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속죄: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요 1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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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지난 주까지 우리는 칼빈의 5대 교리 중 '전적 타락'과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교리인 '제한적 속죄'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당연히 모든 사람을 위해서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해서"라고 할 것입니다. 과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매우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생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불러일으킵니다. 만약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면, 왜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않는 것일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효력이 없는 것일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실패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를 오늘의 주제인 '제한적 속죄'로 이끕니다. '제한적 속죄'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분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한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구원이 어떤 면에서 부족하거나 제한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이 교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히려 이 교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완전하고 효과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얼마나 강력하고 확실한 것인지를 증거합니다.
(요 10:11)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양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깊이 들여다볼 진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가진 무한한 가치와 능력, 그리고 그 속죄의 효과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완벽하고 실패가 없는 것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 청년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이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1: 보혈의 가치와 능력]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가진 가치와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피가 가진 놀라운 능력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구원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합니다. 이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피는 무한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리스도의 보혈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아무리 깊이 들어가도 끝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이 크고 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제한적 속죄'를 말할 때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가치나 능력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온 세상의 모든 죄인을 구원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가치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이 구절이 대표적 오해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온 세상’이라고 하니깐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보편적 구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늘 문맥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소아시아의 교회들에 보낸 편지입니다. 즉, 여기서 ‘우리’는 것은 당시 소아시아의 유대인 신자들을 말하고, ‘온 세상’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란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종족, 언어, 민족, 나라 중에서 선택된 자들을 포함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것을 ‘제한적’ 속죄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보혈의 능력과 가치를 지닌 속죄의 효과가 어떻게 적용되는가의 문제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보혈의 가치나 능력의 제한이 아니라, 그 적용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의사가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치료제는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완벽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이 치료제를 자신이 선택한 특정 환자들에게만 투여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치료제의 능력이 제한적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제한적인 것은 치료제의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무한한 가치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보혈은 온 인류의 죄를 씻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신 백성들에게만 이 속죄의 효과를 적용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한적 속죄의 핵심입니다.
[본론2: 하나님의 구원 계획]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확실하게 알거나 대답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을 구원해주셨으면, 인간은 또 이런 의문을 던질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 계획 속에서 제한적 속죄를 이해해야 합니다.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구절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영원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미 자신의 백성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나 믿음을 보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받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택한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요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확실히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제한적 속죄로 인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이 누구는 구원해주시고, 누구는 구원해주시지 않았나’ 이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이 제한적 속죄의 교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그냥 그물을 던져 운 좋게 걸린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목적 안에서 선택받아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PPT)개혁주의 신학자 R.C. 스프로울은 "제한적 속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가치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와 목적을 명확히 하는 교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제한적 속죄의 교리는 우리의 구원이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는 확신을 줍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예수님은 (요 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무차별적이고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특별함이 우리의 구원을 더욱 귀중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막연히 사랑하시지 않고, 창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그 사랑 가운데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랑 아니겠습니까?
[적용]
더 나아가 제한적 속죄의 교리는 우리의 ‘전도’와 ‘선교’에도 큰 확신을 줍니다. 어떤 이들은 이 교리가 전도의 열정을 꺾을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행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놀라운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백성을 두셨고, 그들은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백성들을 반드시 찾아갈 것입니다. (지윤이 선교 가기 전). 복음 전하는 삶 강조. 가족 구원.
[결론]
오늘 우리는 칼빈의 5대 교리 중 세 번째 ‘제한적 속죄’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 교리는 결코 우리를 위축시키거나 제한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교리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진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담대히 전하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가 이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 안에서 안식하며, 더욱 깊은 예배자로 성장하는 우리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