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족보의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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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17]‌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지난번 마태가 복음서의 앞부분에 족보를 저술한 이유와 의미에 대해 나누어보았는데요. 마태복음이 1차적으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성되었다고 했나요? 유대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으로 자신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편협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족보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임을 증명해주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편견을 깨트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과 그 특징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족보를 기술할 때 3가지를 중점으로 기록해나갔습니다. 1) 장자 중심 2) 남자중심 3) 업적중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인 족보 형태와는 달리 마태가 저술한 족보는 이러한 특징과는 정반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장자가 아닌 사람이 존재하고,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자격없는 사람들이 족보에 기록되죠. 보편적인 방법과 다르게 기술한 것은 분명히 마태가 의도한 바가 있을건데요. 마태는 분명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였고, 하나님 역시 자신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최고의 칭송을 남겼던 인물입니다. 보시다시피 예수님의 족보도 그 위대한 다윗왕과 연결하여 설명하려 할 만큼 대단한 인물인 것은 우리는 모두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족보에는 다윗의 치부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낳은 어머니는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다윗의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야의 아내였죠. 그는 밧세바가 너무 아름다워 그녀를 범하고 아이가 생기고 이 문제를 어떻게든 덮기 위해 남편인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 죽게 만듭니다. 위에 읽었던 말씀에 마태는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를 기록하지 않고, 대신 ‘우리아의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다윗의 불륜을 폭로하며, 그의 치부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지난번 설교때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족보는 다윗왕과 연결하여 설명하기 위해 계보를 나열했으면 오히려 다윗의 위대함과 좋은 점들을 강조해야 예수님을 알리는 것에 좋았을텐데 왜 마태는 다윗왕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 있는 의인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죄인이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보다 자신이 신앙심이나 인격, 성품이 낫다고 여기시는 분 있으십니까? 저조차도 그렇지 못합니다. 성경인물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 순위를 꼽으면 항상 나오는 이름 다윗,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대했던 왕인 다윗,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합한자라고까지 말했던 다윗조차도 음란한 마음으로 남의 아내를 범하는 한낱 죄를 짓는 죄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아무도 갈 수 없는걸까요? 아니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위대하고 자격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그 댓가를 죽음으로밖에 치룰 수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죄가 없는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를 통해 그 죄를 사하시고 예수님의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어떠한 자격이 있어서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닌데 “내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해서, 내가 말씀과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내 이웃을 잘 돕고 섬겼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요. 자신이 의인이라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앙의 열심을 가지며 살아갈 때 우리는 더욱이 낮아지고,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
두번째,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들어가는 나라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여성은 유대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민족을 계수를 할 때 항상 남자의 수만 세었던 것이 이를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유대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작성한 이 예수님의 족보에 여인들이 4명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성으로만 적어도 설득이 될까말까인데, 그냥 여인들이 아닙니다. 모두 이방의 여인이었습니다. 다말은 그 조상이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라합은 가나안 여인이고, 룻은 모압 여인이며, 밧세바는 히타이트 사람이었던 우리야의 아내였다는 것입니다.이들은 유대인 자신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상종도 하지 않았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이 이방여인들은 언뜻보기에도 죄가 많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즉, 다말과 라합은 창녀였고, 룻은 보아스를 유혹한 여인이었으며, 밧세바는 다윗 왕과 간음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여인을 기록한다고 해도 사라, 라헬, 레아와 같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아내로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는 선조를 집어넣어도 되는데 왜 마태는 굳이 죄많고 이방 여인인 다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와 같은 이방 여인들은 족보에 그 남편들과 함께 기록하였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모든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4명의 여성 모두 이방여인이고 죄많은 여인이었지만, 다른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방인이라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믿음만 있다면 죄많고 이방여인이라 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너희들끼리의 폐쇄적인 유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
마지막, 하나님 나라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나라이다.‌‌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
17절에 나오는 중요한 이름 네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그리스도, 그리고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바벨론이죠. ‌
마태복음 1:11–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1-12절에 보면 바벨론 시절의 예수님의 조상인 여고냐가 나옵니다. 원칙대로 하면, 바베론이라는 이름 대신 여고냐가 나와야 하는데 굳이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여고냐라는 조상의 이름대신 바벨론을 기록하였을까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벨론에게 점령당하여 포로생활을 했던 시기는 가장 수치스러운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 자부하며 살았지만, 세상의 제국에게 멸망당했죠. 유대인의 왕인 시드기야도 포로로 끌려갔고 왕궁과 성전은 불에 타버렸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고, 또 다른 나라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시는 나라를 재건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가장 비참했던 그들의 역사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 그분의 열심으로 다윗의 족보가 계속 이어지게 해주셨고, 마침내 숱한 곤경과 어려움이 있던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보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바벨론시기와 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메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리 올림픽(최후의 만찬 게이), 수리남(마약목사). 대놓고 교회를 조롱하며 미디어는 기독교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결과로 이슬람 다음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죠. ‌‌어쩌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세상에서 교회는 망해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입니까?
