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9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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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사랑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날에 주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인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으로 크신 은혜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다들 방학 잘 지내셨나요? 다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너무나도 반갑네요.
정말 간만에 긴 방학이었다보니 여러분들과 이렇게 함께 만나는 날을 기다리게 되더라구요.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죠?
오랜만에 보는거다보니 말씀을 길게 나누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뒤에 학교에서 행사로 인해 강당을 쓰셔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컴팩트하게 핵심만을 잘 넣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할테니, 다들 집중해서 잘 들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의 전체에서 따지자면 상당히 후반부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그 땅을 지파별로 분배까지 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원래 말씀에서 가나안 땅이라고 하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요단 강을 건너서 강 서쪽 지역을 가나안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가나안 땅 동쪽의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였습니다.
그들은 왜 요단 동편을 받게 되었느냐, 아직 모세가 이스라엘의 리더였을 시기, 그러니까 요단을 건너기 전, 이 세 지파들이 보니, 여기 있는 요단 동편도 살기가 나쁘지 않은거에요.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로 하던 일이 목축이었는데, 요단 동편에 목초지들이 많다보니 목축업을 하기도 용이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모세에게 간청합니다. 우리는 이 요단 동편을 받게 해달라고 말이죠.
그리고 모세는 이를 승인하면서, 한가지 단서를 달죠. 바로 요단 동편을 분배받더라도 가나안 전쟁에 참여해야 하며, 특히 선봉에 서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땅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함께 해야 할 전쟁에 게을리 임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이죠.
그렇게 세 지파들은 동편 분배를 약속받고, 가나안 전쟁에 선봉으로 참여하였으며, 모두가 성실히 그 약속을 이행한 후, 분배까지 끝나자 르우벤, 갓, 므낫세 세 지파들은 다시 자신이 분배받은 요단 동편의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해피 엔딩인 줄 알았는데, 요단 서편의 지파들에게 한가지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요단 동편의 땅에 제단이 세워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서편의 지파들은 모두 놀라 실로에 모두 모여 전쟁을 준비합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여러분, 제단은 뭘 할때 사용하는 것이죠? 바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제사는 아무 곳에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행해져야 했죠.
그리고 당시에는 그 장소가 바로 실로였습니다.
그런데 실로 이외의 장소에 제단이 세워졌다는 소식은 어떤 해석이 가능하겠어요? 이들이 말씀을 어기고 자기들끼리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가 될테고, 이는 곧 심하게 보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예배하려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갈 수가 있겠죠.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이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한 겁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러한 큰 죄악을 저지르기 이전에 이 죄악을 끊어내리라는 마음으로 전쟁을 준비한 것입니다.
사실 전쟁이 말이 전쟁이지, 그 대상이 누구에요? 같은 이스라엘 형제입니다. 말 그대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시행하려고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러한 일까지 마음먹을 정도로 요단 서편의 백성들이 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명확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이렇게 형제를 죽이려는 각오를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그것은 이후 나타나는 말씀인 20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2:20 NKRV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바로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자신들 사이에 벌어졌던 아간의 범죄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범죄를 행한 것은 아간 한명이었지만, 그 모든 벌은 백성 전체에게 임했기 때문에, 이정도의 큰 죄악이라면, 벌어지기 전에 빠르게 끊어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상황은 이렇게 심각하게 돌아갑니다. 요단 서편의 백성들은 한데 모여 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제단의 소문이 잘못 전달되었던지, 아니면 그것이 제단이 아니었다던지, 이런 경우를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요단 서편의 백성들은 조사단을 편성합니다.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대처하고자 했던 것이죠.
하지만 아마도, 조사단을 보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이런 마음이 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발 아니어라. 맞더라도 제발 마음을 돌이켜라.’
아무리 죄를 끊어내야 해서 전쟁을 각오했다지만, 그래도 그들은 형제입니다. 진짜로 형제이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 함께 전쟁에서 싸웠던 전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사단을 보내면서 제발 별 일이 없기를 바랐겠죠. 그 조사단의 대표로 뽑힌 자는 바로 비느하스라는 자였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비느하스는 조사단장으로서 아주 적합한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죄악을 범해 전염병이 퍼졌을 때, 이방 여인과 동침하는 백성을 단번에 칼로 죽여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하여 전염병을 막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누구보다도 죄에 민감하고 철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죠.
그 비느하스를 대표로 한 대표단은 요단 동편으로 갑니다. 그리고 요단 동편의 백성들을 만납니다.
비느하스는 말합니다. ‘왜 너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제단을 쌓았느냐, 너희가 이렇게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죄악을 범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이 일이 혹시나 너희 땅이 죄악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면, 서편으로 건너와라. 너희를 위해 땅을 나누어줄테니, 죄악 가운데 살지 말고, 여기 와서 함께 살자. 다른 제단 세워서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우리도 거역하지 말라.’
그러면서 아까 우리가 보았던 아간의 예를 말한 것이었죠.
