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8 설교
12차 힌두권 선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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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의 선교
빌립의 선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루동안 함께 사역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누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은혜로 채우는 귀한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빌립의 선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요, 오늘 말씀은 여러분들이 함께 읽으신 것처럼, 사도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사도행전에 수없이 등장하는 복음 전파의 내용일 수 있겠지만요, 함께 살펴본다면 이 본문만이 가진 특별한 은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말씀을 보면서 그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빌립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통해 빌립에게 말씀하시죠.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을 가라. 그 길은 광야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길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다시 본인이 거하는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왜 갑자가 에디오피아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을까요? 아마 이 에디오피아 내시는 유대교인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이방인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나아와 예배를 드렸던 것이죠.
그렇게 돌아가던 에디오피아 내시는 마침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사야였죠. 당시 말씀을 읽는 방식은 소리를 내어 말씀을 읽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마 내시의 주변에서는 그가 성경을 읽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어떤 성경을 읽는지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그 내시에게 가까이 나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빌립으로 하여금 내시의 성경읽는 소리를 듣게끔 하시려는 계획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빌립은 순종함으로 내시의 가까이 나아갔고, 그는 내시가 읽는 성경 말씀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빌립은 바로 그 내시에게 묻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말씀은 되게 거룩하게 표현을 하고 있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열심히 말씀을 읽고 있으니까, 옆으로 가서 묻는거에요.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 읽으시나요?’
그러자 내시가 대답합니다. ‘아뇨, 알려주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아니 그러지 말고, 말씀을 좀 아시는 것 같은데, 와서 좀 알려주세요.’
빌립은 바로 내시가 탄 수레에 오릅니다. 그가 읽는 말씀은 이사야 오십삼장 칠절 말씀이었어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내시가 이 말씀을 읽고서 바로 그 내용에 대해서 빌립에게 묻습니다. 여기서 선지자가 말한 것인 대체 누구냐, 이사야 자신을 가리킨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냐.
여러분들은 이 본문이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다들 아시죠?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가리켜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예수님을 전하기 좋은 순간입니다.
빌립은 그 자리에서 바로 그 가리키는 자가 예수이며, 예수가 어떤 분인지, 쭉 가리켜 설명하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아마도 내시는 빌립의 설명에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길을 가다가 물을 발견하자 바로 빌립에게 세례를 받기를 청하죠.
열심히 에디오피아를 가던 수레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빌립과 내시는 바로 수레에서 내려 물로 향해 빌립이 주는 세례를 에디오피아 내시가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세례를 마치자마자 성령께서 빌립을 또 다른 자리로 이끌어가십니다. 내시는 세례를 받고 기쁨으로 다시 길을 향했고,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아소도 여러 성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로 향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오늘의 본문이 전하고 있는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우리는 이 본문에서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에디오피아 내시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는 확인해야 합니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는 한 단어로 표현되었지만, 이 단어를 통해 우리는 그의 많은 정체성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의 민족입니다. 에디오피아는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나라이죠.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른쪽에 툭 튀어나온 지역이 바로 에디오피아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도 그가 흑인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겠죠. 그는 인종도 다른 이방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 율법에 따르면 이방민족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자신의 민족성을 다 버리고 할례를 받고 유대인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례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유대교 예배에 참여하여도, 아직 할례는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꽤 많았습니다. 아마 이 내시도 그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볼 수 있는 그의 정체성은 내시입니다. 우리가 내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그는 생식기능을 상실한 자입니다. 당시로 따지면 남자로 부를 수 없는 사람이겠죠.
율법 역시도 그러한 자들에 대해서 그리 좋은 대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식능력을 잃은 소위 말하는 고자들은 성전에도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상으로 내시는 부정한 존재였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정체성은 그가 고위 관리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유대 사회에서는 비주류에 속한 자였을지는 모르나, 그의 나라 에디오피아에서는 에디오피아의 모든 세속 직무를 수행하는 여왕을 보좌하는, 특히 나라 경제를 관리하는 대단한 역할을 맡은 이였습니다. 아마도 읽고 쓰고 하는 일에 능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체성들을 통해 보면 어떤가요? 이 에디오피아 내시는 사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접근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접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적인 접근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인종과 문화적으로도 이스라엘과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도, 육체적인 부정함이 있는 그를 유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랬기에 이 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말씀을 읽고자 하여도 그 말씀을 제대로 알려줄 이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이 빌립을 보내십니다.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에게 나아가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열심으로 말씀을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내시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까지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시는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그는 말씀을 통해 그의 모든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그곳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했을 것입니다. 또 어쩌면, 에디오피아의 다른 이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이렇게 놀랍게 일하십니다.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심지어는 육체적으로 어려움이 존재하는 이들에게까지 주님은 역사하셔서 그를 변화시키시고, 더 나아가 그를 통해 또 다른 민족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에서 생식능력을 잃은 자들이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내시가 읽고 있던 이사야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것조차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미 주님은 이방인을 비롯한 모든 쫓겨난 자들, 소외받는 이들을 부르시고 함께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놀라운 계획은 지금도 실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통해서 말이죠.
어쩌면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인도 땅에 선교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도 않았던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실 저도 그랬었거든요.
인도하면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를 떠올리고, 모두가 그들의 신을 숭배하고 하는 모습으로 여기고 있다보니, 이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불가능하다고까지 느끼게 됩니다.
저도 얼마전에 저희 기도카드를 배경사진으로 해놨더니, 주변 친구들이 힘든 곳 간다고 응원을 해주더라구요.
