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남기다(출1:22-2:10)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2 views
Notes
Transcript
일시 : 2025년 2월 5일 수요일
제목 : 믿음을 남기다
본문 : 출애굽기 1:22-2:10
1. 우리는 누군가의 다음세대이며, 누군가의 영적 부모가 됩니다.
1)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저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며 이해되지 않았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점이 무엇이냐면, ‘고작 일병 하나 구하려고 목숨을 건다고?’ 였습니다.
이 영화는 밀러 대위와 그의 병사 8명이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는 여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상황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직전에 이들은 매우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고,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이미 충분히 지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라이언 일병 하나 구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하는 과정 중에 사망자도 발생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도 ‘한 명 구하려고 8명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더요, 이들은 라이언 일병은 일면식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이 봐도 ‘그럼 뭐하러 일병을 구하러 가나?’ 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법하지 않습니까?
여하튼 이들은 라이언 일병을 만납니다. 이제 밀러 대위와 그의 병사들은 ‘끝났다!’ 라고 생각했지만, 변수가 생기죠. 라이언이 자기와 함께 지역을 지키던 동료를 두고 자기 혼자 못간다는 겁니다. 그 한 마디에 결국 밀러 대위와 그의 병사들은 함께 목숨을 걸고 지역을 지키게 됩니다.
만약 이들이 자기의 임무만 생각했다면 결코 함께 남아 지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순간 나라를 생각했고, 서로 일면식 하나 없는 사이였지만 이들은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팀이 되어 완벽하게 지켜냈습니다.
2) 우리는 혼자가 아닌, 예수로 하나된 팀이다!
저는 오늘 ‘하나님을 만난 구약의 사람들’. 구약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모세의 부모’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부모가 아닌데?’, ‘나는 자녀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실까 마음에 걸림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나도 누군가에 다음세대였고, 날 위해 기도해주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이 계셨기에 내가 여기에 있고, 또 이제는 누군가의 영적 부모가 되어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 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모세의 부모든, 모세의 고모할머니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는 나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밀러 대위와 병사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들과 하나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으로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속에서 멋지게 신앙 생활해 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의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부모와 자녀 관계를 넘어 신앙의 선배로써 우리는 어떤 믿음을 다음세대를 향해 남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먼저는 내 믿음이 정말 성경적으로 잘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며 결단하는 그런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2. 모세의 부모, 그들의 믿음.
1) 모세의 부모가 한 일 : 숨기고 보내다!
먼저 우리는 모세의 부모가 한 일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장 2절과 3절입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들이 한 일은 숨겼고, 나일 강 가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한 아이를 숨겨야 했고, 또 나일 강 가에 두어야 했을까요?
이스라엘의 후손 70명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인도를 받아 애굽의 고센 지역에 들어가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400여 년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애굽을 집권하게 되는데, 이때 새로운 왕조의 눈에 히브리인 수가 너무 많은 겁니다. 그는 평소 염려와 걱정이 많았던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늘어나는 히브리인들의 수를 보며 ‘폭동이 일어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의 수는 쉽게 줄지 않았고, 이에 더 많은 노역과 더 많은 핍박을 가해도 히브리인의 수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런 정책을 내어놓습니다. 1장 22절,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남아가 태어난다면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이 시각 모세의 부모는 간절했을 겁니다. 여아가 태어나길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 손에 쥐어진 아이는 애석하게도 이제 곧 나일 강 가에 던져져야 할 남자 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아이를 쉽게 던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2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아이를 던질 수 없었던 이유는 그저 ‘잘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 자식은 원래 이뻐요. 어떻게 생겼든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뻐 보이죠. 그러니 ‘잘생김’은 객관적인 절대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주관적인 마음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이 ‘잘생김’을 기록하고 논한다는 것은 정말 외적으로 잘생겨서 살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솔직히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잘 생기면 또 얼마나 잘 생겼겠습니까? 결국 이 아이의 잘생김은 ‘내면의 아름다움’에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이 아이를 3개월 간 숨겨 키우게 한거죠.
그런데 3개월이 넘어가니 숨겨 키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방음 하나 잘 되지 않는 시대였을테니 점점 커져가는 이 아이의 울음 소리를 숨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결정합니다. 이 아이를 위한 갈대 상자를 만들고, 아이를 넣어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기로 말입니다.
2) 믿음으로 숨겨 키웠고, 믿음으로 갈대 상자에 넣어 두었다!
