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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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파송 - 홍성주
광고 -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우리가 믿는 것의 기초, 5번째 시간 - 지난주부터 사도신경의 핵심키워드를 가지고 말씀을 살펴보는데요.
사도신경은 “나는 믿습니다”라는 의미로 기독교신앙의 핵심 교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근원적인 주제가 될거 같은데요. 사도신경의 첫 고백이죠.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바로 하나님입니다.
오늘 이 주제는 여러분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지만, 개인적으로 그분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너무나 유명한 장면이죠.
이전까지 모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전에 지식으로만 알았던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주석가들은 이때가 바로 모세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믿었던 때라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알리실 때 여러 모습으로 자신을 알리실 수 있으실텐데, 하필 왜 불타는 떨기나무로 나타내셨을까. 여러분 궁금하지 않았나요?
이런 예가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요. 오늘 우리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프로필 사진을 통해 자신을 소개하죠. 직접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동물이나 음식, 풍경 사진들을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프로필을 불타는 떨기나무로 하신 겁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뭔가 있어 보이려고? 그냥? 아니겠죠. 분명 이유가 있어서 그러셨을텐데, 오늘 그 부분을 가지고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나 하나님에 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세가지
첫번째 하나님은 실제하시는 분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시다, 세번째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분이시다.
1. 하나님은 실제하시는 분입니다.
1. 하나님은 실제하시는 분입니다.
첫번째, 하나님은 실제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하나님은 좋지만, 심판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외면합니다. / 내 삶에 복주시는 하나님은 좋지만,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외면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내가 존재하기 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기 바라는 것이죠. 하나님께 맞추려기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맞춰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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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번주 내내 날씨가 추웠죠. 만약 여러분이 돌아오는 주에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서, 뭐처럼 봄 옷을 입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다음주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건가요?
내 기대는 기대일 뿐이고 현실은 영하이기 때문에 내가 날씨에 맞춰아죠. 봄 옷 포기하고 겨울 옷 입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요. 날씨는 맞추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는 맞추지 않으려고 하죠. 하나님보다 날씨를 더 존중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최소한 날씨만큼은 우리 삶에 실제적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날씨를 바꿀수 없듯이 하나님을 조정하고 바꿀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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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오늘 본문을 말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이 불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이 불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3 “모세가 이르되 ...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
불은 본 모세가 말하죠. “어찌하여 떨기나무가 타지 않지?”
여러분, 일반적으로 나무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되죠? 나무를 연료삼아 타오르죠.
그런데, 이 불은 나무를 연료로 태우지 않고, 타오릅니다.
불인 불인데, 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불이죠. 어떠한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타오르는 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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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의 속성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말해주는데요. 하나님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
“스스로 있는 자” 스스로 존재하는 불처럼,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죠. 어떠한 것도 그분을 존재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자존자”라고 말하죠.
세상에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에 의존하게 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타오르시며 존재하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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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언가에 의해 발생하게 됩니다.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맞죠?
여기서 “나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분 계신가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 우주와 세상이 존재하려면, 초자연적인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초자연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이데, 이 존재는 원인이 없는 원인이죠. 스스로 존재하는 궁극적인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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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슨은 이런 책을 썼습니다. “만들어진 신”
그러면서 말합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데, 그렇다면 신의 원인은 무엇인가”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말은 “세상의 모든 만물은 무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라는 주장인데요. 사실 말도 안되는 얘기죠.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수천억분의 일, 수조분의 일의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도킨스는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스스로 맹신 속에 빠져있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태초부터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해야 되는데, 이것 또한 기적이죠.
그래서 여러분, 삶은 그 자체로 기적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옆 사람 보면서 좀 오글거리는 멘트같은데 고백합시다. “당신은 기적적인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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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성경은 그 기적과 같은 일이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의미없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 어떠한 것에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자이시며, 모든 것이 그분으로부터 온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그리고, 이 교리는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교리가 아니라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실제적인 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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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분이 이 교리를 믿는다면 여러분 삶 가운데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겸손과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런지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는데 익숙해 있죠.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학위를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또 열심히 공부합니다. 회사에 가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렇게 성취하며 앞으로 나아가죠.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너가 너의 재능과 능력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 모든 것은 내가 준 것이다. 내가 너에게 재능을 주었고, 기회를 주었고, 상황을 열어주었다. 내가 주지 않았다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겸손함을 줍니다.
하지만, 이 사실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죠. 자존심이 상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면, 열심히 살 이유가 뭐가 있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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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에게 전적으로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삶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짐 지려고 하지 마세요. 힘을 빼도 됩니다. 세상은 여러분에 의해 돌아가지 않아요.
제가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주위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가 되어 보니깐 어때? 어깨가 무겁지?”
전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가. 왜냐하면, 하나도 안 무겁거든요. 오히려 더 가벼운데. 얼마나 좋아요. 가족이 생겼는데.