그런 것처럼 어쩌면 많은 이들, 심지어는 우리들도 이 인도 땅을 에디오피아 내시와 같이 말씀을 전하기 어려운 곳, 구원받기 어려운 이들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또한 이 인도땅에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목회자를 세우시고, 많은 이들이 나아와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주님은 우리를 빌립과 같이 사용하셔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도 말씀을 사모했지만, 말씀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기에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 인도 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주님을 알고자 하고,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데, 그 길로 이끌어줄, 도움을 줄 사람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들을 이끌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빌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아실 수 있지만, 빌립은 본문 내내 어떻게 행동하죠? 성령에 이끌려 행합니다. 단 하나도 자신의 생각으로 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가라고 하니 가고, 성령께서 내시를 만나라 하니 만났고, 세례를 준 이후 성령께서 인도하시니 또 다른 곳으로 이끌려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복음 전도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주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죠.
사실 오늘 본문의 많은 상황들은 우연처럼 이루어집니다. 우연하게 내시가 빌립과 같은 길을 걸었고, 우연하게 그때 내시가 말씀을 읽고 있었고, 우연하게 또 그 말씀이 메시야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었고, 우연하게 가는 길에 물이 있어 세례를 받습니다.
정말 많은 우연이 겹쳐 이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우연일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을 광야길로 보내시고 수레로 보내신 것처럼, 에디오피아 내시 역시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게 하시고,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게 하시고, 다시 돌아와 빌립을 만나게 하셨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시고 일하시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말씀에는 이 에디오피아 내시와 비슷한 삶을 보이는 사람이 한명 또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실 나아만이라는 사람입니다. 나아만도 에디오피아 내시와 같이 이방인이었고, 군대장관이라는 고위 관료였습니다. 그런데 나병에 걸려 이를 치료하려다가 엘리사를 통해 여호와를 만나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나아만이 등장하는 첫 구절의 말씀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말씀에 어떻게 기록이 되어있냐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나아만이 군대장관이 되기도 전에 택하셨고, 그를 통해 아람을 구원하게 하시면서 군대장관이 되도록 이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나병에 걸린 것도, 하나님께서 그를 엘리사에게 이끄시기 위한 하나의 계획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을 보시면 엘리사를 만난 것도, 마침 그의 아내가 유대인 하인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통해 엘리사의 존재를 알게 되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을 택하시고 변화시키실 때, 그의 삶 구석구석에 역사하셔서 이끄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크신 계획에 도구로서 올바르게 사용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자리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준비하면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했던 것은 결국 다른게 아닙니다. 더욱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가까이 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분명한 악의 공격이 있습니다. 그 공격은 외부 세력을 통해 주어지기도 하겠지만, 더 크게는 우리의 마음 깊숙히 들어오기도 합니다.
자꾸 선교를 행하는 우리의 마음 속에 다른 마음을 집어넣는다는 것이죠. 내 생각을 앞세우려 하고, 나를 자랑하고 드러내려는 마음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빌립과 같이 주님이 이끄시는 일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엄청난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 선지자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아무리 다른 것을 의도적으로 하려고 해도 주님은 그의 뜻대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더욱 따라 행하려 할때, 주님의 계획은 더욱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이고, 주님도 그 자리에서 기뻐하시며 도구로 행하는 우리에게까지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를 받는 장면이죠. 본문을 보면, 내시가 먼저 세례를 받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묻습니다.
사실 앞서 우리가 보았듯이, 율법적으로 거리낌이 있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그가 신앙고백도 스스로 아직 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떤 사본에는 비어있는 37절에 신앙고백의 내용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곳을 비워놓은 것으로 봐서는 그 기록이 없다고 보는 학자들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문제소지가 있고, 신앙 고백도 확실치 않은데, 빌립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모습이죠. 우리가 보았을 때는 세례라는 것은 그가 믿고, 그것을 고백하였을 때, 그 모습을 확인하고 주어져야 할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빌립이 맘대로 그냥 주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흐름을 봤을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 세례는 오늘 본문의 흐름 그대로 성령께서 그 둘을 이끄셔서 세례를 받도록 하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도 사역의 자리에서 동일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차수에서 저도 이 때문에 마음이 거리낌이 있던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주님은 이 선교의 자리에서 우리를 이 빌립과 같이 이끌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선교의 자리는, 주님께서 일하시는 곳은 우리의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평소 보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놀랍게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이 선교의 현장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생각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의 모든 것 드리고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통해 이 인도 땅에 놀랍게 그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뿌린 이 씨앗들을 통해, 에디오피아 내시가 자신의 집에 즐겁게 돌아갔던 것처럼, 그 씨앗을 각자의 처소에 보내실 것이고, 그들이 또 놀랍게 말씀의 전달자로서 주님의 계획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주님께서 에디오피아 내시라는 많은 것들이 다르고 또 소외된 이들을 부르시고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또한 그 모든 계획에 빌립과 같은 이들을 부르셔서, 온전히 주님께 이끌려 행하게 하심을 보았습니다.
본문의 이 놀라운 일들은 말씀의 시기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 것이 사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때도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 인도 땅 가운데 오늘의 본문과 같은 놀라운 일을 동일하게 행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우리 선교팀원들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반응하는 우리 팀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론 두렵고 지친 순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욱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빌립과 같이 놀랍게 이끄시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인도 땅에 거하는 수많은 에디오피아 내시들을 주님의 길로 이끄는 우리 모든 선교팀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수많은 무리들 줄지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