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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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자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이 힘들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즘 살기가 너무 힘들어~ 제가 10가 되었을 때 교회 성도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요즘 살기가 너무 힘들어~~ 제가 20대가 되었을 때 사회 먼저 나간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성도들의 삶이 살기가 너무 힘들어~~ 제가 30 간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부모님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겁니다. 요즘 살기가 너무 힘들어,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이러나? 제가 40대가 되었을 때 성도분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요즘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떻습니끼? 여러분들의 살림살이는 조금 나아지셨습니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히 우리는 살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살기 힘든 시대에 살았을까요? 왜 인생의 주제가 살기 힘듦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선악과의 본질입니다.
인생이 힘들게 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이 주신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인생은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으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노동은 기쁨이었으며 인간의 원래 사명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사명이었으며 즐거움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그 때에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이 풍족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그 때에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복에서 쫓겨나 죄와 비참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힘드십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와 사망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은 왜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 때문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아담과 하와 때문에 인류가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맞습니까? 이렇게 핑계하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악과의 본질이 바로 이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뱀은 종종 치료의 신으로 숭상받았고 풍요의 신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사르나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파충류의 모양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화나 종교에서 발견된다. 근동에서 뱀은 퐁요의 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여신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가나안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나 신전의 유적에서 흔하게 발굴되고 있다.”
뱀은 사탄입니다. 뱀이 사탄이라는 뜻은 사탄이 뱀에게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에도 보면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간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탄은 죄를 짓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유혹했습니다. 질문 하나 던져 놓고 답하나 했을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종종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그 유혹에 넘어가서 스스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와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1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를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마치 하나님이 모든 것을 금하신 것처럼 질문합니다. 사탄의 교묘함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 보다는 부족함을 내세웁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강조함으로써 관점을 뒤틀어 놓습니다. “그러게 하나님이 다 주시면서 이거는 왜 안 주셨지? 나를 못 믿나? 아니면 하나님이 나한테 이거는 주기 아까우셨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네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뱀이 노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주신 것을 생각하지 않게 하고 불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괜히 만드셔서 죄를 짓게 하셨네.” 무슨 뜻이죠? 하나님 탓인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으면 죄를 안 지었겠지. 하나님이 부족하게 주신게 문제야. 조금 나아가면 우리의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이 왜 내 인생에 이런 어려움을 주셨을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되지, 시험도 안 되게 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가족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이거는 어떻고 저거는 어떻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왜 이렇게 부족하게 주시고 내 뜻 대로 잘 안되게 하셨지? 이게 본질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를 계속해서 생각하니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아니라도 특별히 내 뜻과 마음에 거슬리는게 있는 겁니다. 그러면 감사가 아니라 불평이 터져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바로 이 지점에서 사탄에게 맞장구를 친 것입니다. 맞아 하나님이 다 주시면 되지, 만들어 놓고 먹지 말라는 것은 뭐야? 다 주셨는데 하나 쯤 그냥 먹어도 되겠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뒤틀린 시각을 심어주었고 사탄은 성공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사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가 걸렸습니다. 나를 위해 주지 않은 하나가, 무슨 뜻인지도 하나님의 더 큰 그림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그 하나가 걸렸습니다. 그러니 다른 모든 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게 선악과의 본질입니다. 하나가 걸리니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아니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감사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내 탓이 아니라 상황을 탓하게 됩니다. 상황을 탓하는 것은 결국 그 상황을 초래한 하나님을 탓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여자가 먹으라 했습니다. 하나님 탓을 했습니다. 하와는 뭐라고 했습니까? 뱀이 먹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뱀이 먹으라 했습니다. 뱀을 안 만들었으며 내가 안 먹었을 겁니다. 결국 하나님 탓을 합니다. 이것이 선악과의 본질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 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왜 먹었습니까? 자신들이 보기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자신이 판단했습니다. 바로 이성의 개입입니다. 자신의 이성이 판단하니 괜찮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보십시오. 타락하기 전에도 이미 이성은 부족했습니다. 이성이 부족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알기에 충분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를 인간의 이성을 능가하십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동물과 구분된 점은 이성입니다. 그러나 동물과 다른 그 이성으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고 보호해야 할 이성으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자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선악과의 본질입니다. 자신의 이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사용하지 않을 때,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 타락합니다. 하나님 탓이 선악과의 본질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자신이 보기에 옳은 대로 사용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으로 사용하면 타락한다는 것이 선악과를 본질입니다.
두 번째로 질서의 파괴입니다.
하나님은 왜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만드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성경의 근거로 추정할 수 있지만 100% 그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뿐 다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이 노린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무엇을 노렸을까요?
