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것의 기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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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회 3분 선출/ 총회주일 헌금 / 상반기 훈련반
창세기 2:16–17 NKRV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1–9 NKRV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반갑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것의 기초 6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 블레즈 파스칼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파스칼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영광이자 쓰레기다” - 블레즈 파스칼
여러분 인간은 참 독특한 존재입니다. 이 피조세계에서 인간만큼 위대한 존재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이룩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보십시요. 인간은 우주의 영광임이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또 인간만큼 골치 아픈 존재는 없죠. 전쟁과 폭력, 끔찍한 살인, 학대, 자연 파괴도 인간으로부터 나오죠. 인간은 우주의 쓰레기입니다.
C.S.루이스가 쓴 환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사자, 아슬란이 인간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이는 가장 가난한 거지도 고개를 꽂꽂이 들 만큼의 영광이지만, 지상 최고의 황제도 어깨가 축 처질 만큼의 수치이기도 하다. - 아슬란
여러분, 옆 사람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존재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죠. 세상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이 아름다운 존재들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을요.
사회학자들은 말합니다. “인간은 원래 훌륭한 존재인데, 자라난 환경과 부조리한 사회 구조 때문에 인간이 망가졌다. 그래서, 범죄와 폭력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어렸을 적에 일방적인 폭력과 학대를 당하거나,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죠. 멀쩡하게 문제없이 자랐어도 끔찍한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 악의 근원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1961년에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요.
아돌프 아이히만이 어떠한 사람이냐면 수백만명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독일 나치의 전범입니다. 인륜적 범죄의 끝판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데요.
이 재판 때 증인으로 당시 유대인 수용소,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죠. 그 수용소의 생존자인 “예일 디누르”라는 사람이 증언대에 섰습니다. 그런데, 아이히만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쓰러져 기절합니다.
이후에 어떤 기자가 “예일 디누르”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는데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그때 쓰러진 겁니까? 증오를 주체 못해서 입니까? 아니면, 끔찍한 기억 때문이었습니까?”
그러자 이 사람이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합니다. “저는 수백만명을 죽인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자신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 사람과 똑같이 그럴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악마라고 생각했던 아이히만이 자신 안에도 있음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있는 악, 아이히만을 발견했습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죄를 발견했습니까?
오늘 본문은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의 유혹이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장면인데요. 인류가 어떻게 해서 악에 물들게 되었는는가, 우리에게 죄에 대해 깊이 가르쳐주는 본문입니다.
오늘은 네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죄의 뿌리, 본질, 결과, 그리고 해결책, 

