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억하라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1 views
Notes
Transcript

들어가는 말

예화: 벨사살 왕의 잔치 (다니엘 5장)
 
B.C. 539년 10월 10일
매거진 re 2015년, Vols. 23–34 렘브란트: 벨사살의 연회, 방탕의 사회학

당시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는 갈리기아와 시리아 지방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원정에 나가 있었고 그의 아들인 벨사살이 섭정왕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벨사살이 연회를 베풀던 날 밤에
다니엘서 5장을 보면, 바벨론의 왕 벨사살이 만찬을 열어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대 최고의 왕궁에서 귀족과 신하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즐기며 흥청망청하던 그 순간, 왕의 눈앞에 기이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벽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르바르신(MENE, MENE, TEKEL, PARSIN)…”
매거진 re 2015년, Vols. 23–34 렘브란트: 벨사살의 연회, 방탕의 사회학

‘저울에 달았더니 가벼움이 드러나서 나라를 나누어 버린다’는 뜻이다.

뜻을 알 수 없던 이 글은 결국 다니엘을 통해 해석되는데, 그것은 *“왕의 나라가 이미 끝자락에 다다랐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날이 임박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흥겨운 잔치 한가운데서 울려 퍼진 이 경고는 너무나도 극적입니다. *“아직 내게는 많은 것들이 있고,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벨사살 왕에게 내려진 판결은 갑작스럽고도 치명적이었지요. 무엇보다 그날 밤, 실제로 바벨론 왕국은 다른 제국의 침공을 받아 무너지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영원히 우리 손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경종을 울립니다.
벨사살 왕은 최전성기의 영화 속에 도취해 있었지만, 그의 나라가 휘청거리는 징조는 이미 도성 바깥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결과는, 왕좌와 생명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30-40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 예화를 통해 묵직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직은 가정도, 직장도, 건강도 제법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은 언제 어디서든 불쑥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치 벨사살 왕이 잔치에 취해 도성 밖의 위험을 애써 외면했던 것처럼, 우리도 눈앞의 편안함과 성취에 매몰된 채 삶의 한계를 깨닫기를 미루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전도서 12장 1-5절이 보여주는 “노년에 다다른 인생의 허무함”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스스로의 무능과 유한함을 인식하는 지혜로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벨사살 왕의 이야기는 그 지혜를 외면할 때 얼마나 급작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오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죠. 결국, *“끝이 있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수용할 때, 우리는 오히려 삶을 더 진지하고 귀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겸손한 태도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1. 어두워져 가는 (한계에 부딪친) 세상을 주목하라 (전 12:1-5)

전도서 12장 1-5절에서 전도자는 인생이 서서히 저물어 가는 장면을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냅니다. 청년의 때에 누렸던 힘과 활력이 차츰 쇠퇴하고,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며, 몸이 예전만 못하게 움츠러드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등장하죠.
그러나 전도자가 이 모습을 통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슬픔이나 허무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 결국에는 이러한 한계에 부딪히며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라”*는 초대입니다.
여전히 젊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30-40대일지라도, 우리 인생은 예측불가능한 위기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변화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 일하고, 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우리가 머지않아 깨닫게 될 한계를 미리 보여주는 거울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이 곧 절망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전도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런 한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지혜’가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무한정 달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해집니다. 보다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쏟게 되죠.

적용

현실적인 자기점검: 한계를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삶을 더 명확히 점검하고 우선순위를 재설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깨어 있는 삶: 미래의 막연한 불안감에 휩쓸리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과 관계를 더욱 아끼고 돌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지낼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의 능력이나 권한, 재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계를 한다는 것은 그것을 더 규모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더욱 구체적으로 디자인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전도자와 마주한 이 ‘노년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모두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더욱 깨어 있으라”고 말해줍니다. 이는 늙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인생의 참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성찰의 과정이 됩니다.

2.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 12:1)

전도서 12장의 중심 구절이라 할 수 있는 이 말씀은 노년의 쇠락함을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 분명한 소망의 등불을 제시합니다.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우리는 여기서 ‘기억’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머릿속에 정보를 저장하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은 정체성의 뿌리입니다.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논문들을 보면,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행동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의 차원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가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결정짓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나를 지으신 분”으로 기억한다면, 나는 스스로 만든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특별한 작품”*이라는 깨달음 속에서 자존감과 목적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기억한다면, 그 기억 속의 하나님은 내 삶의 현장과 유리된 관념에 머물게 되겠지요.

유리되다의 한자적 해석

遊(유): 자유롭게 떠도는 상태를 나타냄.
離(리): 기존에 연결되어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
기억은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복음의 사건을 마음 깊이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와 세계관 전체가 다른 스토리에 의해 재편집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실패해도, 방황해도, 한없이 허무해 보여도, 결국 ‘창조주’를 잊지 않는 사람은 그 안에 붙들어 줄 줄기와 근원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역사를 기억할 때, 인생의 계절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반석 위에 서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바쁜 일상에 쫓기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과거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모든 순간 역시 그분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라는 초대입니다.

3. 헛되고 헛되나, 헛되지 않은 소망 (전 12:8)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12:8)에 등장하는 선언,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이 책이 내내 외쳐 온 주제의 요약입니다. 우리의 눈에 세상은 무의미한 순환처럼 보이고, 모든 수고와 쾌락은 결국 사라지는 연기와 같다고 전도자는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허무함이 결코 인생의 마지막 결론은 아닙니다. 오히려 *“헛됨을 알기에, 그 너머를 찾도록 부름받았다”*라는 것이 전도서의 역설적 메시지이지요.
현대의 30-40대는 분주한 업무, 가정의 책임, 경제적 압박,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에 매일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문득,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허무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전도서의 음성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껴질지라도, 인생을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계시며, 그분 안에서라면 헛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적용: 바쁘고 피곤한 일상에서,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찾지 못해 마음 한 구석에 뻥 뚫린 듯한 텅 빈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공허가 우리를 두렵게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인생을 더 깊이 탐구하라”*는 초대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헛됨’을 발견한 사람이 비로소 ‘영원함’을 갈망하게 되고, *“창조주를 기억”*함으로 그 영원 안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서 12장은 결코 어둡거나 절망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삶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일종의 *“은혜의 해부학 강의”*와도 같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은 우리의 노년이 결국 쇠하여지고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지혜의 문이 열립니다.
둘째, 그런 흐릿한 시간 속에서도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밝히는 횃불이 됩니다. 기억은 단지 과거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재편집하고 미래를 품는 능력입니다.
셋째,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선언이 마무리가 아니라, 오히려 *“헛됨 너머의 의미”*를 찾도록 이끕니다. 이것이야말로 전도서가 말하는 역설적 희망이며, 진정한 복음의 씨앗입니다.
삶의 바퀴가 바쁘게 굴러가는 30-40대의 현장 한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시는 창조주의 음성을 놓치지 맙시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언젠가는 노쇠해지지만, 그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 한 말씀을 붙들며, 허무한 듯 보이는 인생에 깊은 의미와 영원한 소망을 심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이 기억이 지금 우리의 걸음을 밝히고, 다가올 노년에도 희망의 줄기를 피워 올리리라 믿습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