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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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9:13–41 NKRV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서론
말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사람의 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봤던 한 웃긴 이야기 중에는 이러한 것도 있습니다. 오빠가 자기되고 자기가 여보된다. 꼭 이삭청년과 지혜청년 이야기 같네요. 이처럼 우리는 사람의 말을 통해 관계나 심리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커플들이 많이 싸우는 이유도 말 때문입니다. 상대가 예전 같지 않다. 옛날처럼 사랑스럽게 말을 안한다. 이러고 싸웁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말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총 4개의 대화가 나타나고 이를 통해 말씀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저번 설교 시간 때에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는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이 성경의 이야기가 영적 맹인을 비유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영적 눈을 뜰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맹인이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총 4개의 대화를 통해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의 사역의 진정한 의미와 성격을 알아 봅시다.
본론
먼저 첫 번째 대화는 바리새인들과 보게 된 맹인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된 것에 놀란 사람들이 맹인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눈을 뜨고 보게 되었다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놀라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만약에 눈을 뜨게 하는 치료 방법이 발견되었다면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서임이고, 혹시 마술이나 귀신의 힘으로 눈을 고친 척을 하는 것은 아닌지 검증해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물음에 맹인이었던 사람은 그 사건을 간략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예수님이란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발라줬고 씻으라해서 씻었더니 보였다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방법이 특별한 치료 방법도 아니었으며 마술이나 귀신의 힘으로 눈을 고친 척하는 사기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리새인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찌되었든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고, 어떤 사람은 ‘죄인이 이런 기적을 어떻게 일으키겠냐? 하나님의 사람인거 같다!’와 같이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논쟁은 진정될 기미가 없었고 결국 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치유의 과정을 경험한 것은 맹인이었으니까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 것 같냐는 물음에 맹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그는 선지자입니다.” 맹인은 아마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들은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쭉 살펴보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마귀의 자녀라 하고, 안식을을 어기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인물을 믿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솔직히 말하자면 저기 외국인하고 섞여사는 조선족 같은 갈릴리 사람이고, 유명한 집안도 아닌 가난하고 천한 목수의 아들이며, 그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는 학교도 못나온 못난 사람이 자신들을 지적하고 혼내는게 재수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했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맹인과 짜고 눈을 뜨게 한 척을 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기에 맹인이었던 사람의 부모를 호출합니다.
두 번째 대화는 유대인들과 맹인이었던 사람의 부모의 대화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부모를 데려와서 거칠게 쏘아붙였습니다. 니 아들이 진짜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인게 맞냐? 그럼 지금 어떻게 보냐? 말이 되냐? 실제로는 눈이 보였던거 아니야?! 그들이 윽박지르자 맹인의 부모는 덜덜 떨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들이 자기 앞가림을 하는 어른이니 우리 말고 아들에게 물으십쇼.”
부모는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유대교에서 출교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들이 아들의 편을 들어 예수님의 기적을 고백했다면 그들은 유대교에서 출교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출교 당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치면 국적을 빼앗기는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위협이었습니다. 거기에 장애인인 아들을 구걸해서 먹고 살게 할만큼 가난한 그들이 출교되게 된다면 아마 굶어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아들을 버립니다.
유대인들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예수님이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맹인을 치유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예수님은 가짜 맹인을 치유한 사기꾼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맹인을 치유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그들은 맹인을 부르며 세 번째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맹인을 부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이 말은 하나님께 감사라하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우리가 익숙한 말로 바꾸자면 “너는 죄인인 예수님을 따랐으니까 회개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현실을 외면하고 예수님은 죄인으로 정한 것입니다. 예전 세러데이에서 한 학생이 어떤 말에도 응 아니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말을 맹인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맹인은 그들에게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제가 예수님이 죄인인건 모르겠고 확실히 아는 것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 덕분에 내 눈이 고쳐져서 보게 된 겁니다”
예수님이 맹인을 고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맹인의 이와같은 대답에 그들은 또 예수님이 어떻게 눈을 뜨게 했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킨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아마 맹인은 조금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말해줬는데 또 물어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듣고 알아서 제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맹인의 말에 유대인들은 펄쩍 뛰면서 화를 내었습니다. 그들은 맹인을 향해 온갖 욕설을 던졌습니다. 그리곤 맹인에게 너는 죄인이나 따르는 너 같은 놈과 달리 자신들은 훌륭한 모세를 따르는 제자라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들은 어딜 감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세와 달리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근본도 없는 죄인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냐고 묻느냐며 쏘아붙였습니다.