‌‌[계22:20-21]‌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 나라는 아무리 인간이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하고 끝내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의 현실을 바라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명을 어떻게 키우지. 지금 형편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학교가면 세명을 키울 아내는 어떻하지.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방법으로 내 앞길을 인도해왔지만, 저역시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때보다 현실의 걱정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요일2:15-17]‌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세상에 속한자들이 아닌 하나님 나라만 소망하자. 마1:1-17]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지난번 마태가 복음서의 앞부분에 족보를 저술한 이유와 의미에 대해 나누어보았는데요. 마태복음이 1차적으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성되었다고 했나요? 유대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으로 자신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편협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마태는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족보를 통해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임을 증명해주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편견을 깨트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과 그 특징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족보를 기술할 때 3가지를 중점으로 기록해나갔습니다. 1) 장자 중심 2) 남자중심 3) 업적중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인 족보 형태와는 달리 마태가 저술한 족보는 이러한 특징과는 정반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장자가 아닌 사람이 존재하고,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자격없는 사람들이 족보에 기록되죠. 보편적인 방법과 다르게 기술한 것은 분명히 마태가 의도한 바가 있을건데요. 마태는 분명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였고, 하나님 역시 자신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최고의 칭송을 남겼던 인물입니다. 보시다시피 예수님의 족보도 그 위대한 다윗왕과 연결하여 설명하려 할 만큼 대단한 인물인 것은 우리는 모두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족보에는 다윗의 치부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낳은 어머니는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다윗의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야의 아내였죠. 그는 밧세바가 너무 아름다워 그녀를 범하고 아이가 생기고 이 문제를 어떻게든 덮기 위해 남편인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 죽게 만듭니다. 위에 읽었던 말씀에 마태는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를 기록하지 않고, 대신 ‘우리아의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다윗의 불륜을 폭로하며, 그의 치부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지난번 설교때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족보는 다윗왕과 연결하여 설명하기 위해 계보를 나열했으면 오히려 다윗의 위대함과 좋은 점들을 강조해야 예수님을 알리는 것에 좋았을텐데 왜 마태는 다윗왕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 있는 의인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죄인이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보다 자신이 신앙심이나 인격, 성품이 낫다고 여기시는 분 있으십니까? 저조차도 그렇지 못합니다. 성경인물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 순위를 꼽으면 항상 나오는 이름 다윗,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대했던 왕인 다윗,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합한자라고까지 말했던 다윗도 음란한 마음으로 남의 아내를 범하는 한낱 죄를 짓는 죄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아무도 갈 수 없는걸까요? 아니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위대하고 자격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그 댓가를 죽음으로밖에 치룰 수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죄가 없는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를 통해 그 죄를 사하시고 예수님의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어떠한 자격이 있어서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닌데 “내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해서, 내가 말씀과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내 이웃을 잘 돕고 섬겼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요. 자신이 의인이라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앙의 열심을 가지며 살아갈 때 우리는 더욱이 낮아지고,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두번째,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들어가는 나라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여성은 유대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민족을 계수를 할 때 항상 남자의 수만 세었던 것이 이를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마태가 유대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작성한 이 예수님의 족보에 여인들이 4명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성으로만 적어도 설득이 될까말까인데, 그냥 여인들이 아닙니다. 모두 이방의 여인이었습니다. 다말은 그 조상이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라합은 가나안 여인이고, 룻은 모압 여인이며, 밧세바는 히타이트 사람이었던 우리야의 아내였다는 것입니다.이들은 유대인 자신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상종도 하지 않았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이 이방여인들은 언뜻보기에도 죄가 많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즉, 다말과 라합은 창녀였고, 룻은 보아스를 유혹한 여인이었으며, 밧세바는 다윗 왕과 간음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여인을 기록한다고 해도 사라, 라헬, 레아와 같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아내로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는 선조를 집어넣어도 되는데 왜 마태는 굳이 죄많고 이방 여인인 다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와 같은 이방 여인들은 족보에 그 남편들과 함께 기록하였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모든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4명의 여성 모두 이방여인이고 죄많은 여인이었지만, 다른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방인이라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믿음만 있다면 죄많고 이방여인이라 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너희들끼리의 폐쇄적인 유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님 나라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나라이다.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7절에 나오는 중요한 이름 네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그리스도, 그리고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바벨론이죠.
마태복음 1:11–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1-12절에 보면 바벨론 시절의 예수님의 조상인 여고냐가 나옵니다. 원칙대로 하면, 바베론이라는 이름 대신 여고냐가 나와야 하는데 굳이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여고냐라는 조상의 이름대신 바벨론을 기록하였을까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벨론에게 점령당하여 포로생활을 했던 시기는 가장 수치스러운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 자부하며 살았지만, 세상의 제국에게 멸망당했죠. 유대인의 왕인 시드기야도 포로로 끌려갔고 왕궁과 성전은 불에 타버렸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고, 또 다른 나라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시는 나라를 재건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가장 비참했던 그들의 역사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 그분의 열심으로 다윗의 족보가 계속 이어지게 해주셨고, 마침내 숱한 곤경과 어려움이 있던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보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바벨론시기와 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메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리 올림픽(최후의 만찬 게이), 수리남(마약목사). 대놓고 교회를 조롱하며 미디어는 기독교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EU(유럽연합)
결과로 이슬람 다음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죠.
어쩌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세상에서 교회는 망해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입니까?
[계22:20-21]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 나라는 아무리 인간이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하고 끝내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의 현실을 바라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명을 어떻게 키우지. 지금 형편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학교가면 세명을 키울 아내는 어떻하지.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방법으로 내 앞길을 인도해왔지만, 저역시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때보다 현실의 걱정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요일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에 속한자들이 아닌 하나님 나라만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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