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2 주일오후예배: 출 3:14; 행 17:28;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7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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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3:14, 사도행전 17:2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14 NKRV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사도행전 17:28 NKRV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보겠습니다. 지난 주와 같은 7문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질문하면 같이 답해보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7문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며, 존재와 영광과 복되심과 완전하심에 있어서 본래 스스로 무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족하시며,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며, 불가해하시며, 어디든지 계시며,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지혜로우시며, 지극히 거룩하시며, 지극히 의로우시며, 지극히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풍성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후예배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필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고 화려하지 않고 힘이 없는 것처럼 설교가 보일지라도 이것을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으니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를 향한 선하심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불가해성, 즉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순응과 찬송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만큼만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자신을 다 보여주신다한들 우리는 결코 그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불가해성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겸손과 찬송입니다.
이처럼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불가해성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하나님의 자존성, 다른 말로는 독립성에 대해서 ‘스스로 있는 분과 그렇지 못한 우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통해 살피고자 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주성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으려는 독립성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의존적이지 않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독립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의존하고자 하고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반드시 있어줬으면 합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저는 독립심이 강한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 요청을 잘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못 믿거나 제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을 편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타인에게도 독립심을 키워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아이러니하게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제가 마음을 기댈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도 의존적인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 누군가를 의존하고 싶다는 마음은 다 있으실 겁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우리는 의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을 우리가 다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우리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도움을 요청하고 타인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군가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마찬가지일까요? 하나님도 의존하는 그 어떤 것이 있으실까요? 그리고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반드시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종교들의 신화를 보면 신들은 항상 무엇인가가 부족하고 어딘가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만 보더라도 신들의 모습 중에는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신이시라고 하더라도 어딘가에 반드시 의존해야만 하는 분이실까요? 정답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들과는 달리 결코 의존적이지 않으시고 항상 자신 스스로 존재하시며, 독립적이시며, 자신 안에서 모든 만족을 누리시는 자족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독립성이 말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이 하나님의 독립성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하나님의 독립성은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된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고유한 속성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다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했듯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은 절대로 온전하게 독립하지 못합니다. 어느정도 독립할 순 있으나 결코 완벽하고 온전하게 독립할 수 없고 어딘가에 반드시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독립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실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완전 속에서 자신을 알리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과 구분되는,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이름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이름 중에는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여호와’라는 이름이 가장 뛰어난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이 이름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동일한 분으로, 자기 백성과 연관하여 영원히 동일하게 계시는 분으로 알리셨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3:14에 등장합니다. 바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지난 주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이름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실 때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누가 보냈냐”고 백성들이 자신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이름입니다. 만일 이 이름이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이름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 그리고 심지어 다른 이방 신들도 가지고 있는 이름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름은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이름입니다. 이처럼 이름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독자적으로 피조물들과는 구분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뜻에서 나타나듯이 오로지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존재하는 것들은 결코 스스로 있지 못하고 기원과 근원이 항상 존재합니다. 성경은 그 기원이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대교리문답에서도 “스스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하나님은 “자족”하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기원이 없으시고 스스로 있으신 독립적인 분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만물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셨고,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시편 90:2 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편 90:2 NKRV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편 90편의 기자인 모세는 기도하면서 이 모든 만물이 생기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8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8:6 NKRV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바로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이라는 출처가 모두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시작, 그리고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부터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시작함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창조주이심을,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출발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이 세상의 진정한 주님, 절대적인 의미에서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니 당연히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렇기에 모든 만물은 반드시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스스로 있는 분, 스스로 존재하는 기원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 한 때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보다 열등한 분이라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자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낳아지신 분이시기에 마치 피조물처럼 여겨지고 기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성부와 성자께서는 능력과 신성에 있어서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가르침을 남겨주었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만물은 하나님을 반드시 기원으로 하는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시는 독립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만물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32:39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2:39 NKRV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그분이 만물의 주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으심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도 하나님께서 주님이심을 알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64:8 입니다.
이사야 64:8 NKRV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이사야는 모든 만물을 진흙으로 빗대어 토기장이신 주님께서 지으신 것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토르트 신경을 통해서 배웠듯이 하나님의 작정,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은 모든 만물의 존재와 발생의 최종적인 근거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도행전 말씀이 이 부분을 잘 보여줍니다. 이 사도행전 말씀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바울의 설교입니다.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을 예배하는 아테네 사람들을 향해 그 신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모든 만물이 그분에게서 났기에 모든 만물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고 설교하면서 하나님이 주님이시며,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났음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힘입어 살기에 기동하며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무존재 상태입니다. 우리는 우리 존재 자체를 우리만의 고유한 것으로 여깁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우리만의 고유한 것으로 여기면서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맺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주제 첫 번째 설교에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자연, 우연, 운명 혹은 행운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님과 상관 없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시는, 다른 말로 하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지점은 우리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존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독립성은 우리의 의존성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존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츨발합니다.
이러한 의존적인 우리에 반해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앞절인 사도행전 17:25 에서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7:25 NKRV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하나님의 독립성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자기 자신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위해 하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쉽게 착각할 수 있는 지점은 하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오로지 우리만을 위해 행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의 가장 근원적이고 최종적인 이유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신다는 겁니다. 사무엘상 12:22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상 12:22 NKRV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 사무엘상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백성들로 삼으신 것은 그분이 그 일을 기뻐하시고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름에 호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십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은 선한 것이며 기쁨이 넘치는 일입니다.
