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바이블 칼리지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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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무엇인가?
-로마서에서 교리가 나온다.
-로마서는 교회사적으로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슬리의 신학을 결정적으로 형성한 책이다.
-로마서는 간단한 편지가 아니다. 수많은 논쟁도 낳았다.
-로마서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현대 신학이 많이 나온다. 이런 새로운 접근들이 어떻게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울이 집에서 이론적인 관점에서만 쓴 게 아니다.
-바울은 순회 전도자였다.
-예루살렘, 터키, 그리스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1,2,3차 전도여행을 다니며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는데, 그 문제(대부분 이단 문제, 교회 내 윤리적인 문제)를 전해듣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지들을 써 왔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 이 편지를 썼는가?
-그는 고린도 교회 문제를 끝낼 무렵에 고린도에서 3개월 지내는데, 이방 교회의 대표자들과 함께 많은 구제헌금을 수집하고, 예루살렘에 가려고 했다(롬 15:14).
-예루살렘 교회는 오랜 흉년으로 힘들어 했다. 그래서 그들을 도우려고 구제헌금을 전도여행 다니며 수집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방 지역 선교 파송을 받으려고 했다.
-어디로 가려고 했냐면, 바로 스페인이었다. 로마는 스페인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였다. 동방 지역엔 복음을 원만히 거의 다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 이미 세워져있었다(배경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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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이미 동방 지역에 바울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로마 교회에도 아마 이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바울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 교회의 선교 후원을 받고자 했다.
-그래서 그 전에 고린도 쪽에서 로마서를 썼을 것이다.
-고린도의 겐그레아 지역의 여집사 뵈뵈에게 로마서를 전송해 달라고 했다.
-뵈뵈는 아무 상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식을 잘 알고, 발이 넓었을 것이다.
바울은 왜 로마서를 썼는가?
#저술 목적 1. 선교적 목적
-바울은 소아시아와 동쪽 지역에서 복음을 다 전하고, 서방 선교에 눈을 돌렸다. 전략적 요충지가 로마 교회였다.
-선교 헌금을 지원받을만한 명분을 제시해야 했고,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예루살렘에 갔을 때, 바울에 대한 악소문을 들은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이 구제헌금을 전달하려 할 때, 그를 해코지 했을 수도 있다. 폭동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구제헌금을 기쁘게 받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를 예측이라도 했는지 바울은 뵈뵈를 통해 로마서를 먼저 보낸다. 로마서를 유언처럼 미리 써서 보낸 가능성도 추측된다. 자신이 죽어서 못간다 하더라도 로마서를 유언처럼 쓴 것이다.
#저술 목적 2.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 교회 내에 믿음이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의 음식 문제가 있었다.
-로마 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방 기독교인들이다(그 배경을 바울서신 배경 연구 참고).
-그 이유는 유대 기독교인들이 회당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니까 폭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을 추방시켰다. 이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떠났을 것이다.
-회당에 유대인들이 중심이었는데, 이들이 다 쫓겨나니까 이방인들이 주가 되었다.
-후에 추방령이 철회되면서 유대인들이 다시 들어왔는데, 이미 로마 교회는 이방인 중심이 되어있었다.
-초대교회에 공동체 식사가 있었는데, 이방인들의 자유로운 식사와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식사 문화가 부딪혔다.
-바울이 이런 상황에서 로마서를 썼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 형제자매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로마서 초반에는 이신칭의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다 아브라함의 가족이 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서, 이방 선교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복음의 내용에 집중했을 것이고,
-후반부에는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로마의 이방 기독교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 기독교인들을 깔본 것 같은데, 바울은 이방 기독교의 뿌리는 유대 기독교에 있다며, 그들을 깔보지 말라고 한다.
-유대 뿌리를 송두리째 뽑은 게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감람나무에 이방인은 접붙임한 것 뿐이다. 절대 교만하면 안 된다.
#본문 해설
-모든 절을 다 해석하는 건 지루할 수도 있다. 핵심 구절들, 키 포인트들을 나누자.
롬 1:1-17(서론)
-발신자
-수신자
-인사말
-이게 헬레니즘식의 편지 형식이다.
-이런 형식으로만 끝나면 단순하다.
-그런데 바울이 쓰고자 하는 목적이 특수했다. 그래서 서론이 길게 확장됐다. 그래서 서론을 잘 읽어야 한다. 서론을 잘 읽으면 그의 저술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키포인트는 복음이다.