뱀과 여자의 대화에서 그 힌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담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자와 함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뱀의 질문을 자세히 보세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2절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절 너희는 먹지도 말고, 4절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무엇입니까? 너희와 우리 입니다. 지금 아담은 여자와 같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담이 여자와 같이 있다는 말은 아담의 역할이 있다는 말이고 뱀은 그 역할을 공격한 것입니다. 아담은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여자에게 아니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면 안 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하나님의 말씀을 불공평한 것으로 부당한 것으로 인식하면 안 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가야 돼! 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즉 뱀은 여자를 통해 아담을 공격한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질서의 파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즉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여자는 옆에서 그 다스림에 복종하며 돕는 배필로서 아담의 다스림을 돕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남자를 먼저 만들었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질서를 말합니다. 그러면 짐승들은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통치에 순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아담- 여자-들짐승의 순서입니다. 질서입니다. 그러나 사탄인 뱀은 바로 이 모습을 무너뜨렸습니다. 사탄이 여자에게 접근해서 아담이 옆에 있지만 철저하게 여자를 전복시키려 했습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부족하거나 여자가 유혹에 더 약해서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질서 측면입니다. 사탄은 여자를 공격했고 여자는 남자인 아담을 넘어지게 했으며 결국 하나님을 향해 반기를 든 것입니다. 질서의 파괴 입니다.
여러분 죄의 본질은 바로 질서의 파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탄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공격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운영하실 때, 교회를 세우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직분자를 세워서 질서대로 운영합니다. 즉 사탄의 공격은 항상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고린도 교회가 왜 지속적으로 사도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했습니까? 사탄의 공격입니다. 직분자를 넘어뜨림으로 교회를 넘어뜨리는 사탄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 질서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교권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나 박목사님인 교역자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회가 제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는 배격해야 되지만 권위를 배격해서는 안 됩니다. 권위주의와 권위를 혼동하여 둘 다 공격하면 결국 교회는 무너집니다.
질서가 깨어진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담은 하나님 탓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수치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질서가 깨어지니 수치를 가렸습니다. 누가 볼까봐 나무잎으로 가린 걸까요? 옆에 있는 한 몸된 서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한 수치입니다. 관계의 깨어짐입니다. 아담에게 한 형벌을 보세요. 두 가지 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아담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피조 세계가 아담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질서의 파괴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고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사람과 피조세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 땅은 좋은 것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엉겅퀴와 가시도 냅니다. 사람이 정당하게 노동을 행해도 수고가 충분치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라. 모든 질서가 파괴되고 고통과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바로 이 때에 복음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원시복음이라고 알고 있는 구절이 15절입니다. 뱀에게는 형벌이 없습니다. 저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형벌을 주셨지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바로 저주를 내립니다. 8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십니다. 왜 찾아오셨을까요? 왈키라는 학자가 이 모습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사랑의 증표는 사랑이 바라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에도 사랑의 대상을 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바라시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그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고 핑계할 때에도 하나님은 실망치 않으시고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그들 앞에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 길의 증표로 그들에게 무화과 옷을 벗기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인류 최초의 피흘림은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처음으로 하셨습니다.
타락한 이후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호의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그들은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바로 적개심을 주신 것입니다. 원수가 되게 하겠다는 문장의 원어적인 표현은 적개심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범죄의 핵심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탄과 편을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보다 사탄의 말이 더 맞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탄의 말로 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담과 하와의 행동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사탄과 더불어 살 수 없는 적개심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잘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과 대적이 된 것이 우리의 힘과 판단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사탄을 따라 갑니다. 어떤 점에서요? 실용성입니다. 어떤 것이 나에게 더 도움되겠나, 누구의 말을 들으면 내가 보기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것을 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실용성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보다는 내가 보기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에만 내 마음이 더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고 생활하고 헌금하고 나누고 사는 삶이 그다지 탁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시간 내 돈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인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거 아니야! 하고 사탄에게 속지 말라고 사탄과 우리 사이에 적개심을 두셨습니다. 어리석은 우리로 하여금 사탄을 적대시하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적개심을 두셨습니다.
이제 다시 3장을 생각해 봅시다. 3장은 어떤 이야기 입니까? 타락한 이야기가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이제 인류는 반드시 두 부류로 나뉩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입니다. 뱀의 후손은 무엇을 말할까요? 코브라 새끼나 구렁이 새끼들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사탄은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뱀의 후손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은 이휴의 역사를 볼 때 사탄의 편에 서는 아담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아담의 후손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탄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지혜로워 보이는 사탄의 실용성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너를 위해 살어, 하나님 믿을 필요 없어 세상에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어? 착하게 살면 다 좋은 곳으로 가는 거지. 모두가 뱀의 후손입니다. 사탄의 유혹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여자의 씨 즉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표현으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여자의 후손들의 모임입니다. 약속의 모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자의 후손으로 살 때 세상은 우리를 박해합니다. 대적합니다. 적개심을 하나님이 두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후손입니까? 사탄의 유혹 아래 내 힘과 내 판단을 믿고 나를 위해 사는 사탄의 후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내 이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게 더 지혜롭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여자의 후손입니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생각하십시오. 그 자리에서 나의 욕구와 판단을 거부하십시오. 나를 위해 피흘려 가죽옷을 입히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나를 위해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에게 가십시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피조물됨을 인정하며 그분을 주인으로 모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 우리를 받아주시고 종이 아니라 자녀로 대우하십니다. 친구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의 복 된 말씀을 사랑하며 순종하며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려가는 여자의 후손들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