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조직신학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63 views
Notes
Transcript

인트로

지난 주일에 제가 오후예배때 드럼으로 깜짝 출연해서 놀라신 분들이 좀 계신 것 같아요. 저도 정말 오랜만에 드럼으로 섬겨본건데 많이 좋아해주셔서 저도 기쁩니다. 드럼도 그렇지만 저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기타 반주나 드럼 반주로 섬긴 것도 있지만 제가 악기 연주를 정말 좋아하던 때는 제가 밴드에 들어가서 밴드로 활동했을 때 였습니다.
신학교에서 2학년 까지 마치고 휴학해서 사회복무요원, 다른 말로는 공익이나 방위라고도 불리는 대체복무로 있었을때, 일반 군대와 다르게 공익들은 토요일 일요일은 쉬거든요. 이 때 취미활동을 하나 하면 좋겠다 해서 악기 연주를 막 배우시 시작한 6명과 함께 2017년 여름에 밴드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얼떨결에 제가 밴드에서 리더를 맡게 되어서 여러가지 조율도 하고 공연도 기획하고 했었는데요, 지금은 밴드 활동은 안하지만 그 때 멤버들하고 지금도 연락하고 제 결혼식 때도 찾아와주고 그랬는데,
한번은 밴드 멤버들이 저한테 제가 리더를 맡아줘서 너무 다행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저는 “엥? 뭔소리지?” 싶었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굉장히 소심하고 내향적이다보니까 리더를 맡는다고 해도 막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팀을 이끌어나가는 그런 리더가 아니라, 그냥 교회에서 중고등부나 청년부에서 으레 전도사 간사들이 그렇듯이 서로 갈등이 생기거나 싸울 것 같으면 중재해주고, 의견을 잘 못내는 친구들이 있으면 연락해서 꼭 의견을 들어주고, 심적으로 힘든일이 있는 멤버한테 전화해서 얘기 들어주고 한거 밖에 없는데, 이 친구들이 음악을 계속 하다보니까 그 정도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다 음악하는 사람들이고 또 젊은 사람들이다 보니까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기 색채들이 강하다보니까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저희 밴드에서 했던 것처럼 자기들이 다른 밴드에 가서 중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내심 기뻐했던 적이 있는데요.
반대로 저는 원래 음악을 아주 가벼운 취미로만 즐기고 음악을 좋아한다, 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사람이다 보니까, 제가 교회에서 드럼을 치거나 기타를 치거나 할 때 딱히 기뻐서 한다기보다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 가까웠던 적이 많습니다. 제가 중고등부 때는 “야 상우야 본당 2부예배 때 드럼이 없다. 너가 와서 쳐라”하면 “넵”하고 달려가서 둥당둥당 거리고. 사역하고 나서는 “전도사님 피아노 반주자가 없어요 와주세요”하면 “네엡”하고 달려가서 또 둥당둥당 하기만 했었는데, 제가 밴드할 때 저와 함께 했던 멤버들은 음악을 아주 사랑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를 막 즐거워서 연주를 하던 친구들이었어요. 그 때문에 반대로 저도 그 친구들한테 영향을 참 많이 받았는지 밴드를 시작한 이후로는 교회에서 반주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기쁜 일이 되어서 “악기로도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구나”라고 정말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도와 선교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설교의 제목이 하나님의 선교인데, 저희가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행하는 모습이 바로 이와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단순히 믿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끔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변화도 있지만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나 혹은 사회에 따라서 교회 또한 변화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의 진짜 모습입니다. 세상과 타협해야한다 라는 말씀이 아니구요 더 좋은 선교 더 좋은 예배 더 좋은 믿음의 역사를 위해서 교회와 사회가 모두 변화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선교와 전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용어 정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전도는 Evangelism이라고 하는 영어단어에서 왔는데요, 이 Evangelism은 헬라어로 기쁜 소식을 뜻하는 “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다 라는 뜻의 “εὐαγγελίζομαι”(유앙겔리조마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전도라고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선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선교는 영어단어 Mission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왔는데요, 이 Mission이라고 하는 단어는 보내다 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Mitto라고 하는 동사가 missio라고 하는 명사로 변형된 형태에서 온 것입니다. 이 라틴어 단어는 원래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인 단어입니다. 군대를 보내다 할때에 쓰이던 단어인데, 그러다보니까 기본적으로 선교는 “보냄, 파견, 임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기를 전도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고, 선교는 전도 + 봉사활동과 같은 섬김을 포괄하는 단어, 그리고 전도는 국내에서 하는 복음 선포고 선교는 해외에서 하는 복음 선포 이런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교회에서 교회를 섬기는 이들을 전도사라고 하고, 해외에 파송하는 분들을 선교사라고 저희가 많이 부르고 있는데, 이 러한 구분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희가 전도와 선교를 이렇게 ‘만’ 생각하는 것은 그 본래의 뜻을 많이 축소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함께 전도와 선교는 무엇인지, 특히 선교를 중심으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전도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복음 선포라고 말씀드렸죠? 어떤 복음이죠? 당연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복음이고 이것을 선포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John 3:16 NKRV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세상 가운데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Mark 16:15 NKRV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시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만민에게 전도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전도의 대상은 국내에 한정되는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전도의 대상 역시 천하 만민이기 때문에 국내와 해외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럼 반면에 선교는 무엇일까요? 먼저 여러분 선교는 교회나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 선교가 보내다, 보내는 것 이라고 말씀드렸죠? 보냄을 받은게 아니라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John 20:21 NKRV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신 말씀인데, 먼저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이 “보내다”라는 말도 선교하고 똑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보내셨죠?
Acts 1:8 NKRV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면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교입니다.
그럼 어떤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냐? 또 복음전도하는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제가 말씀 전해드릴 때 언급했는데,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이 하나님 스스로의 관계 맺으심과 또한 저희와 관계맺으시고, 모든 피조물과 관계 맺으시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가 바로 이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상과 관계 맺으실 때에 저희를 보내셔서 관계 맺으시는 것을 바로 선교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성부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성자 하나님의 구원하시고,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 그 모든 사역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보내시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교회의 선교

