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무슨 교제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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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빌립보서 2장 1~4절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1–4 NKRV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우리가 이번 새봄수련회 때 계속해서
교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 새봄수련회 동안에 교제 많이 하셨나요?
어떻게든 수련회 시간에 교제를 풍성하게 이뤄보려고
임원들이 많이 수고했습니다.
우리 수고한 임원들 위해 격려의 박수 하겠습니다.
그리고 찬양팀 위해서도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함께 달려온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이렇게 우리가 함께 격려하고, 기쁨을 나누는 모든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제란 무엇인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누구와 더불어 사귀는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교제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교제(코이노니아)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며,
성도들이 서로의 삶과 고난을 나누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구별된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영적이고 실제적인 나눔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런 교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 수련회의 주제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누리고 나누는 교제의 삶이 얼마나 기쁜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 133:1 NKSV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처럼, 다윗이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의 교제가 아름답고 즐거운가.
기쁨이 넘치고, 날마다 능력을 경험하는 풍성한 삶인가?
생각해보면, 우리의 교제가 때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괴로울 때도 있고, 힘들고 답답한 상황도 많이 생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름답고 즐거운
교제를 나눌 수 있을까요?
오늘은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교제가 되기 위한
원리에 대해서 함께 나눌까 합니다.
계속 같은 주제로 설교하다보니 내용이 많이 겹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좋은 교제의 원리를 나누면서
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삶을 공유하면서 교제하는거죠.
어쩌면 제 무용담이 될 수도 있고, 간증이 될 수도 있는데
너무 과하다 싶으면 좀 오버하는구나. 적당히 거르시고.
은혜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본론
첫째, 우리는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가까운 카페에 가보면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실제로는 각자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헤드폰을 끼고 혼자 고개를 흔들거리는 사람,
노트북을 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는 사람.
함께 있되 함께 있지 않은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촘촘히 연결된 세상인 동시에
가장 외로운 세상입니다.
함께 어울리기는 하지만, 관계는 없습니다.
모두 혼자 놀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중요한 문제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모든 사람의 일상 가운데
깊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저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식사하면서, 말은 안했지만
문득 두 사람 모두 스마트폰을 하면서
각자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떨어져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겨우 시간을 가졌는데
단 30분도 친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으로 하나된 공동체인 교회에도 친밀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주 모이기는 합니다.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청년예배, 성경공부, 셀모임 등
수많은 만남의 기회와 교제의 장이 주어지지만
그것이 꼭 친밀감을 높여주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한두시간 소그룹으로 모여 다과를 나누다가
뿔뿔이 집으로 흩어지는 것을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귐의 시간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모이고 싶어하고, 돌보기 원하고, 사랑하기 원하는 것
이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여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모여야 하니까 모이고, 나눠야 하니까 나누는 모임은
진정한 교제로 이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교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빌립보서 2:2 NKRV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한 마음을 품어.
다양한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 사귐을 닮아서 우리가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21 NKRV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아버지 안에 거하며 하나 된 것 같이
제자들도 서로 하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깐 제자들이 서로 내가 너 안에, 너 안에 내가 있어
그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어 하나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방영했던 유명한 드라마 ‘파리의 여인’에서
이런 명대사가 있습니다. “내 안에 너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교제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내 안에 너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모든 것에 같은 의견, 같은 삶의 방식, 같은 취향,
같은 성향을 가지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서로 한 마음을 품어 하나 되라는 것을 본문 5절에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2:5 NKRV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이 이 땅에 살면서 항상 품고 사셨던 마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을
구원해야할 사명을 갖고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모든 순간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지
어떻게 영광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이 땅의 모든 영혼을 구원할 것인지 늘 마음에 품고 사셨습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함께 품을 때, 우리의 교제 안에
더욱 기쁨과 능력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마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제의 즐거움말하는 것에서 찾습니다.
자기 말을 하거나,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나를 자랑하고, 상대방을 욕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면 만족을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말에 반응하는 무리를 찾습니다.
자기 자랑이든, 남의 흉이든 내가 말할 때
그 말에 맞장구 쳐주면, 그 모임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약간 그런 타입입니다.
사랑의 5가지 언어를 조사해보면, 인정 욕구가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남이 제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칭찬해주면
기뻐서 말하지 않았던 것까지 다 내어주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교제는 각자의 마음에 맞춰서
서로 말하고, 들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제하는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도록
서로 돕고 권면하는 것이 진정한 교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위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계획하고, 함께 도전하는 것이 좋은 교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3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습니다.
