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따라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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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26-33
“차례를 따라”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2025. 1. 3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차례를 따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순서가 있습니다. 순서를 따라, 차례대로 이루어져야 돼요. 도로에서도 신호의 차례를 따라서 해야 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줄을 서서 차례대로 밥을 떠야 돼요. 모든 것은 차례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 예배 시간에도 차례가 있어요. 찬송을 하고, 사도신경을 하고, 성경봉독을 하고,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고. 교회마다, 예배마다 정해진 차례가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차례를 따르지 않으면 예배가 엉망이 됩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면, 고린도교회에도 그 나름대로 차례가 있었거든요. 26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아멘.
    고린도교회는 예배 순서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졌습니다. 찬송, 말씀, 계시, 방언, 통역. 이 다섯 가지가 고린도교회 예배 순서에 들어가 있어요. 물론 매 예배마다 이것들을 다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동적으로 어떤 때는 두세 가지만 할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할 때도 있었을 거예요. 어쨌거나 이 각각의 예배 순서들이 고린도교회 예배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순서가 제대로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해진 차례대로, 정해진 사람에 의해서 예배가 흘러가야 되는데, 여러 사람이 질서 없이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자, 27절을 봐 볼까요? 27절에 보니까,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이 말씀에 보면, 방언을 하는 경우에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하라고 그랬어요.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하도 이 사람 저사람이 나서서 방언을 하니까 숫자를 제한하는 겁니다. 방언은 두 사람이 하면 적당하고, 많아도 세 사람까지만 해라. 왜냐하면, 여러 사람이 하면 예배가 너무 길어져요.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난단 말이죠.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차례를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한 사람이 끝마치고 나면 그 다음 사람이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앞사람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서 딴소리를 하면 예배가 혼란스러워져요. 가뜩이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으로 두 사람, 세 사람이 떠들어제끼면 예배가 예배가 아니고 돗떼기시장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언하는 사람의 숫자를 제한하고, 차례를 따라서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방언을 한 사람이 통역하라고 그랬어요. 방언은 반드시 통역이 돼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그랬죠? 방언은 통역이 안 되면 쓸모가 없어요. 통역이 안 되는 방언은 절대로 공예배 시간에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방언은 개인기도를 할 때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28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죠. 2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아멘.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예배시간에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방언하지 말고 잠잠하라. 그러니까 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예배순서가 변동이 돼요. 있을 때는 방언을 하고, 없을 때는 안 하는 겁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뭐 하러 순서를 넣겠어요? 과감하게 순서를 빼야죠. 
    26절 끝에 말씀한 것처럼, 예배의 모든 순서는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아무리 화려하고 감동적이어도 덕이 안 되면 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방언만 해당하는 게 아니에요. 예언에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자, 29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아멘.
    방언과 마찬가지로, 예언도 너무 많은 사람이 하면 안 됩니다. 26절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말씀과 계시가 바로 예언이죠. 오늘날로 본다면 설굡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설교를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했던 모양이에요. 
    여러분, 설교를 한 사람이 해도 오래 걸리는데 여러 사람이 하면 예배가 얼마나 길어지겠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이것도 숫자를 제한해야 되겠죠. 그리고 이것 역시도 차례를 따라서 해야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언에 대해서는 분별을 하라고 그랬어요. 아까 방언은 통역을 하라고 그랬는데, 예언은 분별을 해야 됩니다. 분별. 말씀을 듣고 이것이 진리의 소리가 맞는지, 아니면 이단의 소리인지 분별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때 당시에는 자기가 사도의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면 그것을 제대로 검증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거짓교사들이 들어온 겁니다. 이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말을 한단 말이죠. 바울이 가르친 것과 다른 소리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말씀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냥 예배시간에 나와서만 말씀을 듣는 게 아니라, 평소에 말씀을 읽어야 돼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서 영적 분별력을 길러야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그게 잘 안 됐어요. 거짓교사가 와서 추천서 보여주면서, ‘나 베드로 제자다, 나 야고보 제자다’ 이러면 검증할 방법이 없어요. 검증이 안 되니까 강단에 세우는 겁니다. 대단하신 분 왔는데, 말씀 좀 들어보자고 세워요. 그러면 말씀을 듣고 분별을 해서 이 사람이 진짠지 가짠지 구분을 해야 되는데, 고린도교회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거짓교사들한테 휘둘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고린도교회처럼 됩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그래요. 참 안타까운 게, 많은 크리스챤들이 전광훈을 지지한다는 거예요. 전광훈은 목사가 아닙니다. 백석대신교단에서 제명당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서 자칭 목사 행세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교회의 덕을 실추시키는 그런 사람을 많은 크리스챤들이 지지해요. 왜 그럴까요?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추천서 있다고 해서 다 사도가 아니듯이, 목사라고 해서 다 목사가 아니에요. 
    믿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분열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33절“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하고 있어요. 좌파 우파를 갈라서 분열을 조장하고, 정치색에 따라서 파당을 짓고, 같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원수 보듯이 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바울이 지금 한국교회를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2천 년이나 지났으면 좀 크리스챤들의 수준이 달라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준이 똑같냐는 거예요. 
    우리가 말씀에 깨어있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100년 뒤에, 200년 뒤에, 과연 한국교회가 발전해 있을까요?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가능성이 안 보이죠. 지금보다 더 분열되고, 더 혼란스러울 겁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거짓교사들은 늘어나고, 분별할 수 있는 성도들은 줄어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있기 위해 노력해야 돼요. 가만히 예배만 드린다고 신앙의 내공이 쌓이는 게 아닙니다. 기도해야 되고, 말씀을 읽어야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어려우면 사역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돼요. 궁금한 것이 있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역자들에게 물어보세요. 물론 사역자들도 다 알지는 못해요. 그러면 저희가 연구해서 알려드릴 수도 있고, 아니면 담임목사님께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화평의 하나님을 따라 온 성도가 하나 되어서 함께 하는 겁니다. 모르면 물어도 보고, 도움을 구하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차례를 따라, 질서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정치 때문에 서로 배척하지 말고, 서로 용납하고, 이해하고, 말씀을 분별하는 내공을 길러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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