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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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176.
찬176.
데살로니가전서 4:15–17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오늘 본문 4:17을 언뜻 보면 하늘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늘에서 영원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공중에서 주를 만난 뒤에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실제로 우리가 어디서 영원히 주와 함께 있을 것인지를 확실히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주와 함께 있을 곳이 어딘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면 강림이라는 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강림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루시아라는 말인데, 이 파루시아는 왕이나 황제가 어느 지방으로 직접 방문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고대에 파루시아는 많은 과시와 의식을 동반하는 큰 축하 행사였습니다. 왕이나 황제가 그 지방을 방문한다고 한다면 지방전체가 들썩이는 축제였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곧,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과 누가 주를 처음 만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파루시아와 함께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말은 17절에 있는 영접이라는 말입니다. 이 영접이라는 말은 도시로 오고 있는 고관을 영접하기 위해 도시 밖으로 대표단을 보내는 관습을 묘사하는 전문용였습니다. 강림과 같이 영접이라는 말도 고대사회에서 그 상황에 맞게 사용했던 전문용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으로 의기양양하게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여기에서 맞으러 나갔다라고 하는 말이 본문 17절에 나오는 영접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지방으로 오는 고관을 영접할 때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얻으려고 경쟁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5-16절에서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큰 행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리라고 장담을 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살아있는 자들보다 먼저 부활할 것이다라는 것이죠.
1세기에는 묘지가 성 밖에 위치해 있었고, 흔히 성으로 이어지는 간선 도로에 묘지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바울 당시에 이 데살로니가 편지를 읽었던 사람들은 왕이 성문 가까이 오실 때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왕을 맞이하러 나가기 전에, 그리스도를 통해 죽은 자들이 왕이 지나가실 때 먼저 일으킴을 받는 그림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고관을 영접하러 나간 이들이 고관과 함께 다시 성으로 돌아오는 웅장한 행렬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하늘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의 동행을 의미합니다. 15-17절을 자세히 보면 죽은 그리스도인들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신자들이 땅에서 옮겨지는 사건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공중에서 영접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방도시로, 즉 땅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으로 모시고 와서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ㅇ늘 본문은 휴거에 사용된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휴거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는 아닌데, 사람들이 이 본문에 대한 본문비평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만들어낸 생각일 뿐입니다. 15,17절에서 주의 강림과 함께 영접이라는 말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버린다라고 쉽게 결론을 지어버린 것이죠. 주께서 강링하실 때 하늘로 올라가버린다라고 하는 생각은 땅이 소멸할 것이라고 땅의 소멸과 연관을 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께서 강림하실 때 소멸이 아니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3:20–21 입니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대상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고, 구원의 활동은 “회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창조세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땅이 소멸할 것이고 하늘에서 주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이 땅에서의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인생이 허무해지게 됩니다. 소멸할 곳에서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주께서 강림하시는 곳이 땅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땅에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도 살전4:11에서 주께서 강림하시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곳에서 아무런 의미없이 인생을 허비하다가 주께서 강림하실 때 소멸하는 땅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으로 주님을 모셔 올 것이며, 주께서 강림하실 때 창조세계의 모든 것을 회복하실 하나님이 결국에 망가지고 깨진 이 세상을 다시 회복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만물을 회복하고 계시는 주님과 함께 망가지고 깨진 세상을 회복하는 일에 동참하는 교회되게 하셔서, 주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이 온 세상을 회복하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참된 생명을 누리는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