사도행전 20:31 NKRV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교제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에 관해서 나옵니다.
온유하게, 무례하지 않게,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진리로, 참고, 믿고, 견디고, 바라며,
간청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교제할 때, 우리의 교제는 더욱 풍성한
기쁨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서로의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에 군대 제대하고 25살에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 때 다니던 교회가 규모가 있어서 청년부 출석인원이
45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부 목사님의 콜링을 받고 청년부 전도사를 시작했는데
그 때 찬양팀을 맡아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평일에는 신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만 사역하는 파트 전도사였는데,
토요일에 찬양팀 성경공부, 기도회, 리허설 연습 진행하고,
주일에 찬양인도 하고, 청년부 셀리더 양육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청년부 규모가 컷기 때문에 담당 부목사님 밑으로
전임 간사 2명, 전담 전도사 1명, 파트전도사 3명
이렇게 총 7명이 청년부만 맡아서 사역을 했습니다.
제가 맡은 찬양팀만 인원이 70명이었어요.
악기 15명, 싱어 30명, 워십 20명, 엔지니어 2명, 총괄 간사님 1명
그 외에도 찬양팀 자체 사역이 굉장히 많아서
찬양팀만 맡아서 관리하는데도 혼자는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보다 찬양팀 인원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악기는 2팀, 싱어는 3팀, 워십도 2팀
이렇게 팀을 나눠서 번갈아가면서 했습니다.
자체 오디션도 있고, 자체 엠티, 수련회, 체육대회,
팀별 엠티도 따로 가고 했습니다.
그 때 생각하면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그런데 그 때 저에게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냐하면, 제가 노래를 못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찬양인도도 잘 못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세요?
제가 지금 너무 잘하는데,
그때 못했다는게 상상이 되냐는 말이 아니라.
70명이나 되는 큰 찬양팀의 리더가
노래도 못하고, 찬양인도도 못한다는게 상상이 되냐는거에요.
제가 어떻게 하다가 찬양팀 리더가 되었는지 알면 이해가 될거에요.
저는 원래 청년부에서 일렉기타를 쳤습니다.
지금 지우형제가 연주하는 그 까랑까랑한 기타를
제가 청년부 시절에 찬양팀에서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일렉기타를 칠줄 몰랐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기독교 찬양 동아리를 들어갔습니다.
악기, 싱어, 워십이 있는데, 저는 통기타로 지원을 했어요.
그런데 통기타는 인도자가 연주하면 된다고 해서
저보고 일렉기타를 연주하라고 하는거에요.
사수가 일렉기타 전공 준비하니깐 잘 배우라는거에요.
그런데 제 사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전공준비한다고
동아리를 안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수를 딱 2번 만났습니다.
그래서 아시는 분은 아는데,
일렉기타에서 파워코드라는 것을 2주 동안 배웠습니다.
징~ 징~ 징~ 하는거에요.
저는 그것만 3년을 동아리에서 연주했어요.
그래서 찬양 동아리에서 제일 두려운게 뭐였냐면
기타 솔로가 나오는 곡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타 솔로를 할 줄 모르거든요.
일렉기타를 배운적이 없는데.
근데 다들 일렉기타를 한다고 하면 다 잘하는 줄 아는거에요.
당연히 기타 솔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래서 찬양집회에 섭외를 받아서 가면
기타 솔로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코드만 치는거에요.
징~ 징~ 징~ 소리도 작아요. 잘 못치는게 티날까봐.
그래서 선배들이 제가 칠 수 있게 아주 쉽게 변형해서 알려줬어요.
원래 일렉기타 솔로는 빠르고, 화려하잖아요.
띠리디리~ 띠리디리~ 이러는데.
제 솔로는 띠~리~디~리~ 이러는거에요.
그래서 솔로가 너무 싫었어요.
일렉기타를 너무 하기 싫었는데 섬기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찬양 동아리에 일렉기타가 나밖에 없으니깐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깐 그냥 한거에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생 때까지 개척교회를 다녔는데,
찬양 동아리도 개척교회 찬양팀에서 도움이 되어볼라고 간거였어요.
그런데 사정이 생겨서 20살에 교회를 옮기게 되었어요.
원래 저는 대형교회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찬양동아리에서
매일 대형교회를 위해 기도했거든요.
큰 교회 목사님들이 돈 욕심 때문에 교회를 망친다고.