아따아따라는 만화를 알고 계신 분이 있으신가요? 이 만화에는 ‘단비’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단비가 하는 유명한 대사는 “단비꺼야!”인데요. 자기 뜻대로 안될 때 이렇게 모든 것을 “단비꺼야!”라고 하면서 떼를 쓴다고 합니다. 이 만화에서 단비가 주로 보이는 모습을 정리한 글이 있는데요. 이렇다고 합니다.
“3~4살 주제에 다혈질에다 고집이 소힘줄처럼 질겨서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싶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버릇없이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엄청난 울음소리와 함께 떼를 쓰거나 화를 낸다. 자기 뜻을 관철할 때까지 저래서 식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궁지에 몰기 일쑤며, 소리가 얼마나 큰지 고성방가 + 소음공해 수준이다. 이를 이용해 가끔씩 자신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도 하는 희대의 꼬맹이. 어린 나이를 감안해도 성격이 나쁘다. 사실 짱구는 못말려의 훈이와 도라에몽의 노진구를 뛰어넘는 엄청난 울보 캐릭터지만, 이 둘과는 달리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아서 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운다. 그래서 울보보단 영악하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우리가 보통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한다고 할 때 극단적인 예시일 수는 있겠지만 마치 이 단비처럼, 아니면 단비처럼 이렇게 떼를 쓰는 정도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교만하고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신다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만든 자가 만든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들었을 때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면 그 누가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거나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은 곧 선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 그분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 외부에 있는 것들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태양이 빛을 내는 일을 함으로 모든 만물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성장할 수 있게 빛과 열을 발산하듯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우리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자신이 영광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만물에게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창조하신 세상에서 만물은 각종 좋은 것들을 누리며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에덴 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을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바로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 1:29-30 입니다.
창세기 1:29–30 NKRV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만물에게 먹을 거리를 주심으로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마음껏 누리며 기뻐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회복하실 그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 세상을 회복하셨을 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만물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을 회복하실 그날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21:3-4 입니다.
요한계시록 21:3–4 NKRV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죄가 있던 세상에 있었던 안 좋은 것들,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이제는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을 누리는 것이 회복될 그날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과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신다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비와 같이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까지 가지고 싶은 것을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과 일하심은 하나님 자신과 더불어 하나님 외부에도 선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단비와 같이 우리 자신만을 위할 때 우리는 남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절대적으로 선하시기에 자신을 위한 것은 곧 외부로 향하는 선함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독립성,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른 하나님이라는 것의 뜻입니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독립성은 우리의 믿음에도 정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어딘가에 의존해야 하는 분이시라면 우리가 그분을 믿을 수 있을까요? 어딘가 부족하시고 무엇인가에 기대야 하는 분이시라면 우리는 그분을 믿고 따를 수 없을 겁니다. 부부는 서로가 부족한 사람임을 서로가 알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으시는 독립적인 분이시며 자신 안에서 모든 만족을 누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뽑히지 않는 기둥에 기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나의 산성, 나의 요새”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산성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얻는 것처럼 그분 안에서 우리는 완전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자신 외부에 있는 것들을 아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렇다면 우리가 존재할 필요가 있느냐?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허무한 생각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은 우리를 의미있는 존재로 창조하셨고, 또한 그러한 존재가 되도록 작정하셨다는 겁니다. 그분은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자신 안에서 모든 만족을 누리고 계시지만, 피조물을 만드신 이유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그 만족을 피조물들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만 가지고 있고 누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누리는 것이 더 큰 기쁨인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쁨과 만족을 우리 피조물들과 함께 누리시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독립적인 분으로 모자란 것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오로지 기쁨과 만족을 나누시기 위해 그리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거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며 그분 자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에서 인간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라고 답변합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바꿔서 말하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따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분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그분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사야 62:3-5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2:3–5 NKRV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라고 부르시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비슷하게 스바냐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스바냐 3:17입니다.
스바냐 3:17–18 NKRV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그가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뻐하시기 위해 어떤 일까지 기꺼이 행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죄에 빠져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신의 신부로 삼으시고, 그 신부를 기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독립성이라는 속성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는 달리 의존적이지 않으시고, 자존적이며, 자족하시는 독립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 바깥에 있는 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독립성 교리는 우리와 떨어져 하나님의 속성만을 설명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독립성 교리는 자신 안에서 모든 만족을 누리시는 그분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엄청난 사실을 가져다주는 기쁨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존재 가치가 없는, 아니 존재하지 않는 공허 그 자체일 뿐입니다. 이런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을 위하여 하나님은 일하시고 작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는 항상 하나님에게서 찾아야합니다. 우리 자체 안에 내가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너 자신을 사랑해라”,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라고 하면서 인간 스스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가치는 하나님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는 존재할 수 있고 가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독립적인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뻐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에 하나님 안에서 모든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토대로 공통의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디에 의존하지 않으시는 독립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에 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길 원하십니다. 이 얼마나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시는 것인지요.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영원히 의지하며 그분 안에서 모든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작지만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한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아이가 부모에게 단지 기쁨을 주고 칭찬을 받기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처럼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고 교회를 위해 일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저희와 달리 독립적인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을 저희가 찬송하게 하시고, 아무것두 필요치 않으시는 그런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기뻐하신다는 놀라운 사실 속에 저희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서. 그리하여 저희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신실한 성도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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