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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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93.
찬93.
데살로니가전서 4:9–10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하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이미 살전 1장 3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서로 구체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밝혔고,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에서 바울은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더이상 쓸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성도들이 서로 사랑의 수고를 하며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사랑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하면 제일 먼저 기독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사랑을 떠올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주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죠. 이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는 하지만 아직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늘 사랑할 수 없는 범주가 있고,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계속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를 공격한 사람들, 나를 무시한 사람들, 나를 배려하지 않은 사람들, 내가 힘들 때 모른척 했던 사람들 등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랑하지 못하는 범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 제한적인 사랑의 범주를 깨지 못하는 이상,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제한적인 사랑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 사랑을 잘 하고 있었던 것의 근거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들었기 때문이라고 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에서도 자비와 사랑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사랑은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다른 종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사랑에는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AD50-51년 경에 쓰여졌고, 이후 10년 정도가 지난 후에 AD60-62년 경에 에베소서가 쓰여졌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한 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번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국군통수권자와 비상계엄을 실행한 국방부장관을 두고 ‘한 몸’이라고 하는 언론기사가 나왔던 것을 봤습니다. 이 둘을 두고 한 몸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둘의 서로 긴밀한 관계를 잘 표현해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머리의 지시를 받아 실제적으로 몸이 움직였던 ‘한 몸’이라는 단어가 그 둘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몸’은 이렇게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말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한 분 아버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이 더이상 서로 다른 개개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자 ‘한 몸’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기존에 따르던 세상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를 새롭게 따라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과 질서로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가동되고 있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되었음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서로 모여 세상의 질서를 버리고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며 하나님을 알아갔던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 3년동안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낮아지심으로 하나님께 다스림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힘과 능력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사랑과 섬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교회가 주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교회가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할 때,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 갈 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고, 서로 사랑함으로 서로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함으로 통해 하나님께 다스림받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지금 시작되었다,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지금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참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다른 종교들이 하고 있듯 윤리적이고, 보상을 전제로 하는 신에 대한 복종함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신에게 순종함으로 보상을 원하는 일반적인 종교적인 개념과는 달리, 주안에서 형제 자매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피조세계에 주인이신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는 일이고, 사랑이라는 일반적인 윤리의 의미가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질서라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형제, 자매들이 지금부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지금부터 받고 있는 것이며,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서 지금부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형제 사랑을 잘 하고 있었듯이, 오늘 교회인 우리에게도 형제 사랑에 대해서 다시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한적인 사랑에 머물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것이 바로 제한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잘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직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해야하는 사랑과 진짜 사랑입니다. 나랑 잘 맞는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랑할 수 없고, 도저히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치신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한 몸이 되게하신,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따르는 사랑이라는 질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입니다. 교회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다스림을 현재부터 받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주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사랑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지금부터 받아가는 주의 백성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안에 사랑하기 힘든 자가 있다면, 용납하고 용서해주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해내십시오. 사랑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경험하고,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계시는 하나님 나라를 깊이 깨달아 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저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미 형제사랑을 알고 있고, 형제 사랑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으로 품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까이 가기가 꺼려지고, 관계 맺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형제 자매들이 있다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한 몸이 되게 하셨음을 믿고, 관계 맺지 못했고, 사랑해내지 못했던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들을 용납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주께 받은 사랑때문에, 용납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형제, 자매들을 용납하게 하시고,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가게 하시고,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며 행복해하는, 그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