그래서 저들이 회개해야된다고 서로 욕하면서 기도했어요.
왜냐하면, 그 동아리는 다 저처럼 개척교회 섬기는 분들이
교회에 도움이 되어볼라고 모이는 동아리인지라
다들 대형교회에 대한 안좋은 감정들이 있는거에요.
특히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성도님들이 옮기게 되면
다들 개척교회 담임목사 아들이어서 엄청 욕하는거에요.
그래서 저도 개척교회를 다니다가 20살에 교회를 옮기는데
절대 대형교회는 안가야겠다.
많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중형교회,
300~500명 정도 모이는 건강한 교회를 가야겠다.
너무 웃기는게, 제가 스스로 인원을 정하는거에요.
1,000명 이상 모이는 교회는 썩은 교회라고.
그런데 부모님과 교회를 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권사님의 권면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제가 살던 전주에서 제일 큰 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 당시 7~8천명 이상 모이는 교회였어요.
권사님의 소개로 교회를 방문차 금요예배를 갔는데
예배 전에 담임목사님을 보자고 소개시켜준거에요.
그렇게 처음 교회를 가자마자 저희 부모님과 제가
담임목사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제 소신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대형교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작은 교회들이 섬길 사람이 부족해서 정말 힘든데
대형교회는 섬길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이 사람들이 흩어져서 작은 교회를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한거에요.
왜냐하면, 저는 이 얘기를 하고 다시는 이 교회에 안나올꺼니깐.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담임목사님께서 제 말에 맞다고 하시는거에요.
사람은 다 자기랑 맞는 교회가 있다.
그러면서 저와 부모님의 사정을 다 들어주시는거에요.
그렇게 상담을 받다가 우연히 저희 부모님이
제가 고등학교 때 일렉기타를 연주했다고 말한거에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담임목사님 찬양팀 담당
부목사님을 호출하시더니, 5분 내로 달려오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저를 소개하는데, 이 청년이 일렉기타 할 줄 안다고 하는데
찬양팀에 일렉기타가 마침 비었다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몇달 전부터 일렉기타가 없어서 기도중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일렉기타 칠줄 안대. 이따가 얘기 나눠봐.
그러고는 그 부목사님은 나가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모님과 담임목사님의 면담이 끝나고 방을 나서는데
아까 그 찬양팀 부목사님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나오자마자 저를 데리고 교회를 안내하면서,
자연스럽게 찬양팀이 모여서 대기하는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곳에는 청년들이 50-60명 정도 같이 예배를 준비하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저를 소개하면서
이 청년이 일렉기타를 칠 줄 안다고 하니깐 잘 대화나눠보라고
그렇게 저를 던져놓고는 예배 준비하러 가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역이 바로 찬양팀 사역이었습니다.
그 주 주일부터 청년예배에 나오기 시작하고,
아직 교회에 등록도 안했는데, 매일 찬양팀 형 누나들에게
연락이 와서 찬양팀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계속 찬양팀 모임과 예배를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팀의 신입생 교육이 4주가 있는데
저는 처음 등록한 날 찬양팀을 가서 새가족 교육과
찬양팀 신입 교육을 같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가족 교육을 마치고 셀 파송하는 날
찬양팀 신입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기타로 데뷔하는 자리에서
셀파송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 청년부 이래로 이런 청년은 없었던 거죠.
그렇게 청년부에서 일렉기타로 3년 반을 섬기고,
군대를 뒤늦게 다녀왔습니다.
일렉기타를 섬기면서 찬양팀과 오랜세월을 같이 하면서
정말 많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큰 교회에 일렉기타 연주자가
저밖에 없는거에요.
물론 전공생들이 많았는데, 다들 락밴드 활동만 하고
교회 찬양팀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청년부 찬양팀 외에도 교회 모든 찬양팀에
다 소속이 되어 평소에는 3~5개 정도 섬기고
여름, 겨울 사역이 되면 7~8개 팀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방학 2달을 거의 매일 집회만 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떨때는 오전, 오후, 저녁 하루에 3곳을
다른 집회를 섬긴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청년시절 3년 반을 불태우고 군대를 다녀오니깐
청년부 목사님이 제대하자마자 같이 사역하자고 콜링한거에요.
그리고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저에게 찬양팀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제가 찬양을 못할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기본은 하겠지. 악기팀인데. 찬양팀을 그렇게 많이 섬겼는데.
