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31 설교

12차 힌두권 선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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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는 믿음

여러분 오늘도 이렇게 아침에 모여서 함께 말씀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이제 사역 마지막날이죠? 오랜 시간 함께 사역하면서 어찌보면 몸도 마음도 지쳤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주님께서 은혜로 채워주시면 우리가 다시 힘을 입어 나아갈 줄을 믿고,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누며 사역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다들 읽어보셨지만 도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 도마에 대해서 아시죠? 아마 도마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의심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것 같구요, 그 이후로는 또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요? 아마 인도에 첫 복음을 전파했던 자로도 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 도마를 보내셨을까? 한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느낀 것이, 아 왜 도마를 이곳에 보내셨는지 이유가 있었겠구나라는 나름의 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함께 이 도마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왜 도마를 이곳에 보내셨을지, 또한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살펴볼 수 있을지를 함께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에 여인들에게 한번, 그리고 제자들에게 한번 나타나신 이후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구절에서부터 이 이야기로 시작하죠.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도마는 이미 한번 일어났던 사건,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제자들로부터 듣습니다.
한번 당시 그 분위기를 생각해볼까요? 아마도 제자들은 흥분해서 도마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을 것 같습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도마에게 나아가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려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떤 반응을 할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어떤 분들은 오 진짜? 나도 예수님 뵙고 싶은데… 이런 반응일 수도 있구요, 또 어떤 분들은 에이 뻥치지마. 지금 뭐 몰카라도 하는거야? 이럴수도 있겠죠.
도마의 경우는 후자였습니다. 다들 왜이렇게 호들갑이야. 너네가 하도 예수님이 보고싶으니 잘못본걸거야. 환상이라구. 나는 내가 예수님을 만져봐야. 그 못박히신 손과 옆구리를 만져봐야 나는 믿을거야 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도마의 태도를 보면서 도마가 원래 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겠거니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건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사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도 믿음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요한복음 11:14–16 NKRV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나사로를 살리러 가자고 말씀을 하시죠.
그런데 도마는 어떻게 이해를 해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가자고 하시니, 어떻게 생각한거에요? 나사로가 있는 죽은 자들의 세계, 즉 죽으러 가자는 것으로 이해한거에요.
그래서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말한 것이죠. 예수님께서 가는 어디든 내가 따라가겠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사실 대단한 믿음이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여기서도 도마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죠.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애초에 잘 믿지 않는 사람, 요즘으로 치면 상당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또 다른 구절을 볼까요?
요한복음 14:1–6 NKRV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도 도마의 반응은 어떤가요?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면 조금 비유적인 표현으로 길을 알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러자 도마의 대답은 아니 주님 말씀도 안해주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알아요. 말해주셔야 알지. 이런 대답이에요.
그러니 상당히 도마는 확실한 것, 현실적인 것을 생각하는 인물인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마가 믿음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도마는 우리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할 정도로 믿음은 강한 사람이었어요. 주님과 함께한다면 우리가 죽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도마의 이 성향. 확실한 것,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은 그의 믿음을 가리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칠일이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입니다. 이때는 도마도 함께했죠. 그들은 사방의 문을 닫고 모입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감추고 선동을 하려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제자들을 잡고자 불을 켜고 찾던 때였기 때문이죠.
그렇게 모든 제자들이 함께 숨어서 모여있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어디 열린 곳이 아무데도 없었는데, 갑자기 등장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주님은 곧바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 손 만져보고, 네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주일 전에 도마가 제자들에게 한 말도 주님은 듣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져야 믿겠어! 예수님은 분명 죽으셨어! 라는 그의 선언 가운데서도 주님은 그 자리에 함께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등장과 그 말씀에 도마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나신 주님은 의심할 여지 없이 도마와 함께했던 주님이었습니다.
도마는 바로 주님께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이 고백은 그저 쉽게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때 계셨던 예수님이군요! 가 아니라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내가 옛날부터 믿었던 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도마는 지금까지 자신이 따랐던 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자신의 앞에 있는 그 분이 누구인지 완벽하게 믿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도마의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도마는 분명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자고 하시면 같이 죽을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 있는 곳에 있어라 라고 하시면 말씀하시는 대로 바로 그 곳으로 향하고자 했던 자가 바로 도마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열심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열심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그 열심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아주 중요한 그 시기, 뿔뿔히 흩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마의 열심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 앞에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죠.
