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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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545.
찬545.
데살로니가전서 4:13–15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3절을 보면 당시에 사람들은 죽은 자들 때문에 슬퍼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은 자들 때문에 슬퍼하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슬프지만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절에 나오듯이 예수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 자들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미 부활했기 때문에 부활한 자들로서 살아가는 현재형과, 앞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래형이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미 부활했다고 하는 현재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나심과 같이 성도들은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났음을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일으킴을 이미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부활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서 살려내신 힘으로, 허물로 죽었던 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셨고, 일으키셨으니, 곧 부활시키셨으니,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들은 죽음을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이 세상의 풍조를 이길 수 있게 하셨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이길 수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공중권세잡은 자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니, 더이상 공중권세 잡은 자의 질서가 있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거부하며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에 있는 현재형을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신앙에는 미래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죽었던 성도들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오늘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죽은 자들 때문에 슬퍼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이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절에 예수 안에서는 예수를 통하여라는 뜻으로 번역이 되어야 맞습니다. 이 부분은 디아 투 예수라고 헬라어로 쓰여있는데, 이것은 예수 안에서가 아니라 예수를 통하여라는 뜻입니다. 14절 중반에서, 예수 안에서를 예수를 통하여라고 읽으면 예수를 통하여 자는 자들을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통하여 자는 자들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를 통하여 죽은 자들을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반드시 데리고 오실 것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13 에서 먼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이 반드시 하실 일이 있으신데, 그것은 예수를 통하여 죽은 자들을 하나님이 데리고 오실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살아남아 있는 자가 죽은 자들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는데, 이것은 부활의 순서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13절부터 15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소망없는 자들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15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강림하다라는 말은 바울이 살았을 당시에 왕이나 황제가 지방의 도시에 직접 방문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당시에 씌였던 말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방문하실 것이다. 직접 찾아 오실 것을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는 땅에 직접 방문하러 오실 때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부활한 자들로써 살아가는 부활신앙과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이 현재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살아있는 자들도 주님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은 그동안 주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만났던 하나님을 실제로 완전히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던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방문하시는 날인 것이죠.
로마서 3:25 에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화목제물은 구약시대 때 언약궤를 덮는 덮개를 말합니다. 레위기 16:2 을 보면 언약궤 덮개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장소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속죄소가 언약궤 덮개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레위기 16:15–16 를 보면, 언약궤 덮개는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더러워진 성소와 민족을 하나님이 깨끗게 하시는 장소였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또한 민수기 7:89 언약궤 덮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소였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이런 의미가 있는 언약궤 덮개를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그 의미를 삼으셨다고 롬3:25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죄를 씻어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가 하나님을 봤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도들의 삶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대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씻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씻어주셨고, 말씀하셨고,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실제로 만나게 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할 것을 소망하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들로써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죄와 허물로 죽어있었던 저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부활시켜주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살아났고,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씻으시는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깊이 알아갈 수 있고, 경험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직은 하나님을 완전히 뵐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금부터 죄를 씻어주시고, 말씀을 해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하셔서, 창조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완전히 만날 날을 더욱 소망하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