그런데 악기 연주자들은 다 느끼실거에요.
여러분 노래 잘하세요? 찬양인도 잘하세요?
찬양인도와 악기연주는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저는 매일 청년부 목사님과 1대1 면담을 했습니다.
제가 불렀던 찬양을 같이 들으면서
왜 여기를 이렇게 불렀느냐. 왜 음이 떨어지냐.
왜 자꾸 목으로 부르냐? 노래 부를줄 모르냐.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다른교회 청년부에서 우리 청년부를 배우러
교회탐방 신청을 했습니다.
청년부 목사님과 담당부장, 간사, 찬양인도자, 셀리더 등
리더급 15명 정도가 와서 곳곳을 살펴보며 물어보고 대답하며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제발 찬양인도 관련해서 얘기가 안나오길 바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청년부 목사님이 너무 자랑스럽게 큰 목소리로
여기가 우리 청년부 찬양인도자 김현규 전도사입니다.
그런데 탐방온 교회의 찬양인도 하는 분이 단번에 알아보시곤
살짝 웃으면서, 아. 네 압니다. 영상 많이 봤어요.
무슨 느낌인지 아시나요?
아, 그 드럽게 인도 못하는 분. 다 알죠.
이렇게 속 마음이 다 들리는거에요.
그렇게 힘겹게 어렵게 자신없는 사역을 꾿꾿이 감당하다가
드디어 사건이 터졌습니다.
제가 오늘 이 얘기 하려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사역했던 청년부는 28살을 기준으로 위 아래
2개 공동체로 나눠졌습니다.
그런데 전담전도사님 포함 4명의 전도사님이 나이순으로
1,3번째가 위 공동체 2,4번째가 아래 공동체를 맡았습니다.
제가 나이 서열 3번째여서 위 공동체를 맡았어요.
25살인데 28살 이상 청년 공동체를 맡은거에요.
그렇게 형님, 누나들과 함께 사역을 하다가
여름수련회 때 농촌지역 작은교회 여름성경학교를 섬기고,
저녁에는 자체 집회를 하는 형식으로 수련회를 하자는
좋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준비하고, 찬양팀을 꾸리는데
제가 또 찬양인도를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여름성경학교를 섬기는 수련회를 하다보니
찬양팀이 찬양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원자를 대상으로 찬양팀이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수련회를 참여하는 모두가
찬양, 데코, 안내, 공과공부, 레크레이션 등
무조건 1개 이상 의무로 들어가야 하는거에요.
그런데 찬양팀 구성 멤버가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절반은 이미 찬양팀 활동을 하고 있는 멤버이고
나머지 절반은 왕년에 찬양팀을 했던 장농면허 멤버들인거에요.
20살 때 찬양팀 섬겼는데,
지금 이분들은 30대 중반, 40대 초반 이신거에요.
찬양팀 한지 15년 20년이 지난 분들이
옛추억 느끼고 싶어서 신청한 거에요.
그러니깐 연습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콘티부터 어렵다, 이 곡 처음 해본다,
코드에 샵 많이 들어가면 안된다, 키업은 절대 안된다.
수준을 절대적으로 많이 낮춰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이미 찬양팀을 섬기고 있는 멤버들은
그렇게 아마추어처럼 할거면 무슨 섬김이 되냐.
잘 못하면 정말 연습 열심히해서 최선의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냐.
애들이라고 대충하면 되냐? 이런 의견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이면 어디에 의견을 맞추어야 할까요?
제 생각은 무조건 쉽게 가는 쪽으로 의견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이들 찬양 들어보셨나요?
아이들 찬양이 우리들이 부르는 찬양보다 악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기계음도 많이 들어가고, 중간에 솔로, 간주도 되게 많아요.
그런데 제가 무조건 솔로 안합니다. 어려우면 패스할게요.
키업도 안합니다. 단단히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공지를 하고 첫 연습시간이 되었는데,
자꾸 드럼 전공하신 형님이 중간에 간주를 염두해두고
연주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인도자로서 그 간주를 무시하고
최대한 쉽게 갈 수 있도록 곧바로 노래를 들어갔습니다.
그러나보니 서로 꼬이게 되고, 연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적으로 뭐라고 하지는 않고,
저는 계속 “간주 안합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갑니다.”
중간 중간 멘트를 넣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율이 되지 않아서
결국 드럼치는 형님이 드럼을 세게 치면서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아무 세션도 없이
코드만 누를꺼면 왜 연습하냐. 시간이 아깝다.
