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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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최종석 장로님
오늘 본문은 단 지파 다섯명의 정탐꾼이 라이스라는 지역을 정탐하고 난 후, 단 지파가 그 땅을 점령하기로 결정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라이스라는 지역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고자 하는 단 지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호수아 19장 40절 이하에서 단 지파 기업 분배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 본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래 라이스라는 지역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단 지파가 라이스 지역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기로 결심하고자 하는 모습은 외부적인 정황과 단 지파 안에서의 내부적인 동기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외부적인 정황부터 살펴보자면, 18장 1절에 나와 있듯이, 단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후,
각 지파별로 기업을 차지해 나가야 하는 사사시대에 넘어와 여전히 자신들이 거주할 기업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삿1장 35절에 나와 있듯이, 아모리 족속이 단 지파를 산지로 몰아 넣어, 골짜기로부터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가나안 족속 사람들과 대치속에서 단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업을 얻고자 2절에 나온 바와 같이 정탐꾼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단 지파 정탐꾼들은 미가의 집에 유숙하면서 미가가 자신의 제사장으로 세운 레위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3절에서 음성을 알아들었다는 표현을 통해 이들은 원래 레위 청년을 알고 있는 사이인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이 되었다는 레위 청년의 말 한마디에 단 지파 정탐꾼들은 과연 그 청년이 제사장으로서 적합한 자이자 자격을 갖췄는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의 땅을 정탐하러 가는 자신들의 길이 어떨지 하나님께 물어봐달라고 합니다. 이는 이들이 얼마나 이 레위 청년을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때 레위 청년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실한 제사장이었다면, 단 지파 정탐꾼들에게 마땅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가나안 족속을 물리쳐 허락하신 기업을 차지하러 가야 한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레위 청년은 단 지파 정탐꾼들이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으니 평안히 가라는,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인사치레의 형식적인 말로 축복하고는 이들을 보냅니다.
이러한 축복속에 단 지파 정탐꾼들은 라이스라는 지역에 도착하게됩니다. 라이스라는 지역을 살펴보니, 그들의 눈에 너무 만족스러움을 느낍니다.
이에 단 지파 정탐꾼들은 레위 청년의 말을 떠올리며, 아마도 레위 청년이 축복한대로 여호와께서 은혜로 인도하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과 정황이 있다 하더라도, 라이스를 차지하고자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오늘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단 지파 사람들의 내부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면, 단 지파 정탐꾼들이 라이스 지역을 기업으로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기준은 ‘시돈 사람들’입니다.
시돈 사람들은 사사기 3장 1-3절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께 순종하는지 시험하시려고 남겨두신 이방 민족중에 한 족속입니다.
그러나 3장 6절에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께서 남기신 가나안 족속과 통혼을 하고 그들의 신을 섬겼다고 나와 있듯이, 단 지파 사람들도 아마 시돈 사람들의 문화를 잘 알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정탐꾼들이 라이스 땅을 보아하니 평소에 자신들이 동경하던 시돈 사람들의 화려함과 부유함을 갖추고 있음에 먼저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이 매우 매력적이고, 마음이 생기니 이를 차지하기 위한 명분을 찾게 됩니다.
그 명분은 바로 7절 하반절에 나와 있듯이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지역이 다른 가나안 족속과 섞여 살지 않기에 민족적으로 어떠한 문제나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합니다.
결국 단 지파 사람들이 이 땅을 차지하여 라이스 땅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을 몰아내기만 하면,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 시돈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은 아니니 괜찮을 것이며,
이방 족속과 교류도 하지 말고 그들의 문화를 본받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크게 위배되지 않기에 그들에게 있어 매우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땅에 마음을 품은 정탐꾼들은 돌아와 하나님이 그 땅을 넘겨주셨다라고 까지 말하면서 그 땅을 차지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원래 단 지파가 그때까지 가나안 족속에게 막혀 자신들에게 할당된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은,
본문 1절에 ‘그 때에 왕이 없었으므로’라는 표현이 증명해 주듯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 자신들에게 허락된 기업을 차지하고자 한다면, 먼저 여호와 앞에 자신들의 불신앙을 고백하고 도움을 구하며,
그 기업을 차지하도록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였으나, 그러한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삿1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민족이 각 지파별로 자신들이 받은 기업을 차지하기 위하여 먼저 여호와께 묻고 도움을 구하는 것과 다르게, 단 지파는 여호와께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레위 청년에게 묻습니다.
