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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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179.

데살로니가전서 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바울은 4:13절부터 시작해서 주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과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마지막으로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13-18절까지에서 주님의 오심과 죽은 신자들에 대해서의 내용들이 있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런 내용들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13절과 1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 죽은 자들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바울은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저런 설명으로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목양할 때 어머니가 젖먹이 자기 아이를 키우듯 목회와 양육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며 목양을 했다고 했습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 보통의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었고,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통의 선을 행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젖먹이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깊은 애정을 갖고 그들을 대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7–8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이렇게 깊은 사랑으로 그들을 영적으로 돌봤던 바울이 서로 떨어지게 된 상태에서 그들에게 죽은자들과 산자들은 모두 주와 항상 함께 있게 될 것이라면서 그가 길러낸 영적인 자녀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3-17절까지에는 주의 강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내용들이 있으나, 바울은 깊이 사랑했던 자녀들을 두고 이별을 한 어머니가 주께서 오시면 모두 주와 함께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런 맥락 가운데서 주의 강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한 내용의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목회적 자세를 보면 좀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도록 길러냈고, 자기 목숨을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어머니처럼 성도들을 깊이 사랑했었는데, 목회자가 왜 성도들과 보통적인 관계만 맺으면 되지 필요이상 관계를 맺었을까? 목회자가 성도들과 적당히 사랑하면 되지 왜 자기 목숨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사랑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바울 자신과 이제 막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자들이 어떤 상태가 되었는가 대해서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 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이제 막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 눈에 띄는 것은 만드신 바가 단수 명사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뭐들입니다.라고 해야 문법상 올바른 표현이 됩니다. 주어가 우리라는 복수이기 때문에 목적어 또한 복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들이 아니라 만드신 바라고 단수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드신 바는 작품을 뜻합니다. 고물상의 고물이라 하더라도 아주 실력있는 작가의 손을 거치면 녹슨 고물이더라도 엄청난 작품으로 환골탈태를 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 정도가 아니라 우주를 전체를 창조하신 분에 손을 거친다면 그 결과물은 어떨까요? 그래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작품들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받아들인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각 각의 작품들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명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를 뜻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모임인 우리는 곧 교회는 하나님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진 하나의 엄청난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의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을 말하고 뒤이어서 왜 교회가 엄청난 하나님의 작품인지를 보충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엡 2장 10절 이하를 보면 교회는 하나의 몸이자 하나님이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는 사람들이 우주를 만들어내신 장인의 손을 거쳐진 엄청난 하나의 작품이 되었는데, 그 작품을 들여다 보니 놀랍게도 한 몸을 이루고 있고, 그 성격이 가족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남이 한 몸이 되어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남남이 가족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모양의 작품은 볼 수도 없고 이런 모양을 띄는 작품이 있을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자라온 환경, 문화가 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받아들였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의 몸으로 만드시고 하나의 가족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엄청난 작품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하나의 몸이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통관계를 넘어선 필요 이상의 관계를 맺고 필요이상의 행동했던 것입니다. 성도들과 적당히 좋은 관계를 맺어도 되는데 자기 목숨을 내줄 수 있는, 그리고 자기 것을 다 희생하며 젖먹이 아기를 길러내는 어머니가 되어 성도들과 가족 관계를 맺고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영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자기 시간과 에너지를 다 줘가며 목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회를 했던 바울이 다시 데살로니가로 가려고도 했지만 갈 수 없어서 그들과 다시 언제 볼른지 하고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언제 바울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했지만, 주께서 강림하실 때, 재림하실 때,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죽어있는 자들과 산자들이 주님과 항상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고, 다시 만나면 이제는 주와 함께 항상 있게 될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끝까지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서로 위로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오실 거라는 생각에 일도 안하고 있고, 죽은 자들에 대해서 힘들어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주께서 오시면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받아들이고 먼저 죽었던 자들이나 살아있는 자들이 주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온 세상 창조주이신 최고의 장인이신 하나님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작품을 하나 만드셨는데 그 작품을 보니 세상에서는 찾아 볼 수도 없고, 만들어질 수도 없게 독특하게 만들어내셨습니다. 생면부지 사람들을 한 가족이 되게 하셨고, 하나의 몸이 되게 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서로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적당히 선을 끼치는 정도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미워했던 사람, 증오했던 사람까지도 용서하고 깊이 사랑해서 사랑하는 가족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는 서로가 영적인 돌봄을 하는 것이고, 서로가 자기 목숨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으로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체성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주께서 오시면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에 힘써 일하는 것에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성경을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시니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주께서 오시면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죽은 자들이나 살아있는 자들 모두가 주와 함께 항상 있을 것을 믿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고, 죽음의 문턱 근거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면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받아들이지 못한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를 열심을 다해서 주님 다시 오실 때 다같이 만나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고대합니다. 주께서 오늘 오시든 내일 오시든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살고 있겠습니다. 세상에서 생명을 구하느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매일 매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세상의 여러 즐거움이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얻는 즐거움보다 낮아짐을 경험하게 하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의 품을 더욱 경험해가는 즐거움이 이 세상의 어떤 즐거움보다 더 크고 깊음을 알아가게 하옵소서. 먼저 죽음을 맞이 했거나, 현재 죽음의 문턱에 도착한 가족들이 있다면 주님 오실 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아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주님인 것을 모르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그들에게 저희들을 보내주셔서 주께서 다시 오실 때 모두 다시 만날을 소망하며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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