-바울은 수신자인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따르긴 하지만, 서론의 길이나 내용이 두드러진다.
-우선, 자신이 사도로 부름 받아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한마디로 자기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아냐고, 몇가지 특징을 말한다.
-다섯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복음(유앙겔리온, 기쁜 소식, 복된 소식, 좋은 소식, 굿 뉴스)
-전쟁을 붙으면, 패한 나라는 초토화가 된다. 노예로 끌려가고, 토지와 재물이 다 빼앗긴다. 주로 젊은이들이 차출돼서 나간다.
-자기의 아들들이 군사로 나갈 때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눈물을 흘리며 자녀들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큰 광장에서 전쟁의 승리 소식을 기다린다.
-그리고 저 끝에서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승패 소식을 전하러…
-말이 점점 다가오는데, 깃발을 흔들며 승리했다! 하면, 벌떡 일어나 모두 소리를 지를 것이다. 바로 그 때 들려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이와 같이 미쳐 날뛸만큼 기쁜 소식이다.
-그렇다면, 그 좋은 소식, 굿뉴스가 무엇일까?
-요즘은 로또나, 아파트값이 배로 뛰었다는 게 좋은 소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좋은 소식은 5가지 특징이 있다.
1.예언적인 성격
-1장 2절을 보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바울 복음은 한마디로 예언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의 내용이 신약에 예수님을 통해서 막 성취되고 있다는 구원사의 틀이 복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성취다. promise and fulfillment
-그래서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사야,창세기, 시편, 율법을 인용하는 이유가 복음의 뿌리는 구약에 다 있다는 것이다.
-허공에서 갑자기 내려온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을 만한 분이시다.
-아멘으로 화답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실성을 발견할 수 있다.
2.기독론적 성격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원자요, 심판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1장 3-4절을 보자.
-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예수님을 설명하며, 두 존재 상태를 얘기하고 있다. 육신적으로 지상적으로, 천상적으로.. 이렇게 두 존재 상태로 말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육신적으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는 것이 굉장히 강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더 중요한 것은 천상적인 신분, 성결의 영,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셔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고 공인되신 분이시다.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권위, 통치권이 이제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3.구원론적 성격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다 구원을 얻는다.
-1장 16절을 보자.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선행,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얘기한다.
-4.보편적인 성격
-1장 5절, 16절을 보자.
-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헬라인은 그 시대에 이방인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믿는 자는 인종, 계층, 성별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모두가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이 소식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 당시 노예들, 문화가 없는 야만인들, 여성들, 아이들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는가? 갈 3:28 참고
-5.윤리적 목적
-1장 5절을 다시 보자.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들을 “믿어 순종케 하나니”
-순종하게 하는 것이 복음의 윤리적 목적이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믿음의’ 순종을 위하여… 이렇게 되어있다. 소유격 표현으로…
-피스티스가 원. 피스테오스(πίστεως)는 소유격. 피스테이는 역격. 피스틴은?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이라는 것이다. 믿음의 본질이 순종에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순종으로 나타내야 한다.
-믿음과 순종이 연결돼 있는 이유가 뭘까?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행위 구원이 아니야! 믿음이야! 이런 분위기가 있다. 구원 받는 데에는 믿음만 있다고 말한다. 행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오직 믿음! 이러는데, 오늘 5절을 보면, 순종이 나온다. 복음은 순종하게 만든다.
바울은 믿음에 대해 수동적으로 말할 때나, 능동적으로 말할 때 다른 느낌으로 말한다.
능동적인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이 있으면, 순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수동적인 걸 너무 좋아한다. 여기선 active한 걸 말하는 것이다.
-나의 인격을 다 걸고, 헌신하고, 목숨을 걸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매일매일 순종하는 것이다.
-16:26과 수미 상관. 족쇄처럼 로마서를 꽉 붙드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준다.
-로마서 전체 목적이, 믿어 순종케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예 맞습니다!” 이렇게 시인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널리 믿어 순종해야 한다.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선 안 된다.(갈라디아서 강의를 들은 분들은 이미 한번 들으셨을 것이다.)
-예수님보다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너무 많다.
-기독교가 욕 먹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전하고자 하는 이 감격스러온 소식, 복음의 5가지 특성을 알아보았다.
