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는 기쁨 [창1:26-31]
0 ratings
· 27 viewsNotes
Transcript
#1. 창조
#1. 창조
창세기 1장에서 말하고 있는 중요한 진리 중 한 가지는 바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에서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유’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에서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대해서 공허(보후), 흑암(하샤크), 깊음(테홈) 수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 공허는 히브리어로 보후라는 뜻이고, 어느 한 공간이 비어있는 상태를 의미하구요. 그 상태는 세상이라는 공간에 아무 것도 채워져있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흑암은 히브리어로 하샤크라고 하는데요. 빛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어둠의 상태를 의미하죠.
깊음은 테홈이라는 히브리 원어의 의미입니다. 홍수가 난 것과 같은 바다, 깊은 물이 있다는 의미에요.
어두운 것이 깊은 바다 위에 존재하는 상태를 말하는데요.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십니다.
첫째 날, 빛과 어둠입니다.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셨죠.
둘째 날, 물과 물로 나뉘어서 궁창 아래와 위에 물을 두셨다고 합니다. 이때 궁창은 하늘로 보실 수 있어요.
셋째 날, 땅과 바다를 나누시는데요. 이 때, 처음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땅에는 풀, 채소, 열매 맺는 나무를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이 때, 두번째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십니다.
넷째 날, 하늘에 광명체들을 두어서 낮과 밤을 구분 지으십니다. 그래서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는데 이 때, 세번째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시죠.
다섯째 날, 바다 생물, 하늘의 새를 종류대로 만드시는데 이 때, 네번째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세요.
여섯째 날, 하나님이 땅의 생물을 종류대로 짐승을 종류대로 만드시는데 다섯번째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세요.
그리고, 오늘 본문 26절부터 31절까지 주님께서는 창조 질서의 최종 목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생육하여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여섯번째로 31절에서 고백하십니다.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바로 이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히 좋았더라의 히브리원어는 (토브)입니다. 좋은, 즐거운 상태를 의미하는데요.
주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며 계속 토브하셨던 겁니다.
주님의 창조 역사가 펼쳐지기 전에 세상은 원래 어떤 상태였지요?
비어있고, 칠흑처럼 어둡고, 깊은 수면 즉 바다가 존재하던 상태였습니다. 숨을 쉴 수 없고, 생명이 발을 딛고 살 수 없으며 빛도 없고, 소망도 없어서 어쩌면 영원한 어둠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태초에 천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보후, 하샤크, 테홈과 같은 상태를 보냈을까요? 아니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가운데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십니다.
빛도 없고, 소망도 없던 상황에서 이제는 말씀으로 이르시되 빛과 어둠이 나뉘라, 땅이 드러나라, 나무를 내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땅을 비추라,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새가 날으라,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물고기와 새와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 어떻게 되었어요? 30절에서 나옵니다.
‘그대로 되니라’
#2. 만드신 이유
#2. 만드신 이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실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며 살아갈 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주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아무런 존재가 없던 장소와 시간에 주님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지으셨고 나는 왜 지으셨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체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나와 다른 것과 마주할 때, 학습하게 됩니다.
피부로 닿는 것, 귀로 들리는 것, 코로 맡아지는 것, 혀로 맛이 나는 것,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서 이건 무엇인지
나에게 안전한 것인지 위험한 것인지
내가 가까이 해도 괜찮은 것인지 멀리해야 하는 것인지
본래 이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손이 닿아서 변형된 것인지
느끼고, 파악한 것을 통해서 우리는 판단을 내리고, 판단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이 때에 많은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의 변화가 변함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티끌과 먼지부터 컴퓨터 배경화면에 나오는 거대한 자연경관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의 살아계심과 다스리심’을 느끼고, 파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마음의 변화를 얻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음의 쉼을 얻는 방법 가운데 자연으로 나가서 쉴 때, 평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거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때,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감탄하고, 놀라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은혜는 주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나를 지으신 이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창1장 26절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우리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세요.
창세기 1:26 (LEB)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러면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는데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하세요. 그래서 우리는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지으신 목적이 ‘다스리게 하려고’에요.
#3. 다스림
#3. 다스림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으로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가 다스리는 영역은 얼마나 되나요? 우리는 무엇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저마다 대답할 수 있을거에요. ‘시간, 돈, 생각, 마음, 판단, 감정, 관계’등을 관리하며 다스리고 있을거에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잘 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만약 나의 힘과 능력으로만 다스린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 속에서 잘 알고 있는 인물 가운데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눅19:1-10까지 말씀에 등장하는 삭개오는 예수님 당시에 여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던 세리의 우두머리 였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은 당시에 예루살렘으로 모아서 로마에 납부하던 유대인들의 세금을 거두는 역할이었는데요.
삭개오는 자신이 맡은 일을 잘 감당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리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존경받을 수 없고, 로마의 앞잡이라고 하며 인정받기 힘든 직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로마 정부에서 도급제라는 것을 세리들에게 허락했고, 도급제는 세리가 정해진 세금만 낼 수 있으면 그 이상으로 세금을 남겨서 자기 몫으로 챙겨도 죄가 없음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있었는데요. 그것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삭개오는 많은 돈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서 말하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이 말이 그 이유때문인거에요. 그리고 세리장이라는 직분은 한 지역의 징수권을 돈으로 사서 세리장이 된 사람은 부하 세리들을 두고, 세금을 거두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았던 것이죠.
그리고 삭개오는 자신이 가진 한계와 문제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분명히 발견하는 사실은 그가 그의 힘과 능력으로 다스리려 했던 물질의 힘, 사회의 질서를 발 아래 놓는 돈의 힘에 취해서 살던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이후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였고, 잘못된 죄악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스리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했던 물질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은 네 배로 보상해주며 잘못되었던 질서를 다시 세워갑니다.
우리 청년교구 여러분들에게 바라기는 그동안 나의 힘과 능력으로 다스리고 있던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는 다스림의 체계가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4. 토브
#4. 토브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바르게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 아닌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다양한 기준을 제시하며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분명한 진리가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힌트는 이미 주어졌습니다. 본문 1장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고백하고 계신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여기에서 좋았더라는 히브리 원어로 ‘토브’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요. ‘좋음, 훌륭한, 선한, 아름다운, 귀중한, 행복한, 기쁨’이라는 의미에요.
여러분 주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들으셨던 마음은 이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온 지면의 채소, 열매를 주노니 너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그리고 지으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며 말씀을 정리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의 삶을 보면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에게 기쁨이 있습니까?’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기록된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가 해야할 선택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다스림에 들어가야 해요.
주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그 때는 우리 가운데 죄악의 문제가 없던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다스리고,
그 다스리는 삶 가운데 참된 주님의 행복과 기쁨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겨진 우리가 태초부터 영원까지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다스리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우리 청년교구가 되길 축복합니다.
Q1. 요즘 내 삶에 기쁘거나 행복한 정도를 1~10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되나요? 이유는?
Q2.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 것 같나요?
Q3. 하나님의 다스림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