그런데, 세상 모든 짐을 지어야 되는 것처럼 말합니다.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하죠.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아이를 키우냐. 계산기 두들겨보니깐, 아이 한명 키우는데 돈이 이렇게 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냐.”
그럴 때마다 저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너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지 않어. 하나님이 그 아이들 책임지셔. 너가 모든 걸 책임지려고 하지 마.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마. 좀!”
왜냐하면, 다른 건 몰라도 이 믿음이 저에게 있거든요. 제 인생도 답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도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러니 어깨에 긴장 푸세요. 모든 걱정과 불안을 짊어지지 마세요.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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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니 오늘 누구보다 힘이 들어간 사람들은 목자들인거 같아요. 오늘 목장 개강이라 승모근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죠.
목자 여러분, 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지 않아요. 그러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힘을 빼고 하나님께서 이 목장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요. 다른 종교가 말하듯 비인격적인 어떠한 힘이 아니에요. 그분은 실제 존재하시고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어서는 안되고 실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요. 두번째, 하나님은 만날 수 있는 분이시고, 알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불로 나타나셨다고 했는데, 여러분, 불은 무엇입니까? 머리로만 알고 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되어 지는 것이 불이죠.
여러분 가끔 불멍 때릴 때 있잖아요. 불 앞에 서면 어떻습니까?
눈으로 불을 보게 되고, 피부로는 뜨거움을 느끼고, 귀로는 장작 타는 딱딱 거리는 소리를 듣고, 코로는 타는 냄새를 맡습니다. 이렇게 온몸으로 경험되어지는 것이 불인데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방식입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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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팡세의 저자이자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일기로 기록했는데요.
파스칼은 그 경험을 기록한 메모 쪽지를 코트 안쪽 안감에 넣어서 간직했는데, 그가 죽고 난 후에 발견되었습니다.거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슬라이드 1
은총의 해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밤 열시 반에서 열두 시 반경까지.
불!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감격, 환희,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파스칼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불의 경험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죠. 하나님과의 강력한 만남을 경험한 파스칼은 불타는 떨기나무를 떠올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말하죠.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파스칼 자신이 철학자였고, 수학자였죠. 파스칼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철학적으로만 알았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불을 경험하고 있죠. 그래서 외치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감격, 기쁨, 평화!
파스칼은 하나님을 이성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불을 경험하셨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셨나요? 아니면, 그저 머리로만 믿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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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믿음은 보이고 느끼는 것보다 아는 것을 붙잡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느날 정죄감이 나를 짓누르고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질라도, 나는 예수님 안에서 사랑받는 자라는 진리를 믿음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가 통제불능인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질라도 / 하나님이 역사를 통제하고 계시다라는 것을 믿음으로 불드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느끼는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죠. 진리를 붙드는 겁니다. 느껴지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붙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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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우리 모두는 각자 기질이 다르죠.
어떤 사람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 있는 것과 반면 / 어떤 사람은 굉장히 센서티브하고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라는 건 NF인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ST인 사람에게는 해당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파스칼은 역사상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팡세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이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분, 성경은 성향에 따라 기질에 따라 하나님을 만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편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
꿀이 달다라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맛보는 것과는 천지차이죠. 성경은 “하나님을 맛보아라, 경험하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는 기질과 성향으로 제한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사모해야 될 경험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모하는 자에게 이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맛보아 아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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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라는 것을 지식적으로 압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원한다” 그 사랑을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지식적으로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식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변화시킵니까?
내가 용서받아야 할 죄인임을 마음 깊이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라는 것을 깨달을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복음을 경험하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라는 표현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아니면 그저 지식적으로 믿고 있습니까?
우리 삶 가운데 실제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분이시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분이시다.
세번째,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나타났다라고 말합니다. 그 광경을 본 모세가 하나님께로 다가가게 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모세를 부르셨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오죠. 모세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자 어떻게 됩니까?
출애굽기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러분, 언제는 오라 그래놓고 갑자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리게 되죠.
이 장면이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여러분, 불은 어떻죠?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이죠.
불은 우리에게 빛과 열을 통해 생명을 주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그래서, 불은 생명을 주는 동시에 죽음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동시에 위험하죠.
하나님께서 불로 나타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지만, 하나님과 함께해도 살 수 없는 존재죠. 이게 인간의 상태에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동시에 함께해도 살 수 없는 존재.”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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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망가졌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죠. 그 결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가 되버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가 불을 직접 만지면 치명적인 화상을 입는 것처럼 인간에게 치명적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3:20 …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또 이사야 6장에서는 이사야가 높이 들린 보좌 가운데 하나님을 보게 되자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또 출애굽기 19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시내산 가운데 임하시는데,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라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죠. “많이 죽을까 하노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은 인간에게 치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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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은 끊임없이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까이 거하길 원하십니다.
