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부르시다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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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6:12-19
“제자들을 부르시다”
2025. 2. 5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제자들을 부르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을 담고 있는 단락입니다. 이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이 직접 지명해서 따르게 하신 제자들도 있고, 또 자발적으로 합류한 제자들도 있어요. 그 숫자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열두 명 보다는 훨씬 많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 불러놓으시고, 그 중에서 열두 사도를 세우셨기 때문이에요. 오늘 본문 13절을 봐 볼까요? 13절에 보니까,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아멘.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제자들이 열두 명보다는 훨씬 많이 모였겠죠.
    오늘 본문 17절에도 보면, 제자들이 숫자가 많았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데요. 17절도 봐 볼까요? 17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아멘.
    산에서 열두 사도를 택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내려오셨는데, 제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많은 무리”라고 그랬어요. 옛날 성경에는 “허다한 무리”라고 돼있습니다. 제자가 딸랑 열두 명 있는데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겠죠. 못해도 수십 명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나중에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거든요. 그런데 그 뒤에 10장에서는 70명의 제자를 파송하십니다. 열두 명에서 갑자기 숫자가 확 늘었죠. 그런데 70명을 파송하실 때, 이 70명은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 새롭게 세워진 제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절을 잠깐 볼까요?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예수님이 따로 칠십 인을 세우셨어요. 여기서 “따로” 라는 말이 헬라어로 “헤테로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다르다” 라는 뜻입니다. 다르다. 그러니까 누가복음 9장에서 파송한 열두 사도와는 다른 새로운 제자를 70명 세우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70명에 열두 사도까지 하면 82명이죠. 열두 사도를 세우신 때로부터 몇 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제자가 82명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최소로 잡은 거고, 70명을 세우실 때도 딱 70명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제자들 중에서 70명을 선발하신 거거든요. 그러면 이때는 못해도 100명 이상 있었으리라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옆에 제자가 정확히 몇 명 있었는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다만 열두 사도를 택하시던 당시에, 제자의 많은 무리가 있었다고 증언을 하고 있고, 또 얼마 뒤에는 제자가 최소 82명 이상, 어쩌면 100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열두 사도를 택하실 때 이미 수십 명의 제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토록이나 많은 제자의 무리가 예수님 옆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열두 명의 제자들을 엄선해서 사도로 택하신 겁니다. 그냥 아무나 골라잡은 게 아니에요.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특출난 사람들을 예수님이 고르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르실 때도 그냥 고민만 하고 고르신 게 아니에요. 먼저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하신 후에 고르셨어요. 자, 오늘 본문 12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누가복음 6장 12절 시작,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아멘. 
    예수님이 산으로 가서 기도하셨죠. 그런데 한두 시간 하신 게 아닙니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어요. 밤이 새도록. 예수님은 중요한 사역을 앞두시고 항상 기도를 하셨거든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장면은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물론 이외에도 밤새 기도하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들이 있기는 하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기 전에 기도하셨을 때나, 오병이어 사건 뒤에 혼자 물러가셔서 기도하셨을 때도 기도를 밤이 새도록 하셨을 것으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직접적으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고 증언하는 장면은 오늘 본문밖에 없어요.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이 “밤이 새도록” 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디아누크테류오” 라는 말인데, 영어로 “all night” “밤새, 하룻밤 내내” 이런 말이에요. 성경에 딱 한 번, 여기서만 나옵니다. 디아누크테류오. 그만큼 예수님이 열두 사도를 택하시기 전에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에 힘쓰셨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표현이에요. 사도들을 택하시기 위하여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열두 사도가 그냥 대충 선택된 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철야기도의 결과물입니다. 수십 명의 제자들 가운데, 어쩌면 100명이 넘는 제자들 가운데 열두 명을, 간절히 기도하신 후에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택하신 제자들의 명단이 하나하나 소개가 되는데요. 화면을 한번 볼까요? (ppt) 화면을 보면 예수님이 택하신 제자들의 명단이 나오는데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어요. 공통점은 똑같이 열두 명이라는 것이고, 또 시몬 베드로로 시작해서 가룟 유다로 끝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차이점은요, 이름이 조금 다르고 또 순서가 달라요. 순서가 뒤죽박죽이에요. 
    여러분, 왜 이렇게 이름 순서가 다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름 순서가 어떻게 되든지간에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지금 서열순으로 써논 것도 아니고, 임직순으로 써논 것도 아니고,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서 기자들이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논 겁니다. 순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심지어 들어가는 이름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다음 화면을 보면요. (ppt) 제가 순서를 똑같이 맞춰 봤는데요.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순서를 통일시켜봤어요. 그런데 아랫쪽에 빨간 글씨하고 파란 글씨가 있죠. 빨간 글씨를 보면, 마태복음하고 마가복음은 이름이 “다대오”로 돼있는데, 누가복음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라고 돼있어요. 다대오와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유다가 본명이고, 다대오는 별명이에요. 그러니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별명인 다대오로 기록을 했고, 누가복음은 본명인 유다로 기록한 겁니다.
