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 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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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3가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부터 8절까지는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을 기록하고, 
9절에서 부터 13절은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사건이고, 
14절에서 17절은 요한의 제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시면 주님은 누운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믿음을 의미 합니까? 
다른 사람에 의해 운반되어져야 할 중풍병자가 주님이 자신의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탁하여 예수께 자신의 병을 치유 받기 위해 나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간절하고 절박함으로 오직 주님만을 찾고자 하는 그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작은 자 라고 부르신 이유는 당시에 사용되는 친근감의 표시 입니다. 
주님 앞으로 가고자 했던 간절함과 절박한 믿음을 보시고 사랑과 친근의 표시로 그를 부르시고 죄 사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중풍병자의 병이 단순한 질병이 아닌 그의 죄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또는 그리스도의 병고침의 역사가 육체적 질병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영적 질병인 죄를 사하여 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신성모독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간파하신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5절 입니다.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이것이 무슨 의미 입니까? 
죄를 사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쉽겠습니까?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물으시는 이유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죄사함 받았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사하는 선언은 하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들의 그런 생각을 4절에서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면에는 자신들은 선한 자 라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정리를 해보면 
육신의 연약함으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중풍병자이지만 겸손하고 절박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오고자 합니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어떻습니까? 
자신들은 의롭고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배척하고, 거부합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고, 또한 그의 육신의 연약함도 고쳐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신 예수 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이시고, 또한 죄사함의 권세도 가지신 분이심을 드러내신 사건 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나자 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무리가 이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였고,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셨다 라고 합니다. 
이는 여전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였다는 증거 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기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참 구원의 은혜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는 것과 사함의 은혜를 위해 오직 주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절박한 믿음 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을 향한 절박한 몸부림이 있기를 소원 합니다. 
이어서 9절에서 부터 13절까지는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고,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 하시는 주님을 비난하는 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합니다. 
당시 세리는 사회적으로 매우 멸시를 받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로마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세금을 걷고 갈취하여 자신의 부를 축척하는 악한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이방의 돈을 취급하고 이방인들과 관계를 갖는 일을 함으로써 유대 율법의 규례를 무시한 자들로 손가락질 당하던 자들입니다. 
그런 세리 마태를 주께서 제자로 부르셨다는 것은 유대주의자들에게는 불경건하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12-13절 입니다.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앞선 중풍병자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오신 이유와 목적은 구원 입니다. 
주님이 구원하실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영적으로 병든 자임을 아는 자들 입니다. 
이어지는 금식논쟁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금식을 하냐 하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 도 아닙니다. 
이것이 단지 우리의 공로와 교만의 자랑거리라면 주님은 그 모습을 더럽다고, 악하다고 칭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자 입니다. 
내가 너보다 낫다, 거룩하다, 정결하다, 자질이 있다 고 생각하는 순간 
주님 앞에 서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율법에 능통했던 자들이 주님을 더욱 핍박하고 박해하고 멀리 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 안의 거룩과 정결과 높음의 교만이 자리 잡게 되면 주님을 알지만 찾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우리 안의 교만을 말씀으로 바라보는 은혜와 겸손함으로 또한 절박함으로 엎드리는 온전한 은혜를 누리며 기도하는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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