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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NKRV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서론]
사랑하는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있습니까?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불구하고 변치 않고 내면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기쁨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그건 당신이 아직 세상을 오래 살아 보지 못했거나 인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세상을 오래 살고 인생을 알게 되면 인간은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정말 슬프고 허무한 것이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에게는 진정한 기쁨이 있는 걸까요?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떤 상황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기쁨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빌립보서를 쓴 사도 바울을 통해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최근 한국 사회는 12.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역사상 초유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계엄령 선포 이후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고, 공수처에 의해 대통령이 체포되었고,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진행 중입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비자 심리지수는 12.11월 100.7에서 12.12월에 88.4로 급락하여 202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습니다. 환율은 치솟고 기업들은 청년 채용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시험대에 놓여 있고 국제사회가 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초음속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가속화하며 도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좌우의 이념 갈등을 넘어 이념 전쟁으로 격화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혼란과 불안정으로 심리적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실망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현재의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 제가 알고 지내던 어느 교회 집사님과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유통사업을 하시던 그 집사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설연휴 전인데도 매출액이 작년의 절반도 안 되요. 사업을 접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어떤 집사님은 ‘하루 하루 생존을 위해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신대원 동기인 한 전도사님은 ‘요즘 무엇이 진실인고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 너무 혼란스럽고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최근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은 상당한 수준의 불안, 스트레스, 피로감, 분노, 무력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권면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 천여년 전에 이 서신을 쓴 바울의 권면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립보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NKRV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교회와 바울의 관계]
빌립보서는 바울이 마게도냐에 위치한 빌립보 교인들에게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입니다. 2차 선교여행 중이던 49년경에, 바울은 당시 로마 속주였던 마게도냐 지방의 최대 도시인 빌립보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도시는 주전 356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 2세가 점령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도시입니다. 훗날 로마가 이곳을 다시 점령했습니다. 주전 42년 로마군의 전진 기지로서 새롭게 번창하기 시작했던 빌립보는 로마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 포장도로인 “비아 에그나티아”가 통과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양한 교류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유럽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따르면, 바울은 아시아에 위치한 드로아에서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 길로 바울은 유럽 선교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배를 타고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곳이 바로 빌립보였습니다. 바울은 안식일에 자주색 옷감 염색 사업을 하는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루디어 세레터 사진#1) 또한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준 것 때문에 로마 사람들로부터 고발당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성령의 도움으로 풀려나고 간수장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감옥 사진#2) 바울은 일반적으로 자비량 선교를 원칙으로 자신이 세운 교회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만은 예외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은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유럽 선교를 통해 개척한 첫 교회이자, 경제적 도움을 수락한 유일한 교회라는 점은 바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1:3-4을 읽어 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해 집니다.
빌립보서 1:3–4 NKRV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기도가 나오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믿음의 친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바울에게 이런 감사와 기쁨을 주었을까요? 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1:5 NKRV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립보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둔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항상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수 많은 교회들을 개척하였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에베소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유럽에서는 빌립보를 포함해 데살로니가, 베레아, 아덴, 고린도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런데 개척 초기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 변함없이 바울과 함께 한 교회는 바로 빌립보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가 복음 사역자들의 마음을 시원케하고 기쁨을 주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유익하고 안전하게 성지 답사를 잘 다녀왔습니다. 답사 일정 중에서 튀르키예에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교회들 중 두 개 교회만을 칭찬하셨습니다. 먼저, 서머나교회는 가난하고 박해받는 교회였지만,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의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셨습니다. 계시록 2:9-10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9–10 NKRV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둘째, 빌라델피아교회는 비록 규모가 크지 않고 능력이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신실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충성심을 칭찬하셨습니다. 계시록 3:8,10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8 NKRV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3:10 NKRV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사랑하는교회 성도 여러분! 바울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받았던 빌립보교인들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신실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의 의미]