1. 죄의 뿌리

먼저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4–5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화면 잠깐 계속 띄워주세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하시죠.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줄게 될 것이다
그런데, 뱀이 어떻게 말합니까? “그거 먹어도 죽지 않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될 거야, 더 좋아질 거야”
여러분, 잘 보세요. 하나님 말씀과는 정 반대로 얘기하죠. 뱀의 전략을 잘 보셔야 합니다. 뱀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믿음에 대해 문제 삼지 않죠. 대신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믿을 겁니다.
근데 뱀이 노리는건 그게 아니에요. 뱀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 먹어도 좋다. 단지, 선악과만 먹지 말라”, 딱 한가지 명령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먹으면 안되는지에 대한 이유는 말씀 안하셨죠. 예를 들어 “열매에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되”와 같은 이유를 말씀하지 않았어요. 단지 먹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신 걸까?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나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순종하는거라면, 엄밀히 말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죠.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이기적인 순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가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순종하기를 바란다.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순종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내 이익 따지고 계산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건 거래 관계죠.
하지만, 사랑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따지지 않죠. 오로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이걸 원하신 겁니다.
그런데, 뱀이 정확히 바로 이 지점을 노립니다.
“하나님이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라고 했다고? 아니냐. 절대 죽지 않아. 오히려 더 나아질거야.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거야”
뱀은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 아니야. 하나님이 정말로 너를 사랑하실까? 아닐걸? 너 하나님 말 들으면 손해 볼거야. 하나님은 신뢰할 분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네 삶은 네가 책임져야 되.”
여러분, 이것이 뱀이 한 거짓말이고, 이 거짓말은 모든 인간의 마음 가운데 심겨져 있습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들 마음 가운데에는 이 거짓말이 심겨져 있습니다. “네가 네 삶의 주인이야. 하나님은 신뢰하지 마”
어떤 설교자가 이것을 설명하기 어떤 예화를 얘기했는데요.
아버지와 아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선물을 보기 위해 장난감 가게로 갔습니다. 토이저러스 같은 대형 장난감 마트였고, 길거리에 주욱 장난감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그 길을 걸어가면서 말합니다. “아들, 이거 사줄까? 이거 먹을래?”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네 아빠, 좋아요”
또,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합니다. “아들 이건 어때?” “아빠 이것도 넘 좋아요!” 가슴 뭉클한 장면이죠.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을 장난감 거리를 지나다가 거리에 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을 세워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왜 너를 여기에 데려왔는지 말해줄께. 내가 너를 여기에 데려 온 것은 여기에 있는 모든 건 너가 갖지 못할거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야.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사주지 않을거야. 알았지? 이제 집에 가자”
그러면서 이 설교자가 말하는게 뭐냐면, 우리가 하나님을 이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걸 주신다고 하시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건 주지 않을거야.”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내가 노력해서 좋은 아들이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겠지” 하나님을 그런 조건적인 아버지로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삶을 내어드리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동발달 심리학에서 얘기하는게 뭡니까?
유아기 때 부모로부터 학대나 큰 상처를 받게 되면, 누군가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때의 추운 기억이 전체의 삶에 영향을 끼쳐서 온갖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이론도 한계가 있다고 하죠. 인간의 죄성은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 마음의 악의 근원, 죄의 뿌리를 말해줍니다. 역사의 시작부터 우리는요. 뱀으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지 말라고 배운 겁니다.
그리고, 이 뱀의 거짓으로 인해 인류는 자기 인생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왜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합니까? 내걸 뺏긴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드리는게 전혀 기쁨이 되지 않는 겁니다. 신뢰하지 못하니깐.
그러다보니깐, 삶의 모든 짐을 내가 지려고 하죠. 그러다보니깐,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자꾸만 내 자신을 망가지도록 몰아치는 겁니다. 내 삶에 바벨탑을 높이 세워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 내야죠.
이렇게 모든 인간의 마음의 뿌리에는 뱀의 거짓말이 있습니다.