그리고 결국 그가 소중히 여겼던 현실은 그가 진정한 믿음을 향하는 길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현실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도마도 한순간에 변화시키십니다. 주님의 존재 앞에 도마를 지금껏 지배하던 모든 것은 다 하나의 먼지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도마에게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변화된 도마는 이전의 근거가 없던 열심에서 벗어나 믿음이 기반된 주를 향한 확실한 열심으로 변화하여 중동에서 벗어나 어찌 보면 가장 먼 곳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도까지 복음들고 나아오는 놀라운 일까지 행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초기에 했던 질문, 왜 인도였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방금 봤던 도마는 어땠나요? 현실주의자였고, 이치에 맞는 것을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며칠동안 만났던 인도 사람들은 어땠나요? 놀라울만큼 우리가 전하는 주님을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뛰어난 전도자였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은 한국어에서 영어로, 그리고 다시 힌두어로 몇번을 거쳐 가는 말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정말 우리가 생각한 처음의 의도대로 되는지조차 사실은 확인할수도 없어요.
심지어 그 말을 처음 기록하고 전하는 우리도 전문가가 아니에요. 떠듬떠듬 그냥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전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내용들을 말이 잘 통하는 한국에서 전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말이 잘 통하니까 잘 이해할테고, 그러면 듣는 사람마다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지금 우리가 인도에서 한것 보다도 더 큰 은혜를 나누기는 어려울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했듯, 이 곳은 다릅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종교심 때문이 수도 있겠죠. 그래도 그들의 믿음은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들의 사회가 어떤지 아시잖아요. 힌두교가 다수인 사회입니다. 어쩌면 힌두가 당연한 사회일거에요. 그런데 그 안에서 다른 신을, 그것도 서양 사람들이 믿는 신을 믿는다? 쉽지 않은 일일거에요.
하지만 그들은 믿는다는거에요. 심지어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도마가 경험했던 인도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는 더했을거에요. 기독교 복음이라는 것이 처음 전해지는 것이기에, 완전 힌두 신앙이 넘쳐나는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했으니 조건은 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곳으로 나아가는 도마 역시도 그러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현실주의자였던 사람이니, 주님께서 행하시리라는 믿음은 있지만, 어떻게 일하실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마의 전도는 분명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도 순교하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분명히 심겨졌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도마를 이곳에 보내시며 도마에게 다시금 말씀하시고자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전에 말했던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믿지 못했던 도마를 통해 더 많은 믿는 자들이 나타나도록 일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동일한 메시지를 오늘 우리에게도 전하고자 하십니다. 주님의 복음이, 그 말씀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를, 그래서 정말 많은 인도의 백성들이 보지 못하고 믿는 이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경험하도록 일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놀라운 것은, 그것을 처음 접하고 듣는 자들에게도 은혜가 되지만, 그것을 전하는 자들에게도 그 은혜는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감사하게 감당하고 있지만, 저도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동시에 은혜를 누릴때가 많습니다.
아마 선교의 자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 인도 땅에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지만, 주님은 동일하게 우리도 그 자리에서 복음의 은혜를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
이제 칠일이 되가는 이시점에서, 여러분은 어떤 은혜를 누리셨나요?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이 도마와 같았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어떠신가요? 너무나도 이성적이죠. 합리적입니다. 모두가 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합니다.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 되고, 그렇지 않는가를 따지고, 그것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 안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도 그 안에서 물들어 도마와 같이 현실주의자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게 가능하겠어? 말도 안되지. 이런 생각들이 지배했던 것이죠.
말씀은 너무나도 잘 알지만, 매번 듣기에 무슨 내용인지도 알지만, 그것이 우리 현실에 맞겠어? 조금은 염두해서 들어야지. 그건 그때 이야기지.
그렇게 주일과 우리의 일상을 갈라놓고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우리는 결국 도마와 같이 예수님이 바로 곁에 계신지도 모른채, 나는 주님이 일하시는 걸 봐야만 믿겠다! 고 선언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인도 선교를 통해 보여주신 것이죠.
그게 안될 것 같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행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야.
우리의 선교 사역을 통해 주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요. 도마와 같죠.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고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곧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시간이 한달? 아니 몇주만 지나도 어쩌면 이 모든 은혜들은 그저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지금도, 그때에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또 이전의 현실주의로 돌아갈 때마다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번 12차 선교를 통해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시고, 그것을 우리의 일상에서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그래서 정말 도마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도 그 고백대로 열심히 나아가는 귀한 한사람 한사람의 선교팀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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