연습하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취지를 설명했고, 잘하는 분이
못하는 사람을 맞춰주면서, 조율하는 것도 수련회의 일부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찬양팀 연습이 파토났습니다.
다음 연습 때는 아무말 없이 기본박자만 치면서
얼굴표정에 완전히 기분이 상해있다는 티를 내면서
시종일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수련회는 잘 마쳤는데,
그 다음부터 그 형님과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찬양인도하는 찬양팀의 드럼주자였습니다.
그래서 찬양인도할 때마다 저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제가 박자를 잘 못맞춘다. 정확한 오더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더 잘 연주 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기본박자만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개월을 서로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대치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중 찬양팀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제가 이렇게 집회 인도를 하다가
각자 서로 마음에 묶였던 것들이 있다면 1대1로 찾아가서
서로 대화나누는 시간을 갖자고 했어요.
그렇게 기도를 시켜놓고, 저는 용기를 내 그 형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니깐 그 형님이 왜 왔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라구요.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어요?”
“그동안 저도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형님 입장도 이해가 되더라구요.
사전에 제가 조율없이 제 생각만 가지고 공지하고
모두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찰도 있었던 것 같아서
화해하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그 형님이 “관계가 이렇게 찾아와서 우리 화해합시다.
그렇게 말하면 그 다음부터 불편했던 마음이 다시 돌아오나요?
저는 그렇게는 안되던데요. 이게 시간이 필요한거지
그냥 우리 화해합시다. 말한다고 되는건 아닌것 같아요.”
이렇게 딱 잘라서 얘기하더라구요.
그때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너무 큰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 형님을 품으려고,
그 형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형님과 친해지는데,
정확히 몇년이 걸린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그 교회에서 사역이 끝날 때까지도
계속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7년 사역했었거든요.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이란게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서로 하나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간혹 관계를 맺을 때, 내 감정, 상황,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죽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시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은 시체와 같습니다.
시체는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것들에 대해서 죽었어요.
그래서 더이상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이야기를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생각할 수 없어요.
예수님 때문에 말하고, 예수님을 위해 듣고,
예수님과 함께 생각하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향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제도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이 교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죽어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노래를 못하고, 찬양인도를 못했는데,
제가 찬양팀을 맡을 때, 찬양팀 인원이 제일 많이 늘었어요.
저는 용기를 주었어요. 저렇게 노래 못하고, 인도 못하는 사람도
찬양인도 할 수 있구나.
여러분, 사실 제가 그때 맡았던 찬양인도의 자리가
정말 대단한 자리였어요.
서로 하고 싶어서 청년들이 서로 라인타서 목사님께 추천하고,
텃새도 심해서 자칫 능력안되는 사람이 맡으면
산 송장이처럼 탈탈 털리다 내려놓는 자리였어요.
그만큼 얼마나 콧대 높았던 자리인지.
저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물론 실력이 없는 것은 사실인데, 그 외에도 이상한 소문도 내고,
말도 안되는 것들로 트집잡고, 모함했어요.
그래도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면서, 전혀 모르는척 웃으면서 인사했어요.
저를 욕하는 사람 중에는 정말 친한 친구도 있었어요.
그런데 모르는척 했어요.
저는 그 자리가 그 십자가를 져야되는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가 십자가를 지니깐, 찬양팀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들이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보듬어 줬어요.
나중에 견디고 보니깐,
저의 그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더라구요.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똑같이 비난하고, 욕하는지.
감정의 조절이 안되어서 화내고, 억울해하고, 흔들리는지.
여러분, 침 맞아봤어요?
찬양팀 때문은 아니었는데, 제가 동기장을 할 때였어요.
제가 20살 때 교회를 옮겼잖아요.
그리고 오자마자 찬양팀을 들어와서 갑자기 인싸가 된거에요.
그러다보니 21살 때 동기장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했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간사님한테 동기 연락처 다 받아서
매일 전화하고, 문자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아직 나하고 친하지 않으니깐 그런가보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외로움이 동기장의 십자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청년부에서 겨울에 동기별 엠티를 가라고 권면하면서
지원비를 준다는 거에요.