‘기뻐하다’는 헬라어 동사인 카이로(χαίρω)는 신약에서는 총 74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 빌립보서에서만 9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8번 사용되었지만 누가복음이 24장 분량이고 빌립고서가 4장 분량임을 고려하면, 어떤 신약성경보다도 더 많이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빌립고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에서도 언급된 이 기쁨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의 특징적인 표식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를 말하면기뻐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바로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기쁨의 사람으로 생각될까요? 오늘 본문 발씀에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기뻐하라는 동사 앞에 두 가지 수식어를 배치하였습니다. 하나는 ‘주 안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항상’이라는 부사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이후에 다루기로 하고 먼저, 항상이라는 부사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항상, 전부, 완전히, 100%, 등의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을 잘 신뢰하지 못합니다. 저의 아내와 아이들은 제가 이런 극단적인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사용할 때면 ‘주의조치’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항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적당히 알아서 해석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사용한 기뻐하다는 동사의 용례들을 찾아본다면 우리는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기뻐하라는 동사의 명령형을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기뻐할 수 있으면 최대한 기뻐합시다’라든지, 아니면 ‘기뻐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상황에 따라 왔다가 사라지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전적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있으며, 따라서 지속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땅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 죄수의 몸으로라도 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로마로 함께 가 봅시다. 차디찬 지하 감옥에 갇혀 쇠창살에 둘러싸진 채 죄수의 몸으로 펜을 들고 빌립보교회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바울을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빌립보서에 나타난 ‘기뻐하다’라는 구절들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말하는 기쁨의 의미와 비결을 찾아 보겠습니다.
1:4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1:4 NKRV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만 생각하면 기뻤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위해 자신을 어떻게 섬겼는지, 그들이 지금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였는지를 생각하면 기도할 때마다 기쁨이 흘러넘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바울의 옥바라지를 감당하도록 도왔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바울을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병이 들어 죽게 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서 2:25-26을 보십이오.
빌립보서 2:25–26 NKRV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자신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빌립보교회의 사자로 바울이 쓸 것을 돕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왜 그를 이렇게 극진히 소개하는 것일까요?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병든 것을 빌립보교회가 들은 줄 알고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병든 것을 근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병든 것을 빌립보교회가 들은 줄 알고 심히 근심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과 그를 보낸 빌립보교인들 얼마나 바울을 헌신적으로 섬겼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저는 이번 성지 답사 중에 가이드로부터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로마시 전역에 전염병이 돌아 수많은 병자들이 길거리에 버려져 죽어가던 때였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단의 무리들이 죽은 자들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러 주었고, 환자들을 돌봐주었습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로마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들의 사랑에 로마 시민들은 감동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용어로 ‘크레스투스’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곧 교회가 가진 힘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끼리도 사랑하지 못하고 분쟁하는 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병들어 죽게 될 정도로 헌신적으로 옥바라지를 하는 에바브로디도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잘 나갈 때는 잘 대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옥에 갇혀 잊혀져 가는 사람을 기억하고 보살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들이 바울에게 보여 준 그 섬김과 헌신과 사랑이 바울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그 비결이었습니다.
1:18절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1:18 NKRV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은 로마 시민들에게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위대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이므로 그의 대적자들은 그를 비방하였습니다. 바울은 대적자들의 부정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뻐한다는 표현을 반복 사용한 것은 그가 얼마나 이 일을 기뻐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되든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성령을 통해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될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땅 끝인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유대 총옥인 벨릭스와 베스도의 심문에서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로마로 가기 위해 황제에게 상소를 청했습니다. 그는 죄수의 몸으로라도 로마에 가기를 원했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인생의 기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기쁨을 얻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분명히 죄수가 되기를 자청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죄수가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의 주인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4:4절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번 로마 성지답사에서 바울이 갇혔던 지하 감옥을 보았습니다. 그곳은 쇠창살 너머로 거친 돌들로 둘러싸진 차가운 독방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그가 순교하기 위해 참수대를 향해 걸었던 100M 안 되는 길도 걸어 보았습니다. 아직도 나는 내 못난 자아를 버리지 못해 갈등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받을 사랑만 계산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저의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던진 태산같은 바울의 믿음 앞에 저는 초라함을 느끼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온전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역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17-18절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2:17–18 NKRV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과 섬김, 그리고 자신의 고난, 어쩌면 맞이하게 될 자신의 죽음을 구약의 제사 방식인 전제(drink offering)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전제는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의식을 말합니다. 포도주는 기쁨과 헌신을 상징합니다(시 104:15).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믿음으로 인한 그들의 고난과 희생,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쁨과 헌신의 제사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가 드리는 믿음의 제물 위에 자신이 포도주처럼 부어지는 희생물이 된다 할 지라도 그들과 함께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어쩌면 자신의 죽음이 빌립보교회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에 빌립보교회와 동참할 수 있다면 자신은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좋은 일로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난과 희생이 따르는 일에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바로 빌립보교회가 바로 그런 공동체의 모범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극한 고난의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함께 고난받으며 함께 희생할 때도 빌립보교회와 바울의 사이처럼 함께 기뻐하고 있나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힘을 잃어가고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실까요?