이는 이미 가나안 족속이라는 큰 장벽 앞에서 현실을 타협하고 자신들이 누릴 이익을 쫓아 가고자, 자신들이 신뢰하고 이해관계에 있는 자이며,
비록 표면상이지만, 청년에게 있는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갖는 권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지지와 위안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에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라이스 지역을 기업으로 삼고자 차지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라는 명분으로 포장하여 정당화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단 지파의 정탐 과정의 모습은, 민수기13 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모습과 대비가 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에 모습은, 친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곳에서도 임재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으며, 약속하신대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한 땅임에도, 그곳에 거주하는 아낙 자손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그 땅을 악평하며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반면,
오늘 본문에서의 단 지파 정탐의 모습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임재와 뜻에는 전혀 상관 없이 적극적으로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려고 합니다.
결국, 기업을 차지한다라는 측면에서 단 지파는 어떻게 보면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고, 어느 정도 순종하였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안주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점에서 그저 자기 만족에 따른 착각이자 스스로를 속이는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들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자 자녀로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신 아버지의 뜻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안에서 자녀 삼으신 자들을 통해 아버지의 나라를 온전히 세워나가시기를 기뻐하시는데, 이를 위하여 이 세상을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기업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이라는 큰 벽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곳에서 빛으로 거룩히 구별되어 아버지께서 살아계심과 아버지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온전한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단 지파 사람들처럼, 수많은 아버지의 자녀라고 하는 자들이 세상이라는 큰 벽이 두려워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따라 살아가려기보단,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채 주어진 현실 속에서 계산하고 타협하며 살아 가려고 합니다.
단 지파의 신분이 여호와의 백성이었지만, 시돈의 문화를 동경하고 마음에 품었던 것처럼, 아버지의 자녀라는 신분임에도 세상의 문화와 사상, 풍조에 쉽게 휩쓸려 자신이 누릴 이익과 유익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단 지파 사람들이 시돈사람들과 같이 문화를 누릴대로 누리면서 시돈과 거리가 머니 괜찮다고 안주한 것처럼,
세상의 문화를 다 누릴대로 누리고 있지만,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하고 있으니 스스로 괜찮다고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논리와 사상의 흐름을 따라 이미 자신이 꿈꾸고 전제해놓은 여러 욕심들이 자신과 이해 관계가 맞는 사람들의 지지와 동의를 얻고,
또한 여러 사건들과 정황들이 맞물려 결국에 성취되면, 단 지파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치 그것이 아버지께서 인도하시고 은혜 베푸신 것이라고 함부로 치부하는 교만을 보입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를 믿으면 아버지께서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복을 받을 것에만 매몰되어, 자신의 삶 속에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순종하려기보단,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정황들을 아버지의 은혜라는 명목하에 이미 자신이 전제해 놓은 욕심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당한 근거로 삼아 합리화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은 우리에게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살아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사기 기자는 분명하게, 그 때에는 왕이 없었으므로 라는 표현을 통해 이는 진정한 아버지의 통치를 받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 지파가 보이는 신앙적인 아둔함과 어리석음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고 점검해야만 합니다.
바라기는 진정한 왕이신 아버지의 통치를 받아, 우리에게 기업으로 맡기신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사탄의 유혹과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고,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늘 분별하며,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세상을 두려워 하고 현실을 타협하여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보단,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기업인 세상속에서, 오직 아버지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먼저 분별하고 순종하기를 힘쓰는 우리들이 되게 해달라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하는 부교역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새음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주신 은혜에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아픈 환우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