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도 가꿔야 아름다워진다 ( 히브리서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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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9주일청년 -
제목: 믿음도 가꿔야 아름다워진다
본문: 히브리서 2:1-4
찬송: 주 뜻대로(내안에 모든 것)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1. 도입
❶ 예전에 분재를 잘 하시던 권사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분재사진)
제 기억으로는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시는 데, 그 동네에서 분재로 유명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분재가 얼마나 예쁘고 멋스러운지 분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찾아와 보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어느날은 한 그루의 나무를 보여주셨는데, 그 분재는 꽃도 참 예뻤습니다. 그런데 나무의 뿌리가 흙 위로 올라와 자태를 뽑내며 아름답게 자란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 분재를 보여주시며, 권사님께서 한 가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신이 분재를 어떻게 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시면서 하시는 말씀하셨습니다. 멋져 보이는 분재가 사실은 꽃집에서 파는 비닐 포트에 담김 2천 원 3천짜리 값싼 묘목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값싼 묘목에 정성을 쏟고, 마음을 자하니 아름다운 분재가 되었습니다.
꽃들도 정성을 다해 가꾸니 아름답게 가꾸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가꾸니 아름다운 것이 되었습니다.
❷ ’황영택‘이라 휠체어 성악가가 있습니다. (사진)
’장애를 딛고 희망을 노래하다‘라는 다큐 영상에 등장하는데요.
이 분은 본래 신체 건강한 정상인으로 태어나, 건설 경기가 좋을 무렵 포스코에 입사해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퇴사 후 건설업의 종사하다가 갑작스런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판정받게 됩니다. 사고 이후 허리의 통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허리가 잘린 것처럼 아파서 손에 잡히는 링거줄이나 링거병들을 마구 던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통증은 줄었지만 한 순간에 받은 장애 판정은 그 삶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볼품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어느 날 자신의 눈에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고, 자녀들이 모습이 보였습니다.그후 그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살기 위해 테니스를 하고, 37세에는 수능을 봐서 성결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습니다.성악과의 입한 한 후 하반신 마비로 인한, 불안정한 호흡을 훈련하기 위해 배에 벨트를 묶고 피나는 노력하며 연습했습니다. 이후 장애인 황영택 씨가 아니라, 테니스 국가대표 황영택, 강연가 황영택, 성악가 황영택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분의 아내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존경하는 사람, 그리고 멋진 아빠, 멋진 남편이에요. 잘 살아줘서 고맙고, 잘 견뎌줘서 고맙고 아주 나쁜 선택을 안해서 고마워요.“
만일 그가 주어진 삶에 비관하며 인생을 던져버렸다면 맛보지 못할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딛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가꾸니 그의 삶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삶으로 가꿔졌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가꿀 때 아름답게 가꿔집니다.
❸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꾸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으면 아름다운 신앙, 아름다운 믿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가꿀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믿음으로 자라갈 수 있을까요?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아름다운 믿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가꿔야 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가꿔야한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예전에 렝프팅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사진)
계속이나, 강의 상류로 올라가서 고무보트를 타고 내려옵니다.
그때 안전수칙도 배우고, 구명조끼도 입고, 또 노를 지급받습니다.
그런데 보트에 오른 후 내려가는데, 특별하게 노를 젖지 않아도 배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왜냐하면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를 때에, 고무보트가 강물에 흐름에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해서 알려줍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물 위에 떠있는 고무보트와 같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보트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듯이,
우리의 믿음도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말씁니다.
우리의 믿음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우리는 지금 수준의 신앙생활을 지킬 수 있고, 또 더 앞으로 나아갈 수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세상의 강물에 흘러 떠내려 가게 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에덴동산을 지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세상에서 가장 죄가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깨끗하고, 죄가 없이 거룩한 그곳에서도 죄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하와가 먹고 아담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놓치고, 다른 말, 잘못된 말에 귀 기울이자,
그들의 믿음도 신앙도 죄로 흘러 떠내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려버두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0절 이하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바리새인은 옳다 인정을 받지 못하고,죄인인 세리가 옳다 인정을 받습니다.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바리새인의 기도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11절 하반절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 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립니다.” 기도합니다.