마태복음 5:1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13 NKRV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은 교회가 세상의 소금으로서 그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맛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짠 맛으로 부폐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갈 수록 사랑이 식어지고 개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공동체 안에 지체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세상이 기피하는 곳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런 일로 희생이 다르고 고난과 아픔을 겪는다 할 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함께 섬기고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1절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4:1 NKRV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4 가지 표현은 문장구조상 모두 빌립보교회를 지칭하는 동의어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면류관(crown)은 체육 경기에서 승리한 자들을 위한 상인 월계관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바로 자신의 삶의 기쁨이며, 자신의 믿음의 경주에서 얻게 될 상급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난 날들을 회상할 때 그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며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바로 빌립보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빌립보교회가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세계 선교의 선구자요,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복음으로 개척한 자요,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한 전도자라는 명성을 그의 기쁨으로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마치는 자신이 받게 될 상으로 하나님 나라의 대저택을 바라며 기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기쁨이요 상급은 바로 빌립보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명예나 쌓아 둔 재산으로 기뻐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의 기쁨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4:10절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4:10 NKRV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이 구절을 통해 바울이 크게 기뻐하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어지는 구절들을 통해 볼 때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선물을 준 것을 말합니다. 4:15절에서 바울은 복음의 시초에서 자신이 마케도냐를 떠날 때 선물을 준 교회가 빌립보교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교회에 있을 때에 두 번이나 재정 지원을 해 준 교회가 빌립보교회라고 밝혔습니다. 18절에서 빌립보교회 출신의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물질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보고 이렇게 얘기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결국 위대하다는 사도 바울도 물질을 밝히는 사람이었구만. 돈을 받고 크게 기뻐한 걸 보면 확실히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잖아.”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9 NKRV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서는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 결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15절을 자세히 읽어 보면 바울은 빌립보교회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고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재정 지원을 거절한 것은 고린도교회가 상호 호혜의 원칙에 의해 재정 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후원자와 피후견인 관계를 강요함으로써 사도의 자유를 구속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이 물질주의자가 아니라면 그가 크게 기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4: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것은 빌립보교회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빌립보교회가 선물을 보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선물을 보내며 자신을 생각한 사실에 크게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4:17절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17 NKRV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립보교회가 바울은 선물에 눈이 먼 사람이 아니라 빌립보교회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바울이 선물을 언급하며 크게 기뻐하는 진짜 이유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와 영적 지도자들을 재정 지원하는 것이 빌립보교회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재정 지원은 가뭄을 당해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교회를 지원하기 위한 것임을 사도행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최근 우리가 직면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며,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주고, 분노를 일으키게 하며, 무력감에 빠뜨리게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세상도 그리 밝다고 전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지금까지 우리는 옥중서신인 빌립보서를 통해 바울이 말하는 기쁨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옥바라지를 하며 헌신하는 빌립보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기뻐했습니다.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지는 것을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자신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빌립보교인들이 자신의 인생의 기쁨이요 상급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의 영적 성장과 풍성한 열매를 바라보며 기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닮기를 원했으며, 주님을 기뻐한 사람이었는지는 어떤 설명보다고 바울 자신의 고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빌 1:20-21절을 함께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빌립보서 1:20–21 NKRV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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