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뒤집힌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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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꾸로 뒤집힌 세상
본문: 누가복음 1장 26-56절
주제: 처녀 마리아의 메시아 임신을 통해 새로운 질서의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신다.
[서론]
오징어 게임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이들의 게임을 통해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생존경쟁을 잘 표현했기 땨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징어 게임 2가 나왔습니다.
이번 편은 전편과 좀 다릅니다.
극 중의 주인공은 단순히 상금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부조리한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게임을 운영하는 시스템만 무너뜨리면 끝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까지 설득해야 합니다.
돈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욕망도 점점 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아릴적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밀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정치, 경제, 교육, 직장 할것 없이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요?
단순히 제도를 개혁하는 것만으로 인간 사회의 본질이 바뀔 수 있을까요?
예전에 제가 담당했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며 정치가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사회 제도를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좋은 뜻이라고 칭찬했지만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거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제도의 변화만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로 우리는 이미 정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소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본론]
첫째, 새로운 시대가 이미 열렸습니다.
누가복음 1장 31 절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탄생 이야기를 가장 먼저 기록합니다.
왜일까요?
죽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이미지가 바로 출생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죽어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역사를 보십시오.
오랫동안 이방 나라들의 지배 아래 고통받았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기를 거쳐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400년의 시간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그 날만을 고대하며 살아갔습니다.
그 긴 침묵을 깨고, 하나님께서 다시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신저인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납니다.
그는 두 아이의 탄생을 예고하며, 뭔가 새로운 역사가 다시 시작됨을 알립니다.
첫 번째는 세례 요한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던 중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천사는 그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전하지만 제사장 사가랴는 믿지 못합니다.
이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보기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인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이야기를 아는데도 믿지 못합니다.
그의 불신으로 인해 그는 일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태가 끊어졌는데도 기적적인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출생이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 말라기 3 1 절이 성취된 순간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다."
침례요한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탄생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시골 처녀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찾아온 천사는 마리아에게 다짜고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천사는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그녀가 한 아이를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영원한 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7 14 절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시골 처녀의 몸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왕,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나올 아이의 특별함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에도 드러납니다.
마리아가 인사를 하자마자 뱃속에 있는 침례요한이 기뻐서 뛰놉니다.
또한 사가랴의 부인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알아봅니다.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즉 신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황제만 사용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칭호가 지금은 시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께 주어진 있습니다.
온 세상을 통치하실 진정한 왕이 탄생한 것입니다.
인간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왕이 통치하는 새로운 시대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라고 말하면 죽어서 가는 천국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죽어서가는 천국이 아닌 이 땅에 임할 천국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복음을 굳게 믿고 있습니까?
오징어 게임 같은 세상 속에 과연 천국이 임한다는 사실이 믿기십니까?
복음이란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이미 천국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대는 우리가 기대하는 화려한 왕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 여인의 삶 속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방식대로 오지 않습니다.
위대한 권력자 한 사람이나 완벽한 제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시골 처녀의 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작고 초라한 시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별한 시작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사가랴와 마리아의 비교입니다.
사가랴는 유대 지방의 제사장으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반면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의 무명의 처녀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사가랴가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을 맡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게 일하십니다.
사가랴는 경건한 제사장이었지만,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반면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불가능한 소식을 듣고도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사람의 배경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 원리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작고 연약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마치 겨자씨처럼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변방 갈릴리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작고 연약한 자들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십시오.
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특히 여성들이 주인공입니다.
그 당시 여성은 한낮 남성의 재산 정도로 여겨지던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스펙이나 배경이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과 순종 위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겉보기에는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가치와 질서를 뒤집는 역전의 나라입니다.
셋째,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이룹니다.
46-56절입니다.
마리아의 찬송이 등장합니다.
마리아가 찬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비천한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시골 무명의 처녀가 하나님 나라의 왕 메시아를 낳는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이 찬송시에서 비천한 자는 마리아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48절의 여종의 비천함이 54절에서는 자기의 종 이스라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메시아 왕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왕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즉 마리아와 같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리아 찬송시의 핵심은 역전, 반전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십니다.
대신 세상에서 비천한 자들을 높이시고, 주린 자들을 배부르게 하십니다.
메시아 왕이 혁명을 통해 사회를 위 아래로 뒤집어 엎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찬송시는 이러한 정치적 메시아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메시아 왕 예수님은 로마를 힘과 권력으로 뒤짚어 엎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고 연약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가치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세상 가치관의 역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치있다고 여긴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쓰레기가 되고, 반대로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돈과 높은 지위와 같은 탐욕을 향해 내달릴때,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정직과 자족, 겸손과 섬김의 삶입니다.
남들이 높아져 이웃을 짓밟고 지배하려 할때 오히려 나는 낮아져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들이 로또, 부동산, 주식, 코인 등으로 불로소득을 얻으려 눈이 뒤집힐때 나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돈과 힘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정의와 자비의 가치들을 세워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한 사람의 참혹한 희생이 온 세상에 생명을 주는 역전,
한 사람의 가장 낮은 겸손이 가장 고귀해지는 가치의 역전,
거짓과 속임수가 만천하에 드러낸 진리의 역전입니다.
우리가 역전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들임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들이 바로 그 일터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도전하십니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의 세상처럼 한없는 욕망과 경쟁, 그리고 부조리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시스템을 뒤집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히 시스템뿐만 아니라 부패한 사람의 내면을 뒤집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리아라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를 통해 메시아가 오셨고, 세상의 가치를 뒤집는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욕망으로 치닫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은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도 이러한 역전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욕망과 경쟁을 부추길 때, 우리는 정직과 연합, 겸손과 섬김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이 부와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길 때, 우리는 정의와 사랑, 희생과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과 가정, 공동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낼 때,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가장 강력한 역전의 상징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가장 처참한 패배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는 승리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할 때,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역전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역전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자리에서, 작은 겨자씨 같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우리 함께걷는교회 식구들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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