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믿음[창3:8-15]

레브 청년교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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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악과 이슈

수 천년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어쩌면 가장 오래되었으면서 이제는 가장 진부하다고 생각되는 이슈는 바로 ‘죄’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이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라는 질문부터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라는 것을 두어서 사람이 유혹을 받게 하셨는가? 라는 질문까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이슈에 대해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며 접근할 수 있겠는데요.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고민은 지금까지도 회자될만큼 중요한 사건이 바로 선악과 사건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난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고민하며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를 분명히 회복하는 저와 우리 청년교구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2. 직접들은 말씀

오늘 함께 나눌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장 1절에서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여기서 간교하니라의 하니라는 히브리어로 ‘하야’라고 하는데요. 그런 특성이 있다, 발생하다라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셨다고 하지 않고, 타고난 특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바로 앞절인 2장 25절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후 그들의 특성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지 않았지만 서로가 부끄럽지 않았다고 하죠.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힐 것이나 감출 것이 없고, 죄를 짓지 않으므로 주님과 분명한 관계에서 살아가던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감출 것이 없는 상태에서 뱀이 등장 합니다. 그리고 창 2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셨던 말을 그의 입으로 하와에게 다시 되묻는 것이죠. 하와는 하나님께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지 않았거든요.
그러면서 하와는 3장 3절에서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뱀에게 대답합니다. 이 말씀은 기록된 순서상 2장 17절에서 아담에게만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이죠.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있어서 간접적으로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히게 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정녕 죽으리라’에서 ‘죽을까 하노라’로 말씀의 무게가 한 층 가벼워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씀이 나의 마음과 삶에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만 했던 말씀이니까 하와는 들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벼워졌고, 이어서 뱀의 간교한 말에 하와가 속아서 선악과를 먹었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하나님에게 말씀을 직접 들었던 아담 마저도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을 것이라 말씀하신 것을 지키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먹으라고 하는 선악과를 먹으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됩니다.

#3. 무엇을 위함인가?

창세기 3장의 사건들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막힐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관계를 가지고 살았던 최초의 인간이었죠.
그들에게는 이 땅의 모든 것이 주어졌고,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은 선악과를 먹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 나가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몇 가지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어요.
첫째, 3장 5-6절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그가 바라 본 선악과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뱀이 말하죠.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을 듣고 난 이후 하와는 선악과 나무를 보고 나니 ‘맛있게 보이고, 보기에도 좋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첫번째 원인은 바로 뱀의 말을 듣고, 그것을 본 하와의 마음의 변화입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과 말 그대로 보기에 좋아 보였던 것이 원인이었구요.
둘째 원인은 3장 6절 아담은 하와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서 먹은 것입니다. 이 때, 어떤 의문도 없이 선악과를 그대로 먹게 된 것이죠.
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선악과를 먹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어서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던 죄를 범하는 자리에 나갈 수 밖에 없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생각과 마음과 그들의 선택과 판단에 있어서 하나님을 부재 상태로 만들고, 자신들이 듣고, 보고, 느끼고, 판단한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죄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정당화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설마 과일 하나 먹었다고 죽이시겠는가? 예상하면서 하나님을 외면한 채 선악과를 먹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고, 대하는 마음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지금보다 더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주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할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고, 부인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매순간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는가 아닌가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죠. 바라기는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의 구주되심을 고백하는 저와 우리 청년교구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4. 네가 어디 있느냐

사람들은 선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을 악이라고 정의하면서 ‘윤리적인 악’을 ‘죄’라고 불렀습니다. ‘악’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동등된 존재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생겨난 학문이 신정론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을 증명하는 신정론에 대해서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창조 행동에서는 원하지 않았던 어떤 것으로부터 신비스럽게 발생한 “무성”(nothingness, das Nichtige)의 낯선 힘이다. “무성”은 무(nothing)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한 적도 없고 그분과 동등한 것도 아니지만, 이 “무성”은 가공할 위협적인 힘을 지닌다. “무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지를 대적하는 힘이다. “ ‘무성’이라는 힘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우리 인간에 대해서는 최고도로 엄청난 것이다.”

무성 - 아무것도 없는 상태
주님께서는 자신을 부재의 상태로 만든 아담을 찾으시면서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는 것을 모르고 계셨을까요?
결국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아담은 종신토록 수고하여 땀을 흘려야만 소산을 먹게 되고, 하와는 임신하는 고통을 가지고, 자식을 낳으며 남편의 다스림을 받고,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 흙을 먹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 가셨습니다. 그 때, 말씀하시죠.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주님께서 지셔야 했던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1절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리고 17절에서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주님께서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던 그 때나 십자가에 달리시며 모든 인류로부터 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죽음의 고통을 안고 기도하시던 그 때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함께 깨어있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님과 함께 기도하며 우리의 영과 육신이 깨어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주님 주시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아 죄의 순환이 끊어지고, 자유를 누리는 믿음을 취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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