#롬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의 중심 주제가 담겨 있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로마서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구절이다.
-로마서 전체 내용을 ‘하나님의 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의의 계시, 의의 적용.
-로마서 전체를 하나님의 의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16절, 17절은 기본적으로 4개의 종속절로 되어 있다.
-각 종속절은 앞선 구절을 뒷받침하고 해설한다.
그래서 종속절마다 ‘왜냐하면’이 붙는다.
-16절 앞부분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이 자신의 자랑이라고 한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냐면, 뒷부분에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종을 뛰어넘어, 차별을 뛰어넘어!!!
-17절 앞부분에,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나타나기 때문이야. 라고 한다.
-17절 뒷부분에,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은 살게끔 되어 있어(하박국 2:4 인용).
-자, 그러면,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표현이 무엇인지 보자.
-1.우선,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 이것이다.
-그 당시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철학자들은 복음을 업신여겼고,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고, 어떤 사람은 복음이 단순무식한 것 같다고 여겼다. 또 복음 믿으면 왜 고난 당하고 쫓기냐며 싫어했다.
-그 배경 속에서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바울은 주장하는 것이다.
-믿음의 조건을 건다. 믿을 때에 구원이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주어진다고 한다.
-사실 유대인들은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있다고 믿었는데, 그걸 깨부순다. 믿을 때에만!
-2.그리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나타나기 때문”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이 본절뿐만 아니라 로마서 전체의 핵심 주제다.
-바울서신 외에도 ‘하나님의 의’가 자주 나온다. 로마서에서는 8번이나 언급된다. 다른 서신서에서도 2번 정도 언급된다. 신약의 다른 저술에서도 3차례나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단어다.
-하나님의 의라는 복합적 표현 말고, ‘의’라는 개념 홀로, 단독 단어만 봐도, 로마서에서 33번이나 언급되고, 마태복음에도 엄청나게 언급된다.
-신약 성경을 이해하려면, ‘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헬라 시대에는 윤리적 개념으로만 통용되었다.
-저 사람은 착해… 이러면서 윤리적 덕목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이 대체로 많은 문맥 속에서 의라는 단어를 유대적 배경 속에서 사용했다.
-구약에서 ‘의’는 쩨대크라는 히브리어다. 본질적으로 관계 개념이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잖아?
그 관계가 종종 의무를 동반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부의 관계. 다 의무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 그 관계 이미지를 나타내는 용어가 많은데, 하나님은 왕이시고 이스라엘은 백성이다.
두번째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이미지. 하나님은 신랑이시고 이스라엘은 신부다.
세번째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자녀다.
네번째는 하나님은 목자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의 양떼다.
때로는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이스라엘은 종이다.
때로는 하나님은 포도원 농부이시고, 이스라엘은 포도원 그 자체다.
이 모든 게 언약 관계 이미지다.
가장 흔한 언약 관계 이미지는,
하나님은 왕이시고 이스라엘은 백성이라는 개념.
백성은 다양하다. 헬라인, 이집트인 등등.
수많은 백성들 중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딱 집어서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 나는 너의 왕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라고 계약을 맺었다.
언약은 계약 개념.
계약을 맺으면, 관계가 형성된다. 그런데 그 관계를 유지하려면 각자 언약의 당사자인 각자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왕은 어떤 의무가 있는가? 보호해야 한다.
하나님은 왕으로서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굶주리면 먹여야 하고, 잡혀가면 구출해 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뭐라고 말하나?
관계에 충성하신다.
언약에 대해 성실하시다.
의로우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언약 관계를 맺었는데, 백성은 어떤 의무를 가지는가?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그 복종은 주로 율법에 대해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나의 백성이 의롭다.
왜냐? 관계에 충성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 관계의 개념에 대해 학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한다.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을,
‘주격 소유격’, ‘목적격 소유격’으로 설명하는 방식 두가지가 있다.
-주격 소유격으로 말하는 것은, 그 의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롭다는 뜻이다. 이 말…
하나님 자신의 언약적 성실성. 이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기 백성을 지키실 때, 원수로부터 구원하실 때 쓰이는 것이다.
시편이나 이사야서를 보면, 이 ‘의’라는 말과 구원의 개념이 자주 상호 교환되며 사용된다.
-이사야 5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조만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구원이 나타난다 한다.
