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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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2장 1-4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룻기의 중요 인물인 룻과 보아스가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에서 엘리멜렉의 친족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그의 이름이 보아스라고 합니다. 보아스에 대한 설명이 “유력한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력한 자라는 말은 용사나 재산이 많은 부자, 혹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보아스라는 이름의 뜻이 “그에게 힘이 있다.”입니다. 즉, 엘리멜렉에게는 능력이 있는 친족이 있는데, 그에게는 힘이 있어서 보아스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2절에서는 룻이 나오미에게 이삭줍기를 하겠다고 허락을 구합니다.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양식을 주셨다는 것을 듣고 돌아왔지만, 정작 룻과 나오미에게는 양식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룻은 다른 방법을 간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압으로 돌아가서 룻의 친정 부모에게 가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룻의 고향으로 돌아가면 룻의 딱한 처지를 돌봐줄 가까운 친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먹고살 길을 해결하기 위해서 룻이 다시 모압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룻이 바란 것이 가난을 해결하고 잘 먹고 사는 것이었다면, 힘들게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다시 가난한 일상을 살아야 함을 알았을 때, 룻은 절망하고 원망하며 괴로워했을 겁니다. 그런데 룻이 원한 것이 부유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모압으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지도 않았습니다.
룻이 원한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다 죽는 것이었습니다.
룻은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가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룻은 어떠한 불평도 없습니다. 모압의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왔는데, 그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이 가난이었고,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절망하거나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우리의 처지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릴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교회에서 이런 말을 듣거나 해왔을지도 모릅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우리 주변에서 간증이라는 것을 할 때보면, 예수를 믿기 전에는 힘들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망했던 회사가 살아나고, 하는 일이 잘 풀려서 부자가 되고, 건강을 회복하고, 자식이 잘되었다는 식으로 말들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고, 거역하던 우리가 성령님의 다스리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으나, 천국에 사는 것처럼 구별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룻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압에서나 베들레헴에서나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이고,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고,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참된 신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룻은 ‘이삭줍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나오미의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삭줍기는 하나님의 율법에 나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9-10절에 보면 “곡식을 거둘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농사를 시작한 후로 이 율법에 따라서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조금 달리 보면, 이삭줍기를 한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이삭을 줍는다는 것은 거의 구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흉하게 변한 나오미를 보고 놀랐고, 나오미의 며느리인 모압 여인 룻을 보고 또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집중을 받은 상황 가운데에서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간다는 것은 비참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룻은 모압출신 여자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게 금방 띌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구걸에 가까운 이삭줍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뒷말을 끌어내기 쉽습니다. 그런 상황이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길을 위해서 이삭줍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압여자인 룻이 개종을 해서 모압의 신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것은 크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고 난 후에는 계속해서 크고 놀라운 일을 해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룻은 크고 놀라운 일이 아니라 비천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서 종종 보게 되는 광고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무당이나 스님이었으나, 예수를 믿고 난 후에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서 간증집회나 부흥회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깡패 두목이었던 사람이 회심해서 목사가 된 이야기도 있고, 대도 조세형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목사가 된 이야기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목사안수를 받았던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집중을 받는 것은 그들이 과거에 화려한 전적을 가졌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신자가 되고 난 후에 큰일로 쓰임을 받는다는 것에 열광하는 풍토가 있습니다.
무당, 스님, 깡패 출신이 목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목사가 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룻의 태도에서 겸손한 신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목만큼 크고 대단한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처지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삭줍기는 기댈 곳이 없는 과부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룻은 과부가 할 수 있는 이삭줍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삭줍기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삭줍기를 말씀하셨고, 그 말씀에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삭줍기를 하겠다고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허락을 구한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나갑니다. 그런데 3절에서 룻이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연히”라고 번역한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운명”이란 단어와 “우연히 만나다”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넣어서 직역하면 “우연히 그녀의 운명이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스의 밭 부분에 이르렀다”가 됩니다.
여기에서의 표현은 불신자와 관련되어서는 “우연히”라고 사용되지만, 신자나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관련되어서는 “운명”이라고 사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니까 3절에서 “우연히”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우리는 “운명”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신앙적인 시각으로 “섭리”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룻이 비록 비천하지만, 이삭줍기를 시작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삭줍기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친족, 즉 고엘을 만나는데 아주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이삭줍기가 사용된 것입니다.
4절에서는 “마침”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한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해한다면, 우연히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시작했고, 그때 마침 보아스가 나타난 것입니다. “마침”이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감탄사입니다. “보라”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보라 보아스가 나타났다.” 이런 의미입니다.
비천한 모압 출신의 여자 룻이 살기 위해서 구걸에 가까운 이삭줍기를 시작하였을 때, 보십시오.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보아스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을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렇게 이뤄지고 있고, 또한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일이 진행되는 가운데 사용된 일이 이삭줍기입니다.
이삭줍기는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천하고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여기에서 영적인 지혜를 또한 얻게 됩니다.
룻이 고엘 곧, 기업무를 자, 구속자인 보아스를 만나게 될 때, 한 일은 이삭줍기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고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필요한 일은 이삭줍기입니다.
이삭을 줍는다는 것은 자신의 비천한 처지를 인정하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이삭줍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우리가 이삭을 주워야 하는 비천한 처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조각이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개와 같은 처지입니다.
죄인이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라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되 주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율법 안에 명령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대단한 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위대한 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원하시는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되는 겁니다.
구원이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겁니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는 것이고, 구하지 않고 받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에 충실하십시오.
신자로서 마땅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데 이삭줍기가 사용되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를 받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사용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치심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오랫동안 한다고 하더라도 그 효력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나의 노력 정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하실 때도 있고,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면서 침묵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을 보이시든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소망하며 기다리는 겁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완전한 섭리로 인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택한 백성에게 언제나 향해 있기에 우리가 이삭줍기처럼 비천해 보이는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실 겁니다. 그리고 결국은 충성하는 자녀에게 복을 허락하시며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실 겁니다.
오늘날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요구하시는 것은 이삭줍기입니다.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삭줍기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을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지나치거나, 모압여인인 룻을 수군거리며 쳐다보듯 여러분을 비천하게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의 작은 수고와 헌신조차도 절대로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신 하나님이시기에 여러분의 모든 수고를 지켜보시며, 하늘의 상급을 준비하실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능력이 있고 힘이 있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무엇보다 우리를 온 천하보다 더욱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