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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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서론]
러시아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한 천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 천사에게 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그 천사는 쌍둥이 딸을 갓 낳은 이 여인의 영혼을 차마 거두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그는 벌을 받아 지상에 떨어지고 인간 세상에서 세가지 질문의 답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질문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이고, 둘째 질문이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이고, 셋째 질문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를 아는 힘이 없으며,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걱정때문이 아니라 사랑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확인할수 있는 진리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소설을 쓰게 된 삶의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사랑’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보면 518광주민주화 항쟁때 사람들을 무참히 죽인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주기 위해 병원에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걸 보면 결국 이 세상을 유지하는 보이지않는 힘은 사랑이 아닐까요?
그러나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극단적 이기주의, 소통의 단절, 극단적 분열과 대립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갈등과 분열,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서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극우세력의 부상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수 있을까요?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장에 이르러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정복과 분배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후 덧붙여진 20장 도피성 이야기와 21장 레위지파의 성읍 이야기 역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22장부터 24장은 여호수아서를 마무리하는 위치입니다.
그런데 요단 동편 지파 이야기가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의 이야기는 여호수아 1장에서도 나온바 있습니다.
그럼 과연 여호수아서 처음과 마지막에 모두 이들의 이야기를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래 요단 동편땅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요단 서편땅뿐입니다.
그러나 요단 동편 지파들의 요청으로 결국 요단 동편땅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요단 서편과 동편이 요단강으로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강 하나쯤은 큰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요단강은 요단 서편과 동편의 소통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2개의 지파가 하나의 언약공동체입니다.
그런데 두 지파 반이 나머지 지파들과 떨어져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연합하지 못하고 분리될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분리되어 다른 길로 빠질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짐을 보여준 해픈닝이 바로 뒤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럼 그들이 요단 동편에 거주하면서도 동일한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할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 헌신입니다.
2-3절입니다.
요단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단 동편 땅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요단 서편 전쟁에 나서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머지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모두 얻을때까지 함께 싸웠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가장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길르앗 땅에 가족과 가축들을 남겨두고 자신들의 동족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들이 싸운 이유는 자신들의 땅을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지파들이 받을 땅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것입니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신실하게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순종과 헌신이 없었다면 다른 지파들은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욕심없는 헌신이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되게 하는 힘이 됩니다.
4절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의 헌신으로 인해 다른 지파들이 안식을 얻었습니다.
땅이 주는 복이 바로 안식인데 그것을 요단 서편 지파들과 함께 누린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이란 단순히 땅을 차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안식의 본질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있습니다.
아무리 땅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그 땅에서 쫓겨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군가의 헌신을 통해 다 함께 안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율법을 보면 추수때 항상 가난한 자들이나 나그네들을 위해 일부러 곡식을 남겨두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웃이 함께 안식을 누리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모습이 여전히 제주도에도 전통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밭을 수확할때 일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져갈수 있도록 남겨둔다고 합니다.
이러한 나눔과 배려가 진정한 안식을 누릴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십시오.
무한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나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으면, 남을 돕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라면 남의 안식에는 무관심한 태도가 만연합니다.
예를들어, 코로나 당시 돈욕심에 마스크를 사재기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감염 확신이 극심했을때 정부의 방역지침을 무시한채 현장 예배만을 고집하던 일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자신의 안식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남의 안식은 고려하지 않는 태도들입니다.
그러나 내 이웃이 안식을 얻지 못하면 나도 참된 안식을 얻을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범죄율이 증가하고, 결국 부자들도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한 나라의 전쟁이 일어나면 그 여파는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동체의 안식이 없이는 개인의 안식도 온전할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연에 대한 안식도 신경써야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그 결과 우리는 기후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자연이 안식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간들도 안식을 누릴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나를 통해 누군가가 참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나를 통해 내 이웃이 안식을 얻고, 이 세상이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유익을 먼저 누리지 않고 기꺼이 양보하고 배려하고 나누는 삶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헌신이 다른 사람의 안식을 이루는 통로가 됨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둘째, 나눔입니다.
8절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많은 재산, 많은 가축, 금과 은, 동과 철, 아주 많은 의복들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요단 서편 지파들이 수고한 요단 동편지파들을 위해 나눠준 것들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것들을 다른 형제들과 나눠가지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전리품은 전쟁을 한 군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요단 동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만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군사들만 전리품을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하나님이 싸우시고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전리품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공동체가 함께 나눠야만 합니다.
그 나눔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승리라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눔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혼자만 독점해서는 안됩니다.
이웃과 함께 나눌때 더욱 풍성한 축복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발적 나눔이 사라지고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익을 혼자서만 독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자신의 이익도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절 백신을 오직 미국의 몇몇 제약사들만 제조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같은 나라들은 돈이 없어 백신을 제대로 살수 없었습니다.
그때 백신제조법을 공개하여 자체적으로 개발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나눔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내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물질적 나눔뿐만 아니라 사랑과 배려, 관심과 친절을 나누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명은 나를 통해 누군가가 참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내 유익을 먼저 챙기기보다 기꺼이 양보하고 나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을 본받아 나의 헌신과 나눔이 다른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헌신과 나눔은 단 한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섬김입니다.
5절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 지파들의 헌신을 칭찬한후 돌아가는 그들에게 유언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그들이 그 땅에서 안식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 해야할 일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동일한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잘 지킬 것과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섬기고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땅이 아닙니다.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안식을 지키고 동일한 언약공동체를 지키는 길입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또다른 본격적인 전쟁이 주어집니다.
요단 동편 땅에서 우상숭배의 문화와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때문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섬기고 사랑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몇가지 주요 단어들로 전체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너다-취하다-나누다-마지막 섬기다입니다.
강을 건너고, 땅을 취하고, 땅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건너고 취하고 나눌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래서 22-24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바로 ‘섬김’입니다.
이 섬김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잊지 말아야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그것만 잊지 않는다면 그들은 요단 서편 지파들과 동일한 언약 공동체를 유지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할때 그것이 이웃을 향한 헌신과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으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그럴때 이 땅에는 참된 안식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가정과 교회,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이루어 가게 됩니다. 섬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체가 하나로 연합하도록 돕습니다. 참된 안식은 섬김의 삶을 살아갈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톨스토이의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삽니다.
그러나 단순한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닙니다.
헌신과 나눔, 그리고 섬김으로 실천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헌신을 통해 공동체에 안식을 주었고,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공유했으며, 섬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이기주의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섬기고 나눌 , 세상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섬김이 곧 사랑이었고, 그 사랑이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의 헌신이 다른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통로가 되고, 나의 나눔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이 되며,
나의 섬김이 이웃을 살리는 사랑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그리고 사랑은 섬김과 나눔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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