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6)

룻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
Notes
Transcript
룻기 2장 5-23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룻과 보아스가 직접 대면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으로 이삭줍기하러 가고, 때마침 보아스가 그 밭으로 왔던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 있는 일이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주님의 섭리로 인해서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와 그 대상인 룻이 만나게 되어 생긴 일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로운 행동들을 집중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4절에서 보아스는 자기 일꾼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룻을 발견한 보아스는 사환에게 룻이 누구의 소녀인지를 물어봅니다. 6절에 사환은 이 소녀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라고 말합니다. 모압이라는 말이 강조되어 사용되는데, 그만큼 이들의 눈에도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꾼은 룻이 자신에게 한 말을 보아스에게 전하는데, 베는 자를 따라서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해달라고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 잠시 쉰 이외에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래 이삭줍기는 볏단을 타작마당으로 모두 옮기고 난 후에야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줍는 것입니다. 추수하는 사람들이 이삭을 배서 옮기고 난 후에 밭에 떨어진 것을 줍는 것이 이삭줍기입니다.
그런데 룻은 그러한 규칙을 깨면서까지 볏단 사이에서 줍게 해달라고 과감하게 요구를 합니다. 이를 통해서 룻과 나오미는 그 정도로 생계에 절박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룻에 관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보아스는 룻에게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라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자신의 친족인 나오미와 함께 왔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에 있으라고 말하면서 룻이 이곳에서 이삭을 줍는데 편한 환경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해준 일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실 여기에서는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푸는 장면입니다.
후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이지만 첫 번째 순위는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은 지나칠 수도 있고, 모른 척할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룻을 모른 척하고 지나치지 않고, 먼저 찾아와서 말을 건냈습니다. 보아스의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룻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룻에게 먼저 찾아왔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그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나 사랑을 말합니다. 지금 보아스가 룻에게 보이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보십시오.
죄악의 사슬에 매여 죽음으로 향해 가던 우리에게 생명의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주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스스로 준비하셨고, 우리 가운데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님을 또한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거듭나도록 하셨고, 거듭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믿고, 의지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보아스가 룻에게 한 일을 잘 살펴보십시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의 밭에서 계속해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락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삭을 줍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삭을 주울 수 있는 밭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보아스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소년들보고 너를 건드리지 말도록 조치를 취한다고 언급합니다. 룻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보호해 주는 조치를 취해 준 것입니다. 룻은 이방 여자이고, 젊은 과부이기 때문에 일하는 소년들이 괴롭힐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특히 이 당시의 배경이 사사시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살았던 시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룻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인인 보아스는 그러한 것을 미리 방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하면서 마실 물이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인데, 보아스는 룻의 식수 문제까지 해결을 해줍니다. 이스라엘이 물이 부족한 지역임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배려가 얼마나 큰 배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풀자 룻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나는 이방 여인인데, 어찌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라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자신이 이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언급하면서 룻은 보아스의 은혜에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룻에게 보아스가 자신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룻이 자기의 남편이 죽은 다음에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일이고, 두 번째는 룻이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온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구절에서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넣어서 번역하면,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한 아름다운 행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자신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든 것도 여호와께서 룻을 돌보아 주시는 은혜 가운데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격려와 축복에 힘을 얻어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중에 식사 시간에 되자, 보아스는 룻에게 자신과 같이 식사를 하자고 부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지만, 이방 여자가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밭의 주인인 보아스와 같은 자리에서 식사한다는 것 자체로, 다른 종들에게 이방 여자이지만, 룻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도록 만드는 사건이 됩니다.
식사를 한 후에 룻이 다시 이삭을 주우러 일어나자,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에게 룻이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단 사이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주인이 명령을 내려주었습니다.
또한 책망하지 말라고 번역된 말은 “부끄럽게 하다, 욕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는 이방여인을 향해서 종들이 조롱하거나 욕을 하지 못하도록 보호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룻을 위해서 곡식 다발에서 이삭을 조금씩 뽑아 버려서 룻이 그것을 줍게 하고 이를 꾸짖지 말라고 엄명을 내립니다.
보아스는 과부와 고아, 가난한 사람이 이삭을 줍도록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되, 율법이 정한 명령 이상으로 룻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룻이 저녁까지 일을 마치고 주운 것을 정리하자 한 에바쯤 되었다고 합니다. 학자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한 에바는 40리터에서 20리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룻은 하루 만에 몇 주분의 이삭을 주운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주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보아스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양을 가지고 돌아가니 나오미는 분명 놀랬을 겁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한다면서 축복의 말을 합니다. 룻은 자신을 돌본 사람이 보아스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자기 며느리에게 은혜를 베푼 자가 보아스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20절에 우리 성경에는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앞에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에서 그는 보아스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그는 보아스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보아스로 이해하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보아스가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문맥상 이러한 의미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해하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됩니다.
룻이 양식을 구해올 수 있었던 것도 여호와의 율법 때문이고, 또한 기업을 무를 자인 보아스를 만나게 된 것도 모두가 여호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나오미는 알게 되었고, 그 점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태도가 급변했다는 것을 알아채셨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돌아왔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라 곧 괴로운 여자라고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룻이 이삭줍기를 한다고 하였을 때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없는데, 많은 양식과 함께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돌아온 룻을 향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적극적으로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을 괴로운 인생의 여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나오미가 보아스라는 이름과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인해서 소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며느리인 룻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고 그가 친족이자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오미는 소망이 생겼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보아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고, 그로 인해서 소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통해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 앞에 설 때, 성령님의 은혜 속에서 우리의 죄악 됨을 깨닫고,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게 되고 죄의 결과가 사망이기에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이 더 나빠질 것이고, 우리는 이렇게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다가 결국 죄로 인해서 죽음과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어떠한 삶을 사셨고, 어떠한 일들을 하셨는지를 알게 되면, 죽음과 심판으로 절망하는 우리에게도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룻은 이삭줍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보아스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그 사실을 시어머니에게 전했는데, 시어머니의 반응은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구원할 이름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으며, 우리를 진정으로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분임을 안다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소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신자들이 품는 소망은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시면서 허락하신 소망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확실히 전해주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확증하도록 해주신 소망입니다.
앞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면, 다른 곳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그분 안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방 여자이고 과부인 룻은 비천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보아스라는 친족에게 은혜를 입고, 그로 인해서 소망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흉악한 죄인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자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 베풂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러한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베풀어집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양식을 준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되고, 보아스가 룻을 불러서 함께 식사했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으면서 한 몸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얻고, 그 안에서 소망 가운데 사는 백성들입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 안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 펼쳐져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상황이 엉망이 되었다고 해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려워지고, 힘든 문제를 만났다 해도 그것이 우리를 영원한 절망과 괴로움으로 끌고 가지 못하도록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시거나 다른 길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선하신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룻과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겁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