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CHILL 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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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조 CHILL GUY!
본문: 마18:21-22
Matthew 18:21–22 NKRV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서론
설명절 잘보내고 왔나요?
제가 지난주에 여기서 여러분들과 약속했던게 있었어요.
기억나는 친구 있나요?
잘 지켰을까요?
잘지켰습니다.
하루 두끼만 먹었어요. 점심먹고 이른 저녁을 먹고,
밤에 배가 고플까요 엄청 고플까요?
음식 앞에서 여러분들 얼굴이 생각나는거에요.
약속한게 있으니까 먹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절제하고 또 절제했어요.
절제를 한 이유?
우리는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특별한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실 특별한 중등부이기 때문에,
나의 몸을 거룩하고 구별되게 지키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교회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나 스스로를 어떻게 거룩하고 구별되게 지켜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본론
여러분 이 캐릭터 알아요? (chill guy) 영상시청
미국에서 시작한 이 밈이 미국에서 한바퀴 다 돌고 이제 우리나라로 넘어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칠가이 사진)
영상을 보니까 어떤가요?
뭔가 느긋하고 편안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느낌이 들어요.
요새 칠가이라는 캐릭터는 말그대로 느긋한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과연 이 칠가이 요새 왜 유행하고 있을까요?
사실 유행하는 밈에는 큰의미가 없어요. 이유 없이 그냥 따라하는 경우가 많죠.
아무 이유 없이 유행하는 밈을 따라하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게 문제가 되긴하지만,
왜 유행하는지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빠르고 바쁘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우리 모두 마음 한켠에는 느긋해지고 싶고 어느것에도 구속받고 싶지 않고 어느 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고 여유롭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사실 그런데요.
한국에서는 2025년에 유행하는 칠가이의 원조가 있어요.
칠가이의 원조 격이 되는 분이 계세요.
칠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셨는지 칠이라는 숫자를 자주 사용하신 분이 계세요.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이 느긋한 분이라고는 말 못하겠어요.
워낙 바쁘게 사역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은 오늘 유독 칠이라는 숫자 일곱이라는 숫자를 많이 사용하세요.
Matthew 18:21–22 NKRV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여있어요.
그런데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나봐요.
제자들 중 한 사람인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해요.
“예수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는데, 몇번이나 용서해야 하나요? 일곱번 용서하면 됩니까?”
그런데요 여러분,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숫자 7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제가 아주 꼬맹이 시절 때 유치원 시절 때, 명절이 되면 시골에 내려갔어요.
시골이 전라남도 나주에요.
거기가 어디냐면, 차로 안막히고 세시간이에요.
하지만 막힌다면 기본 5-6시간이에요.
휴게소를 몇번 가잖아요? 10시간 이상 걸리기도 해요.
자, 그러면 유치원 꼬맹이 저에게 10시간은 클까요? 엄청 클까요? 엄청 커요.
그러면 엄마에게 물어봐요.
“엄마 숫자 몇까지 세면 집에 도착해?”
그럼 엄마는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숫자 100까지 세”
아주 애기였던 저에게 100이라는 숫자는요. 세상의 전부였어요.
숫자 10을 세기도 어려웠던 나이에요.
그러면 제가 손가락으로 숫자 100을 세면요.
지쳐서 잠들거나, 아니면 100까지 세면 진짜 집 근처까지 오기도 했어요.
꼬맹이 저에게 100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100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100이라는 숫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숫자였어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숫자 7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완전한 수를 가리켜요.
성경에서 숫자 7은 완전한 수 완벽한 숫자를 의미해요.
자, 그렇다면 오늘 베드로가 7번 용서하겠다는 말은 7번만 용서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베드로 나름대로 가장 완전하고 큰 수를 이야기한거에요.
오늘 너 착장 100점이야라고 말하면 만점의 의미를 가지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베드로 입장에서 7번의 용서는 무수히 많은 용서를 말하는거에요.
당시 랍비들은요. 세번만 용서해도 된다고 생각했대요.
그에 반해 베드로는 굉장히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거에요.
그런데요.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그래! 너말이 맞구나! 용서는 아주 많이 무한히 해야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세요.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겠습니다.
Matthew 18:22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원조 칠가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아주 당황시킵니다.
계산기도 없던 시절에 가뜩이나 7이 엄청 큰수라고 생각했는데,
곱하기 까지 활용해서 7곱하기 70번하라는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세요.
아니 일곱번이면 일곱번이지 거기에 왜 70을 곱하는건가요?
그럼 예수님이 용서를 490번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죠.
그럼 과연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해하기 어렵단 말이에요.
왜요?
용서는 숫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 제자들도 여러분과 같은 표정이었을거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 바로 이후에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세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죠.