2. 죄의 본질

그렇다면 두번째로 죄의 본질은 무엇일까, 죄의 본질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자, 먼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법이 있었다라는 것이죠. 어떤 법입니까?? 나무를 먹지 말라는 법이었죠.
하지만, 여자는 그 법을 어겼습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의 첫번째 측면입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죄는 하나님께 행동으로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죄의 행동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동기까지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의 두번째 측면입니다.
그래서, 죄의 본질의 첫번째. 행동으로 저지르는 죄, 두번째는 마음으로 저지르는 불순종인데요. 결국 잘못된 마음의 동기가 잘못된 죄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하와가 열매를 따먹는 잘못된 행동을 하기 이전에 뱀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마음을 공략하는 겁니다. 잘못된 마음의 동기를 일으키는 겁니다. 어떻게? 거짓말로.
창세기 3:4–5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기서 뱀이 무엇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까?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고 말하죠.
여러분, 이게 인간 모두가 추구하는 죄의 본질인데, 하나님이 있어야 될 자리에 마치 내가 하나님인 양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뱀이 충동질하는거죠. “하나님 같이 되어 너가 그 중심의 자리에 앉아야지. 네 삶의 주인은 너야”
그래서, 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주석에서 죄인에 대한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해 굽은 존재다” - 마틴 루터(Martin Luther)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말한 겁니다. 우리의 본성은 너무나 깊이 휘어져 있어서,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라는 것이죠.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이용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죄인이라고 하면 범죄자들을 생각하죠. 독재자와 폭군들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 중심성은요. 잔인하거나 나쁜 행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서운게 뭐냐면 선한 행동도 자기 중심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교묘해서 우리가 잘 속는데요. 마치 이런 겁니다.
이타적인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기분이 너무 좋아. 아 나는 너무 선한 사람이야. 주위 사람들도 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해. 이걸 스스로 즐긴다면, 이타적인 행위는 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불편해 질 수 있겠지만, 우리 좀더 솔직해 집시다. 여러분, 왜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
왜 기부를 하고, 친절하게 행동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갑니까? 그 마음의 동기는 뭐에요?
순수한 여러분의 마음을 못 믿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마음 한편 구석에는 이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내 편 만드려는 거 아닌가요?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내가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게끔 만들기 위해서 친절을 베푸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금 막 대하라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요점을 잘 들어야 되요.
상대방을 향한 나의 헌신과 희생이 사실은 나를 위해 하는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라는 겁니다. 상대방을 이용하기 위한 선의일 수 있다라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이것은 신앙생활까지 적용이 됩니다.
기도와 말씀에 열심을 내고,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지만, 그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복 받기 위해 ,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원하는 기도 응답을 얻기 위해서일 수 있다라는 것이죠.
결국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건데, 이건 신앙이 아니죠. 종교입니다. 종교가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담임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시죠. “종교인 되지 말고 신앙인 되라”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끔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신앙을 떠나는 분들이 있는데요. 여러분, 사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내 뜻과 내 꿈을 섬긴 겁니다.
여러분,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 가족을 사랑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저만 그런가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왜 그 일을 하나요? 뭔가 보상을 얻기 위해서인가요? 아니죠.
이유 없죠. 그들이 행복하다면 그게 답니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면 그게 보상이죠.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 이게 사랑 아닌가요?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거에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뱀의 거짓말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겁니다. “하나님은 신뢰할 분이 아니야. 그분은 너에게 거저 주시는 분이 아니야. 너가 그분에게 좋은 것을 얻으려면 그 만큼의 노력을 해서 얻어내야 되. 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자격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되”
이 거짓의 속아 넘어가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조건없이 그분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죠. 이게 바로 종교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죄의 본질은 하나님 자리에 마치 내가 하나님인양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자리를 감당할 힘이 없죠. 하나님 없이는 인생의 무게, 인생의 의미를 짊어지고 갈 힘이 없는 겁니다.

3. 죄의 결과

그렇다면 세번째, 죄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죄의 결과는 언제나 관계를 깨트립니다. 자기 중심성은 모든 관계를 깨트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요.
창세기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결과 이들이 눈이 밝아졌다고 말하죠.
그런데, 뱀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졌다고 했잖아요. 그 말대로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뱀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된게 아니라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게 되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숨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서 몸을 가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제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하나님 자리에서 하나님 행세를 해야 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만들어진 내 모습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한 사람들은요. 무엇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죠. 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는데, 필요 이상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어필한 필요가 없잖아요. 상대방에게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죄는요. 내 자신을 가리게 합니다. “진짜 내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나에게 크게 실망하고, 싫어하게 될거야”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리고, 또 있어 보이게 꾸미죠. 이렇게 투명하지 않은 관계는 금새 깨어지죠. 그래서, 죄는 먼저 인간 관계를 깨트리고요,
두번째로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창세기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아담과 하와는 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은 것일까요?
팀 켈러 목사님은 이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는 누구보다 재능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에 내 정체성을 삼는다면,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 앞에 서는 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죠.
“나는 외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라는 것이 내 정체성이면, 나보다 더 멋진 사람 앞에 서는 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를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왜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면,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게 너무나 불편한 거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려서 나는 괜찮은 사람인척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면 그게 완전히 박살이 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4. 죄의 해결