사실 이들의 모습은 특별했습니다. 당시 정책은 ‘아들은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남아들이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키웠고, 이 모습을 히브리서 11장 2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 때문이라 말합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보았고, 그 안에 특별함이 숨겨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당시 가장 강력한 왕,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던 바로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를 숨겨 키우기로 결단한 겁니다.
그렇다면 3개월 뒤 나일 강 가에 둔건요? 그땐 믿음이 없어졌고, 바로 왕의 명령이 두려워졌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갈대 상자를 원어 성경은 ‘테바’라는 히브리 단어를 사용해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갈대 상자를 포함해 성경에 딱 두 번 사용됩니다. 그 다른 한 번이 바로 노아의 방주 입니다.
모세의 부모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갈대로 상자를 만들면서, 이 상자가 ‘아들을 위한 구원의 방주’가 될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만든 상자에 3개월 간 숨겨 키운 아이를 넣은 것입니다. 결국 아이를 키운 것도, 갈대 상자에 넣은 것도 전부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3) 믿음의 결과 : 모세, 생명을 얻다!
그 믿음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때마침 목욕하러 나일 강 가에 나온 바로의 딸이 갈대 상자를 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장 첫 번째 위기가 들이 닥칩니다. 바로의 딸이 이 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6절,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우리는 아무리 갓 태어났다 해도 한국 아기와 미국 아기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적이 다르면 외적으로 티가 난다는 겁니다. 바로의 딸은 아이를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얘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버려진 히브리 사람이구나!’
바로의 딸은 아버지의 명령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살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시 갈대 상자에 넣어 보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이 때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등장하죠. 이것이 두 번째 위기가 됩니다. 히브리 아이 앞에 히브리 사람이 등장합니다. 생각이 있다면 지금 이 타이밍에 미리암은 등장해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의심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심지어 곧장 세 번째 위기가 이어 찾아옵니다. 7절 입니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히브리 아이 앞에 히브리 사람이 등장해 히브리 유모를 데리고 오겠다 합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이 이상하다 느끼지 않겠습니까? 목욕하러 나왔는데, 왠 갈대 상자가 있고. 그 안에는 꽤나 자란 히브리 아이가 들어있었는데 때마침 그 앞에 히브리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곤 히브리 여인 중 유모를 데려오겠다 말하는 이 상황이 당연히 의심되지 않겠습니까? 조금 더 생각해 볼까요? 젖을 주려면 시기적으로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된 여인이어야 합니다. 히브리 여인이 데려올 히브리 유모, 히브리 아이의 엄마라고 충분히 의심해 볼법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로의 딸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라고 말하며, 이 노골적인 설계를 응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름이 생깁니다. 물에서 건져냈다라는 뜻의 모세라는 이름이 생기죠. 부모의 믿음은 아이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심지어 내 아이를 키우는데 양육비까지 받으며 말입니다.
3.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은..
1)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 : 1.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위해, 또 우리의 다음세대를 위해 모세의 부모와 같은 본이 되는 믿음이 먼저는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 번째,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입니다.
바로는 이 세상에 하나님 백성이 많아져 가고, 소위 덩치가 커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살 정책을 펼쳤죠.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도 헤롯이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학살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는, 즉 사탄이 지배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다음세대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고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로 커 가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해 옵니다. ‘그렇게 키우면 망한다. 그냥 나일 강 가에 던지라’ 고 말입니다.
세상엔 수많은 가치관들이 있고, 또 그 수많은 가치관 때문에 우리는 걱정하고 두려워 하며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라는 나일 강에 던져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바로와 헤롯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사단이 하는 거짓말에 두려워 떨지 마십시오. 세상의 지혜에 이끌려 나일 강에 던져 버리지 마십시오.
모세의 부모는 바로의 명령을 어겼지만 모세는 죽거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선택했지만, 믿음대로 하나님께 맡긴 이들의 선택에 하나님은 책임져 주셨습니다.
2)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 : 2. 하나님의 계획엔 실수가 없다!
또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모세의 잘생김, 즉 내면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했습니다. 그 계획이 나일 강에 던질 수 없음을 확신케 했죠.