그러자 요단 동편의 백성들이 대답합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도 아시고, 여러분들도 아시게 될 겁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거역하기 위해 이 일을 행한 것이면,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지 말고 친히 벌해주세요. 이 일은 목적이 있어서 그런겁니다. 만약에 시간이 오래 흘러 요단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게 되면, 혹여나 우리 자손들이 여러분들의 자손으로부터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제단을 쌓아 우리가 여러분들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백성임을 증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제사를 위한 제단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 제단은 하나의 증표였던 것이죠. 지금이야 우리가 한강을 사이에 두어도 언제든 왕래를 할 수 있지만, 당시는 고대사회이잖아요. 요단강이라는 자연적 경계는 심리적, 또는 문화적 거리감을 형성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손들끼리 서로 왕래를 않다보니 너희는 우리와 달라! 라고 여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가 북한과 갖는 거리감과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요단 동편의 백성들도 서편의 백성들과 함께 나아와 예배해야 했기에, 그러한 단절은 하나님과의 단절과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하나님 백성! 이라는 것을 제단으로 쌓아 서편의 백성들이나, 동편의 백성들 모두 그것을 보고 하나됨을 기억하도록 하고자 했던 것이죠.
비느하스를 비롯한 조사단은 이 모든 해명을 좋게 여깁니다. 어쩌면 속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겠죠.
조사단은 다시 돌아가 모든 것을 설명하였고, 백성들은 기뻐하며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문제가 된 그 제단은 엣 제단으로 불리며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고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엣 제단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모든 일이 끝난 후 보았을 때는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내전까지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심각한 상황은 오히려 33절에 나온 것처럼 즐거움으로 마무리되어집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가장 먼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서편 백성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무엇을 준비했나요? 조사단을 준비했죠.
이 백성들이 조사단을 준비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앞서 보았던 것처럼, 이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동편 백성들을 향한 믿음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에이 그래도, 그들이 어떤 이들인데, 아닐 수도 있을거야.
그랬기 때문에 조사단을 파견한 것입니다. 사실 이정도 심각한 범죄의 소식이 들렸다면 하루라도 빨리 대처해야 합니다. 한시라도 지체하면 그들이 죄악을 저지르고, 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 있었죠.
그렇게 급박했지만, 그들은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절대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죠.
그렇게 조사단을 보낸 후, 비느하스가 어떤 말을 했죠? 너희가 왜 제단을 쌓았냐,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떤 얘기를 했냐면, 혹시 이 땅에 문제가 있는거면, 너희 다시 넘어와라, 땅 주겠다. 같이 살면서 하나님 거역하지 말자.
사실 이건 엄청난 말입니다. 당시가 어떤 상황이었다고 했죠? 이미 땅 분배 다 끝난 시기입니다. 동편은 동편대로 받았고, 서편도 확보한 땅을 나름대로 이미 다 지파별로 분배를 끝낸 상황이었죠.
심지어 어떤 지파들은 자기들이 땅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 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이들은 세 지파나 되는 많은 이들을 넘어오라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서편의 백성들은 동편의 형제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사랑했기에, 자신들의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했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동편의 백성들을 볼까요? 그들이 왜 제단을 세웠죠?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떨어지지 않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뭔가요? 이들도 이스라엘 공동체, 자신의 형제들을 향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손까지도 같은 공동체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그 사랑의 마음으로 굳이 오해를 받아가면서까지 제단을 세웠다는 것이죠.
결국 이 사건은 어쩌면 오해와 오해가 불러온 해프닝이었지만, 그것이 해프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가운데 믿음과 사랑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편 지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전쟁을 준비했지만, 동시에 형제를 향한 사랑으로 조사단을 파견했고, 그들을 손해보면서까지 품으려 했죠.
동편 지파들도 하나님을 향한, 형제를 향한 사랑으로 후손들까지 함께하도록 하기 위해 제단을 세워가면서까지 공동체를 붙들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동이 결국에는 하나님을 향한, 공동체를 향한 사랑에서 기반된 것이었기 때문에, 자칫 오해로 심각한 상황이 불거졌다 한들, 모두가 기쁨으로 이 일들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로 돌아와봅시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작게는 친구들과의 갈등에서부터, 크게는 정치 집단간의 갈등까지 너무나도 많은 갈등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갈등들은 모두 심각한 갈등입니다. 특히 현재 존재하는 정치 집단간의 갈등은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만 같은 극심한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이 갈등을 해결할 좋은 해결책을 들고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도가 있을 때마다 더 극심한 공격과 갈등이 더해지게 되죠.
그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답을 주십니다.
그 답은 뭘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지금 사회가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게 된 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어땠나요? 처음 들려온 사건은 심각한 내용이었습니다. 동편 지파가 하나님 앞에 범죄를 저지른다! 는 이야기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랑이, 그를 기반으로 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오해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그렇지 않죠. 분명 오해일 수도, 혹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으나, 그것을 확인하지 못합니다. 아니,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 상대를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죠.
상대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싸워 이길 대상이 되다보니, 오해와 과장은 상대를 무너뜨릴 좋은 구실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결국 결과는 전쟁과 멸망밖에 남지 않겠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사랑일 것입니다. 서로를 한 나라의 형제로서 사랑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모든 갈등은 어쩌면 손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다가올 올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에 여유를 두지 못하고, 긴장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여러분들 주변의 존재들은 모두 적으로 돌변하게 될 것입니다.
오해가 쌓여 증오가 되고,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입니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 사랑입니다. 서로를 믿고 마음으로 품고, 함께 나아갈 형제이고 한 공동체라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품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을 통해 백성들은 어쩌면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치닫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크게 하나되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형제를 사랑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 즉 샬롬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한해를 시작하는 지금, 여러분들은 많은 것을 바라실 것입니다. 다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 마음에 사랑을 품는 것입니다. 마음 안에 온전한 사랑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올 한해는 주님의 평안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사랑으로 갈등이 아닌 평안을 누리는 귀한 일들을 함께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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