출애굽기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결정적으로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나는 너희들을 원하고, 너희들과 함께 있고 싶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고 우리의 기도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인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까이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롭고도 거룩한 불이 우리의 죄악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두려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서 많은 주석가들의 자료들을 참고했는데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면서 어떻게해서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걸까?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모세는 왜 타지 않는 것일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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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답은 주님의 천사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 “여호와의 사자(angel of the Lord)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개역개정 성경에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은 “주님의 천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 있었다고 하는데요.
성경 전체를 보게 되면 “주님의 천사”는 적어도 12번이나 등장하는데요. 일반적인 천사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예를 들어 가브리엘 같은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할 때,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브리엘 뿐 아니라 다른 천사들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님의 천사는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인칭 단수로 말합니다. 하나님처럼 말한다는 것이죠. 주님의 천사는 하나님과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이 주님의 천사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방금전에 언급했듯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신의 임재가 필요하다라고 붙들고 늘어지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죠. “모세야. 너희가 나와 함께 가길 원하지만, 금송아지를 만들고 나를 거역한 이 백성과는 함께 할 수 없다. 나의 임재는 너희에게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시냐면, 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angel)가 네 앞서 가리라 …
하나님이 직접 임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천사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인간들 가운데 임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해주세요.” “아니, 그럴 수 없다. 나의 거룩함이 너희를 해치게 될 것이다, 대신 내가 천사를 보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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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죄많은 모세가 어떻게 불과 같은 하나님 앞에 타버리지 않고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주님의 천사 때문이죠.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천사와 겹쳐 보이는 한 분을 떠올리게 됩니다.
알렉 모티어라는 출애굽기 주석가는 주님의 천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과 동일하면서도 구별되는 단 한 분이 계시다. 이분은 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죄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고, 하나님의 진노를 확증하면서도 그분의 자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분이다. 구약성경에 계시된 이 주님의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전의 모습이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믿음이 선진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세기 후 이 천사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받아야 할 진노의 불, 우리의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의 불을 대신 감당하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천사가 되어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그저 가까이 나아가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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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이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라는 사명을 주시죠. 그리고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나를요?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저는 이 말을 사역의 현장에서 수없이 많이 듣는데요. 모세가 오리지널 입니다.
여러분, 창세기를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내빼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민족의 해방자로 변화시키고 세워가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라는 것이죠.
“내가 겁쟁이 아브라함을 부르겠다. 편애를 해서 가정을 망가뜨린 이삭을 부르겠다. 사기꾼 야곱을 부르겠다. 내가 그들을 불러서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겠다. 내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겁쟁이 모세를 불러서 한 민족의 리더로 세우셨고, 어부 베드로를 불러서 반석이 불리우는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분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하실 지 누가 알겠습니까?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우리의 약함은 오히려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비록 질그릇 같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른다면, 하나님의 임재의 불, 성령의 능력의 불이 여러분 삶 가운데 임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소멸되지 않을거에요. 왜냐하면, 우리의 천사이신 예수님의 공로와 사역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께서 쓰임받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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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저도 모세처럼 뒷걸음 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예배를 드리다가 찬양을 부르는데, “온리 바이 그레이스” 오직 은혜로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는 찬양이었습니다.
은혜로만 들어가네 은혜로만 선다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어린 양의 보혈로
그 분의 임재 가운데 오라 하시네
우리를 부르신 그 곳 은혜로 들어가네
그리고나서, 이러한 고백이 있습니다. “범죄한 우리가 어찌 서리요” 이 부분을 부르는데, 이 가사가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 죄악이 너무 커서 죽을거 같더라고요. 모세가 얼굴을 왜 가렸는지, 이사야가 왜 죽을거 같다고 고백했는지 알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에 가사가 이렇게 이어집니다. “어린양의 보혈이 깨끗게 하시네”
제가 이날 이 찬양을 고백하면서요. 오직 은혜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제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사역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더디사이플 여러분, 하나님의 이 임재의 경험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그 하나님을 기대하며 다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찬양
1. 내 신을 벗고 제단 앞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 주 임재 기다립니다
우슬초로 내 영 거룩케하사
하나님 거하실 주의 집 삼으소서
(Chorus) 하나님의 숨결이여 소멸하는 불이시여
태워주소서 나로 온전히 주의 것 될 때까지
2. 주님 없는 세상 즐거움보다
주가 흘리신 눈물 더 원합니다
주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하늘 문 열어 지금 나타내소서
(Bridge)
주님의 나라가 이곳에 주님의 뜻이 이곳에
이곳에 이곳에 임하소서
기도제목
떨기나무 불 가운데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내 신을 벗고 주님 앞에 나갑니다. 내 삶을 주님의 불로 채워주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주님의 열정으로 타오르는 인생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나를 사명의 자리로 보내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