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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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한국어의 밥

저는 어렸을 때 부터 다른 나라의 언어, 외국어를 배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생때는 중국어를 중국인 선생님한테 직접 배우기도 했구요, 일본어는 만화나 게임을 통해서 배우기도 하고 영어를 배워서 유학을 가기도 했구요. 그렇게 언어를 배우다보면 언어 안에 굉장히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언어 안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삶이 다 담겨있어서 언어를 배우다 보면 그러한 것들을 잘 배울 수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영국은 양과 소에 대한 목축업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영어에는 유독 소와 양에 관련한 단어들이 많은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기껏해야 송아지, 소 라고 하는 단어의 앞에 다른 단어를 붙여서 황소 젖소 이렇게 말하지만 영어로는 완전히 다른 단어들로 다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송아지는 Calf라고 하고 아직 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를 Heifer, 암소를 Cow, 황소를 Bull, 소고기를 위해서 기르는 수소를 Steer라고 부르는 등 소와 관련된 단어가 많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농사가 발달되어있고, 특히나 한국인은 밥심이지 라는 말이 있듯이 밥과쌀에 대한 단어가 굉장히 많습니다. 논에서 자라는 식물 상태는 벼라고 하고, 아직 푸른 잎을 가진 어린 벼를 모라고 하고, 벼에서 껍질을 벗긴 곡물을 쌀이라고 하고 아직 도정하지 않은 쌀은 현미, 도정해서 하얗게 된건 백비, 물과 함께 익혀서 음식으로 만든건 밥이라고 부릅니다. 이걸 영어로는 전부 Rice라고 하는 단어인데 한국인에게는 밥이 중요하기 때문에 밥과 쌀에 대한 단어가 아주 많은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와 말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말하는 사람을 통해서 살아있는 문화와 삶과 역사가 그 안에 다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하나님의 말씀 = 예수 그리스도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Hebrews 4:12 NKRV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말을 통해서 저희가 역설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John 1:1 NKRV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라고 요한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셨다고 또한 이야기하는데요,
John 1:14 NKRV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정리하자면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가운데 오셨는데 그분이 누구시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치 저희 인간과 같이 심장과 뼈와 피와 살을 가지고 이 땅가운데 살아 숨쉬게 되신 하나님의 말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라고 요한복음을 통해서 저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보통 저희는 성경을 떠올리기가 쉽지만 성경보다 앞서서 저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변하는 것이 더 올바른 대답입니다.

성경 = 하나님 말씀의 통로

그런데 지난 주 속회공과를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으로 전제하고서 공과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성경은 대체 뭘까요? 저희가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다고 해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기 때문인데, 그럼 대체 성경은 뭐냐는 거죠.
Luke 24:27 NKRV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John 5:39 NKRV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아주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명확하게 정의하십니다. 바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래서 여러분 성경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로서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성경의 어떤 문자나 글자 자체가 살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에디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도 보시면, 이 내시가 이사야서 53:7 부분을 읽는데 글자만 읽으려고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거예요.
Acts 8:30–31 NKRV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다른 말로 하면, “아니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이해하지 이게 대체 뭔 뜻인지 내가 알 수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빌립이 이사야서 말씀을 풀어주면서 여기서 가리키는 선지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니까 그 때 그 내시가 직접 빌립에게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Acts 8:36–38 NKRV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없음)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성경을 문자만 보니까 이해가 안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읽으니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읽으니까 그때 그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이 되어서 이 에디오피아 내시의 마음을 찔러 쪼개고 세례를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