그래서 몇몇 친한 동기들과 얘기해서 스키장을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의견을 조율하는데 다들 답도 없고,
스키장을 제안했던 친구도 갑자기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애매하게 대답을 하는거에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제가 전체문자를 보내고 연락할 때마다
저 빼고 기존에 교회를 다니던 동기들끼리 모여서
제 욕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러면서 일부러 제 문자에 답장을 안하고,
제가 말하는 의견에 반응하지 않거나, 반대로 얘기하면서
저를 어렵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알고, 제가 몇몇 친구들과 대화하자고 불러냈습니다.
분명히 2-3명만 나오기로 했는데 10명이 넘게 그 자리에 나온거에요.
그러면서 2-3명이 제 말을 끊고 공격하면
나머지 10명이 그 말에 동조하고,
제가 말하면 제 마음대로 정한거라고, 제가 소통을 안한거라면서
야유를 보내고, 왕따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당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분명히 전체연락도 다 돌렸고,
개별 연락도 수십차례 하면서 의견조율도 했는데,
그 친구들이 조직적으로 제가 했던 소통을 방해했기 때문에
저는 할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말에 또박또박 대답을 했습니다.
10명이 말하든 20명이 말하든 저는 제 말이 맞기 때문에
절대로 지지 않았어요.
그러자 그 중에 한 친구가 제가 재수없다면서
제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하면서 도망갔습니다.
너무 화가나서 그 친구를 쫓아갔는데,
다른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비웃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 대화가 마무리 되고,
나중에 그 무리 중 몇명이 따로 저를 찾아와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통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교회를 나오던 동기들 중에 주축이 되는 멤버들의 말을
같이 듣고, 조율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민주주의 방식으로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급급해서 그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중등부 고등부 때부터 임원도 하고, 회장도 하고,
찬양팀도 해오던 주축 멤버들인데,
당연히 자신들에게 의견을 물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다수의 의견을 묻고, 투표로 결정해 버리니깐
그 친구들이 따로 뒤에서 모임을 만들어서 매주
저를 비난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그 사실을 알고 그 친구들을 다 찾아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나누고 대화로 다 풀었습니다.
지금은 저에게 침뱉었던 친구와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뉴스에 교회 관련해서 안좋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저에게 전화해서 따집니다.
너도 저러냐? 제발 너는 저렇게 되지 말아라.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주고, 마음 터놓고 얘기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세워지기 까지는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어제 집회때 기도제목 나누며 잠깐 제 마음을 고백했는데
사실 저도 늘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렇게 목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주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너무 부족하고, 과분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계속해서 저를 사용해 주시는 것은
그때 그때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는 몸부림 때문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조율하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에 나의 마음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맞추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우리 이제 그리스도의 마음에 다같이 맞춰보자.
이렇게 말로만 할 순 없어요.
누군가 본을 보여야 해요.
그게 셀리더가 될 수도 있고, 임원이 될 수도 있고,
여러분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여러분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3 NKRV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성도의 교제를 아름답고 즐겁게 만드는 두 번째 원리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 말하는 ‘아무 일에든지’는
단지 성도의 교제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이 겸손해야 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함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못한 교제의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제를 하다보면 종종 다툼이 일어납니다.
본문 3절에 나오는 ‘다툼’이란 단어는 헬라어 ‘에리떼이아’로
이기적인 야심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를 성경은,
타인보다 자신의 욕구를 더 채우려는 이기적인 야심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다고 근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툼이나 갈등이 왜 일어납니까?
서로의 이익과 욕구가 다르기 때문 아닙니까?
결국 다퉈서 자기 욕구를 충족함으로 승리했다는 만족감을 위해
서로 지기 싫어하고, 끝까지 고집피우며 싸우는 것 아닙니까?
승리의 기쁨은 잠깐이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칭찬받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툼과 같은 선상에서 ‘허영’을 함께 언급합니다.
아무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결국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은 공허한 영광.
속이 빈 껍데기만 얻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툼과 허영을 몰아내고,
참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는 교제는
성도 각 사람이 자기보다 남을 더 높여서 생각하는 마음,
곧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
이 마음으로 교제를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러 오셨던 것처럼
나도 내 지체를 섬기기 위해 교제한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낮출 때, 그 안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묻어날 것입니다.

셋째,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4 NKRV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아릅답고 즐겁게 만드는 세번째 원리는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오늘날 양적으로 부족하고
질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단지 시간이 없거나
관심이 적어서가 아니라, 게을러서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를 돌아보면,
우리도 모르게 낭비하는 시간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을 자기 위로, 자기 보상을 하느라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에 다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일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근면성실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남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챙길 수 있겠습니까?