그렇다면, 마지막,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요?
창세기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자, 여기서 자신을 피하는 아담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데요. 잘 보시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정말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런 것일까요? 우리의 머리털까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르실리가 없죠. 그런데, 왜 어디 있냐는 질문을 하시는 걸까요?
사실이 이 질문은 “네가 왜 나를 피하냐?”라는 질문이죠. 그러자 아담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기 3:10 “…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라는 정직한 대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엉뚱하게도 벗어서 두려워서 숨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또 질문하고 아담이 답합니다.
창세기 3:11–12 NKRV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또 둘러댑니다. “이 여자가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 정말 찌질하죠.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이 하와에게 질문하자, 하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기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핑계되기에 바쁘죠. 그 어느 누구도 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주]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상담을 할 때 문제가 있는 내담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계속 부정합니다
하지만, 훌륭한 상담자일수록요.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 보단, 계속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게끔 이끌어 냅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치료가 시작됩니다. 일종의 회개죠. ‘아 지금까지 내가 망상에 빠져 있었구나’ 그때부터 치료가 시작되는 겁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는 겁니다.
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를 바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네가 어디에 있냐?” 사랑으로 그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상담가처럼 부드럽게 대화하며 또 유도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너무나 인격적인 하나님이시죠.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듭니까?
우리를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는 사랑, 그 끈질긴 사랑으로 우리를 찾으신 분이 떠오르죠.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시는데요. 이러한 약속입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너희를 찾을 것이고,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그가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뱀의 일, 마귀의 일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의 발꿈치는 상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상처받고 피를 흘릴 것이다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는 겁니다.
“내가 뱀이 저지른 모든 일을 회복시킬 것이다. 망가진 에덴을 회복시킬 것이다.
뱀이 나무를 통해 너의 마음에 거짓말을 심었지만, 나는 나무를 통해 너의 마음에 거짓말을 제거할 것이다”
여러분, 에덴 동산에서의 첫번째 아담은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두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나무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죠.
첫번째 아담은 너가 나무에 관해 순종하면 살 것이다라고 했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아담은 너가 나무에 관해 순종하면, 너는 찢길 것이고, 부서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향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만이 망가진 모든 것들을 회복하고, 모든 수치와 죄악을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나무, 저주의 나무였지만, 모두를 살리는 생명나무였던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있어야 될 형벌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그 자리에 매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을 자리에 두는 것이라면, 구원은요. 하나님이 우리 자리에 자신을 두는 것이죠.
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 자리에 자신을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 위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을 때, 여러분 마음 깊숙히 박혀있는 거짓말이 뿌리 뽑힐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왜 이렇게 불안한지 아십니까? 왜 이렇게 지치고, 번아웃 되는지 아세요? 하나님을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안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으로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죽음의 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바꾸시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것이고, 그 사랑이 여러분을 진정한 자유와 기쁨으로 이끌 것입니다.
죄 아래 두려움 가운데 있는 인생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케 된 자로서 노래하고 찬양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말씀 기억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순종의 눈물 온 세상 다시 빛나게 한 생명의 눈물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죽어야 살게 되고 져야만 승리하는 놀랍고 영원한 신비
지으신 그대로 회복시킨 우리의 창조주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로 아버지 뜻 이루셨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소망 그 사랑 그 생명 아름답고 눈부신 십자가의 길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이유
기도제목
여러분, 하나님 없이 내가 이루려는 모든 것들은 무화과 나뭇잎에 불과합니다. 그것으로는 여러분 마음 가운데 있는 불안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여러분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겠습니다. 오셔서 내 삶의 주인되어 주시고, 왕이 되어 주십시오.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합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봉헌기도

 하나님 우리를 죄악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통해 자유케 되는 구원의 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나의 진정한 상담자 되신, 진정한 치유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따르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 우리 가운데 오셔서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깊숙히 박혀 있는 수치심과 두려움, 의심과 거짓말을 제거해 주셔서 오직 주님의 사랑 안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제는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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