이 말들이 연결되는 이유가 뭘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해 언약적 관계에 충성하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관계를 맺으신 것에 대해 신실성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자기 백성이 잡혀갈 때 구원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적합한 해석이 아니겠는가?
-목적격 소유격으로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
이 의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의를’ 준다는 것이다. ‘를’이 붙으니까 목적격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의의 신분, 의로운 자격. 이런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의라는 칭의의 개념인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이 목적격 소유격이 주류였다.
-로마서의 3장에서도 그런 느낌으로 쓰이긴 했다.
그런데 이 로마서의 1장 17절에선 ‘주격 소유격’으로 쓰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나타난다.
계시된다는 것은 수동태로 쓰이는 것이다.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나타난다는 주격 소유격으로 쓰이는 게 맞다.
-그렇다면, 이 복음 속에 소위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이 계시되어 나타난 이유가 뭘까?
3장에 가면, 예수님의 구원 사건인 십자가와 부활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복음 속에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덕분에, 그 구원 행동 속에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의 표현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는 메세지이기 때문에 이걸 믿으면, 다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왜 복음이 필요한가?
모든 인류가 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음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복음에 어떤 능력이 있는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16-17절에서 살펴봤다.
그런데 반대로 불의를 고집하는 이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로 나타난다.
밝은 면에서 보면, 구원의 행위.
어두운 데서 보면, 공의로운 심판.
그런데 심판의 대상이 명확히 이방인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라고 나타난다(19, 24, 28절).
1장 18-19절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울러 인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반절들을 보면, 동성애와 우상 숭배가 나온다.
이건 유대인의 죄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죄상이라고 하면서(23-27절),
‘그들’은 이방인에 한한 말이라고 하는데,
구약을 보면, 유대인에게도 이 모습들이 나타났다(역사서, 선지서).
유대인들도 온갖 우상숭배, 동성애의 문제들이 나타났다.
로마서의 1:23-27과 같은 범죄들이,
출 20:4, 시편 106:20, 렘 2:11 과 같은 구약 구절들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예수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짓는 죄가 우리에게도
똑같이 나타나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가?)
18-32절에 열거되는 이 항목들은,
인류가 짓는 모든 죄를 빠짐 없이 열거한 게 아니다.
바울의 접근은 보다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도덕적인 생활까지도 왜곡되고 부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패, 수근거림, 탐욕, 분쟁, 사기 등의 죄악들을 열거하는 것은,
근본적인 죄의 징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싫어하는 것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집에 물이 안나온다. 그래서 씻지를 못한다. 그래서 몸에 냄새가 난다. 설거지도 못한다. 그래서 세척하지 않은 그릇을 계속 사용해서 끊임없이 배탈이 난다. 물을 마시지 못한다. 그래서 피부가 쩍쩍 갈라진다.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몸에 냄새 나는거? 배탈난거? 피부가 갈라지는거? 이런 것들인가? 아니면, 물이 안 나오는 것인가?
물이 안 나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물이 나오게 해야 한다. 물이 흐르게 해야 한다. 막혀 있던 수도가 뚫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계시를 허락하셨다. 19절에 언급되어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모른다고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눈에 예수님이 나타나면 믿겠다고 하며,,,
그리고 자기 인생의 하나님 보좌 위에 자신들이 앉아있으려고 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반계시로, 특별계시로 계속 자신을 나타내시지만, 그들이 거부한다.
그럼 하나님께서 그들의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28절).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처벌보다 무서운게 무관심이다.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진정한 보응이다.
혼내는 건 보응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다.
27절을 보면, 동성애를 계속 해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상당한 보응이라는 것이다.)
29-31절에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계속 죄를 짓는 자들은 분명 양심상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계속 거부한다.
그리고 거짓 안정감을 느끼려고 같은 죄를 짓는 사람들을 보며 옳다고 칭찬한다.
회사에서 봐라.
학교에서 봐라.
(나 대학생 때 선배가, 그리고 친구가 계속 술 먹이려고 했던거.)
이런 것들이 사회 구조화시키려했다. 인류가…
그래서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이다.
오래 전부터 그랬다.
죄악을 자행하게 하는 사회 구조화된 이 인류 안에,
유대인들, 이방인들 다 포함된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을 자행하게끔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계속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주일에만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날에도 복음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