또한 전도는 이 선교의 핵심이 되는 것으로 선교가 단순히 복음전파 + 봉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가 봉사하고 섬기고 교회가 하는 모든 일에 근간이 됩니다.
먼저 창조의 사역부터 보시면,
제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드렸을때,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린바가 있는데, 바로 그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Isaiah 58:12 NKRV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저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다시 회복하고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피조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창조가 회복되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사야서 말씀처럼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고 무너진 곳을 보수하기 위해서 교회가 보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Romans 8:21 NKRV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썩어지고 파괴되어가는 환경의 종 노릇하는 피조물들을 자유롭게 하는 일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내심을 받는 것이 창조를 위한 선교입니다.
둘째로, 구원의 선교는 앞서 본 복음전도로 저희가 살펴보았지요?
Matthew 28:18–20 NKRV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이제 열방의 민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셔야하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니까 누군가는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잖아요? 바로 이 “가서” “보내져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구원의 선교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통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의 선교는 저희를 온전하게 하셔서 봉사하게 하시는 선교입니다.
Ephesians 4:11–12 NKRV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각자가 다 다른 영역에서 저희는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알바를 하는 청년들이 있고, 직장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저희들을 온전하게 하셔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시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즉 교회를세우는 일을 하게끔 저희를 보내십니다. 세상 속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하지만 그냥 봉사하는 일이 선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즉 복음을 그 안에 품고서 세상 가운데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 선교입니다.