    그리고 파란글씨를 보면, 시몬을 소개하면서 가나나인이라고 불렀는데요. 누가복음만 셀롯이라고 불렀죠. 가나나인과 셀롯. 가나나인은 아람어 “칸나”를 헬라어로 옮긴 말입니다. 칸나는 “열심 있는, 열정적인”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칸나가 나중에 특정 단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는데, 그 단체가 바로 “열심당”이에요. 열심당은 유대교의 한 분파였는데, 로마의 지배에 저항하며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는 단체였습니다. 그러니까 독립 투사들의 모임이라고 봐야겠죠. 본래는 열심당이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하나님께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어요.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급진적으로 로마에 저항하는 단체로 성격이 바꼈어요. 
    이 열심당을 아람어로는 칸나라고 하고, 칸나를 헬라어로 발음하면 “칸나나이오스”가 됩니다. 칸나나이오스. 이것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가나나인”이라고 한 겁니다. 칸나, 칸나나이오스, 가나나인. 참고로, 여기서 마지막에 “인”은 사람 인 자가 아닙니다. 가나나인이 한 단어예요.
    자, 그런데 누가복음은 시몬을 가나나인이라고 하지 않고 “셀롯”이라고 소개했어요. 셀롯. 셀롯은 본래가 헬라어 단업니다. 가나나인이 아람어 칸나를 헬라식으로 발음한 말이라면, 셀롯은 본래부터 헬라어예요. 셀롯은 헬라어로 “젤로테스”라고 발음합니다. 젤로테스. 이 말은 “열성적인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칸나하고 뜻이 같죠. 그래서 열심당을 젤로테스라고 불렀어요. 
    여기까지 이해가 되시죠? 열심당을 헬라어로 하면 젤로테스, 아람어로 하면 칸나, 칸나를 헬라식으로 발음하면 칸나나이오스. 모두가 다 열심당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래서 시몬이 가나나인이면서 셀롯인 겁니다. 그러니까요, 제자들의 명단을 이렇게 써도 되고 저렇게 써도 되는 거예요. 다대오로 쓰나 유다로 쓰나, 가나나인으로 쓰나 셀롯으로 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열두 명을 뽑으셨다는 거예요. 열두 명. 왜 하필 열두 명일까? 
    성경에서 열둘은 택함 받은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바로 택함 받은 백성들이죠. 이 아들들을 시작으로 열두 지파가 형성됐어요. 그런데 열두 지파는 구약의 백성들이에요. 그러면 신약의 시대에는 누가 택함 받은 백성들일까?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새롭게 택함 받은 백성이 되는 겁니다. 
    이제는 더이상 혈통이 필요 없어요. 혈통으로 이어지던 열두 지파는 끝이 나고, 이제는 믿음으로써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열두 제자가 하는 겁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각 지파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믿음 공동체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2장 30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가복음 22장 3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아멘.
    예수님과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하던 도중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크냐는 다툼이 일어났어요.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너희끼리 누가 크냐 작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죠. 너희는 모두가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면서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다.
    이 말씀처럼, 열두 제자는 신약의 공동체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열두 명이어야 돼요. 구약의 백성 열둘, 신약의 백성 열둘.
    이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택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신 뒤에 제자들을 택하신 거예요. 자기 마음대로 택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하나님의 허락하에 택하신 겁니다. 
    자, 그런데. 택함을 받은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어떻습니까? 엘리트 같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를 들어서 축구팀을 하나 만든다고 해봐요. 선수를 11명 뽑아서 축구팀을 만들어야 되는데, 후보선수가 한 70명, 80명, 거의 100명이 있어요. 그러면 이 중에서 어떤 선수를 뽑아야 될까요? 당연히 가장 잘하는 선수를 뽑아야겠죠. 포지션별로 가장 잘하는 선수. 공격수는 가장 골을 잘 넣는 선수를 뽑고, 수비수는 가장 수비를 잘하는 선수를 뽑고, 골키퍼는 가장 공을 잘 막는 선수를 뽑아야 돼요. 그래야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제자의 많은 무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자를 뽑으셨을까요? 놀랍게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조금 모자라 보이는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네 명은 어부였죠. 그런데 최소로 잡아서 네 명이고, 어쩌면 빌립하고 바돌로매도 어부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고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마태는 세리였고, 시몬은 열심당원이었어요. 
