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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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제목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본문 : 마태복음 6:5 – 8
오늘 본문은 3가지 외식 시리즈의 가운데에 위치한 본문이다.
더 나은 의..
예수님께서는 의를 행하는 것을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의를 행하는 방식과 동기를 문제로 삼으신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즉 공개적으로 행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반대하시고, 그래서 사람들이 의를 행하는 사람을 주목하도록‘, 즉 사람의 인정을 목표로 삼는 동기를 반대하신다.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의 마땅한 동기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게 하심이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람들은 박수갈채의 보상보다.. 하늘에서 주시는 상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이다.
23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고발하는 이유가 되는 문제점은 비슷하게 외면에만 관심을 두고 내적 깊이가 없다는 점에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5장 20–48절의 바닥에 깔린 것으로 본문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
왜? 자기 상을 이미 받음.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시야가 좁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상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진 것이다.
2.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보이기보다 하나님이 보시고 갚아주실 것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상에 대한 시각이 열린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insight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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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목적, 초점.
1) 우리가 기도할 때의 소망은 무엇인가? 응답이다. 갚으심이다.
- 기도에 대한 보답과 보상으로 응답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다.
사람은 우리의 기도를 갚아줄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열심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심이 깊다, 믿음 좋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갚으심이다.
3. 중언부언하지말라. 횡설수설하는 것.
- 이방인은 왜 중언부언하는가?
신과 인격적인 소통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했고, 그저 추상적으로 말을 많이 하면 들으시겠지..
더 많이 더 크게 기도하면 그 정성에 응답해주시겠지.. 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기도 방법이나 빈도가 아니라
(예수님도 세 번씩이나 자신의 기도를 반복하셨고, 14:23-25절에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셨으며, 제자들에게도 계속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근간을 이루고 기도에 영감을 불어 넣는 믿음의 태도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방인과 같이 않은 너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를 아는 사람들, 믿는 사람들이다.
이사야 65장 24절.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우리가 왜 기도하는가?
기도가 단순히 정보 전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가 단순히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는 기술(더 많은 말을 입력하면 더 많은 결과가 나오는 법)은 더더구나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서 갖게 되는 신뢰 관계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시작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가장 먼저 기도하는 것이다.
4. 하나님 너희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자녀가 아직 어리기에 아이에게 저는 슈퍼맨 같고, 척척박사 같이 느껴진다.
아이가 늘 저를 보며 놀라면서 하는 말은 “아빠는 어떻게 다 알아?” “내가 그거 필요했던 것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이거 갖고 싶은지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아이의 필요와 궁금증을 다 채워주지 못해서.. 아빠는 아는게 없어.. 아빠는 슈퍼맨이 아니구나.. 척척박사가 아니구나. 할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이 나의 작은 문제. 작은 기도. 작은 걱정거리들은 금방 응답해주시고, 금방 해결해 주실 것이 진짜 믿어진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좀 큰 문제, 큰 어려움이 하나님도 크고 해결하기 어렵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심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르실거라고. 해결하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크며..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먹이시고 입히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망각하는 것은 그분이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어버린다.
하늘에 계신..
우리는 이 세상밖에 보지 못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이 땅을 초월하여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유한한 모습으로 한정하고 제한한다.
우리가 오늘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신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의 가장 첫 단추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이 아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그분의 갚으심에 초점을 맞춘 기도를 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