일만 달란트 빚진자 이야기에요.
1달란트는요. 노동자가 6,000일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에요.
일만 달란트면 얼마나 큰지 대충 아시겠죠.
어떤 사람이 일만달란트를 빚을 졌는데, 갚지를 못하는거에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채권자를 찾아가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해요.
“저의 몸을 팔겠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팔겠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팔아서 갚겠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채권자가 이 사람의 딱한 사정을 들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냐? 성경에서는 이 사람의 모든 빚을 탕감해주었다고 말해요.
이야기의 흐름을 잘 따라와야해요.
지금 예수님이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다가 탕감에 이야기로 이어가세요.
용서와 탕감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보면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뜻이 같다는거죠.
즉 ,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는 용서받았다는 것을 의미해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은 일만 달란트를 빚진자를 탕감해준 것처럼 탕감해주라는 의미인거에요.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용서와 탕감은요. 숫자의 의미로써 그 죗값이 얼마나 크고 작냐? 에 문제가 아닌거에요.
예수님께서 일만달란트를 이야기 하신 것은요.
빚진자가 얼마나 많은 빚은 졌든, 그 빚이 이만 달란트든 십만 달란트든, 1억 1조 달란트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채권자가 그 빚을 없애주면, 용서해주면, 탕감해주면 그걸로 해결 된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는요.
이 종이를 우리의 마음이라고 해볼게요. 순수한 여러분들이니까 흰종이로 사용해볼게요.
너 나한테 50 잘못했으니까, 나도 너에게 50 상처줄게가 아니라.
또는 받은 50의 상처를 모른척 해줄게도 아니에요. 누군가 나에게 준 50의 상처는 그대로 냅두면 나에게 더 큰 병이돼요.
이 글자를 지우더라도 자국이 남아요.
여러분 사실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건 되게 무서운거에요.
내 마음에 이 상처가 계속 남아있거든,
받은 상처를 없애는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말을 조심해야 돼요.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항상 생각하고 말해야 해요.
우리 지난주에 절제에 대해서 배웠죠. 우리의 말도 절제해야해요.
우리 그렇게 우리의 입술을 지킬 줄 아는 중등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그러면 우리는 이 종이를 어떻게 해야합니까?
버리고 새로운 종이를 가져오는 거에요.
용서와 탕감은요. 이 종이를 버리고 새로운 종이로 갈아끼우는 것을 말해요.
아니 전도사님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런데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셨어요.
오늘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거에요.
우리의 죄가 크든 작든,
우리가 잘못한게 비록 우리가 갚을 수 없을지라도,
일만 달란트 그 이상을 빚지더라도,
너의 죄 때문에 내 온 몸이 갈기 갈기 찢어지더라도,
너의 모든 죄, 너가 갚을 수 없으니 내가 대신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짊어질게.
여러분 거짓말 죄에요. 말 함부로 하는거? 죄에요.
욕하는거? 죄에요. 친구 미워하는거?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탕감해주시고, 없애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신데요.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를 표현할 때,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해요.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용서 받고 탕감받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디 안에서요?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새사람이 됩니다.
그 말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가 용서 받고 탕감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장 먼저 교회에 붙어 있어야해요.
예배에 붙어있어야해요.
여러분 자리를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해요.
교회에 붙어 있고 예배에 붙어 있는 것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그런 사람이야 말로 예수님께 용서받고 탕감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용서 받고 탕감받은 사람은요.
누군가를 용서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사실 여러분 용서가요. 되게 어려워보여요.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용서가 힘들게 느껴져요.
왜요? 용서를 숫자로 보거든요. 크고 작은거로 보거든요. 용서는 탕감의 문제인데,
내가 받은 상처가 더 크면 용서하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오늘부터 용서하는 습관을 길러야합니다.
오늘부터 용서하는거에요.
용서할 일이 생기면 무엇을 생각해야할까요?
칠가이 예수님께 붙어있자.
칠가이를 보면서 누구를 생각해야 돼요?
예수님께 붙어있자.
나뭇잎이 나무에 붙어 있는걸 보면서 누구를 생각해야 돼요?
나도 예수님께 붙어있자!
바라기는 우리 중등부가 예수님께 붙어있어 내가 받은 용서를 깨닫고 누군가를 용서하고 탕감하는 중등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오늘도 두가지의 기도를 한번에 할거에요.
첫번째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지난 한주 알게모르게 지었던 거짓말, 나쁜 말들, 누군가에 주었던 상처들이 있었다면 용서해주세요.
두번째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누군가에게 지었던 잘못든 내가 그친구에게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그 친구가 상처받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도 누군가를 용서해주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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