또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이 저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이야기하는데요,
Hebrews 4:12 NKRV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저희의 깊은 곳에 있는 마음과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게 하는 힘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다 포로로 잡혀가고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먼저는 성전을 짓고 그 후에 에스라,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온 이들과 함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리고 다 재건한 후에 백성 앞에서 에스라가 율법책, 즉 모세 율법을 낭독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Nehemiah 8:8–9 NKRV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니까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고 그 죄로 인해서 고통 받고 돌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판단될 때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반도에 복음이 전해지고나서 1903년 원산 부흥운동을 시작으로 1907년 평양 대부흥에 이르기 까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공개적으로 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서 한국 교회만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통성기도가 시작되게 됩니다. 이 통성기도도 윌리엄 헌트라고 하는 선교사님이 설교 말씀을 전하신 후에 “이제 다같이 기도합시다”라고 이야기하니까 “돌발적”으로 거기에 참여한 천여명의 사람들이 자기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발전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했던 매큔 선교사의 기록을 보시면
“헌트 목사가 설교를 하고 리 목사가 몇 마디 광고를 한 후에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라고 했더니 그 순간 갑자기 예배당 안에 가득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예배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소리를 내서 기도한 것이 분명했다. 그 경이로운 장면이란! … 어떤 사람은 울면서,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죄목을 나열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의 마음과 생각을 판단하여 죄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지난 주 속회 공과를 보시면 존 로스 선교사의 성경 번역에 참여했던 이응찬 이라는 분의 삶이 변화하게 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성경 번역에 대해서 조금더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지금 읽고 있는 개역개정판이나 새번역 성경의 경우에도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시리아어 아랍어 아람어 등등 여러가지 언어로 된 성경의 사본들이 있고, 이 사본들을 통해서 성경을 먼저 정립한 다음에 그것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한데요.
한국에 선교사들이 막 들어오던 시기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한글로된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존 로스 선교사를 필두로 여러 인원들이 참여하여서 최초로 번역된 한국어 성경이 1882년에 나온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입니다.
이 번역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단어는 저희 민족의 토속 신앙에서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존재를 하늘의 임금이라고 하여서 하늘님이라고 부르던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저희가 지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평양 쪽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는데, 그쪽 방언이 하늘을 하날로 발음했고 이 방언의 형태를 따라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 저희가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착이 되었구요,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원래 천주라고 하는 중국에서 쓰던 한자 이름과 하느님을 병행해서 쓰다가 하느님으로 지금은 정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혹은 하느님이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이름을 저희 민족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단어라는 것 알고 계십니까? 최초의 하나님에 대한 기록은 현금 5천원권에 그려진 율곡 이이의 자경별곡이라고 하는 글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우리 민족의 고유의 표현으로 하늘의 임금, 만물의 주재,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표현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번역을 시작하니까, 영어로 God 혹은 Lord, 아니면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나 아도나이 라고 하는 저희 민족에게는 생소한 하나님이, 저희 민족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다가오게 되셨고, 또한 저희 민족의 토속 신앙으로만 고백되던 하나님이 성경 말씀의 하나님이 되시니까 저희 민족에게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셨다는 겁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이 아덴,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Acts 17:23–24 NKRV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아테네 사람들이 제우스, 디오네소스와 같은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해 세워진 단도 있었는데,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섬기고 있는 가운데, 말씀의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 가운데 전할 때에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접하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Acts 17:34 NKRV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이처럼 저희 민족에게도 잘 알지 못하고 섬기던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의 하나님이 되실 때에 저희 민족 가운데 살아계시는 말씀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이 땅 가운데에 복음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에,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빠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저희를 개독교라고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사막 잡신’이라고 부르면서 저기 사막 민족의 신과 우리 민족이 대체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저희 민족과 상관없는 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하늘의 임금이 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실 때에는 하나님은 또한 저희 민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을 통해서 오늘날의 저희에게도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이 되십니다. 저희가 성경 말씀을 읽고 또한 이 말씀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것은 문자적으로만 국어책 읽듯이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읽고 선포해야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회개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민족이 성경 말씀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읽었을 때에,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던 것처럼 회개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저희가 읽고 들음으로 저희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교회 밖에서 이 말씀을 선포할 때에 믿지 않는 이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선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 민족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합니다. 저기 멀리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민족이 오래전부터 고백해온 하늘의 주인, 즉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의 하나님으로 고백될 때, 진정으로 저희 민족 가운데 살아계신 말씀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민족에게도 충분히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처럼 저희도 저희 민족 가운데 다시금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심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되어서 저희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과 만났을 때에 저희 민족에게 살아계신 말씀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고, 다시금 이 땅가운데 말씀의 복음을 선포하고자 다짐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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