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9:1-3 형통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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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창세기 39:1-3)
 
요셉을 생각하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바로 ‘꿈’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꿈꾸는 자” 로 말합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을 향해 “꿈꾸는 자가 온다.” 라고 말하면서 동생 요셉을 비웃는 장면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꿈을 꾸어야 한다, 요셉은 꿈을 꾸었고, 준비하였고, 대가를 지불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질 때, 비로소 인생은 역전된다” 식의 설교들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밤에 꿈을 꾸기를 원합니다.
 
요셉이 잘 된 것은 요셉의 꿈 때문이 아닙니다. 요셉은 꿈을 기억하지도 않았습니다. 창세기 42장 9절에 보면, 형들이 애굽의 식물을 사러올 때에 그 꿈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30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데, 만일 17살 때부터 이것을 기대하고 상상해 왔다면,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결코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2장 9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과 함께 하셨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점을 우리들에게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나 성경을 보니깐, 2절 3절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평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절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우리나라에 함께하심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가정,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교회, 형통한 부서가 되길 소원합니다. 형통이라는 말의 뜻은 [형통] 히브리어로 『찰라흐』 라는 단어인데, ‘잘되어가다’. ‘번영하다.’ ‘평탄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의문점이 생깁니다. 과연 요셉의 삶이 형통한 삶을 살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의 삶은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까? 요셉의 삶이 과연 형통한 삶이었습니까?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서 야곱이 노년에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형들의 잘잘못을 분명하게 분석할 만큼 명석하였습니다. 그리고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일이 고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미움을 받고 있었는데, 거기에다 자신의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들이 얼마나 싫어했겠어. 아버지의 편에를 받고 있는 라헬의 아들 요셉, 형들에게는 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을 치는 형들에게 아버지의 심부름을 가게 되었습니다.
심부름 가는 동생을 미디안 상인에게 은 20개에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이 팔려갈 때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형들이 자기를 팔려고 할 때 그 서러움. 두려움. 얼마 전 이라크에서 고 김선일 형제가 절규하면서 외치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절규하는 모습이 요셉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아버지께 사자의 밥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이 과연 형통한 삶이었습니까?
 
요셉의 애굽에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습니다. 거기서 보디발의 처가 자기를 계속 유혹합니다. 한번만 나와 동침하자. 하루도 아니고 계속 유혹합니다. 나와 한번 자면 너의 앞길을 보장해 주겠다. 계속 유혹합니다. 시위대장의 처는 예뻤을 것입니다. 보통 남자들이라면, 그 유혹의 넘어갔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칩니다.
우리는 흔히 유혹을 이겨내면 보상심리가 따라 옵니다. ‘내가 이 시험을 이겼으니깐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셉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감옥에 들어갑니다. 이런 요셉의 삶이 형통한 삶이었습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요셉의 삶은 형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계속 형통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갈구하고 소망하는 것은 잘먹고 잘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월빙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형통은 편안한 삶을 사는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 사업이 잘되어서 건강한 삶. 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형통은 이런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형통은 첫째로,
 
1. 하나님이 내재 하시는 삶이 형통이다.
본문 말씀을 보니깐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절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삶에서 나타낼때 형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이미지 시대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낼려고 꾸미고 치장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어가며 신경을 씁니다. 하나님의 내재하심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이 임마누엘의 신앙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더 이상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믿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끈 지도자 모세가 그러한 삶을 살았고, 여호수아가 그러했습니다. 성경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성경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다.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나 여호와가 함께 하시리라.” 우리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고 늘 교통하신 하나님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길 소원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함께 계심을 믿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를 유혹할 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할수 없다고 돌아섰습니다.
형통한 삶은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믿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진정한 형통은 환경을 초원합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할 때 능력이라 함은 삶을 초인적인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이 말씀을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같이 찾아서 한 목소리로 합독하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리라.’ 우리는 능력을 삶을 초월하는 신앙, 슈퍼맨, 초인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앞뒤를 잘 살펴서 읽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11절, 12절에 보니깐 사도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 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면서 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어떠한 일을 해도 혹 그 일이 망하였을 찌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끔 교회 다니는 식당이나 가게에 가면 이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장 무서운 말씀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가게가 망하더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능력 하면 초월하는 삶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은 환경을 초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형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환경을 초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아무리 어려움과 두려움과 걱정이 온다고 할지라도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형통의 삶은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는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형통의 결과는 주위 사람이 유익해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형통한 삶을 살아서 내가 잘되는 것. 내가 잘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형통입니다. 세상의 형통은 나만 잘되는 되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삶 이것은 세상이 주는 형통입니다. 하나님의 형통은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통은 나만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요셉의 형통은 나누어 주는 형통이었습니다. 요셉의 형통을 통해서 애굽,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요셉의 형통을 통해서 보디발 장군의 짐의 모든 소유까지 여호와의 복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형통은 우리 주위에 사람이 유익해져서, 믿지 않은 불신자의 입에서 요셉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보았다라고 고백해야 될 줄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을 통해 이러어진 형통은 이 꿈은 요셉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 열방이 복을 받게 될,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꿈이 진정한 형통의 삶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읽은 요셉의 삶을 통해서, 우리 가정, 우리교회, 우리나라, 우리마을이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형통한 자들이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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