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10:27) 그러나 벨리알의 자손들은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그를 멸시하며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But the children of Belial said, How shall this man save us? And they despised him, and brought him no presents. But he held his peace.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셨지만 일부 백성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울 왕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사자를 보냈는데 사자가 어디에 도착했는지 보겠습니다.
(삼상11:4) ¶ 이에 사자들이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그 소식을 백성의 귀에 고하매 온 백성이 소리 높여 울더라.
¶ Then came the messengers to Gibeah of Saul, and told the tidings in the ears of the people: and all the people lifted up their voices, and wept.
“온 백성이 소리 높여 울더라.”
사자가 사울이 있는 기브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의 초점이 사울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 온 소식을 듣고 기브아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이들의 친밀한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19장에서 21장 사이의 사건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인이 첩을 얻게됨
(삿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 쪽에 머물던 어떤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유다에서 첩을 취하였는데
And it came to pass in those days, when there was no king in Israel, that there was a certain Levite sojourning on the side of mount Ephraim, who took to him a concubine out of Bethlehemjudah.
(삿19:2) 그의 첩이 그를 대적하여 창녀 짓을 행하고 그를 떠나 베들레헴유다에 있던 자기 아버지 집으로 가서 거기서 넉 달을 보내니라.
And his concubine played the whore against him, and went away from him unto her father's house to Bethlehemjudah, and was there four whole months.
기브아에 머물게됨
(삿19:14) 그들이 계속해서 자기들의 길로 가는데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 옆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 위로 해가 지므로
And they passed on and went their way; and the sun went down upon them when they were by Gibeah, which belongeth to Benjamin.
(삿19:15) 그들이 기브아에 가서 머물려고 거기로 돌이키니라. 그가 들어가서 도시의 거리에 앉았으니 이는 그들을 집으로 데려가 머물게 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더라.
And they turned aside thither, to go in and to lodge in Gibeah: and when he went in, he sat him down in a street of the city: for there was no man that took them into his house to lodging.
(삿19:22) ¶ 이제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보라, 그 도시의 사람들 곧 벨리알의 어떤 아들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집에 들어온 남자를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알리라, 하니
¶ Now as they were making their hearts merry, behold, the men of the city, certain sons of Belial, beset the house round about, and beat at the door, and spake to the master of the house, the old man, saying, Bring forth the man that came into thine house, that we may know him.
레위의 첩은 동네 불량배에게 밤새도록 당하고 죽게됩니다.
(삿19:29) ¶ 그가 자기 집에 이르러 칼을 취한 뒤 자기 첩의 시체를 붙들고 그녀의 뼈와 함께 그녀의 몸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그녀의 몸을 이스라엘 온 지역에 보내니
¶ And when he was come into his house, he took a knife, and laid hold on his concubine, and divided her, together with her bones, into twelve pieces, and sent her into all the coasts of Israel.
(삿19:30)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이 날까지 이런 일은 행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그것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의견을 취한 뒤에 너희 생각을 말하라, 하니라.
And it was so, that all that saw it said, There was no such deed done nor seen from the day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ame up out of the land of Egypt unto this day: consider of it, take advice, and speak your minds.
이 사건으로 베냐민 지파는 나머지 지파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남자 600명만 남고 다 죽게 됩니다.
이후에 이들은 모여서 베냐민 지파에 자신들의 딸을 주기 않기로
결의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이 총회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야베스 길르앗에서 처녀 400명을 잡아와서 베냐민 지파 남자와
혼인하게 합니다.
이로서 베냐민과 야베스 길르앗을 밀접한 혈연관계로 맺어지게됩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모계 혈통이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상11:5) 보라,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 떼를 따라 오다가 말하되, 무엇이 백성을 괴롭게 하기에 그들이 우느냐? 하매 그들이 야베스 사람들의 소식을 그에게 고하니라.
And, behold, Saul came after the herd out of the field; and Saul said, What aileth the people that they weep? And they told him the tidings of the men of Jabesh.
“사울이 밭에서 소 떼를 따라 오다가 말하되”
왕으로 선출된 사람이 소를 몰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아직 왕권에 필요한 제도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에
왕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일하는 자들을 들어 쓰십니다.