우리의 자녀, 우리의 다음세대는 그저 주어진 생명이 아닙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뜻과 계획 속에서 우리에게 찾아온 한 영혼, 한 생명입니다. 비록 지금은 작디 작은, 또 연약한 아이라 할 지라도, 때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겪고 있다 할 지라도,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모든 이들 안에 하나님의 계획과 꿈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 유년부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 질문에 당연히 게임이나 친구 정도가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이런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이요!’ 너무 놀라 물었습니다. ‘왜 예수님이라 대답했니?’ 그 친구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에 늘 예수님이라 대답했어요.’
이 친구들이 아직도 어려 보입니까? 너무 어려서 모를 것 같습니까? 아니요. 이들이 어려서 모른다 생각하는 건 우리의 생각 아닙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지혜로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런 하나님의 꿈을 보게 합니다. 믿음의 부모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다음세대를 품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돕는 믿음의 선배가 되어 주십시오. 온통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는 이 세상에, 세상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우리의 다음세대가 자라갈 수 있도록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는 선배님들 되어 주십시오.
3)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 : 3.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하신다!
또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하실 것이란 확신이었습니다. 물론 이 확신에는 부모의 최선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렇게 기도한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싶습니다.’ 이 제목으로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공부는 하지 않구요. 물론 하나님은 제가 공부하지 않아도 수석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 없이 얻는 결과는 교만을 이끌어 낼 수 있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행하지도 않으십니다. 수석으로 졸업하고 싶다면, 저는 그만큼 노력해야 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3개월 간 숨겨 먹이고 재우고 돌봤습니다. 3개월이 지나 더 이상 키울 수 없다 판단이 되자 갈대로 상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갈대 사이에 두기 위해 바로의 딸이 목욕하는 장소와 시간을 확인해야 했고, 근방에 누나 미리암을 대기시키기도 합니다. 아마도 미리암에겐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수없이 가르쳤을 겁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곤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있어서 부모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4) 모세의 부모가 가진 믿음 : 4.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바로의 명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시기로 계획하셨다면, 그 계획을 감히 바로가 어찌 막겠냐는 겁니다.
나일 강 가에 갈대 상자를 두는 것도 그렇습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는 장소, 시간 등 모든 것을 확인했지만 사실 여기까진 그저 인간의 계획 아닙니까? 갈대 상자를 두긴 두었는데, 만약 바로의 딸이 오지 않는다면요? 만약 바로의 딸이 발견했지만 아이를 죽이라 명령했다면요? 인간의 계획은 완전하지 않아서 언제든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나일 강 가에 갈대 상자를 두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신뢰했기 때문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시며 무엇 하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자녀를 양육하다가 낙심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바로의 말처럼 나일 강 가에 던지는 것이 더 맞는 것 같고, 옳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내 자녀가 망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또 반대로 부모로써 열심을 다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이 아이가 자라도록 최선을 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나 저러나 절망하고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최선이 있다면 이제 결과는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물을 주고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십니다.
4. 믿음의 본을 보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향해 자신의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가 모세, 즉 물에서 건짐받은 구원자의 이름을 부여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면 모세는 나일 강에 던져져 죽어야 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한 부모의 믿음이 이를 놀라운 모습으로 뒤바꾸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었던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 역시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믿음을 지켜, 믿음의 본을 보이려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남겨 주어야 합니다. 남길 게 없어 믿음이라도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야 말로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값지기 때문에 남기려 힘쓰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모세의 부모가 보인 믿음의 본이, 오늘 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이들의 삶 가운데에도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는 그러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 요게벳의 노래(후렴)
- 믿음이 연약하다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내게 굳건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강건함을 허락해 달라 기도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낙망하고 좌절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내 최선 넘어 하나님의 최선이 맺게 하실 열매를 기대하는 소망을 허락해 달라 기도하십시오.
모세의 부모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내 삶의 참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끄실 것을 말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나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게 하소서. 나의 믿음이 날마다 강건하여 지게 하시옵소서.
-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산성 되시며 요새 되시고 소망이며 힘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 소망을 두어 나아가는 그러한 가정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가정에 있는 기도제목이 우리의 믿음 위에 세워져 가는 기도의 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요게벳의 노래(후렴)
- 이어진교회의 다음세대와 겨울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이번주 있을 초등부 겨울 성경학교와 그리고 남은 유년부와 청년부의 겨울 사역이 함께 기도하는 이들의 믿음에 준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나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주제로 성경학교를 준비하고 또 참여하는 초등부가 삶의 참 주인 되시며 참 부모 되시는 하나님 손에 맡겨져, 담대함으로 믿음을 고백하고 자랑하는 그러한 시간이 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