공적 선교

제가 지난번 말씀에 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것이 교회다 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생각해보면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주일 예배에 모이기를 힘쓰고 속회에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예배드리고 서로 잘 교제하고 하는 것을 잘 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반대로 오늘 저희가 함께 본 선교에 대한 말씀처럼 교회 밖으로 보내지고 교회 밖으로 나가기에 힘쓰는 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보다 적은 것 같아요.
단순히 노방전도를 많이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아니면 그냥 몸만 교회밖에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오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교회 밖에 딱 나가면 사람이 바뀌어서 그냥 평벙한 직장인 사업가 학생 주부가 되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물론 저희가 직장에서 일해야하는 성경만 읽고 있으면 그것도 좋은 모습이 아니고, 학생이 공부를 해야하는 수업 중간에 갑자기 찬양을 부르고 있으면 그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지요. 하지만 저희는 언제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보내지는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1 Corinthians 10:31 NKRV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저희들은 항상 선교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또한 ‘그리스도인이기만’ 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학생이고 직장인인 것이 저희의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9장 말슴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면서 또한 다른 모습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데요, 먼저 19절 말씀을 보시면
1 Corinthians 9:19 NKRV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다라고 하는 말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저희는 하나님께서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높거나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 종이 된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직장에 있으면 상사가 있고 학생이면 선생님 있는 것처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본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또한 나타냅니다.
20-22절을 보시면
1 Corinthians 9:20–22 NKRV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사도바울이 그렇게 율법율법 하지 말라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처럼 된 것이 율법 잘 지키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있고, 율법없는 이방인들처럼 또한 율법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도에 있지만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구요,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이 당시에는 굉장히 천한 노동자로 여겨지는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것으로 약한 사람처럼 여겨졌는데, 나름 로마 시민이고 저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두고서도 돈 못버는 노동자처럼 일했던 것은 그와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자 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같이 23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1 Corinthians 9:23 NKRV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선교를 위해서는 저희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야합니다. 먼저는 여러분들이 계신 그곳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임과 동시에 여러분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함으로 살아가야만이 진정으로 복음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선교가 됩니다.
또 반대로, 원래 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서도 되어보는 것이 또한 선교입니다. 사도바울이 원래 유대인이면서 이방인같이 되고 약한 자의 모습처럼 되었던 것처럼 저희도 저희가 있는 그 자리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서 단순히 “예수 믿으세요”하고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그사람의 모습이 되는 것으로 복음을 전할 수도 있어야합니다. 그냥 말로만 “예수 믿으세요”하면 특히나 점점 개인주의화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대체 당신이 나한테 뭘 해주고 누구길래 나한테 그런 소리하는거야?”하는 대답을 듣기가 일수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위해서 다른 모습이 되었던 것처럼, 그냥 나만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서 복음을 전할 수도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한반도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 중에 James Scarth Gale이라고 하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땅을 밟았지만 이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그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행보를 보인 것 중에 하나는, 이 사람은 정말로 조선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주 큰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예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 보내심을 받은 저희 또한 그 자리에 합당한 모습으로 있어야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보내심을 받아서 보내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교회를 세워 모이기 힘써서 그냥 같은 모습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선교사들이 되어야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냥 해외에 선교를 나가거나 교회 밖에서 봉사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쓰임 받기 위해서 보내지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 사람이 해주겠지”하고 맡기면 끝나는 것이 아니구요, 저희 모두가 선교사가 된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합니다.
둘째, 선교의 중심에는 반드시 전도가 있어야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 없는 봉사는 그냥 자원 봉사지 선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중심에 복음이 들어있는 것처럼 저희가 세상에 파송되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역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가 들어있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선교는 그리스도인임과 동시에 선교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전히 저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구별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방인의 모습이 되었던 것처럼, 제임스 게일 선교사님이 조선인의 모습이 되었던 것처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혹은 내가 모르는 복음이 필요한 자리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해서 조금더 복음에 참여하고자 힘쓰는 것이 선교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저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희 안에 품고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선교에 힘쓰고 선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과의 모습으로 함께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