    이처럼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전혀 이스라엘 지파를 다스릴만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백성들을 다스리려면 어느 정도 스펙이 돼야하지 않겠습니까? 요새 목사님들을 보면 스펙이 장난 아니에요. 서울대 출신 목사부터 해서 의사 출신 목사, 판사 출신 목사, 스펙들이 화려합니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지방대 출신 목사는 상대가 안 되죠. 
    예수님이 택하신 제자들이 그래요. 스펙만 놓고 보면 상대가 안 됩니다. 내세울 것이 없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시고 나서 이 사람들을 뽑으셨어요. 이는 곧 예수님이 제자를 뽑으시는 기준이 스펙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제자를 뽑지 않으셔요. 예수님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뭘까요? 성경에는 제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준들이 있는데요. 순종, 겸손, 거룩, 충성, 용기,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러나 결국에 요점은 하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허락을 받으셨어요. 다시 말해서, 열두 제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내가 제자가 되고 싶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제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어요. 
    열두 제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스펙이나 그들의 배경이나 그들의 성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정치성향도 문제가 안 돼요.
    오늘날에는 교회가 정치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좌파니 우파니, 종북이니 뭐니, 편을 갈라서 싸우고 난리에요. 성경에 분명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랬는데, 왜 이렇게 좌우로 치우치나 몰라요. 좌파는 천국 못 갑니까? 우파는 천국 못 갑니까? 믿음으로 가는 곳이잖아요. 왜 교회가 정치 때문에 싸우냔 말이에요.
    예수님은 정치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이 성전을 뒤집어 엎으셨을 때, 정치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집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을 때 역시도, 정치 때문에 책망하신 게 아니에요. 그들이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책망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이었어요. 가르치는 것, 치유하는 것, 책망하는 것, 화를 내는 것, 그 모든 기준이 하나님이에요. 
    제자를 뽑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예수님이 뽑아놓은 사람들을 보세요. 정치성향이 안 맞아요. 화면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ppt) 마태와 시몬이 있죠. 이 두 사람은 정치성향이 완전히 극과 극인 사람들입니다. 
    시몬은 셀롯, 열심당원이었어요.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싸우던 독립 투사였습니다. 그런 반면에 마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세리였죠.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들이었어요.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이 다 세리를 싫어했습니다. 
    특히 열심당이 가장 세리를 싫어했어요. 열심당 안에는 “시카리”라고 불리는 암살자들도 있었거든요. 시카리는 “시카”라고 하는 칼을 품속에 넣고 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시카리들은 군중 속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로마인들이나 로마의 앞잡이들을 칼로 찔러 죽였어요. 그야말로 암살자들이죠. 이 암살자들이 열심당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열심당이 로마를 증오해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열심당원과 세리가 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물론 시몬이 시카리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가 로마를 미워하는 열심당원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그의 눈앞에 로마의 앞잡이였던 마태가 있어요. 열심당원과 세리. 극과 극인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도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이렇게 서로 맞지도 않는 사람들을 함께 택하셨을까? 
    축구팀을 만들더라도 팀웍이 잘 맞는 선수들을 뽑아야 되잖아요. 그래야 손발이 맞고 경기를 잘 뛰죠. 애초에 팀웍도 안 맞는 선수들을 뽑아놓으면 경기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시몬과 마태를 뽑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은 그 사람의 정치성향이 뭔지, 성격이 어떤지,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셔요.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십니다. 
    시몬과 마태가 인간적인 기준에서는 하나의 팀이 될 수 없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서로 용납하고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최고의 팀, 하나의 팀이 되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친일파와 독립군이 하나가 될 수 없지만, 예수 안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를 시몬과 마태가 보여주잖아요. 성경에 시몬과 마태가 싸웠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를 놓고 싸우기는 했어도, 정치 때문에 싸우지는 않았어요. 갈등 없이, 다툼 없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참된 제자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가치,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제자는 신약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모범이 돼야 돼요. 그런 사람들이 마음이 안 맞아서 서로 싸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 교회는 정상적인 교회가 될 수 없겠죠. 
    우리는 그런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가치 아래, 내 생각, 내 자존심, 내 스펙, 내 정치성향 다 내려놔야 돼요. 제자는 예수님이 고르고 골라 뽑으신 국가대표들입니다. 오직 승리를 위해서 뛰어야 돼요. 저 선수가 나와 안 맞고, 싫더라도, 승리를 목표로 팀웍을 이뤄야 합니다. 함께 훈련하고, 눈빛만 봐도 손발이 맞도록 하나가 돼야 돼요. 그것이 제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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