놀고 기도만하고 뭔가 거져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사울은 왕으로 세워졌지만 그것에 기대어 놀거나
왕 대접을 받기 위해서 거들머거리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에 충실하고 있고 땀흘려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For even when we were with you, this we commanded you, that if any would not work, neither should he eat.
창세기에서 아담에게 땀흘려 수고하게 하셨고,
입으로만 살면 궁핍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잠언 14장 23절)
(삼상11:6) 사울이 그 소식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크게 분노하여
And the Spirit of God came upon Saul when he heard those tidings, and his anger was kindled greatly.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직접 공격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적으로부터 능욕을 당하는 일에
의분(義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싸울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이 고통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고,
사울이 왕이 되어가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진행 되는 뒤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유익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빌2:3)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생각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Let] nothing [be done] through strife or vainglory; but in lowliness of mind let each esteem other better than themselves.
(빌2:4)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
Look not every man on his own things, but every man also on the things of others.
(삼상11:7) 한 겨리의 소들을 취해 그것들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사자들의 손으로 그것들을 이스라엘 온 지역에 두루 보내며 이르되, 누구든지 나아와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더니 주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마음으로 나오니라.
And he took a yoke of oxen, and hewed them in pieces, and sent them throughout all the coasts of Israel by the hands of messengers, saying, Whosoever cometh not forth after Saul and after Samuel, so shall it be done unto his oxen. And the fear of the LORD fell on the people, and they came out with one consent.
“한 겨리의 소들을”
쟁기질을 할 때 사용되는 두 마리의 소를 말합니다.
“사울과 사무엘을”
여기서 사울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사무엘에서 사울로 바뀐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의 의식 속에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울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마음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여전히 겸손했다면 사무엘을 자신 보다 앞세워야 마땅한 것입니다.
“주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두렵게 하지 않았다면,
백성들은 사울의 명령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리더십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듯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승복하게 할 때 백성이 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갔을때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을때 파라오는 그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이 돕기 때문에
모세가 지도자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지도력이 자신에게서 나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삼상11:8) 그가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And when he numbered them in Bezek, the children of Israel were three hundred thousand, and the men of Judah thirty thousand.
“베섹”
잇사갈 지파에 속하는 성읍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분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무엘서를 기록한 시점이 남북 이스라엘이 나뉜 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울이 등장하는 시기는 아직 남북이 분열된 상태가 아닙니다.
전국적 지지를 받기 시작하는 사울
합이 삼십 삼만명입니다.
출애굽당시에 성인 남자의 수가 60만명입니다.
성인 남자들 중에 절반에 가까운 수가 소집 명령에 응한 것입니다.
이에 사울은 전국적 지지를 받으며 왕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도 하나님이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도 자기가 하고 싶다고 세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꾼을 세웠다가 목적이 끝나면 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할때는 잘 안하고 불순종하다가
하나님이 폐하면 더하겠다고 추태를 부리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만 동안 사용하실지 모르지만,
물러나야 하는 순간이 오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물러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는 현상만 보지말고 영적인 눈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과 방향을
마음에 세기고 현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서
분노도 아쉬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주권아래서 일어나는 것임을 인정하고 믿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이 사건으로 사울을 전국적 지지를 얻는 왕으로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전 까지는 한 지역에서 왕으로 기름을 부음 받았지만,
소수의 사람만 아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전국적 인물로 등장할 수 있는
사건을 만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삼상11:9) 그들이 거기 도착한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내일 해가 뜨거울 때에 너희가 도움을 받으리라, 하라, 하니 사자들이 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그 일을 알리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And they said unto the messengers that came, Thus shall ye say unto the men of Jabeshgilead, To morrow, by that time the sun be hot, ye shall have help. And the messengers came and shewed it to the men of Jabesh; and they were glad.
“내일 해가 뜨거울 때에 너희가 도움을 받으리라”
정오에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 입니다.
(삼상11:10) 그러므로 야베스 사람들이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로 나가리니 너희는 너희에게 좋게 보이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행하라, 하니라.