주를 위해 사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려면 굉장히 바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실제로 결과도 좋아야 합니다. 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양보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화를 내면 안됩니다. 친절해야 합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일잘하는데 성격 드러운 사람과
일은 진짜 못하는데 성격 좋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과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예전에는 일은 못하더라도 성격 좋은 사람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성격이 더럽더라도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만큼 결과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과가 안좋으면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ㅎ
하나님이 영광을 가리웁니다.
그런데 성격 좋으면서, 남에게 다 양보하면서, 배려하면서
어떻게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남보다 2배, 3배, 5배, 때로는 10배 더 일을 열심히 해야합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퍼펙트로 해야 남에게 양보하면서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럴려면, 그리스도인은 정말 부지런해야 합니다.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셀리더, 교사, 섬김의 자리에 있는 분들은 느끼실거에요.
정말 셀원들과 진실한 교제가 될 수 있도록
친밀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면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맡은 셀원들과 모두 찐친으로 친해지려면,
모든 셀원들과 매일 카톡을 해야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매일 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한번도 연락 안하면 서운해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약간 건너서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 대화하다보면,
어떤 친구와 중요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면 그 대화는 오늘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일, 내일 모레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다른 셀원들과도 그렇게 진솔하게 대화하다보면
이 친구랑 어떤 내용까지 이야기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부지런한 리더는, 그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놓습니다.
마치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관리하듯 하나 하나
셀원들의 정보를 적고, 정리하며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 교제가 주님 안에 풍성한 나눔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여러분을 섬겼던 리더와 교회학교 선생님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고와 헌신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무언가 얻으려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주님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비워
스스로 종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던 것처럼.
섬기는 자로 우리 모두의 삶을 지시기 위해
십자가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흘려주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섬길 때
우리의 교제가 아름답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리더만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에게는 맡겨진 영혼이라는 책임이 있지만,
꼭 이 일을 리더만 해야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제는 서로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리더와 함께 더불어 셀원 모두가 함께 서로의 일을 위해서
섬기는 자세로 함께 나아갈 때,
더욱 풍성한 교제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청년들의 일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청년이 있으면 걱정되시나요?
매주 열심히 예배드리는 저 형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매일 고난 가운데 마음 속이 무너져있어
예배 아니면 하나님 아니면 기댈 곳이 없어서
마음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관심을 가져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서로에게 영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지런히 다른 사람의 삶을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교제를 아름답고 기쁘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1~4절 말씀은
4절의 마지막 명령 한 문장에 모두 연결된 구조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연합하고, 서로 겸손하게 대하고,
서로의 일을 돌봄으로 말미암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는 것을 통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자녀들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남을 위해 배려하며
돌보는 모습을 볼 때, 부모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내가 양육했던 자녀가 이렇게 성숙해서
훌륭한 사랑을 실천하는 멋진 인격체로 자라났다는 것은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참된 교제를 나누며 누길 때,
목자의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성도의 교제를 가르치는 목자의 마음이 이러한데,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실까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지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교제가 있든지,
그리스도의 마음, 즉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신 마음,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신 마음,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셨던 그 마음.
우리 각자가 그 마음을 가질 때,
우리 교제는 참으로 아릅답고 즐거운 교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해 우리 아버지께서
충만한 기쁨과 영광을 얻으실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이 이 매력적인 교제에 이끌려
선한 영향력을 흘러보내는 공동체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지런히 사랑으로 교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찬양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기도제목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내가 먼저 섬기고, 내가 먼저 죽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섬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서로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 예수님을 닮은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속한 모임에서 나를 그렇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마음 주시옵소서.
나의 자존심과 교만함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배워 먼저 낮아지고 섬기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뒤에서 험담하고 판단했던 모습을 고백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앞에서 솔직하게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바쁘다는 핑계로 지체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무관심했던 것을 돌아보며, 매일 한 명의 지체라도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고, 그들의 기도제목을 기억하며 중보하는 사랑의 수고를 실천하게 하소서.
내 유익을 구하기 위해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렸던 이기적인 모습을 고백하며, 매일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구하며, 모든 만남과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 되게 하소서.
마무리기도 + 헌금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섬기며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교만함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겸손히 서로를 낫게 여기며 섬기게 하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예물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데
귀하게 사용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참된 코이노니아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제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축도
이제는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바드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세밀한 음성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섬기고,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기를 원하는
여기 모인 모든 청년들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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