당시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의 말이 진실입니다. 당시 그들의 문화적 관습에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신앙의 관습과 규정을 지키며 거룩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방향성에 문제이고, 또 하나는 머물러 있는 신앙이 문제입니다.
방향성의 문제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 원하시는 것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지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더 많은 율법의 미션을 완료하고 남도다 더 높은 위치에 서는 것,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방향성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신앙의 행위들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께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신앙의 행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물러 있으니 그들의 신앙은 뒤쳐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맨 뒤에 있어야 할 ’세리의 기도, 세리의 신앙과 믿음“이 인정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그들은 오히려 뒤로 가고, 죄인이었던 세리가 앞선 신앙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가꾸지 않으면, 가꿔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두면 뒤로 물러가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아름답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신앙이 재밌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새벽기도하는 신앙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운동을 배워도, 게임을 배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어렵고 생소합니다.
그런데 익숙해지고,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게임에서 눈을 땔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꾸다 보면 신앙생활을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조금은 어려워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주일 예배만 나왔다면, 수요, 금요로, 식사기도만 했다면 아침에 깰때에,
저녁에 자기전에 기도의 자리를 지켜가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믿음, 복된 믿음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여러분의 삶도 아름답게 바꿔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두 번째 (아름다운 믿음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들은 바를 더욱 굳건히 붙잡아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들은 것에 유념한다는 말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것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들은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것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들은 말씀, 들었던 말씀, 익순한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단에 의해서 이단으로 정죄받은 서울 성락교회의 ‘김기동’씨가 있습니다.
이분이 가르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귀신은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 영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그 배경은 귀신을 쫓는 사역을 했는데, 그 사역을 하다가 ‘귀신’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의할아버지다.“ ”어떤 사람은 어떤 가족이다“
이렇게 대화하면서 자신의 신학과 신앙을 적립합니다.
그냥 저의 생각에 이렇게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과거나 행적 등 어떤 내용에 대해서
무당처럼 맞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신뢰했는지도 모르죠.
이 이야기를 들으면 혹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 집에서 점을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 – 맞다 그래서 점이 맞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조상신을 믿는 사람은 그에 혹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교리를 믿고 등록한 신자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에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 내게 자극적이고 신선해 보이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단으로 정죄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주장하는 ‘귀신론’이 성경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는 사역을 하다 듣게 된 귀신의 이야기가 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내용을 듣고 그것을 신앙했습니다.그 결과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세상의 문화나, 어떤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사람을 다시 일으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친구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친구와 함께 길을 걷는 중에 갑자기 벼락이 내리쳤습니다.
내리친 벼락이 루터와 함께 길을 가던 친한 친구에게 내리쳤고 친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겪은 후 루터는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수도사가 되고, 고행하고 자신을 매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노력으로도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성경을 보고, 성경을 연구하며 그의 인생의 두려움을 떠나갔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변화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너무나 평범한 그 말씀. 우리가 듣고 암송하고, 알고 있는 그 말씀이 루터를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신선하고 새로운 학문 가르침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전해진 그 말씀이 변화시킵니다.
히브리서 2장 1절을 다시 보시면 ”유념하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유념하다“라는 단어는 원어의 의미에 ”듣다, 경청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마음으로 내려와, 우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마음을 쏟을 때,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아름답게 가꾸게 될 것입니다.
3. 결론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에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우리의 믿음을 가꿔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믿음을 아름답게 가꾸기 원하신다면
우리의 믿음은 가꾸지 않으면 퇴보 됨을 기억하십시오.
들은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집중하고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렇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를 지켜가십시오.
기도의 시간을 늘려가십시오.
아름다운 믿음으로 가꿔질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믿음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