이들의 대답에 맹인도 화가 났습니다. 그리곤 그들의 말의 모순을 지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맹인이 알기론 인류 역사상 분명 하나님 외에 어느 사람도 맹인을 눈에 뜨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경건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자의 말을 들으십니다. 그렇다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지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근본도 모르는 죄인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맹인의 말에 유대인들은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현실이 맹인이 맞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맹인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딜 죄 때문에 맹인으로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가르치냐하고 내어 쫓아버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쫓겨난 맹인 앞에 한 남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과 맹인이 만나며 네 번째 대화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맹인을 보며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여기서 인자란 다니엘 7장 13-14절에 나타나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를 가리킵니다. 이에 맹인은 대답합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믿겠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네가 그들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맹인은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 엎드려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에게 절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이에 바리새인이 자신들도 맹인이냐고 비꼬자 다음과 같이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우리가 오늘 살펴본 모든 사건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역의 핵심과 그 의미입니다. 먼저 39절에 맹인과 보다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 말씀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떠져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 같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자신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통달하여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알고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이들에게 맹인의 사건을 통해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영적 맹인인 것을 보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맹인이 되게 한다는 것은 그들이 영적 맹인인 것을 드러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41절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죄가 더 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문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유대인들처럼 자신이 말씀을 잘 알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좀 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기준이 생겨서 다른 사람과 교회를 판단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러한 모습이 바로 본문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정말 여러분은 철저하게 성경과 성령님의 감동을 기준으로 가지고 계십니까? ‘목사님과 사역자는 항상 우리를 향해 웃어줘야 돼 근데 나는 힘들게 일하고 왔으니까 내 기분대로 해도 돼’, ‘헌금을 낸 나는 대우 받아야 해’, ‘나보다 공부 못한 저 사역자보다 공부 잘한 내 생각이 맞아’와 같이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혹시 사역자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고 내가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고민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나요? 만약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당신은 진짜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영적 맹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해서 은사를 받은 것과 신학을 공부해서 지식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맹인처럼 예수님을 체험하고 그분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맹인의 믿음의 성장을 보면 우리 신앙 생활의 하나의 모범이 됩니다. 그는 처음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았지만 예수님을 그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공격 속에서 그 사람의 믿음은 점차 자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했고, 부모가 그를 외면하여도 바리새인들에게 맞설 정도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신뢰하였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와 마침내 영적으로도 밝히 눈을 보이시고 맹인은 예수님을 구주로 온전히 영접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 오늘 본문의 맹인과 같이 되기 원합니다. 본다고 착각하지만 죄로 눈이 가려진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육과 영이 모두 눈이 떠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원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자신의 믿음의 맹인의 어떤 믿음의 단계인지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본다고 착각하는 맹인의 단계인지, 예수님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기적적으로 체험만한 단계인지, 예수님이 선지자와 같이 가끔 능력을 구하고 가끔 말을 듣는 단계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내 삶의 주인인 것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위해 어떤 어려움에도 헌신하는 단계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내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영적 눈이 활짝 열리시기 바랍니다.
결론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아십니까? 여러가지 재미가 있겠지만 게임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재미는 성장이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공부나 운동 같은 것은 내가 성장하는 것이 보이려면 오래 걸리지만 게임은 내가 성장한 것이 눈에 바로바로 보입니다. 그래서 게임이 재밌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단계에 다들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담임 목사님께서도 출애굽한 이스라엘로 우리의 믿음의 단계를 많이 설명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시내산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다. 제 기억에는 우리 교회 성도분들은 이러한 구분법을 참 좋아했습니다.
오늘 말씀도 어떻게 보면 그런 단계와 비슷합니다. 맹인의 믿음이 더욱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믿음의 단계는 체험의 단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이 없을 때 맹인은 기적을 체험했고 그 이후에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믿음의 단계가 체험이든, 지위든, 재산이든 더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단계는 오늘 맹인처럼 더 예수님께 내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예수님께 내 삶을 모두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내 삶을 더 드리는 믿음의 단계로 가기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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