Therefore the men of Jabesh said, To morrow we will come out unto you, and ye shall do with us all that seemeth good unto you.
(삼상11:11) 이처럼 다음 날 사울이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었더니 그들이 새벽 경점에 그 군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날이 뜨거울 때까지 암몬 족속을 죽이매 남은 자들이 흩어져서 그들 중 두 사람이 함께 남지 아니하였더라.
And it was so on the morrow, that Saul put the people in three companies; and they came into the midst of the host in the morning watch, and slew the Ammonites until the heat of the day: and it came to pass, that they which remained were scattered, so that two of them were not left together.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새벽 경점에”
이 전투가 시작된 시점은 새벽입니다.
성경에서 새벽은 어움이 끝나고 밝음으로 이루어지는 시점을 말합니다.
이제 사울은 왕으로 자격을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삼상11:12) ¶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우리를 통치하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 사람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그들을 죽이겠나이다, 하매
¶ And the people said unto Samuel, Who is he that said, Shall Saul reign over us? bring the men, that we may put them to death.
이제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사울을 인정하지 못했던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일단 생기면
사람들이 충성을 앞다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삼상11:13) 사울이 이르되, 주께서 오늘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하니라.
And Saul said, There shall not a man be put to death this day: for to day the LORD hath wrought salvation in Israel.
지금 사울과 사무엘이 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인정하지 않은자를 끌어내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백성의 요구에 사무엘이 나서서 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데 지금 사울이 나서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지금 조용히 뒤로 빠져있고,
들끓는 백성들의 동요를 잠잠하게 한 것은 사울이었습니다.
이제 백성의 리더십은 사울이 행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11장의 백성의 리더십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입니다.
사울의 첫 번째 전쟁
이 전생은 사울이 왕으로 전국민적 지지속에 등극하게 되는
첫 번째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전생의 승리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을
사울이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후로 사울은 40년간 왕으로 제위를 하게 됩니다.
그 후로 많은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40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많은 전쟁을 하게 되는
사울은 지금 암몬과의 전쟁 외에는
전부다 사울 개인의 의를 드러내는 싸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싸운 전쟁에서도
그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의로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전쟁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26:52)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잡는 자들은 다 칼로 망하리라.
Then said Jesus unto him, Put up again thy sword into his place: for all they that take the sword shall perish with the sword.
사울이 하나님이 세운 왕으로서의 면모는 여기까지 였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실때 그의 핵심적인 임무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그런 모습은 여기까지였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이 일 이후에는 백성들의 환호에 넘어가고 맙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개인적인 적을 죽이려는데 인생을 소비합니다.
다윗 하나 잡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을 세우고 자신의 임무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고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은퇴식 이런거 안했습니다.
이런 일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삼상11:14) 그때에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거기서 왕국을 새롭게 하자, 하니
Then said Samuel to the people, Come, and let us go to Gilgal, and renew the kingdom there.
길갈은 어떤 곳이었나요.
이집트의 모든 생활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맛나를 더이상 먹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농사를 지어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앞으로 일어날 안좋은 조짐을 보고 있어떤 것입니다.
백성들은 사울의 등장에 흥분했습니다.
사울을 위해서 사울이 싫어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원했던 왕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흥분하며 자신들의 과거를 잊으려고 한 것입니다.
(삼상11:15) 온 백성이 길갈로 가니라. 거기서 그들이 길갈에서 주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거기서 주 앞에 화평 헌물의 희생물을 희생시켜 드리며 거기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하니라.
And all the people went to Gilgal; and there they made Saul king before the LORD in Gilgal; and there they sacrificed sacrifices of peace offerings before the LORD; and there Saul and all the men of Israel rejoiced greatly.
지금 기뻐하는 사람들의 명단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무엘 입니다.
사무엘은 지금 기뻐할 수 없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시작된 왕의 제도는
점점 사람 중심으로 이동되고
숫자와 세몰이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과 모든 백성은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이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을 길갈로 모으고,
왕국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셨던 그 왕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 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사울과 같은 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는 마음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싸움의 승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내 선택이 옳았다는 등의 자신을 높이는 방향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